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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와 여행하는 법 : 길 위에서 만나는 소수자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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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신승철
  • 출판사 : 사계절
  • 발행 : 2017년 03월 27일
  • 쪽수 : 248
  • ISBN : 9791160940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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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쾌한 소수자들을 만나는 여행

길 위에서, 내 삶에서 철학이, 사랑이, 혁명이 시작된다.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가 지금 한국에 살고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체 게바라와 여행하는 법』은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빌려서 지금 여기의 체 게바라들을 위한 열정과 에너지를 전달한다. 눈앞의 현실이 두려워 움츠러들다가 ‘생각 없는 녀석’이라고 불리던 소년 민영은 이주 노동자 최씨 아저씨와 함께 스쿠터를 타고 한반도를 여행하며 다양한 소수자들을 만나고 여러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생각을 시작하고, 사랑을 표현하며, 자기의 삶을 바꾸어 낸다. 두려움과 혐오가 지배하는 세상의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정해진 길 바깥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얻는다.

소수자들을 둘러싼 풍경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상을 생생하게 그려 내는 이 책의 철학적 배경에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소수자 ‘되기’의 철학이 있다. 우리는 책 속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처럼 철학하는 법을 배우며 소수자와 혁명을 향한 다른 시선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사랑이 곧 혁명이라는 체 게바라의 메시지에 담긴 풍부한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출판사 서평

불안과 혐오의 시대를 건너는 법

한 조사에 따르면, 요즘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는 건물주이다.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이유에서 전문직,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공무원·교사를 말하던 아이들은 이제 건물주를 꿈꾼다. 부의 양극화와 세습 강화, 만성화된 청년실업, 차별과 배제, 인생 경로에서 한 번 실패로도 재기가 어려운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순응과 체념, 두려움과 분노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제대로 이름 붙여지지 않는 감정들은 혐오라는 외피를 입는다. 여성 혐오부터 이주민 혐오, 장애인 혐오, 성 소수자 혐오, 노인 혐오, 자기혐오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혐오가 만연한다. 혐오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곳을 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탈출구는 존재할 수 있을까?
여기, 아이들이 질문을 하는 존재임을 일깨우며, 한 가지 지름길만을 강요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기를 바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그 자리에 있기를 두려워하는 곳, 혐오라는 감정이 고이는 곳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곳에서 희생자나 피해자로 언급되기 일쑤인 소수자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느끼고 사유하며 출구를 찾아보자고 권한다.
철학공방 별난의 공동 대표 신승철과 이윤경이 함께 쓴 『체 게바라와 여행하는 법』은 눈앞의 현실이 두려워 움츠러들다가 ‘생각 없는 녀석’이라고 불리던 소년 민영이 생각을 시작하고, 사랑을 표현하며, 자기의 삶을 바꾸어 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민영은 체 게바라를 닮은 이주 노동자 최씨 아저씨와 함께 스쿠터를 타고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소수자들을 만나고 여러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정해진 길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 바깥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얻는다. 이 책은 그렇게 생각, 즉 ‘철학’에서 출발해 두려움과 혐오가 지배하는 세계를 찢고, 두려움의 자리를 자유로, 혐오의 자리를 사랑으로 채운다.

유쾌한 소수자들을 만나는 여행

『체 게바라와 여행하는 법』은 소수자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민영은 최씨 아저씨와 여행하며 이주민, 아이, 노숙인,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등, 이 책에서 ‘소수자’라고 부르는 이들을 만난다. 흔히 소수자는 힘없는 약자나 피해자, 또는 다수가 아닌 소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수자를 오히려 특이한 사람, 즉 자신의 특이성으로 사회의 배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들로 본다.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활력소이자 감초이며 촉매제가 되어 공동체를 풍부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수자들은 우울하거나 전투적인 분위기로 그려지지 않으며, 마냥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들은 긍정적이고 발랄하며 능동적이고 유쾌하다.
안산에서 게스트하우스 ‘지구마을 여인숙’을 운영하는 미스터 샤는 이주 노동자 출신이다. 20년 전 한국인으로 귀화한 자칭 ‘안산 샤씨’의 시조로, 능숙한 한국말을 구사한다. 지구마을 여인숙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주 노동자와 여행 중인 외국인들이 모이는데, 그들은 차별 때문에 위축된 모습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고향과 가족과 일상이 있고, 활력과 용기가 느껴진다. 대전역에서 만난 노숙자 용계 아재 또한 전형적인 노숙자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그는 노숙자들이 이 시대의 혁명가라고 이야기하는 거리의 철학자이다. 속리산에서 함께한 소년 매미 또한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이지만, 웬만한 일들은 발로 척척 해내는 낙천적이고 영리한 수다쟁이다.
물론 이 책은 소수자들에 대한 기존 재현 방식을 탈피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낭만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외국인 노동자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 장애인은 남들의 도움이 없으면 무능한 존재라는 말, 여성은 약자가 아니라는 말 등 소수자를 둘러싼 편견들을 제시하며, 이를 유려하게 반박하고, 새로운 사유와 관계 맺기의 방식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자 되기’의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처럼 철학하기

『체 게바라와 여행하는 법』의 철학적 배경에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소수자 되기의 철학이 있다. 이 책은 ‘되기’ 개념에서 출발해 ‘이주민 되기’, ‘아이 되기’, ‘동물 되기’, ‘여성 되기’, ‘장애인 되기’, ‘투명 인간 되기’라는 흐름을 따라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들뢰즈와 가타리가 이야기하는 철학적 개념과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들뢰즈와 가타리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데 집중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을 구체적인 사건과 매력적인 캐릭터,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풀어내며, 그러한 개념이 나오게 된 맥락을 설명하고 이와 유사한 생각을 한 철학자와 작가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심리 치료사 펠릭스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되기’(becoming)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68혁명을 겪으며 기존에 우리가 혁명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혁명, 즉 분자 혁명의 지평을 발견한다. 분자 혁명은 작은 변화가 일어나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와 사회, 생태계에도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준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적대적인 세력에 물리적으로 대항하고 정치 체제를 전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질서와 체제에서 끊임없이 탈주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하는 것 또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혁명은 ‘나는 누구이다’라고 자신을 고정시키거나 사회로부터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 즉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달라짐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바꾸고 결국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들뢰즈와 가타리는 소수자 되기를 강조한다. 이것은 약자에 대한 관용이나 배려의 윤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특이한 소수자들을 통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들을 발견하며 우리 자신이 더욱 풍부해지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나아가,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러한 ‘되기’가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이웃, 처음 보는 사람, 동물이나 물건과의 교감, 민주주의와 생명?평화?세상에 대한 염원을 포함한다. 우리는 사랑의 순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며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처럼, 아니 누군가가 되어 간다. 그러므로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키는 ‘되기’는 ‘사랑’이며 곧 ‘혁명’이기도 하다.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미세한 변화의 힘을 지닌 혁명가이며, 각자의 삶에서 수많은 혁명들이 시작된다.

지금 여기서 ‘체 게바라들’과 함께하는 법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저자들에 따르면, 『체 게바라와 여행하는 법』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처럼 스쿠터를 타고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체 게바라를 출현시키자는 다소 소재주의적인 발상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런 자질이 없는 혁명가는 생각할 수 없다.”라는 체 게바라의 메시지를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이 잘 설명해 준다고 여겨, 그들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최씨 아저씨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최씨 아저씨는 공장에서 ‘최씨’라고 불리는 이주 노동자로, 몇 년 전 인천항 컨테이너 부두에서 넋이 나간 채 헤매고 있는 것을 인부들이 발견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체’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주 노동자들을 많이 도와서 신망이 높다. 몇몇은 너무 비현실적인 일임에도 그가 체 게바라라고 생각하지만, 최씨 아저씨조차 자신이 누구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민영은 이러한 최씨 아저씨를 도와주다가 사건에 휘말려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고, 최씨 아저씨를 뒤쫓는 추격전이 뒤얽히며 이야기의 긴장감이 고조된다.
최씨 아저씨의 정체를 둘러싸고 이 책에서는 판타지적인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인천, 안산, 청양, 대전, 옥천, 울산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들을 지나고 그곳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 묘한 리얼리즘이 발생한다. 이 책은 체 게바라, 그리고 들뢰즈와 가타리의 눈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소수자들에게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특히,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철학자들의 추상화된 이야기를 벗어나, 어떻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고 새롭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풍부한 영감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민영은 체 게바라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저자들은 저자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체 게바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촛불은 일상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거리에서도 빛을 뿜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최씨 아저씨가 정말로 체 게바라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최씨 아저씨의 정체는 끝까지 의문부호로 남는다. 체 게바라 사후 50주기인 2017년, 이 책은 체 게바라를 손쉽게 영웅화하거나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재조명하는 대신, 판타지가 가미된 여행 서사의 형식을 빌려서 우리에게 ‘체 게바라 되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통해 지금 여기의 체 게바라들을 위한 열정과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이것이 『체 게바라와 여행하는 법』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 중 하나이다.

줄거리 요약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열일곱 살 소년 민영은 학교를 뛰쳐나와 형의 신분증을 가지고 인천의 한 플라스틱 공장에 취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장 측에 구타를 당하던 불법 체류자 최씨 아저씨를 우연히 구해 주었다가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된다.
두 사람은 안산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미스터 샤를 만나 공장의 환경범죄 관련 증거를 포착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곧 공장 사람들의 추격을 받고, 남쪽으로 목적지 없는 스쿠터 여행을 떠나게 된다. 민영은 청양에서 혼자 배낭여행 중인 소녀 귤을 만나 설렘을 느끼고, 개 사육장에서 학대받는 개 황구를 구출해 주며 최씨 아저씨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한편, 최씨 아저씨의 사정이 드러나며 본격적인 도피가 시작된다. 민영은 대전역에서 지내다가 거리의 철학자 용계 아재를 만나고, 귤 엄마의 도움으로 옥천 감자수제비북클럽과 함께 귤네 집에 머무른다. 그러나 최씨 아저씨를 추적하는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치면서 아저씨는 부상을 입고, 두 사람은 속리산 기슭에 있는 마을로 달아난다. 그곳에서 민영은 장애인 소년 매미를 만나 억압된 감정의 폭발을 경험하고, 울산에서 일하는 형이 고공 농성 중이라는 전화를 받는다. 매미의 도움으로 위기를 피해 혼자 울산에 온 민영은 의사로 변장한 최씨 아저씨와 재회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형의 문제가 극적으로 잘 해결되자 최씨 아저씨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후, 청양에서 형과 새로운 삶을 시작한 민영은 일본 도쿄와 후쿠시마, 네팔 등지에서 찍힌 최씨 아저씨의 사진을 발견한다.

목차

1. 이주 노동자 최씨 아저씨
★ 소수자의 철학 1_ 되기=사랑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2. 길 위의 사람
★ 소수자의 철학 2_ 이주민 되기 상상력에 국경을 개방하라!

3. 내 안의 동심을 만나다
★ 소수자의 철학 3_ 아이 되기 아이는 어른의 선생이다!

4. 나를 자유케 하라
★ 소수자의 철학 4_ 동물 되기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는 어떻게 됐을까?

5. 세상에 던져진 물음표 하나
★ 소수자의 철학 5_ 노숙인 되기 황제여, 내 햇빛이나 가리지 마시오!

6.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 소수자의 철학 6_ 여성 되기 암꽃/수꽃으로 저 들꽃을 차별하지 않는 것처럼

7. 진짜 영웅은 바로 너!
★ 소수자의 철학 7_ 장애인 되기 루돌프 코는 비정상인가?

8. 내 인생의 키다리 아저씨
★ 소수자의 철학 8_ 투명 인간 되기 내 안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에필로그 사랑, 그 부드러운 혁명으로
저자 후기 사랑이 곧 혁명이다

본문중에서

“(……) 한국에서는 교육이 다 그런 방식이에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답을 찾게 하기보다 부모와 교사가 ‘지름길은 이쪽이다’ 하고 미리 가리키고 있다는 것, 그래서 다들 그 길로 우르르 몰려가고, 남보다 빨리 그쪽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뒤떨어진 아이 취급을 받곤 하죠. 이게 왜 필요한 지식인지 묻기보다 시험에 나오니까 밑줄 쫙 긋고 외우라고 하고요. 그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라는 사실이 속상해요.”
“듣고 보니 좀 슬퍼지는군. 그런 시스템이 양산해 낸 아이들은 아이다움을 일찍 잃어버리겠지. 아이들은 본래 늘 질문을 하는 존재인데, 답을 말하도록 길러진다니 비극이야.” _63~64쪽

여기 대전역 광장에서 보낸 이틀 동안 아저씨는 나에게 ‘노숙자 되기’라는 화두를 던져 주려 애썼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노숙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시간을 보냈다. 아저씨가 노숙자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며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속으로 책망하면서 말이다.
노숙자가 된다는 것이 뭐가 그리 두려웠을까? 내가 여기서 더 잃을 게 뭐가 있다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갈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맨몸뚱이 존재임을 인정하고 더 자유롭게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최씨 아저씨가 계속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_132쪽

“그래서 ‘여성 되기’가 중요하다는 거야. 너에게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대방이 불편한 건 없는지 늘 살피고 따뜻하게 감싸려고 노력하겠지? 사랑하는 존재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지지가 바로 ‘되기’니까 말이야.”
언제 다시 들어왔는지 귤 엄마도 주방 문턱에 서서 팔짱을 끼고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고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서 여성도 ‘여성 되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신 거로군! 그 말을 들으니 여성들도 피해자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 사실 현대의 페미니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과는 거리가 있거든. 지금은 오히려 남성과 여성, 남성성과 여성성을 넘어 모든 성이 평등하게 각자의 권리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시대란 말이지.” _155쪽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용히 수첩을 꺼내 귤에게 보여 주었다. 원래 최씨 아저씨 수첩에 적혀 있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옮겨 둔 문구다.
“혁명 과정에 관한 한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왜냐하면 어떤 혁명가도, 어떤 혁명 운동도 없을지라도, 모든 수준에서 혁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혁명을 하자는 이유이다.”
메모를 다 읽은 귤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나는 귤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속삭였다.
“아저씨는 지금 혁명을 하고 있는 거야. 우리가 언제까지 그 뒤만 좇고 있을 수는 없어. 나도 이제 내 혁명을 시작해야지. 삶의 내부에서 시작하는 혁명, 도처에서 모든 사람들이 각자 시작하는 혁명 말이야. 아저씨가 이렇게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잖아. 우리에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야.” _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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