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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의 현장에서 태동한
‘생명’ 담론의 독특한 지점을 드러내다

어문학사 ‘기억과 경계’ 학술총서는 국민문화의 강고한 경계에 대한 재고와 함께 식민지와 그 이후 세계의 ‘기억’의 생산과 전유 양상에 대한 도전적인 문제 제기를 위해 기획했다. ‘기억과 경계’ 학술총서로서 6번째로 출간된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명’에 관한 현상을 동아시아 차원에서 접근하는 가운데 한국 근대문학의 현장에서 태동하는 ‘생명’ 담론의 독특한 맥락을 살펴보려고 했다.

어문학사 기억과 경계 학술총서

한국 근대문학의 현장에서 태동한
‘생명’ 담론의 독특한 지점을 드러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숭고’와 ‘공동체’를 키워드로 하여 한국 근대시에 내장되어 있는 미학적 특질을 읽어내는 한편, 이것이 당대 조선적 맥락에서 부상하는 성과를 밝혀내려고 했다. 말하자면, 조선의 시인들은 근대 자유시를 절대적인 과제로 삼고 미의 영역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미를 초과한 숭고한 영역을 예술의 지향점으로 표방하고자 했으며, 나아가 자신들의 ‘생명’의 원천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그들이 ‘자연’과 함께 새로운 시적 대상으로 내세운 ‘애인’, ‘고향’, ‘어머니’ 등이 자신의 존재를 감싸는 토대이자 ‘생명’의 근원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그러한 점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애인’, ‘고향’, ‘어머니’의 대상에 ‘조선’이나 ‘전통’의 기호를 결부시키고 있는 것은 ‘숭고’에 대한 시적 탐색이 순전히 문학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던 담론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당대 사상계에서는 ‘단군’으로 표상되는 선조들의 문명을 ‘생명’의 궁극적 기원으로 설정하거나, 조선적 공동체를 창출하기 위한 원리로서 ‘생명’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들이 다방면에서 제출되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조선의 근대 시인들이 ‘숭고’와 ‘공동체’를 둘러싼 시학을 전개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근본적으로 ‘생명’에 관한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책의 구성과 접근법
제1부에는 개념사적 접근법을 토대로 하여 근대 한국 문단에서 ‘생명’ 담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생명(生命)’이라는 개념 자체가 논자의 입장에 따라 사용되는 방식을 비롯하여 ‘생명’이 ‘life’로부터 번역되고 정착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천(天)’ 혹은 ‘천직(天職)’과 같은 유사개념을 통해 사용자의 맥락에 따라 전통적이고 근대적인 의미를 표출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제2부에서는 근대 동아시아에서 ‘생명 사상’이 유통되는 경로를 구체적으로 추적해보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각자의 맥락에서 형성해간 ‘생명주의’의 정체를 비교문학적으로 고찰해보았다. 다이쇼기 일본에서 ‘생명’에 관한 공적 담론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당대 일본이 처해있던 내외부적인 상황이 적잖이 개입하고 있으면서도 ‘생명’에 초점을 맞춘 여러 사상가들이 거기에 이론적 근거를 부여하고 있었다. 이런 관점에는 수신자?발신자로 향하는 일방향적 영향관계나 서구와 비서구를 구획 짓는 위계질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물론 서구 사상가들의 ‘생명’ 사상이 동아시아에서 ‘생명’에 대한 태도나 주의를 표방하게 된 것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영향 가운데 각국의 맥락에 따라 ‘생명주의’가 어떠한 방향으로 정초되어갔는가를 살펴보는 작업은 더욱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 책의 제2부에서는 멀게는 오이켄(R. Eucken), 에머슨(R. W. Emerson)의 ‘생명’ 사상이, 가깝게는 베르그송(H. Bergson), 블레이크(William Blake) 등에 영향을 받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의 ‘생명’ 사상이 근대 한국과 일본에서 수용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각국이 처한 상황에 맞게 변용되어가는 양상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이 책의 제3부에서는 개념사적 접근과 비교문학적 고찰에서 나아가 한국 문단의 현장에서 ‘생명’을 둘러싼 다양한 사례를 발굴함으로써 ‘생명주의’의 관점 아래 한국 근대문학의 지평을 세우고자 한다. 실제로 근대 한국 문단의 현장에서는 근대문학의 출발점으로서 ‘자아(自我)’론이나 ‘문화주의(文化主義)’의 의장을 갖춘 개조론과 결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에 관한 담론을 창출하고 있었으며 1930년에 들어와 조선 민족의 고유한 특질을 표방하기 위한 근거로서 ‘생명’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한국 근대문학을 ‘생명주의’라는 관점으로 관통시키는 작업은 동아시아 차원에서 한국 근대문학의 특수성을 정초시키는 일이자 식민지 시기 한국 문학이 펼쳐보인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저자의 말

서론: ‘생명’으로 보는 한국 근대문학의 지형도

1부 개념사적 접근과 한국 문단의‘생명’담론
1. 한일 상징주의론의 전개와 ‘생명’ 개념 도입의 비교 고찰
2. ‘인생(人生)’ 개념의 정립과 한일 근대문학관 형성에 관한 비교 고찰:
‘life’의 번역과 ‘생명’ 개념의 정착을 중심으로
3. 1920년대 조선 문단에서 ‘천직론’과 ‘공동체주의’의 구조

2부 동아시아 생명 사상과 한일‘ 생명주의’의 비교문학적 고찰
4. 오이켄(R. Eucken)의 ‘신이상주의’ 수용과 한일 ‘문화주의’의 전개 양상에 관한 일고찰:
이쿠다 조코(生田長江)와 노자영(盧子泳)을 중심으로
5. 1920년대 조선 문단에서 ‘자연’론의 원천과 한일 ‘생명주의’의 전개 양상에 관한 일고찰:
에머슨(R. W. Emerson) 사상의 수용을 중심으로
6. 야나기 무네요시(柳宗?)의 생명 사상과 1920년대 한국시의 공동체 문제

3부 한국 문단의 현장과‘ 생명주의’의 여러 사례
7. 『태서문예신보』에 나타난 자아 탐색과 ‘대아(大我)’의 의미지평에 관한 고찰
8. 자산(自山) 안확(安廓)의 내적 개조론과 ‘조선적 문화주의’의 기획
9. 1920년대 초기 노자영 문학의 ‘생명의식’과 공동체의 이념
10. 수주 변영로의 초기 문학에 나타난 방랑과 공동체 구상의 여정
11. 식민지 시기 박팔양 시에 나타난 ‘생명의식’과 미학적 전위의 형상화

결론: 동아시아 차원에서 바라본 한국 ‘생명주의’ 문학의 지평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