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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의 입문 1(큰글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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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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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황정은
  • 출판사 : 창비
  • 발행 : 2018년 03월 20일
  • 쪽수 : 0
  • ISBN : 978893647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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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10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큰 주목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소설가 황정은의 두번째 소설집. 시적인 압축이 돋보이는 간결한 언어운용의 미덕이 완성도를 더했고, 폭력적인 세계를 간신히 살아내는 인물들을 감싸안는 소설적 윤리는 더욱 단단해졌다. 문학에 대한 고민과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단단히 맞물려 응축된 작품집이다.

한밤에 벌어지는 친지들 간의 갈등을 그린 '야행(夜行)',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죽은 원령이 주인공인 '대니 드비토', 아무것도 없는 무한한 시공간 속을 하염없이 낙하하는 중이며,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실은 낙하하는지 상승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화자가 등장하는 '낙하하다', 일일 바자회에서 양산을 파는 아르바이트에 나선 주인공의 하루를 그린 '양산 펴기'.

어느날 무심코 주워온 항아리가 "서쪽에 다섯 개가 있어"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하는 '옹기전(甕器傳)', 다섯 번 죽고 다섯 번 살아난 길고양이가 들려주는 묘생(猫生)의 일대기 '묘씨생(猫氏生)',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스스로를 유폐시킨 화자가 등장하는 '뼈 도둑', 결국 이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표제작 '파씨의 입문' 등 모두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출판사 서평

한국문학에서 황정은은 지금 평단과 독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젊은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첫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서 독특한 상상력과 더불어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결합으로 그 개성을 인정받았고, 첫 장편 [百의 그림자]로 단숨에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고도의 윤리성을 바탕으로 새롭고도 완성도 높은 소설미학을 구축했다’는 고평을 받았다. 그의 발표작들은 사회정치적 관심과 소설적 미학이 성공적으로 합치된 사례로 즐겨 거론되며, 편편이 소재와 소설적 관심에서 다양하고 의미 깊은 변화를 보이며 눈 밝은 독자들을 사로잡아왔다. 그런 9편의 단편이 묶인 이번 소설집 [파씨의 입문]은 그가 받는 주목이 합당함을, 나아가 그가 2010년대 한국소설을 이끌어갈 유력한 작가임을 확인해주는 증거다.

사라지고 잊혀가는 것들의 세계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소설은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와 함축적인 대화가 먼저 눈길을 끈다. 한밤에 벌어지는 친지들 간의 갈등을 그린 소설집의 첫 단편 [야행(夜行)]부터 그렇다. 소설은 정황에 대한 구구한 설명 없이 간결한 행동 묘사와 생생한 대화만으로, 어쩌면 특별할 것도 없는 사건을 낯설고 강한 여운을 남기는 한 편의 부조리극으로 만들어낸다. 그뿐 아니라 모든 소설이 그렇다. 무심한 듯 능청스러운 듯, 간결하고 리듬감있게 흐르는 문장과 대화에 압축된 단단한 긴장감이야말로 황정은 소설의 매력이다.

내가 언제요.
박씨가 말했다.
마음이 짠하다고 했지, 망가졌다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게 그거지.
그게 어떻게 그거예요.
그게 어째서 그게 아닌가. (...)
아니, 글쎄, 그걸로 치자면 말입니다, 하고 한씨가 말했다.
제수씨 쪽이 훨씬 예전부터 망가져 있지 않았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야행])

그러한 긴장은 그의 확연한 특징이라 할 이른바 환상성과 어울려 더욱 두드러진다. [대니 드비토]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죽은 원령(怨靈), 떠오르거나 흐르거나 달라붙거나 매달리거나 하는 유령이다. 그는 생전에 "어쨌든 죽으면, 나는 틀림없이 유도 씨한테 붙을 거다. 난 죽어서도 쓸쓸할 테니까, 유도 씨가 반드시 붙여줘야 돼"라고 말하고, 죽어서 원령이 되어 유도 씨에게 붙어 그의 여생을 지켜본다. 나아가 [낙하하다]의 화자는 아무것도 없는 무한한 시공간 속을 하염없이 낙하하는 중이며,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실은 낙하하는지 상승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소설은 그 기이한 상황을 부연하거나 치장하지 않고, 다만 담담하게 그들이 내뱉는 나직한 독백을 전할 뿐이다. 그리고 단순해 보이는 문장의 연속 아래 쌓여가던 어떤 묵직한 정서가, 어느 순간이랄 것도 없이 불쑥 터져나온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래서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는, 결국 서서히 사라져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말할 수 없이 쓸쓸하고 슬프게 다가온다.

어디든 충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삼년째 떨어지고 있으니 슬슬 어딘가 충돌해도 좋을 것이다. 부서지더라도 충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엔 뭘 할까 뭐라고 말할까 고마워요 정도면 친절할까. 친절하게 충돌해주어서 고마워요.([낙하하다])

사라져가는, 잊혀져가는 것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옹기전(甕器傳)]은 어느날 무심코 주워온 항아리가 "서쪽에 다섯 개가 있어"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외면하지만 항아리가 점차 사람의 얼굴 형상을 띠어가자 결국 무작정 항아리가 말하는 서쪽으로 가보기로 마음먹는다. 그 길에서 그는 항아리를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항아리만 보고 있다가는 사람이 못쓰게 된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와, 항아리를 구덩이 속에 파묻는 데 몰두하는 인부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소설은 기이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에서 점차 현 시대상황에 대한 선명한 우화이자, 망각되고 묻혀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탁월한 알레고리로서의 면모를 띤다.

이미 밤. 이 몸은 시방 인간들이 둘러놓은 장막 안에서 이 몸을 더럽히는 세계가 완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묘생猫生 십오년, 인간으로부터 받은 이름은 몸, 나는 인간의 우방이 아니다.([묘씨생])

타자의 목소리, 타자의 시선이라고 해도 된다. [묘씨생(猫氏生)]은 다섯 번 죽고 다섯 번 살아난 길고양이가 들려주는 묘생(猫生)의 일대기로, 인간에 의해 죽음을 맞는 고양이의 처절한 상황과, 그럼에도 결코 의연함을 잃지 않는 목소리가 대조를 이루며 인간이라는 종의 탐욕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여기에, 쇠락한 상가에서 노숙자처럼 살아가면서도 자존을 지키려는 노인의 이야기가 덧씌워져 인간 대 동물로만 한정되지 않는 풍부한 함의와 울림을 낳는다.

간신히 존재하는 것들을 감싸안는 맑고 단단한 언어

환상이나 기괴한 존재 없이 생활에 밀착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도 각별하다. [양산 펴기]는 일일 바자회에서 양산을 파는 아르바이트에 나선 주인공의 하루를 그린다. 순정하고 선한 황정은 소설의 인물이 마주하는 생활전선의 현장이 담백하고 생생하게 묘사되고, 어느덧 바자회 장소 건너편에 시위 인파가 등장해 양측의 소리가 겹쳐 울리는 장면에 이르러, 별안간 현실의 부조리가 낯선 모습으로 드러나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비애를 자아낸다.

노조 사무실 야밤 급습이 웬 말이냐 호화청사 웬 말이냐 노점상 철거민 생존권 보장 비리구청장 물러나라.
실크 팔십 퍼센트 스카프 만원. (...)
로베르따 디 까메르노 웬 말이냐 자외선 차단 노점상 됩니다 안되는 생존 양산 쓰시면 물러나라 기미 생겨요 구청장 한번 들어보세요 나와라 나와라 가볍고 콤팩트합니다 방수 완벽하고요.
아줌마 빤스는 국산이 좋아 국산 사세요.([양산 펴기])

현실에 밀착한 또다른 작품 [디디의 우산]의 주인공 디디는 어렸을 때 도도의 우산을 빌려 쓰고 되돌려주지 못한 일을 오랫동안 마음의 빚으로 담아두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도도에게 자기 우산을 빌려준다. 주인공은 그 일을 계기로 도도와 함께 생활하게 되고, 비슷비슷하게 팍팍한 현실에 짓눌려 살아가는 동기생 친구들과 어울린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무력하지만 선량한 이들이 함께 모여 웃는 장면은 서글픈 가운데서도 드물게 따뜻한 위로와 연대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특별한 장면이다. 그 위로와 연대의 바탕에는 "모두의 팔이나 다리나 머리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들에게 나눠줄 우산을 찾아 신발장을 열어보는 주인공의 마음이 있다. 황정은 소설의 온기는 그렇게 표나지 않게, 그러나 어디에나 드러나 있다. 항아리의 말을 끝내 무시하지 않고 나침반을 들고 서쪽을 찾아가는 [옹기전]의 주인공이 그렇고, 치욕을 감내하고 있는 노인의 발치에서 묘, 하고 우는 [묘씨생]의 고양이가 그러하며,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팻말을 걸고 선 시위대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양산 펴기]의 화자 역시 그렇다.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스스로를 유폐시킨 [뼈 도둑]의 화자가 온 세상을 뒤덮은 폭설을 헤치고 사랑을 향해 나아갈 때, 그의 결연함과 숭고한 결단 역시 결국 이와 다르지 않다. 이처럼 작가는 간신히, 겨우 존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차분히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사려 깊게 말을 고르며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의 언어로 완성해나간다. 그의 맑고 단단한 언어는 그 고집스러울 만큼 사려 깊음의 산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실린 표제작 [파씨의 입문]은 결국 이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파씨는 파씨일 뿐, 파씨로서 발생하고 부단히 파씨가 되고자 노력하면서 사라질 뿐"이라고 선언하는 주인공 파씨 혹은 작가, 언어 혹은 소설의 시작에 관한 인상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가 이 작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파씨의 입문’이란 제목은 그러므로 황정은이라는 이름의 소설세계의 선언이기도 하고 그 세계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 낯설어 보일 수 있겠지만, 그 매혹에 이끌려 초대를 받아들이고 ‘파씨’의 세계로 ‘입문’하는 독자들에게는, 단언코 오래오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한국문학에서 황정은은 지금 평단과 독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젊은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첫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서 독특한 상상력과 더불어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결합으로 그 개성을 인정받았고, 첫 장편 『百의 그림자』로 단숨에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고도의 윤리성을 바탕으로 새롭고도 완성도 높은 소설미학을 구축했다’는 고평을 받았다. 그의 발표작들은 사회정치적 관심과 소설적 미학이 성공적으로 합치된 사례로 즐겨 거론되며, 편편이 소재와 소설적 관심에서 다양하고 의미 깊은 변화를 보이며 눈 밝은 독자들을 사로잡아왔다. 그런 9편의 단편이 묶인 이번 소설집 『파씨의 입문』은 그가 받는 주목이 합당함을, 나아가 그가 2010년대 한국소설을 이끌어갈 유력한 작가임을 확인해주는 증거다.

사라지고 잊혀가는 것들의 세계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소설은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와 함축적인 대화가 먼저 눈길을 끈다. 한밤에 벌어지는 친지들 간의 갈등을 그린 소설집의 첫 단편 「야행(夜行)」부터 그렇다. 소설은 정황에 대한 구구한 설명 없이 간결한 행동 묘사와 생생한 대화만으로, 어쩌면 특별할 것도 없는 사건을 낯설고 강한 여운을 남기는 한 편의 부조리극으로 만들어낸다. 그뿐 아니라 모든 소설이 그렇다. 무심한 듯 능청스러운 듯, 간결하고 리듬감있게 흐르는 문장과 대화에 압축된 단단한 긴장감이야말로 황정은 소설의 매력이다.

내가 언제요.
박씨가 말했다.
마음이 짠하다고 했지, 망가졌다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게 그거지.
그게 어떻게 그거예요.
그게 어째서 그게 아닌가. (…)
아니, 글쎄, 그걸로 치자면 말입니다, 하고 한씨가 말했다.
제수씨 쪽이 훨씬 예전부터 망가져 있지 않았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야행」)

그러한 긴장은 그의 확연한 특징이라 할 이른바 환상성과 어울려 더욱 두드러진다. 「대니 드비토」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죽은 원령(怨靈), 떠오르거나 흐르거나 달라붙거나 매달리거나 하는 유령이다. 그는 생전에 “어쨌든 죽으면, 나는 틀림없이 유도 씨한테 붙을 거다. 난 죽어서도 쓸쓸할 테니까, 유도 씨가 반드시 붙여줘야 돼”라고 말하고, 죽어서 원령이 되어 유도 씨에게 붙어 그의 여생을 지켜본다. 나아가 「낙하하다」의 화자는 아무것도 없는 무한한 시공간 속을 하염없이 낙하하는 중이며,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실은 낙하하는지 상승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소설은 그 기이한 상황을 부연하거나 치장하지 않고, 다만 담담하게 그들이 내뱉는 나직한 독백을 전할 뿐이다. 그리고 단순해 보이는 문장의 연속 아래 쌓여가던 어떤 묵직한 정서가, 어느 순간이랄 것도 없이 불쑥 터져나온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래서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는, 결국 서서히 사라져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말할 수 없이 쓸쓸하고 슬프게 다가온다.

어디든 충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삼년째 떨어지고 있으니 슬슬 어딘가 충돌해도 좋을 것이다. 부서지더라도 충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엔 뭘 할까 뭐라고 말할까 고마워요 정도면 친절할까. 친절하게 충돌해주어서 고마워요.(「낙하하다」)

사라져가는, 잊혀져가는 것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옹기전(甕器傳)」은 어느날 무심코 주워온 항아리가 “서쪽에 다섯 개가 있어”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외면하지만 항아리가 점차 사람의 얼굴 형상을 띠어가자 결국 무작정 항아리가 말하는 서쪽으로 가보기로 마음먹는다. 그 길에서 그는 항아리를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항아리만 보고 있다가는 사람이 못쓰게 된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와, 항아리를 구덩이 속에 파묻는 데 몰두하는 인부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소설은 기이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에서 점차 현 시대상황에 대한 선명한 우화이자, 망각되고 묻혀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탁월한 알레고리로서의 면모를 띤다.

이미 밤. 이 몸은 시방 인간들이 둘러놓은 장막 안에서 이 몸을
더럽히는 세계가 완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묘생猫生 십오년, 인간으로부터 받은 이름은 몸, 나는 인간의 우방이 아니다.(「묘씨생」)

타자의 목소리, 타자의 시선이라고 해도 된다. 「묘씨생(猫氏生)」은 다섯 번 죽고 다섯 번 살아난 길고양이가 들려주는 묘생(猫生)의 일대기로, 인간에 의해 죽음을 맞는 고양이의 처절한 상황과, 그럼에도 결코 의연함을 잃지 않는 목소리가 대조를 이루며 인간이라는 종의 탐욕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여기에, 쇠락한 상가에서 노숙자처럼 살아가면서도 자존을 지키려는 노인의 이야기가 덧씌워져 인간 대 동물로만 한정되지 않는 풍부한 함의와 울림을 낳는다.

간신히 존재하는 것들을 감싸안는 맑고 단단한 언어

환상이나 기괴한 존재 없이 생활에 밀착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도 각별하다. 「양산 펴기」는 일일 바자회에서 양산을 파는 아르바이트에 나선 주인공의 하루를 그린다. 순정하고 선한 황정은 소설의 인물이 마주하는 생활전선의 현장이 담백하고 생생하게 묘사되고, 어느덧 바자회 장소 건너편에 시위 인파가 등장해 양측의 소리가 겹쳐 울리는 장면에 이르러, 별안간 현실의 부조리가 낯선 모습으로 드러나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비애를 자아낸다.

노조 사무실 야밤 급습이 웬 말이냐 호화청사 웬 말이냐 노점상 철거민 생존권 보장 비리구청장 물러나라.
실크 팔십 퍼센트 스카프 만원. (…)
로베르따 디 까메르노 웬 말이냐 자외선 차단 노점상 됩니다 안되는 생존 양산 쓰시면 물러나라 기미 생겨요 구청장 한번 들어보세요 나와라 나와라 가볍고 콤팩트합니다 방수 완벽하고요.
아줌마 빤스는 국산이 좋아 국산 사세요.(「양산 펴기」)

현실에 밀착한 또다른 작품 「디디의 우산」의 주인공 디디는 어렸을 때 도도의 우산을 빌려 쓰고 되돌려주지 못한 일을 오랫동안 마음의 빚으로 담아두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도도에게 자기 우산을 빌려준다. 주인공은 그 일을 계기로 도도와 함께 생활하게 되고, 비슷비슷하게 팍팍한 현실에 짓눌려 살아가는 동기생 친구들과 어울린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무력하지만 선량한 이들이 함께 모여 웃는 장면은 서글픈 가운데서도 드물게 따뜻한 위로와 연대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특별한 장면이다.
그 위로와 연대의 바탕에는 “모두의 팔이나 다리나 머리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들에게 나눠줄 우산을 찾아 신발장을 열어보는 주인공의 마음이 있다. 황정은 소설의 온기는 그렇게 표나지 않게, 그러나 어디에나 드러나 있다. 항아리의 말을 끝내 무시하지 않고 나침반을 들고 서쪽을 찾아가는 「옹기전」의 주인공이 그렇고, 치욕을 감내하고 있는 노인의 발치에서 묘, 하고 우는 「묘씨생」의 고양이가 그러하며,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팻말을 걸고 선 시위대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양산 펴기」의 화자 역시 그렇다.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스스로를 유폐시킨 「뼈 도둑」의 화자가 온 세상을 뒤덮은 폭설을 헤치고 사랑을 향해 나아갈 때, 그의 결연함과 숭고한 결단 역시 결국 이와 다르지 않다. 이처럼 작가는 간신히, 겨우 존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차분히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사려 깊게 말을 고르며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의 언어로 완성해나간다. 그의 맑고 단단한 언어는 그 고집스러울 만큼 사려 깊음의 산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실린 표제작 「파씨의 입문」은 결국 이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파씨는 파씨일 뿐, 파씨로서 발생하고 부단히 파씨가 되고자 노력하면서 사라질 뿐”이라고 선언하는 주인공 파씨 혹은 작가, 언어 혹은 소설의 시작에 관한 인상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가 이 작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파씨의 입문’이란 제목은 그러므로 황정은이라는 이름의 소설세계의 선언이기도 하고 그 세계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 낯설어 보일 수 있겠지만, 그 매혹에 이끌려 초대를 받아들이고 ‘파씨’의 세계로 ‘입문’하는 독자들에게는, 단언코 오래오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목차

야행
대니 드비토
낙하하다
옹기전

야행 / 대니 드비토 / 낙하하다 / 옹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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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황정은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76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 등을 썼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젊은작가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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