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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건 의자입니다 : 사토 마도카 장편소설

원제 : 一Ο五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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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왜 하필이면 의자니? 책상도 아니고 댄스도 아니고 말이야.”
“글쎄요, 의자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거든요…….”

3학년 A반 ‘의자 소년’과 3학년 B반 ‘바지 소녀’
좋아하는 ‘의자’ 하나로 뭉친 두 친구의 열혈 도전기

누군가에게 기대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기대를 받는다는 것, 서로 의지하는 105도의 관계……. 수고와 즐거움을 함께하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오키도 신의 가족은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이사한다. 전학 온 첫날, 좋아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의자라고 대답해 ‘의자 소년’으로 찍힌 신은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의자 디자인 뮤지엄』을 두고 슬랙스 차림의 짧은 머리 여자애와 얽힌다. 그 애는 ‘슬랙스 하야카와’ 혹은 ‘바지카와’로 불리며 교내에서 괴짜로 취급받는 하야카와 리리다. 서로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의자를 좋아한다는 드문 공통점을 가진 둘은 곧 친구가 된다. 의자 장인이었던 할아버지를 보며 의자 디자이너의 꿈을 키운 신과 신의 말마따나 “모델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리리는 비밀리에 팀을 이루어 중학생 최초로 ‘전국 학생 의자 디자인 대회’에 도전하기로 한다.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극심한 반대, 처음 알게 된 냉혹한 업계 현실, 협업 과정에서 마주한 갈등과 난관. 두 사람은 휘청거릴 때마다 서로 기대며 그들의 첫 의자를 함께 만들어 간다.

『좋아하는 건 의자입니다』는 십대들의 건강한 분투기를 빠른 호흡으로 담아내면서 흥미로운 ‘의자의 세계’도 한껏 들여다볼 수 있어 읽는 재미가 큰 책이다. 한국어판 표지는 설계도면을 연상시키는 모눈의 바탕 위에 주인공 신이 좋아하는 의자 디자이너들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은 원색적인 요소들을 얹어 경쾌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출판사 서평

■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의 건강한 싸움
『좋아하는 건 의자입니다』는 두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팍팍한 일상에 치여 취미도 꿈도 없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곧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더욱이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해 나간다는 건 또 얼마나 큰 행운일까. 강압적인 아버지의 반대와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 부딪치고 깨지는 신의 모습이 안쓰럽기는 해도 그만큼 희망차 보이는 까닭이다.
진로 탐색에서 가장 중요한 첫 단추는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이다. 당장에 구체적인 직업을 점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기 위해서다. 신과 리리는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으로, 신의 할아버지 말마따나 “아직 갈림길까지도 가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들이 열아홉이나 스물이 되어서도 같은 꿈을 품고 있을지, 서른이나 마흔 즈음 실제로 의자 디자이너와 모델러가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자신들조차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두 사람은 멈춰 있지 않는다. 막연한 계획들을 구체화하고 갈등이 있을 때는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고 미숙해서 생기는 실수들을 곱씹고 손보며,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 간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기꺼이 뛰어든 경험들은 훗날 어떤 길에 들어서든지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 계속 움직이게 하는 저력이 된다. 좋아하는 의자를 만들기 위해 두 사람이 엄한 부모, 냉혹한 현실, 때로는 서로 그리고 자기 자신과 벌이는 싸움들은 삶에서 이어질 숱한 좌절과 조급증을 극복하기 위한 기초 훈련인 것이다.

■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의자의 세계
사토 마도카는 작가로 등단하기 전부터 제품디자이너로 활동해 왔다. 그런 만큼 이 작품에는 작가 자신의 경험이 충분히 녹아 있다. 실제 현장에서 쓰는 전문 용어들이 자연스레 등장하고,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과 온갖 시행착오가 세세하게 묘사된다. 해당 분야의 전공자나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알기 힘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보들이 풍성해, 진로를 탐색하는 청소년은 물론 성인 독자도 새로운 세상을 알아 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의자 이야기, SF영화와 신화 속 의자 이야기, 의자의 종류와 재료 이야기, 등받이 각도와 팔걸이 높이와 접지점 개수가 의자의 앉음새에 미치는 영향, 의자에 담긴 철학은 물론 의자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진학 팁(?)에 이르기까지, ‘소우주’라 할 만한 의자의 세계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편, 신이 아버지의 친구들을 만나 디자인 업계에 대한 조언을 듣는 부분도 다른 의미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야. 다들 미대를 나온 우수한 인재들인데 나한테 와서 혹사당하고 있지. 잔업이 없는 날이 없거든. 아르바이트도 시급이 아니라 월급제라서 잔업수당이 없어.”

“내가 디자인한 것과 똑같은 물건이 돌아다니기도 해. 디자인을 베껴 간 회사를 고소하면, 그 회사는 맥없이 도산해 버려. 그러고는 또 다른 회사를 차려서 똑같은 물건을 팔지. 고소하고 도망가고 쫓아가고, 정신이 없어. 그렇지만 소송을 하려면 돈이 드니까 결국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지. 더구나 가격이 한 자릿수나 차이가 나니까 모조품이 더 잘 팔리기도 하고. 으음, 그런 세상이야. 흔하디흔한 얘기란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다녔어. 쉰 군데 이상 면접을 본 것 같은데, 마지막에 겨우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왔어. 수입은 예전보다 상당히 줄어든 편이지만, 정사원 채용이니까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지. 회사에서는 사보를 만들고 있어.”
운이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광고 대행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던 사람이 식품회사 사보 만드는 일을 한다. 일거리가 전혀 다르잖아?

작가는 이들의 입을 통해서 일면 화려해 보이는 크리에이터의 고된 삶, 아무리 재능과 의지가 있어도 운이나 타이밍에 따라 참담하게 실패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 냉정하게 일깨워 준다. 크리에이터로서 오랫동안 현장에 몸담아 온 작가는 그 세계의 흥미롭고 매력적인 지점들만큼이나 어둡고 냉혹한 이면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게 이야기한다.

■ 서로 살짝 기대어 함께 꾸는 105도의 꿈
소설의 원제인 ‘105도’(一○五度)는 적당히 기대앉을 수 있는 의자의 이상적인 각도라고 한다. 그런데 105도는 비단 의자 등받이의 각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선 모양을 형상화한 ‘사람 인人’ 자의 각도로, 바람직한 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신과 리리의 협업은 상대를 이해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 개성을 감추고 두루두루 적당히 맞추는 데 익숙한 신은 아이들의 눈총에도 꿋꿋이 바지를 입고 다니며 남자보다 힘이 약해 모델러가 될 수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체력을 단련하는 리리를 만나 미처 몰랐던 제 안의 편견들을 발견한다. 일정을 조율하던 중에 신은 디자이너는 머리, 모델러는 손을 쓰니 디자이너의 작업에 맞춰야 한다며 은연중에 디자이너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그러고는 기분이 상해 나가 버린 리리를 두고 여자라서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깎아내린다.

“신아, 머리만 커 봐야 별 쓸모없단다. 게다가 기술자의 화를 돋우는 디자이너 중에 쓸 만한 사람도 없는 법이야. 일류 디자이너는 그런 태도로 기술자를 대하지 않아. 작업은 50대 50이야. 어느 쪽이든 위도 없고 아래도 없어. 리리한테 가서 사과하도록 해. 그렇게 괜찮은 아이는 없어. (……) 왜 지르퉁해 있냐? 하나 묻겠는데, 너 혼자서 할 수 있니?”
“그거야…… 할 수 없지요.”
“그렇지? 사실은 말이다. 의자 디자이너라면 모형 정도는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해. 목업까지 자기가 알아서 만드는 사람도 있어. 네가 좋아하는 임스 부부도 의자 하나 만드는 데 목업을 50개, 100개나 만들었다고 하더라. 네가 그렇게 할 수 없으면 그 애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잖니?”

항상 신의 생각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할아버지가 시쳇말로 ‘돌직구’를 던지자, 신은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편견과 하찮은 성性적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닫는다. 혼자 잘난 듯 상대방의 머리 꼭대기에서 내리누르려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제게도 있었던 것이다. 신은 105도 이상 리리에게 기대고 있으면서 혼자 90도로 서 있는 양 굴던 태도를 지체 없이 반성하고 리리를 찾아가 사과한다. 또 부족하지만 서로 적당히 기댈 수 있는 관계가 되자고 얘기한다. 이후로 신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차별이나 편견이 담긴 말은 물론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리리와 특별한 우정을 나누며 신은 일면 아버지보다 나은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초반부에 신은 왜 의자를 좋아하는지 묻는 선생님에게 “사람의 온기”가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당시에는 물론 의자에 앉아 온 혹은 앉게 될 사람들의 온기를 두고 한 말이다. 실제로 의자를 만들면서, 신은 의자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한지 깨닫는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파트너 리리와 주변의 조력자들은 물론, 나무를 심고 베고 운반하고 가공하고 볼트와 나사를 만들고 부품을 조이고 천을 만들고 씌우는 모든 과정에서 온 사람의 온기가 의자에 담기는 것이다. 막연히 의자가 좋아서 의자 디자이너를 꿈꾸던 신이 의자 제작사 집안에서 일찍이 풍부한 경험을 쌓아 온 리리와 의기투합해 진짜 의자를 만들며 함께 꿈을 구체화해 나간다. 실로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명언을 십대들의 빛나는 드라마로 구현해 낸 작품이라 하겠다.

[옮긴이의 말]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105도’입니다. 언뜻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말이지만 본문에서 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105도는 신과 리리가 만들려는 의자의 이상적인 등받이 각도입니다. 이는 단지 의자 등받이의 이상적인 각도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105도는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타인에게 의존하지도 않고, 독불장군처럼 독단적인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 각도 말이지요. 이 각도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신은 “누군가와 수고와 즐거움을 함께하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변했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성장이고 성숙입니다.

목차

프롤로그 7

1 - 특이한 전학생 9
2 - 의자 소년 20
3 - 바지 소녀 34
4 - 여자에게 바지, 남자에게 스커트 42
5 - 전설의 모델러 53
6 - 극비 프로젝트, 시작! 68
7 - 아버지와의 전쟁 79
8 - 최강의 파트너 94
9 - 105도 106
10 - 반항심보다 호기심 123
11 - 스튜디오 데라다 131
12 - 그래도 아직은 144
13 - 튼튼한 사람의 약한 마음 155
14 - 의자라는 소우주 166
15 - 프리스타일 177
16 - 우리 의자 191
17 - 전국 학생 의자 디자인 대회 200

작가의 말 215
옮긴이의 말 217

본문중에서

친근감과 더불어 의자에서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고대 이집트의 왕좌를 보면 왕관을 쓴 투탕카멘이 떠오른다. 낡은 흔들의자가 있으면 그곳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울지도 모를 할아버지나 무릎 위에 고양이를 앉히고 깜빡깜빡 조는 할머니가 보인다. 새로 만든 아기 의자를 보면 내일 그곳에 올라가 앉으려는 아기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내가 의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_16~17쪽

‘개성’은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쉽다. 따라서 난 별나지 않은 모습으로 친구들이 즐겨 듣는 유행가를 함께 듣는 척하고 유행하는 영화를 본다. 인터넷에서 영화 리뷰를 읽고 적당히 장단을 맞추어 줄 때도 있다. 그런 자신이 점점 한심하게 여겨지기는 해도 여태껏 취미가 같은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내심으로는 다른 애들과 고만고만해야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자기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비슷해지고 싶지는 않다. 대량 생산품도 아닌데 모두가 하나의 색깔로 물든다는 건 그야말로 최악이다. 어쩌면 다들 ‘난 사실 너희와 달라’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다만 고립될 용기가 없으니까 적당히 그런 척할 따름이다. _44쪽

“물론 모형을 만드는 일도 힘들겠지만, 맨 처음 디자인 단계가 더 중요해. 이건 디자인 대회니까 말이야. 디자인에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어. 나무를 깎아 조립하는 일은 시간에 정해진 대로 해 나가면 되겠지만, 디자인은 그렇지 않아. 몇 시간 꾸준히 작업한다고 해서 성과가 반드시 나오리라는 법이 없거든. 손이 아니라 머리를 써야 하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리리가 일어섰다.
“꼭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 같네?”
“뭐가?”
“지금 한 말은 디자이너가 위에 있고, 모델러가 아래에 있다는 식이잖아?”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디자인은 아이디어를 내는 작업이라서 하루에 몇 시간 일하면 반드시 성과가 나오는 수작업하고는 다르다는 얘기였지.” _113쪽

“잘 들어라. 넌 등받이를 105도로 만들고 싶다고 했어. 괜찮은 각도야. 가볍게 걸터앉기에 적당하지. 그런데 말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야. 물론 90도라면 혼자 곧추설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아. 그렇다고 소파나 소파베드처럼 푹 파묻히듯 앉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말이야.”
“무슨 말씀이죠?”
나는 그제야 할아버지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철저하게 의지하면, 상대가 떠받쳐 줄 수 없는 법이야. 살짝 기대는 정도가 딱 좋아.”
“…….”
“그리고 말이야, 상대도 힘들 때는 너한테 살짝 기대 올 거야.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사람 인人’이라는 한자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인간이란 누구나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면서 살아가는 거란다. 혼자 서 있는 사람은 보기 흉해. 알겠니? 넌 지금 그 아이에게 살짝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의존하고 있어. 그런데도 꼭 혼자 서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그렇지 않니?” _115~116쪽

“이 일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단다. 어릴 적부터 펜이나 장난감을 분해해서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들여다보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았어. 이렇게 하면 좀 더 모양이 그럴듯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멋대로 바꾸어 보고 말이야. 그런 짓에만 열중하던 개구쟁이 디자인 오타쿠였단다. 그러니 이 길로 들어설 수밖에. 뭐라고 하면 좋을까? 말하자면 들어서야 할 길로 들어선 셈이지, 뭐.”
데라다 씨의 말은 귀로 들어와 서서히 몸속으로 퍼져 나갔다. _139쪽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요시노 씨가 말한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여태 의자 디자인 말고도 내게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내게도 무언가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
이런저런 다른 일을 생각해 내려고 머리를 쥐어짜 본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의자 디자인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의자를 만들고 싶다. 어쨌든 지금은 의자를 만들고 있다. 우선 만들어 보자. 단지 좋아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 내가 의자 디자인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은 모르니까 말이다. _152쪽

요새 들어 내가 상당히 변한 것 같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벌벌 떨면서도 누군가에게 기대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기대를 받는다는 것, 서로 의지하는 105도의 관계……. 수고와 즐거움을 함께하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나와 리리만이 아니다. 이 의자를 만들려면 많은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한다. 기술을 가르쳐 준 세디아의 기술자들을 비롯해 목재를 판매한 사람과 가공한 사람, 통나무를 운반한 사람, 나무를 베어 쓰러뜨린 사람과 나무를 심은 사람, 그리고 볼트와 나사, 도료, 쿠션의 내장재와 거기 씌우는 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작업이 차례차례 이루어져 우리 손까지 넘어왔다. 만약 이 의자를 제품으로 출시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건축 같은 장대한 프로젝트는 아닐지 모르지만 이 단순한 의자 하나에도 사회적인 관계가 응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관계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_196~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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