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김용욱 역사 장편소설 [여울속에 잠긴 산하].

작가의 말 3

대동계 비화……… / 11
싹트는 곳……… / 56
치사한 계략……… / 107
음모를 펴다……… / 156
기축옥사(1)……… / 257
작가후기………/ 321

[머리말]

사람의 인생사는 굴곡과 파란만장의 연속이다. 그건 누구나 예외가 없다. 그러니 우리에겐 그런 걸 나무랄 수 있는 권리는 없다. 그러나 달리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사람한테 많은 인생사의 굴곡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하고 흥미 있다는 말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 인간 자체의 삶이 타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림이 있었다는 것은 그의 인생 자체에 긍정과 부정이 많았다는 말이 아닌가. 많은 파란과 신비로움이 그의 삶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말이 아닌가. 어디 곡절이 그렇게 된 데에는 한 개인의 인생사에 한할 뿐이겠는가. 무릇 한 개인의 인생사만큼이나 한 가정의, 한 가문의, 한 나라의 파란도 여러 모로 겹쳐져 있었을 것이리라. 하여 개인은 물론 나라도 그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생존해서 살아남아 온 만큼, 줄기찬 파란의 여정을 헤쳐 온 그 자체에 대해서는 개인, 가문, 국가에 대해서, 우리가 존경심과 경외심을 표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리라. 그러하니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온 개개인들은 물론, 그 나라를 구성해 온 수많은 민초들 모두의 삶 하나하나 자체들이 하나의 파란만장한 역사로 점 찍힌다고 해서 그런 것에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한 파란만장의 내력들을 인간들이 스스로 가감 없이 가로로 혹은 세로로, 때로는 진실되게 때로는 왜곡되게 써내려온 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씨줄 날줄들 속에는 인간 개개인의 모든 역사와 가문들의 역사와, 나라의 역사가 숨쉬고 있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 못할 애환들을 가슴속에다 더 깊이 혹은 살짝 숨기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정여립의 인생여정 또한 그러했다.
정여립은 전주지방의 비교적 유력한 가문의 자제였다. 그는 재능도 있었고 재주도 있었고, 관료가 될 수 있는 유학의 학문적 실력도 상당히 있었다. 다방면에 능력도 두루 갖춘 빼어난 올곧은 선비였다. 그는 전도유망한 조정의 청요직에 있던 관리였다. 홍문관 수찬직에 있던 관리였다. 하지만 그는 조선의 양반사회 체제에서는 맞지 않는 인재였고 존재였다. 그는 조선사회란 양반들의 허구에 크게 실망하고 좌절한 나머지, 크게 환멸을 느끼고 양반의 틀에서 벗어나 저항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을 했다. 그리하여 절대 권위를 가진 주상 선조를 경멸하고 양반들에 의해서 공고히 유지되어 가고 있던 조선의 관료체제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언가를 시도해야만 했다. 정여립은 양반과 양민들, 그리고 천인들의 구별이 없는 새로운 신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이루어내기 위해서) 새로운 모색에 들어갔다. 그 작업의 결과가 ‘대동계’의 결성이었다. 일종의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가 장차 조직하고자 했던 ‘대동계’의 이념은 이러했다. 첫째로는 이 세상에 반상의 구별이 없어야 했으며, 다음으로는 이 사회에 남녀의 귀천도 없어야 했으며, 그 다음으로는 이 사회에서는 빈부의 격차 있는 사회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그러한 혁신사회였다. 그것이 정여립이 꿈꾸어 온 대동사회의 출발점이었고 바로 ‘대동계’의 이념이었다. 어디 대동사회와 ‘대동계’의 이념이 그것뿐이었던가. 사농공상의 서열도 이 사회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되었으며, 그러니 양반과 천민들은 서로 어울려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들어 있었다. 그는 그러한 목표를 위하여 ‘대동계’라는 조직을 결성하였고, 그것을 통하여 조선사회를 개조해 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조선 땅에다 멋진 대동사회를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 궁극적인 정여립의 꿈이자 목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동사회란 무엇인가
바로 어울림의 사회다. 또한 함께하며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야 하는 더불어 가는 사회다. 협동과 협치의 사회다. 우리는 여기서 대동사회에 대한 해석을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맨 처음에 대동이라는 말을 쓴 사람은 서주시대 때의 병법가인 강상이었다. 흔히 말하는 강태공이라는 사람의 저서에 대동사회라는 말이 보인다. 그의 저서인 《육도 에 간략하게 보이고 있다. 그러다 한참 후대로 내려와서 전국시대 때의 사람들인 맹자, 묵자, 순자 때에 와서야 비로소 대동이라는 말의 정의가 분명하게 내려진다. 전국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그 싹을 화려하게 꽃피우게 되는데, 이때에 와서는 대동사회라는 말이 이미 다양하게 해석도 되고 있었다. 즉 순자의 <겸애> 혹은 묵자의 <겸상애>라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었고, 다시 이 사상은 맹자에 의해서 좀 더 심화되고도 과격한 이론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유가의 아성이라는 맹자가 말하고 있는 대동사회라는 개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간단명료했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갈아치워야 한다.”였다.
사회에 대한 혁신적이고도 담대한 개혁사상으로까지 발전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동사회라는 말이 태동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강태공의 《육도》를 조금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강태공의 《육도문도》에서 처음으로 대동사회라는 말의 개념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 임금이 똑똑하지 못하면 나라는 위태롭고 백성은 혼란스럽다. 임금이 어질고 훌륭하면 나라는 편안하고 백성은 잘 다스려진다. 화와 복은 임금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하늘의 시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책임에 대한 언급이다. 즉 임금의 책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임금이 바르지 못하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는, 당시의 왕조시대에서는 감히 꺼내어서도 안 되는 폭탄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화와 복을 가져오는 것은 임금 스스로에게 있으니 그 임금이 잘못하면 만천하에서 사람을 구하여 쓰되, 대신에 어질고 똑똑한 사람을 구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 임금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는 어마어마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 자리란 것은 특정한 한 가문에게만 돌아가게 해서 천년만년 영속되어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후로 전국시대 때의 사람들인 묵자와 순자의 저서들에서도 대동사회라는 말의 뜻이 보이고 있다. 즉 두 사람의 저서, 《묵자》와 《순자》에 언급되고 있다. 특히 이때의 대동사회는,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과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이라는 두 기둥이 주된 이념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천하공물론>은 ‘천하는 어느 한 사람의 사유물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공유물이다.’라고 하는 사상에서 비롯되었고, <하사비군론>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갈아치워야 한다.’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묵자의 <겸상애> 사상과 순자의 <상애> 사상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묵자의 ‘서로 더불어 사랑하라’와 순자의 ‘서로 사랑하라’라는 두 애(愛) 사상이다. 또한 <하사비군론>은 《맹자》의 저서에서도 보이는 바, 즉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갈아치워야 한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맹자의 핵심사상이다. 이 맹자의 담대한 혁신사상을 정여립이 조선 땅에다 펼쳐 보고자 했던 것이다. 즉 ‘대동계’라는 비밀결사체를 만들어서 그 뜻을 이루어 내고자 그는 꾀하였다.
아, 원래 이 천하는 만민의 천하였다. 애초에 천하에는 주인이 없었다. 모두가 어울려서 살았다. 그러나 이 천하가 만민의 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했으니, 이 세상은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한 사람의 천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점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점이 이 나라 백성들을 한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