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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평생 화가로서의 길을 걸어온 김명식 화백의 작품집이다. 작가는 고향인 서울 고덕동의 70년대 풍경을 그린 ‘고데기’ 시리즈로 1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하던 중 매너리즘에 빠지자 무작정 뉴욕으로 건너간다. 2004년 미국 롱아일랜드 연구교수로 머무는 동안 뉴욕의 집과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이스트 사이트 스토리East Side Story’ 연작을 발표하였고, 이 후 뉴욕은 물론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 등지에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이 책은 2004년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탄생 후 2018년까지 발표해온 작품들 중 133점을 모아 엮은 작가의 역작이다.

1.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탄생
10여 년 넘게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이스트 사이트 스토리’ 연작은 흥미로운 탄생 배경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어느 추운 겨울 날, 소호의 화랑가에 있는 커피숍에서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항상 보던 사람들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백인이 지나가고 뒤를 이어 흑인, 동양인 그리고 히스패닉 등 여러 인종이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면서, 그리고 어느 날 전철 창문을 통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집들이 얼마 전 커피숍에서 보던 사람들의 얼굴과 겹쳐져 보인 것이다.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작가는 그 집들을 미친 듯이 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이다. 즉 ‘인간’과 ‘집’이라는 두 개의 대상을 조합시켜서 태어난 것이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리즈인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작품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러한 세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수많은 인종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스트 사이드’는 말 그대로 뉴욕의 동쪽이다. 그곳에서 작품의 소재를 얻었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하였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은 새로운 날의 시작이며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작품의 궁극적인 목적은 동서 화합과 평화라고 작가는 말한다.

2. 집의 형상을 통한 서정주의적 감성
그러나 그의 뉴욕 스토리는 결코 쉽지 않았다. 언어와 환경, 문화가 그를 뉴욕 제도권 안에 쉽게 넣어 주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그 장벽을 하나하나 허물어 나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뉴욕의 한 갤러리로부터 첫 초대전을 제의 받았다. 이를 시작으로 멀리 마이애미, 밴쿠버 등의 화랑에서도 전시 제의를 받는다. 이는 순수함과 재능을 뛰어넘는 예술성을 간직한 작가의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집은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다양한 형상을 띠고 있는데, 작가는 집의 형상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단순한 풍경이나 객관적 대상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작가의 그림을 통해 감성적 접근을 하게 되고, 이는 인간 중심의 서정주의로 전환한다. 그래서 붓보다는 페인팅 나이프로 그려지는 작품들은 흔적의 느낌, 기억의 느낌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연작들은 우리의 기억 속 흔적의 느낌을 집이라는 형상을 통해 추상표현주의의 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회화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김명식의 작업은 단순하면서도 정교하다. 한 마디로 시간이 광속과 전자 데이터 전송의 속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것과 같은 시대에 그의 작품은 속도를 늦추고 작품을 즐기라는 멋스러움을 내재하고 있다. 그의 그림들은 다채로운 색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은 시간과 인내 그리고 기교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또한 기억의 편린, 물성의 만족감, 인간의 존재성 등이 내재되어 있으며, 아주 잘 숙련된 화가의 손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 김명식의 작업들은 한때 실재했던 삶과 기억으로, 순간의 기쁨들에 대해서 속삭이고 있다고 본다. (마이애미 디아스포라 바이브 갤러리 대표)

1. 화가 중의 화가
2. '집'과 '인간'이라는 대상이 탄생시킨 세계
3.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탄생
4. 인간 중심의 자연주의적 서정성과 주관성
5. 영혼을 위로하는 행복한 그림

뉴욕의 동쪽 지역에 거처를 정한 그에게 다가온 것은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다양성과, 이러한 다양한 문화들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활기차고 분방한 자유의 기운이었을 것이다. 천진한 동심의 세계를 작업의 기저로 삼고, 인간 중심의 자연주의적 서정성을 내용으로 하는 작가에게 현대 미술의 중심으로 용광로 같은 역할을 하던 뉴욕은 분명 새로운 환경이었으며 낯선 곳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환경에 동화되어 변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이미 오래 전부터 지니고 있던 특유의 감성을 바탕으로 분방하고 다양한 개성들이 넘쳐나는 국제도시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특유의 감성과 작업에 대한 원칙적인 이해, 그리고 자신의 눈과 손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쉽사리 현대 미술의 유혹에 경도되어 본연의 보폭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오히려 자극과 동력으로 수용하여 자기화한 것이 바로 ‘East Side Story’인 것이다. (63p)

김명식의 작품은 마치 날씨 좋은 봄날, 햇살이 잘 비치는 창가에 앉아 마주하는 원두커피 한 잔과도 같다. 잔잔하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브런치를 마주할 때 느끼는 행복감을 선사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 행복감을 자신의 거실에서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커피가 씁쓸한 첫맛에 이어 입안을 한 바퀴 돌아서 달콤한 여운을 만들어내듯이 작가의 작품도 씁쓸한 맛과 달콤함이 함께 한다. 파스텔 톤을 베이스로 하는 경우 자칫 달콤함에 그쳐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씁쓸한 맛이 콘트라스트를 더해줌으로써 단일한 맛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지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1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