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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과 등단작으로 함께 배우는 아동문학창작법
중견작가들의 대표작품과 2000년대 신예작가의 등단작을 읽으며
창작 수준도 높이고 원리도 익히는 아주 특별한 아동문학강의!

동시나 동화가 주류가 되는 아동문학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읽힐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장르를 창작하는 일은 예상 밖으로 쉽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아동문학은 성장을 하면서 점점 아동문학으로부터 멀어져 있다가 새삼스럽게 동시나 동화를 접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구가 생긴 사람들이 창작하는 장르다. 그 때문에 그 입문과정에서 공통되고도 특별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점에 착안했다.

1부에는 2000년대 들어 아동문학가가 된 작가들의 등단작품을, 2부에는 20세기 후반 등단해서 이미 여러 권의 작품집을 발간한 중견작가들의 대표작과 그 창작 배경을 실었다. 3부에는 최근의 아동문학을 보는 비평적 관점을 두 편의 평론으로 제공해 아동문학창작의 배경에서 새로운 시각과 논리적 안목이 배태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아동문학이란 어린이의 감정과 이해력에 초점을 두고 창작된 문학작품으로 동시나 동화 같은 것들이 이 범주에 든다. 그런데 아동문학창작에 뜻을 둔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힘겨워하는 일이 바로 ‘어린이의 감정과 이해력에 초점을 두는 일’ 그 자체이다. 그 일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해 최근 등단작가들의 첫 작품을 한꺼번에 많이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1부에 놓은 단편동화 15편과 4인 동시작가들의 동시들이다. 그들 작품에 대한 각 심사평의 일부도 실어 이해를 도왔다.
등단 시기 작품들은 새로이 아동문학창작을 하려는 이들에게 주제나 소재, 기법과 문체 등 여러 면에서 하나의 길잡이가 되리라 본다. 등단작이니까 일부 미숙함도 드러날 것이고 또한 자신과 비슷하게 보이는 어떤 특징이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참신한 감각 등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으로서 아동문학창작의 세계로 입성하는 과정을 나름의 방법론으로 극복한 사실을 먼저 주목해 창작입문에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일단 아동문학창작의 세계로 입성하게 되면 이제 그 수준을 격상시켜야 하는 책무를 지게 된다. 어린이가 원하는 것과 작가로서 그 어린이에게 원하는 것을 함께 작품에 담아내야 한다. 그 일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어린이의 실상을 감안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들의 몫이다. 이 점에서 2부에 실은 중견작가 6인의 대표 단편동화와 동시작가 1인의 대표 동시는 습작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본다. 특히 인터뷰를 통해 각 작가마다 아동문학가가 된 과정과 창작의 배경 등을 밝혀 아동문학이 참으로 친숙한 인간의 문학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대표작과 등단작으로 함께 배우는 아동문학창작법
읽고 쓰는 아동문학
차례

책머리에 _ 아동문학창작의 첫걸음을 걷는 이들을 위해 4

제1부
2000년대 작가 19인 동화 동시 등단작

동화
고윤미 _ 레고의 꿈 12
김옥선 _ 아빠의 자전거 23
김이플 _ 꽃배를 탄 아이 31
김 정 _ 자꾸 뒤돌아보는 건 부엉이 때문이야 41
노혜진 _ 할머니의 숙제 55
박가연 _ 춤 65
박정미 _ 꽃 도둑 73
손아사내 _ 그림자 도둑 82
안수연 _ 괴물 난동 사건의 진실 89
염희정 _ 링고스타 101
이명희 _ 모과 110
이서림 _ 라오스의 달콤한 눈 120
임문성 _ 지렁이 대작전 128
조희애 _ 그건 정말 오해야 145
황선옥 _ 위험한 이사 152
동시
신정아 _ 코끼리 눈 외 4편 161
심정민 _ 풀씨 외 1편 166
유이지 _ 재미있는 한자 공부 외 6편 169
천선옥 _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외 1편 175

제2부
중견작가 7인 동화 동시 대표작과 작가 인터뷰

원유순 _ 엄마가 있는 그림 180
·날마다 쓰는 노력
노경수 _ 해바라기바라기 194
·모티프를 통합하는 상상력
양지숙 _ 네 잘못이 아니야! 214
·인권 문제의 새로운 인식
양연주 _ 제대로 닭 맛 232
·계몽과 교훈을 넘어서는 이야기
조소정 _ 내 배꼽 어떻게 찾지? 250
·꿈을 이룬 글쓰기
최형미 _ 13월의 크리스마스 265
·펑펑 울 수 있는 슬픈 이야기
김숙분 _ 실과 바늘 외 5편 281
·자연과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지으며

제3부
아동문학의 새로운 시각

박덕규 _ 동화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292
이은주 _ 지금, 여기의 그림책 304

‘크르릉’
동수가 방문을 여는 소리에 제 집에서 웅크리고 있던 메리가 잠이 깼는지 살짝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크르릉’거리던 메리는 동수임을 알자 다시 배를 깔고 누워버렸다. 동수는 자신에게 알은 체도 하지 않는 메리에게 말할 수 없이 서운했다.
메리는 이제 더 이상 동수를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다. 동수에게 실컷 얻어맞고도 동수가 ‘메리야!’ 하고 부르면 언제 맞았냐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동수 품으로 뛰어들던 예전의 메리가 아니었다. 동수가 아껴두었던 과자를 주어도, 할머니 몰래 햄을 갖다 주어도 소용없었다. 눈에 시퍼런 불을 켠 메리는 동수가 곁에 다가서기만 사나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동수는 그런 메리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루로 나온 동수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방학숙제인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수의 신경은 온통 메리에게 가 있었다.
동수는 작년 봄에 엄마를 따라 할머니 댁으로 오는 시장 통에서 작은 소쿠리에 담겨 있는 메리를 처음 보았다. 하얀 털이 부숭부숭 난 강아지가 동수 마음에 꼭 들었다. 소쿠리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강아지는 언젠가 아빠 손을 잡고 갔던 대공원에서 사먹은 솜사탕 같았다. 봄볕을 받아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는 그 까만 눈동자가 동수 마음에 꼭 들었다. 강아지에게서 눈을 못 떼는 동수에게 엄마는 선뜻 강아지를 사주었다. 동수는 강아지가 이별의 선물이 될 줄은 몰랐다. 엄마와 같이 자겠다고 떼를 쓰는 동수를 할머니 방에서 재운 엄마는 그 날 밤 돈 많이 벌어오겠다는 편지 한 장만 남겨놓은 채 어디론가 가버렸다.
동수가 밤마다 잠에서 깨어 엄마를 찾으며 울 때면 메리가 곁에서 동수의 눈물을 핥아 주곤 했다. 엄마 없는 동수의 아픈 맘을 달래주기라도 하려는 듯 메리는 울며 잠든 동수의 얼굴을 밤새 할짝할짝 핥아주곤 했다. 하지만 메리의 몸집이 커지자 할머니는 더 이상 메리를 방에 들이지 못하게 하셨다. 처음 며칠은 방문 앞에서 밤새 낑낑거리는 메리가 불쌍해 동수도 메리를 따라 울곤 했다.
할머니가 바닷가로 일을 나가고 나면 메리만이 동수의 친구였다. 동수를 따라 팔짝팔짝 뛰기도 하고 컹컹 짖기도 하고 동수가 던진 나뭇가지를 쏜살같이 주워오기도 했다. 엄마와 헤어진 후 동수는 항상 메리와 함께였다. 엄마가 보고플 때마다 바닷가에서 소리내어 엄마를 부르며 우는 동수 옆에 있어 준 것도 메리였고, 엄마를 싣고 올 버스가 서는 버스 정류장까지 추적추적 함께 걸어간 것도 메리였다. 늘 시무룩한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오는 동수를 반갑게 맞아준 것도 메리였다.
할머니는 버리듯 동수를 맡기고 간 엄마를 대놓고 미워했다. 아빠의 교통사고도 모두 엄마 탓이라며 동수에게 엄마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하셨다. 동네 할머니들은 동수네 엄마가 동수를 버리고 시집간 것이라고 속삭이기도 했다. 마음 붙일 곳 없이 혼자 지내는 동수에게 메리는 평범한 강아지가 아니었다.
그런 메리가 작년 겨울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메리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동네 개들과 어울려 뒷산에라도 간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밤이 늦도록 메리가 돌아오지 않자 동수는 불안해졌다. ‘혹시 엄마처럼, 엄마처럼 메리도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동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럴 리 없어, 메리가 절대 그럴 리 없어.’
동수는 목청이 터져라 메리 이름을 부르며 온 동네를 쏘다녔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메리는 없었다. 동수는 양 볼이 새빨개지도록 메리를 찾아 산을 헤맸다. 메리가 사라지다니……. 동수는 메리가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동수는 엄마와 떨어져 지낸 몇 달간의 시간보다 메리가 없어진 하루의 시간이 더 긴 것만 같았다. 돈 많이 벌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난 엄마와 메리는 달랐다.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도 내내 메리 생각만 하다 집에 돌아온 동수는 뜻밖에도 마당에서 꼬리치며 달려나오는 메리를 보았다. 하지만 메리를 보자 반가운 마음보다 미운 마음이 더 앞섰다. 밤새 자신을 걱정하게 했던 메리가 아무 일도 없이 집에 돌아와 있는걸 보자 동수는 와락 화가 치밀었다. 동수는 꼬리치며 달려드는 메리를 발로 힘껏 차준 후에 줄로 아무 데도 못 가게 꽁꽁 묶어두었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다. 자신의 목에 개 줄이 걸리자 평소 때와 달리 메리는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동수가 더럭 겁이 날 정도로 낑낑대던 메리는 자신을 묶는 동수를 향해 사납게 짖어대기 까지 했다. 그래도 동수는 메리를 풀어주지 않았다. 메리가 또 어딘 가로 가버릴까 봐 겁이 났던 동수는 밤새 낑낑거리는 메리를 못 본 체 했다.
하지만 다음날 동수는 메리가 왜 지난밤에 그리 슬피 울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새벽녘까지 낑낑대는 메리를 보다 못한 할머니가 목줄을 풀어주자 메리는 쏜살같이 광으로 달려갔다. 메리가 달아나 동수가 속상할까봐 걱정이 돼 따라가 보았던 할머니는 광에서 꽁꽁 얼어죽은 메리의 새끼를 보았다.
동수도, 할머니도 메리가 새끼를 가졌던 걸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 메리는 얼어붙은 새끼를 핥고 물고 했다. 새끼를 낳고 밥을 먹으러 왔던 메리는 동수에게 꼼짝없이 잡혀 새끼를 얼어죽게 한 모양이었다. 동수는 메리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하지만 새끼를 잃은 메리는 더 이상 동수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동수가 학교에 갈 때마다 골목 앞까지 쫓아나오던 메리가 동수를 본체 만체 했다. 메리와 데면데면하게 지낸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할머니는 동수에게 살갑게 굴지 않는 메리를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했지만 동수는 메리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메리였지만 동수는 메리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동수는 어떻게든 메리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다. 그런데 메리와의 관계는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만 했다.
요즘 들어 메리는 더욱 사나워졌다. 동수가 근처에 가기만 해도 눈에 시퍼런 불빛이 켜졌다. 어제는 아껴두었던 과자까지 주며 선심을 썼지만 메리는 동수를 본 척도 안 했다. 집밖으로 나오기라도 하면 돌멩이라도 던져 실컷 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메리는 제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질 않았다.
동수는 그런 메리와 신경전이라도 벌이듯 일부러 마루에 나와 숙제를 하며 찐 고구마도 먹고 햄도 먹었다. 할머니는 감기 걸린다며 마루에 나와 있지 말라고 하셨지만 동수는 메리와 화해하고 싶었다. 이제 그만 메리가 자신을 용서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예전처럼 메리와 바닷가에도 가고 버스 정류장에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메리의 얼음장 같은 마음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메리는 할머니가 주는 밥을 먹을 때만 잠시 집밖으로 나왔다가 종일 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메리가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동수가 조금만 가까이 가도 송곳니를 드러내는 통에 메리를 제대로 살펴볼 수도 없었다.
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쓰고 나자 동수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바다로 일을 나간 할머니는 돌아오시려면 아직도 멀었고, 워낙 촌동네라 동수와 놀만한 아이들이 없었다. 게다가 그나마 몇 안 되는 동네아이들에게 동수는 이미 인심을 잃은 터였다. 서울서 온 동수가 잰다고 저들끼리 동수를 따돌리는 눈치였다. 처음엔 그러라고 콧방귀를 뀌던 동수였다. 엄마만 오면 곧 이 동네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를 가도 비린내가 나는 이곳이 동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 살 때는 가난하기는 했어도 화장실도 수세식이었고 동네에 오락실도 있고 만화방도 있었다. 그리고 잘 사는 친구들 집에는 컴퓨터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은 생일 파티 때 놀러 가면 게임을 시켜주기도 했다. 아빠는 동수가 4학년이 되면 컴퓨터를 사주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4학년이 된 동수 곁에는 아빠도 엄마도 안 계시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동수는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한 통 꺼내왔다.
몇 달 전 엄마가 보낸 편지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체부 아저씨를 만난 동수는 기다리던 엄마의 편지를 받았다. 숨 한번 안 쉬고 집까지 뛰어온 동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어보았다. 익숙한 엄마의 글씨. 어느새 동수의 눈에는 아롱아롱 눈물이 맺히고 크리스마스 때 오겠다는 엄마의 약속은 꾸물꾸물 춤을 추었다. 편지 속에 들어 있던 얼마간의 돈을 보고 할머니는 언짢아하셨다. 그래도 그 날 저녁에는 상위에 고기가 올랐다. 그리고 오랜만에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며 할머니가 웃으셨다.
읽고 또 읽어서 이젠 너덜너덜해진 엄마의 편지. 엄마가 약속한 크리스마스는 벌써 지나버렸다. 크리스마스 날 동수는 대문 앞에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언 동수의 얼굴에 맺힌 눈물 속에는 유난히 붉은 십자가만 아른거렸다. 크리스마스라고 작은 마을도 들썩거렸지만 동수와 할머니는 밤새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크리스마스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