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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찰스 디킨스는 1839년 초기에 맨체스터 공업지대를 방문해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열악한 환경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결과, 끔찍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사람을 위해 "온 힘을 다해서 강력한 일격을 가하겠다" 결심하고 오랜 구상을 통해 '어려운 시절'을 집필한다. 그리고 공리주의를 본격적으로 비판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서양문화 특히 미국문화를 거의 비판 없이 수용했다. 그런데 현재의 미국문화는 영국 산업혁명 이후 수많은 오류와 시행착오와 논쟁을 거치면서 자리 잡았다. 산업혁명은 영국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며 새로운 사회로 나가게 한 사건이며, 이후, 서양 일반이 산업화 대열에 뛰어들면서 서양문화를 규정하고, 우리 사회 역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며 우리 문화를 규정하는 계기로 작용한 사건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영국 산업혁명 시기를 정면으로 겪으며 다양한 삶을 분석한 찰스 디킨스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출판사 서평

    찰스 디킨스 개요

    셰익스피어가 희극 작품으로 영어의 틀을 잡았다면 찰스 디킨스는 섬세한 구성과 화려한 풍자로 영어의 특징을 마음껏 펼쳐나간 작가로 유명하다. 불과 몇 년 전에 탄생 이백 주년을 기념하며 영국에서만 100여 개에 달하는 디킨스 관련 행사를 열고, 세계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 영어권 3억5000만 명과 비영어권 20억 명이 디킨스 문학 축제를 즐길 정도였다.
    세계적인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는 "디킨스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내 친구"라면서 디킨스를 19세기 최고의 문호라 평하고 디킨스 초상화를 서재에 걸어 놓을 정도로 존경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오랫동안 흠모하던 작가 찰스 디킨스를 1862년에 만났다"며 자랑하고, 카를 마르크스는 "디킨스는 세상에서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 세계의 모든 정치인과 사회운동가 이상으로 많은 일을 했다"고 극찬한다.
    영어권을 비롯해 세계 문학사에서 이렇게 유명한 찰스 디킨스는 정규교육이라곤 초등학교를 2년 다닌 게 전부로, 필요한 내용은 독학으로 모두 깨우쳤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 흥미로운 건 산업혁명 당시 영국 사회와 풍경을 정밀하게 묘사해, 풍속학자들이 찰스 디킨스 작품을 통해 당시 풍속을 연구한다는 사실, 그리고 영국과 미국 각 대학에서는 작품별로 해설집을 도서관에 비치할 정도로 중요한 작품으로 다룬다는 사실이다.
    찰스 디킨스 당시는 영국 산업혁명 시기로, 급성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겪는 다양한 소외와 갈등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형태와 너무나 유사하다. 그리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거르는 과정 없이 손쉽게 받아들인 서구철학 및 문물을 찰스 디킨스는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검토하고 비판해,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다.

    어려운 시절 작품해설

    '어려운 시절'은 몇 가지 측면에서 아주 독특하다. 우선, 디킨스 작품치고 분량이 아주 짧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제외하면 다른 작품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다. 게다가 작가 서문도 없고 삽화도 없다는 사실 역시 독특하다. 런던 이외 지역을 (영국 북부 공업 도시 코크타운을) 배경으로 하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사람은 무엇을 심던지 자신이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둔다'는 내용에 근거해서 1권 '씨앗 뿌리기', 2권 '수확하기', 3권 '저장하기'로 나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찰스 디킨스는 1839년 초기에 맨체스터 공업지대를 방문해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열악한 환경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결과, 끔찍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사람을 위해 "온 힘을 다해서 강력한 일격을 가하겠다" 결심하고 오랜 구상을 통해 '어려운 시절'을 집필한다. 그리고 공리주의를 본격적으로 비판한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서 이기적인 쾌락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조화시킨다는 사상으로 당시 사회에서 지배적인 이념이었다. 하지만 찰스 디킨스는 공리주의를 "통계와 수치로 모든 걸 판단한다"고 비판하며, 이런 사회는 극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판단할 뿐, 속마음이나 감정 등 눈에 안 띄는 부분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만 중시할 뿐, 인간의 성실한 자세나 진정성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를 창시한 벤담 밑에서 일한 에드윈 캐드윅이 1834년에 빈민구제법을 만들면서 구빈원 생활을 일부러 최대한 불편하도록 구상한 게 좋은 사례다. 이런 자세는 본 작품에서 그래드그라인드가 동정을 베풀라고 호소할 때 비쩌가 보인 반응에서 잘 나타난다.
    공리주의 핵심 이론가 '존 스튜어트 밀' 역시 여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철자법, 어원학, 구문론, 작시법, 전기문학, 천문학, 지리학, 일반우주형상학, 복합비율학, 대수학, 토지측량학 등 가혹할 정도로 많은 교육을 받다가 이십 대 초반에 신경쇠약에 걸리는 반면, 여주인공은 메마른 교육을 받은 결과 감정표현을 제대로 못 하고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든다. 그런데 디킨스가 놀란 건 이렇게 이기적인 철학을 학교에서 물질주의,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와 결합해 학생들을 달달 볶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 이름은 '아이질식 M'Choakumchild'다. 아이를 질식시킨다는 뜻을 선생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찰스 디킨스는 성격이나 본질이 드러나는 이름을 잘 사용한다. 그래드그라인드(Gradgrind)에는 '아이들을 맷돌에 넣고 기쁘게 갈아댄다'는 뜻이고, 바운더비(Bounderby)는 '비열한 인간, 졸부, 버릇없는 놈'이란 뜻이 있으며 스파싯(Sparsit)은 '싸움닭'이란 뜻이 있다. 반면에 성실하게 살다가 결국에는 물질문명에 치여서 죽는 인물에겐 '스티븐'이라는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이름을 부여하고 블랙풀(BLACKPOOL, 까만 웅덩이)이라는 암울한 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서양문화 특히 미국문화를 거의 비판 없이 수용했다. 그런데 현재의 미국문화는 영국 산업혁명 이후 수많은 오류와 시행착오와 논쟁을 거치면서 자리 잡았다. 산업혁명은 영국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며 새로운 사회로 나가게 한 사건이며, 이후, 서양 일반이 산업화 대열에 뛰어들면서 서양문화를 규정하고, 우리 사회 역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며 우리 문화를 규정하는 계기로 작용한 사건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영국 산업혁명 시기를 정면으로 겪으며 다양한 삶을 분석한 찰스 디킨스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 예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공리주의 명제 역시 지극히 올바른 것 같으며, 따라서 영국에서도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당연히 겉으로 드러난 수치와 통계를 중시할 뿐 거기에서 소외된 사람은 외면한다. 사람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상상력과 환상과 재미 등도 당연히 무시하고 개성도 무시한다. 그래서 학교는 지옥이 된다. 따라서 문제가 나타나는 만큼 사람들은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논쟁과 검증을 통해 새로운 사상이 나타나면서 사회는 그만큼 발전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전시 체제의 각박한 미국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니, 그건 우리 삶에 근거하지 않은, 아무런 뿌리도 없는 문화일 수밖에 없어, 기득권층은 통계수치를 마음대로 조작하며 이익을 추구하고 힘없는 사람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아니면 말고' 식 주장으로 상대를 곤경에 몰아넣고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나면 모른 척하는 식이다. 이익만 챙기고 책임은 아무도 안 지려고 한다.
    문화는 사회 구성원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문화를 살찌우려면 우리 주변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고전은 우리가 비판 없이 받아들인 문화가 생겨나온 배경과 그 속에서 인간이 구체적으로 살아간 모습을 묘사하고, 우리가 이런 사회, 이런 문화에서 살아가게 된 원인을 보여준다.

    편집자의 말

    번역은 원문에 담긴 내용과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풍자와 유머와 화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탁월하다. 따라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데,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한글 어법을 무시한 영어 사대주의에다 오역까지 넘쳐서 극히 어렵고 난해했다.
    고전문학은 다양한 경쟁과 도전 속에서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백 년 이상 살아남은 작품이니, '재미와 감동'은 물론 '술술 읽히는 느낌' 역시 어느 작품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기능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를 괴롭히며 쫓아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학은 독서가 시작이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해석해서 한글 어법에 정확히 담아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가꿀 원형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35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어 중역 몰아내기 운동'을 했다. 35년이 또 지났다. 이제는 '우리말 살리는 번역운동'을 할 때가 왔다.
    '도서출판 비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추구하며,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담아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동체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목차

    제1권 씨앗 뿌리기
    1장 진짜 필요한 건 딱 한 가지
    2장 죄 없는 어린애를 죽이다
    3장 구멍
    4장 바운더비
    5장 기본 내용
    6장 슬리어리 마장마술
    7장 스파싯 부인
    8장 절대 궁금해하지 마라
    9장 씨씨가 공부하는 수준
    10장 스티븐 블랙풀
    11장 출구가 없다
    12장 할머니
    13장 레이첼
    14장 위대한 제조업자
    15장 아버지와 딸
    16장 남편과 아내

    제2권 수확하기
    1장 은행에서 일어난 일
    2장 제임스 하트하우스 선생
    3장 건달
    4장 노동하는 형제들
    5장 노동자와 고용주
    6장 사라지다
    7장 화약
    8장 폭발
    9장 어머니 유언을 듣다
    10장 스파싯 부인이 만든 계단
    11장 밑으로 또 밑으로
    12장 밑으로

    제3권 저장하기
    1장 또 필요한 거 한 가지
    2장 아주 엉뚱한 제안
    3장 단호하게 결심하다
    4장 실종
    5장 발견
    6장 별빛
    7장 건달을 잡아라!
    8장 철학적인 사고방식
    9장 끝

    부록 - 작품해설

    본문중에서

    "저에게 생명을 주시고서 자잘한 일상사를 어떻게 모두 빼앗아, 죽음 같은 상태로 빠져들게 할 수 있나요? 제 영혼은 어디에서 은총을 받나요? 제 가슴은 어디에서 감정을 품나요? 여기 황량한 황무지에다, 꽃을 활짝 피워서 정원으로 가꾸어야 할 여기에다, 아, 아버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셨나요, 도대체 무슨 짓을!"
    루이사가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내려치며 계속 말했다.
    "여기에 꽃을 활짝 피운 적이 있다면 그 기억 하나로 저는 생활 자체가 진공상태로 모두 빠져드는 걸 막을 수 있었을 거예요. 이런 말까지 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아버지, 우리가 지난번에 이 방에서 나눈 대화를 기억하세요?"
    아버지는 지금 이런 말을 들을 준비가 전혀 안 된 터라 몹시 어렵게 대답했다.
    "그래, 루이사."
    "당시에 아버지가 저를 조금만 도와주셨다면 지금 하는 말을 당시에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아버지를 나무라는 게 아니에요. 나에게 가르치지 못한 건 아버지 역시 못 배운 거니까요. 하지만 아! 아버지가 오래전에 멈추기만 했어도, 아예 나를 내버려두기만 했어도,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유익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거예요!"
    온갖 관심을 기울이며 키운 딸에게 이런 말까지 들으니, 아버지는 머리를 숙이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앓는 소리를 절로 커다랗게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여기에서 대화를 나눌 때 ? 가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을 모두 물리치려고 힘껏 싸우는 게 어릴 때부터 제가 한 일이니 ? 제가 힘껏 싸우면서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았더라면, 다양한 감수성과 애정이, 장점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약점이, 인간이 지금까지 내린 모든 판단을 거부하고 창조주가 허용하신 이상의 산술 판단을 거부하는 약점이 제 가슴에서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았더라면...... 그래도 세상 무엇보다 증오하는 사람을 저에게 남편으로 맺어주시겠어요?"
    "아니다. 아니다. 가엾은 우리 딸."
    "제가 서리와 마름병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며 모든 감각을 잃고 망가지도록 하시겠어요?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데, 세상을 좀 더 황량하게 만들 뿐인데, 제 인생에서 정신적인 영역을, 제 믿음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과 화려한 여름을, 주변에 널린 더럽고 나쁜 것에서 제가 피신할 피난처를, 제가 좀 더 겸손하게 주변 사람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그래서 나로 인해 주변 사람 역시 조금이라도 좋아지길 바라며 살아가도록 공부하는 과정을 저에게서 빼앗으시겠어요?"
    "아, 아니다, 아니야. 아니야, 루이사."
    "그래요, 아버지, 제가 눈이 완전히 멀었다면, 그래서 손으로 더듬으며 나아가야 한다면, 하지만 사물 표면과 모양새를 만지며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지금 이렇게 눈을 달고 사는 것보다 모든 점에서 백만 배는 현명하고 행복하고 사랑하고 만족하며 인간적으로 더욱 순결하게 살았을 거예요. 제가 애초에 여기에 온 까닭을 이제부터 말할 테니, 잘 들어보세요."
    아버지가 팔로 딸을 부축하려고 움직였다. 그러자 딸도 일어나, 두 사람은 마주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딸이 한 손을 아버지 어깨에 올려놓고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 저는 단 한 번도 충족시킨 적이 없는 굶주림과 갈증하고 매 순간 싸우며, 줄자와 숫자와 사물에 대한 정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영역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하고 매 순간 싸우며 지금까지 살았어요."
    "네가 그렇게 힘든 줄 조금도 몰랐구나, 아가."
    "아버지, 저는 제가 힘든 걸 언제나 알았어요. 끝없이 싸우는 가운데 저는 제 몸속에서 천사를 거부하고 파괴하며 악마로 만들었어요. 제가 배운 내용은 제가 모르는 내용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신하고 깔보고 경멸하도록 만들었어요. 제가 배운 황량한 지식은 인생이란 어차피 끝난다고, 굳이 힘들여서 노력할 정도로 중요한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어요."
    "이렇게 젊은데, 루이사!"
    아버지가 한탄했다. 불쌍히 여기는 어투다.
    "그래요, 아주 젊지요. 바로 이런 상태에서 - 제 마음이 평소에 무감각하다는 상태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이나 편견 없이, 제가 아는 대로 말씀드리는 건데 - 아버지는 남편을 권하고 저는 받아들였어요. 지금까지 아버지나 남편 앞에서 제가 남편을 사랑하는 척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저도 알고 아버지도 알고 남편도 알아요. 물론 처음부터 관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에요. 톰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무모한 환상이란 사실이 서서히 드러났어요. 그동안 저는 톰만 바라보며 살았어요. 톰이 그렇게 된 건 제가 너무 가련하게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톰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아버지가 훨씬 너그럽게 생각하도록 도울 수도 있겠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바로 그걸 말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아버지. 제 인생에 새로운 사람이 우연히 끼어들었어요. 제가 예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세상 물정에 밝고, 명랑하고, 세련하고, 느긋한 사람.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 모든 걸 얕잡아보고, 그래서 제가 속으로 약간 걱정하는 사람. 처음 만나고 얼마 안 돼서, 그 깊이와 방식은 모르겠지만, 저를 이해하고 제 생각을 읽는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 저보다 나쁜 점은 찾을 수 없었어요. 우리 둘은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았어요. 저에게 유일하게 의심스러운 건, 세상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이 정말 나에게 이렇게 엄청난 관심을 쏟을 수 있는가였어요."
    "너에게, 루이사!"
    아버지는 움켜잡은 딸을 본능적으로 놓을 것만 같았다, 딸에게서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걸 못 느꼈더라면,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눈에서 매섭게 일어나는 불꽃을 못 보았더라면.
    "그 사람이 자신을 믿어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겠어요. 제가 그 사람을 어떻게 믿기 시작했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 저는 그 사람을 믿었으니까요, 아버지. 제 결혼에 대해서 아버지가 지금에서야 파악한 내용 역시 그 사람은 단번에 파악했으니까요."
    아버지는 얼굴이 잿더미처럼 하얗게 변하더니, 딸을 두 팔로 꼭 껴안았다.
    "저는 그 이상 나쁜 짓은 안 했어요. 아버지 명예를 더럽히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그 사람을 사랑했는지, 지금도 사랑하는지 물으신다면, 그런 것 같다고 솔직하게 대답하겠어요. 아아, 모르겠어요."
    딸은 아버지 어깨에서 갑자기 두 손을 떼어내 자기 옆구리에 댔다. 그와 동시에 얼굴에서, 평소와 다른 얼굴에서, 자신이 할 말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결심하곤 가슴을 똑바로 편 모습에서, 오랫동안 억누르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오늘 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그 사람이 찾아와서 저를 사랑한다고 선언했어요. 지금 그 사람은 저를 기다리고, 저는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이 여기에 찾아오는 것밖에 없었어요. 지금 저는 이런 상황을 후회하는지도 모르고, 창피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고, 제 자존심을 깔아뭉갰는지도 몰라요. 제가 아는 건, 아버지 철학과 가르침은 저를 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저를 이런 상태로 만든 사람은 바로 아버지예요. 그러니 이제 다른 방법으로 저를 구해주세요!"
    아버지는 바닥으로 쓰러지는 딸을 재빨리 붙잡고, 딸은 끔찍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저를 잡으면 그냥 죽어버리겠어요! 바닥에 쓰러지도록 내버려두세요!"
    그래서 아버지는 딸이 쓰러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자신이 오랫동안 품었던 자부심이자 자신이 세운 시스템의 결정체가 정신을 잃은 채 발밑에 쓰러진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통에 시달리다가도 가끔 정신이 들 때마다 별이 저 위에서 비추는 걸 깨닫고, 우리 구세주가 계시는 곳으로 나를 인도할 별이라고 생각했소. 바로 저 별이 그 별이라고 생각했다오!"
    사람들은 스티븐을 조심스레 들고서 들판을 따라가고 오솔길을 내려가고 광활한 풍경을 지났다. 레이첼은 스티븐 손을 안 놓았다. 속삭이는 소리조차 없어 구슬픈 침묵만 가득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행렬 자체도 장례 행렬로 변했다. 별은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을 찾도록 빛을 비추고, 망자는 겸손과 슬픔과 용서를 통해서 구세주 품에 안긴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12.02.07~1870.06.09
    출생지 영국 포츠머스
    출간도서 1816종
    판매수 71,023권

    1812년 2월 7일 영국 포츠머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찰스 존 허팸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부친을 따라 여러 곳을 이사 다니다가 1822년 런던에 정착한다. 아홉 살에 학업을 시작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단하고, 열다섯 살에 법률사무소의 사환이 된다. 1833년 첫 단편소설인 「포플러 산책길에서의 만찬」을 『올드 먼슬리 매거진』에 게재한 뒤 잡지들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보즈의 스케치』와 『피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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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태어나 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저작권 중계회사 ‘임프리마 코리아’ 영미권 담당부장, 도서출판 ‘사람과책’ 편집부장 등을 역임했다. 약 300여 종에 달하는 영서를 번역했다. 학계에서 발표한 다양한 ‘번역방법론’ 및 ‘한글 특징’ 백여 편을 정리하고 25년에 걸친 번역 경력을 접목해,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번역방법론을 강의하며 검증해서 ‘한글을 알면 영어가 산다’로 발표했다. ‘비꽃’에서 천민자본주의를 화려하게 풍자한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파시즘을 파헤치는 ‘조지 오웰 삼부작’을 우리말 어법에 맞게 새롭게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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