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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 숭배 : 국가라는 종교의 희생제물[양장]

원제 : Fallen Soldiers: Reshaping the Memory of the World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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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근대 내셔널리즘 신화의 중심에 있는 ‘전사자 숭배’파시즘을 낳은 우파 이데올로기의 대중정치 수단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 이후
국민을 결집할 새로운 신앙, 정치종교로 대두한 ‘내셔널리즘’
전사자는 국가라는 종교의 순교자가 되고,
전쟁 묘지는 국가적 경배의 신전이 된다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을 국가와 민족의 영웅으로 기리는 문화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그것은 자연스러운 애도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국가 권력의 은밀한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일까? 일반 병사들을 ‘호국영령’으로 호명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하며, 무명용사 탑 등 전사자 기념물을 세워 기리는 문화는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내셔널리즘과 파시즘, 남성성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독일계 유대인 역사학자 조지 모스는 풍부한 전쟁 사료와 다채로운 시각 자료를 바탕으로 ‘전사자 숭배’와 ‘전쟁 경험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결과를 치밀하게 재구성한다. 그에 따르면, 전사자 숭배는 국가와 민족을 절대시하는 내셔널리즘의 핵심 기제다.

출판사 서평

내셔널리즘의 핵심 장식물, ‘전사자 숭배’

독일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해야 했던 조지 모스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던 역사학자다. 모스가 평생 근대성과 남성성의 문제, 특히 ‘남자다움’의 신화를 폭로하는 데 애썼다는 점은 그의 성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근대 서구 역사에서 남성성의 강화는 국가 권력에 의한 내셔널리즘의 강화와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으며, 양자가 힘을 합쳐 강력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결정적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사자 숭배’와 ‘전쟁 경험의 신화’가 자리하고 있다.

"1차대전 전시 및 전후에 매우 흔하게 나타난 그리스도의 품에 안긴 전사자의 모습은 순교와 부활이라는 전통적 믿음을 국가라는 전면적 시민종교에 투영했다. 전후에 이르러 전사자 숭배는 내셔널리즘이라는 종교의 핵심 장식물이 되었고, 전쟁에 패하고 평시로의 이행 과정에서 혼돈의 벼랑까지 내몰린 독일 같은 나라에서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pp.13~14)

‘전사자 숭배’는 근대에 탄생한 시민종교인 내셔널리즘의 핵심 장치다. 유례없는 대량살상의 전쟁이었던 1차대전은 이런 전사자 숭배의 정점이었다. 죽음의 실상을 은폐하고 초월하기 위해 전쟁 경험과 전사戰死는 신성시되고 이상화되고 낭만화되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전쟁 경험의 잔혹한 실상은 ‘전쟁 경험의 신화’로 변형되었다.

전쟁 경험의 신화화

기원과 토대: 의용병과 신화의 재료들
전사자 숭배와 전쟁 경험 신화의 기원은 최초의 근대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의용병들이다. 근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프랑스 혁명전쟁(1792~1799)과 독일의 대 나폴레옹 해방전쟁(1813~1814)은 과거의 전쟁들과 성격이 달랐다. 그전까지 전쟁은 어디까지나 왕실의 전쟁으로서 인민의 이해와는 거의 무관했으며, 군대는 귀족과 용병, 징집병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전쟁에서는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선 ‘시민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훗날 프랑스의 국가國歌가 되는 [라 마르세예즈]는 마르세유 출신 의용병들이 부르던 노래였다. 독일의 해방전쟁 때도 시인, 저술가 등 식자층까지 의용병으로 나서 국민의식을 고취시켰다. 당시 유명한 시인 의용병으로 뤼초 자유군단에서 활약하다 전사한 테오도어 쾨르너는 해방전쟁에 참여한 의용병을 "국왕과는 상관없는 민중의 십자군"이라 칭했다. 실제 의용병 가운데 교양 있는 중간계급 출신이 다수는 아니었지만, 그들 식자층이 남긴 글과 시는 전쟁을 신성한 경험으로 승화시켰다.
이런 시민 의용병의 출현은 일반 병사들의 지위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19세기 중엽부터 군사 묘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죽은 병사들에겐 제대로 된 무덤조차 제공되지 않았었다. 전사자들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후세대들의 경배 장소가 될 군사 묘지의 조성과 각종 전사자 기념물의 제작에는 서구의 전통적 상징체계가 총동원되었다. 가령 병사의 삶과 죽음을 신성화하는 데 그리스도교의 상징성과 의식을 끌어들였고, 전사자 묘지와 기념물을 장식하는 데 고대 그리스, 로마의 모티프와 도상이 활용되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전쟁 경험의 신화를 구축하는 재료들이었다.

발전과 변용: 1차대전과 전쟁 묘지
1차대전 시기는 전쟁 경험 신화의 절정이자 확립기였다. 이른바 ‘1914년 세대’라 불리는 수많은 청년들이 국가를 위해 자원입대했다. 1차대전은 유례없는 대량살상의 전쟁이었다. 약 1,300만 명이 죽은 1차대전의 전사자 수는 1790년부터 1914년 사이에 벌어진 큰 전쟁들의 전체 사망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또한 서부전선에서 교착상태 속에 벌어진 장기간의 ‘참호전’은 전쟁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죽음은 일상적으로 존재했고, 죽음의 공포가 극에 달했으며, 그 좁은 공간에서 병사들 사이에 ‘전우애’가 싹텄다. 당시 독일군으로 참전했던 작가 에른스트 윙거는 그 전쟁의 공포 속에서 강철 같은 영혼의 인간, ‘새로운 인종’의 탄생을 보았다. 그는 집단주의와 전우애,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전쟁 경험을 찬미했다. 이런 식의 신화화는 죽음의 실상을 은폐하고 초월하며, 남자다움을 이상화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막대한 전사자가 발생한 만큼 묘지 조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국가는 그 많은 죽음이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싸우다 맞은 고귀하고 영웅적인 죽음이라고 선전할 필요가 있었다. 수많은 전사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또다른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가도록 독려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국가를 위한 죽음은 숭고한 죽음이어야 했기에, 전사자 숭배와 전쟁 경험의 신화화는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각국은 앞다투어 전사자들만을 위한 전쟁 묘지를 건설했다. 독일의 ‘영웅의 숲’, 프랑스의 ‘장례 정원’ 등은 숲이나 정원의 형태로 묘지를 꾸밈으로써 죽음을 자연 안에서 맞이하는 영원한 잠으로 각인시켰다. "자연을 이용하여 죽음의 독소를 제거하는 방식"(/ p.105)이었다. 거기에 그리스도교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모티프들이 동원되어 영웅적 죽음과 구원의 희망을 상징화했다.

죽음의 참혹한 실상을 은폐하는 데는 전쟁을 일상생활의 물건, 전투 현장 관광 등에 결부시키는 ‘사소화trivialization’ 경향도 한몫했다. 사소화는 전쟁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변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당시 제작된 수많은 그림엽서에는 진짜 시체나 고통스러워하는 부상자의 모습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장미 화단에 놓인 기관포(그림 5. p.80), 참호 안에서 맥주 파티를 벌이는 병사들(그림 12. p.155)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기만적인 이미지들을 담고 있었다.

"전쟁의 사소화 과정은 전쟁의 실상을 (초월하지는 못해도) 위장하고 통제하는 또다른 방법이었고, 그로써 전쟁 경험의 신화를 뒷받침했다. 사소화는 전쟁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대신, 익숙한 것으로,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선택하고 지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전쟁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pp.149~150)

1차대전 전시와 전후에 문진으로 쓰인 포탄이라든가 잠수함 모양의 하모니카가 등장했고, 1916년 독일에서 열린 [전쟁, 민족 그리고 예술]이라는 전시회 카탈로그에는 철십자 훈장이 들어간 바늘방석, 성냥갑 따위와 참호가 그려진 담뱃갑 등이 소개되었다.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의 1919년 광고에는 두 소녀가 ‘독일산’이란 딱지가 붙은 봉제인형을 밟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차대전 후에는 편리해진 교통수단에 힘입어 전투 현장이나 군사 묘지를 둘러보는 관광 상품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결과와 영향: 파시즘과 정치의 야만화
전사자 숭배와 전쟁 경험의 신화화를 통한 내셔널리즘 강화는 1차대전 이후 파시즘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이제 전쟁은 국가와 개인의 재생 수단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전시의 태도들은 평시로까지 이어지며 정치의 야만화, 인명에 대한 심각한 무관심을 촉진했다. 남자다움과 전우애라는 이상은 유럽 전역에서 극우 이데올로기의 필수 성분으로 흡수된다. 전사자 숭배를 정치적으로 십분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였다.
"우파는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전쟁 경험의 상속자를 자임했고, 야만화 과정은 이 세력이 대중에게 미친 영향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전후 독일에서는 이 영향력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으니,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내내 다른 모든 정치 집단은 언제나 우파의 의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만 했다."(/ p.187)

전쟁 경험과 전우애, 남자다움이 촉진한 정치의 야만화는 우파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대중정치의 속성을 재빨리 간파한 우파는 신화와 상징을 정치적 도구화하여 ‘대중’을 ‘국민화’시킬 수 있었다. 1차대전은 전후 대중정치 시대가 열리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의용병의 역사는 1차대전 이후에도 에스퍄냐 내전을 거쳐 2차대전까지 계속 이어진다. 에스파냐 내전은 전쟁 경험 신화의 전통을 새롭게 부활시켰다. 그 주역은 에스파냐 병사들이 아니라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공화국 정부를 지키기 위해 각국에서 몰려든 의용병(국제여단)이었다. 19세기에 영국 시인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음으로써 전쟁 경험을 낭만화하는 데 일조했듯, 에스파냐 내전은 전쟁 경험의 신화가 좌파 세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한편 2차대전 때는 나치 무장친위대에 우파 버전의 ‘국제여단’이 만들어져, 서유럽에서 약 12만 5,000명, 동유럽과 러시아 등에서 약 20만 명이 무장친위대에 자원입대했다.
하지만 2차대전은 영상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사실적인 전쟁 보도가 널리 확산되었기에, 더는 전쟁의 실상을 은폐하기가 어려워졌고, 이는 이후 전쟁 경험 신화가 쇠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셔널리즘의 주술에서 벗어나는 길

‘전쟁 경험의 신화’는 국가 숭배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그 그 신화의 유산은 현대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전우애의 이상에 향수를 느끼고, 남자다움의 이상을 신봉한다. 비록 2차대전 후 서유럽에서 국가 숭배는 크게 약화되었지만, 내셔널리즘이 다시 부흥하는 계기만 마련된다면 전쟁 경험의 신화 또한 언제든 다시 부활할 것이다.
양차대전 후 서구에서는 전쟁 경험의 신화가 분명 쇠퇴했지만, 이 신화는 서구의 전쟁 기념 문화를 답습하거나 자기화한 비서구 세계로 퍼져나간다. 특히 2차대전과 일본 제국주의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동북아시아의 기억 문화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 책의 해설을 쓴 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1세기 동아시아의 기억 문화는 ‘호국영령護國英靈’에 대한 국가적 제사를 통해 정치종교의 차원으로 승화된 전사자 숭배의 정점을 보여준다. 전사자를 ‘호국영령’으로 현창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영령 제사’의 논리가 서울의 전쟁기념관이나 중국의 항일전쟁기념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고 해서 놀라운 일은 아닌 것이다. 무명용사 탑이나 ‘꺼지지 않는 불꽃’ 조각상에서 보듯 ‘국가를 위해 죽은’ 전사자들의 죽음을 특권화하고 제사지내는 20세기의 국민국가적 제의는 동아시아 기억 문화의 중심부에 자리한다."(/ p.299)

이 책 [전사자 숭배]는 21세기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휴전’ 상태의 분단국가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전사자 숭배와 전쟁 경험의 신화가 살아 숨쉬고, 국가와 민족을 절대시하는 내셔널리즘이 강력한 시민종교로 작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죽은 군인들과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해 국가가 보인 상반된 태도가 이를 확인시켜준다.
워싱턴에 있는 베트남전 기념물에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문구도 없고, 전장의 장병들을 재현한 기념물도 없이 그저 나지막한 검은 벽에 전사자들의 이름이 길게 새겨져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는 ‘탈영병 기념비’가 있고 거기에는 "모두가 혼자"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아무리 히틀러의 군대에서 탈영한 것이라고는 해도, 조국과 전우들을 등지고 탈영한 이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전사자 숭배와 내셔널리즘을 탈주술화하고, 탈신화화하는 징후들이다.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감추고, 죽은 자들을 개인이 아닌 국가의 이름으로 영웅시하는 태도는 정치의 야만화와 개별 인명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한다. 이는 파시즘을 낳은 우파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정치적 수단이다. 전쟁 경험을 이상화하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공동체적 관념이 개인들 위에 절대적으로 군림할 때 국가 권력과 내셔널리즘이라는 시민종교는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언제든지 야만화될 수 있다.

현대의 지성들이 펼치는 깊이 있는 사유와 통찰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우리 시대의 명저


01. [증여의 수수께끼](모리스 고들리에)
02~03. [진리와 방법 1, 2](한스게오르크 가다머)
04. [역사―끝에서 두번째 세계](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05. [죽어가는 자의 고독](노르베르트 엘리아스)
06. [루됭의 마귀들림](미셸 드 세르토)
07. [저자로서의 인류학자](클리퍼드 기어츠)
08. [검은 피부, 하얀 가면](프란츠 파농)
09. [전사자 숭배](조지 L. 모스)

추천사

근대의 재주술화 과정, 즉 국민국가가 죽은 자들을 조국과 민족의 이름으로 불러내어 전유하는 권력의 은밀한 헤게모니적 작동 메커니즘을 잘 드러내주는 역작이다. 전사자 숭배의 메커니즘을 벌거벗기는 것은 민족주의를 탈주술화하는 출발점이다.
- 임지현 / 역사학자,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대단히 진지하고 사려 깊은 연구.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주름진 얼굴의 정치가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헛되이 죽지 않은 ‘우리 아들들’ 운운할 때마다 들춰보라.
- 크리스토퍼 히친스 / 정치학자, '신은 위대하지 않다' 저자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학자들과 고급 독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사소화’를 다룬 장章은 엽서나 장난감병정 수집가들의 구미를 당길 것이다. 더없이 매혹적인 책.
- 라이브러리 저널

목차

1. 서론: 새로운 종류의 전쟁

제1부 토대
2. 의용병
3. 신화 제작: 죽음의 구체적 상징들

제2부 제1차 세계대전
4. 청년과 전쟁 경험
5. 전사자 숭배
6. 자연의 전용
7. 전쟁 경험의 사소화

제3부 전후 시대
8. 독일 정치의 야만화
9. 신화의 증축
10. 2차대전, 신화, 그리고 전후 세대

주|조지 모스 연보|해설|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전쟁 경험의 실상은 ‘전쟁 경험의 신화’로 변형되기에 이르렀다. 전쟁을 뜻깊은, 나아가 신성한 사건으로 회고하는 이 전쟁관은 그것이 긴급하게 요구되었던 패전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했다.
(/ p.13)

1차대전 전시 및 전후에 매우 흔하게 나타난 그리스도의 품에 안긴 전사자의 모습은 순교와 부활이라는 전통적 믿음을 국가라는 전면적 시민 종교에 투영했다. 전후에 이르러 전사자 숭배는 내셔널리즘이라는 종교의 핵심 장식물이 되었고, 전쟁에 패하고 평시로의 이행 과정에서 혼돈의 벼랑까지 내몰린 독일 같은 나라에서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 pp.13~14)

전쟁이라는 인간극의 핵심 장식물은 전사戰死였다. 바이런 역시 전투 현장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가 그의 대의에 기여하리라는 것을 인지했으며 전장에서가 아니라 병상에서 죽었음에도 전사자로 찬미되었다. ‘목숨을 바친 이들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아니, 그들은 이미 우리와 함께 있다.’ 전쟁 경험의 신화는 전쟁이라는 드라마에 이와 같은 행복한 결말을 부여하며 죽음을 초월했다.
(/ p.41)

전사자 숭배는 국가라는 종교에 순교자를 제공했고, 죽은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는 국가적 경배의 신전이 되었다.
(/ p.44)

퇴폐주의를 대중화한 주요 인물 중 하나인 J. K. 위스망스는 그의 소설 [거꾸로](1884년)에서 이 운동을 "남자의 점진적 여성화effeminacy"라고 설명했다. 실로 퇴폐란 진짜 남자에게는 없는 모든 것이었다.
(/ p.76)

남자다움이라는 이상은 1914년에 많은 의용병을 낳은 요인이었지만, 전쟁에 앞서서 퇴폐주의와 여권 운동의 도전에 대응하여 더더욱 확고하게 수립되어 있었다. 마침내 1차대전 때 남자다움의 관념은 이른바 남자다운 특질의 시험으로, 또 전우애라는 이상의 필수 성분으로서 큰 역할을 맡게 된다. 나아가 전후에는 비단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극우 이데올로기의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 pp.76~77)

전사자 숭배를 병합하고 그것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였다. 좌파는 전쟁의 실상을 잊지 못했고 전쟁 경험의 신화에 개입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우파에게는 득이었다. 그들은 수백만 명의 고난을 그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전쟁 경험의 신화는 전쟁의 공포를 초월하는 데 한 역할을 한 동시에, 내셔널리즘 세력이 전후 독일의 현실을 대체하기 위해 표출하고자 한 유토피아를 뒷받침했다.
(/ p.126)

전쟁의 사소화 과정은 전쟁의 실상을 (초월하지는 못해도) 위장하고 통제하는 또다른 방법이었고, 그로써 전쟁 경험의 신화를 뒷받침했다. 사소화는 전쟁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대신, 익숙한 것으로,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선택하고 지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전쟁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 pp.149~150)

1916년 독일에서 적십자사의 후원으로 열린 전시 [전쟁, 민족, 그리고 예술Krieg, Volk und Kunst]에는 전쟁과 그 사소화 과정의 면면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소품 카탈로그가 전시되었다. 그 안에는 최고 군사 훈장인 철십자가 들어간 바늘방석, 성냥갑, 박하사탕 포장지가 수록되어 있었다. 담뱃갑에는 참호가 재현되었고,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잉크스탠드나 욕조에서 가지고 노는 인형으로 만들어졌다. 이 목록은 포탄, 탄약통, 철모를 일상에서 활용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전후에는 옛 전장을 찾은 순례자나 관광객에게 이러한 소품이 많이 팔렸다.
(/ p.150)

극우파의 목표는 항구적 전쟁 수행이 아니었다. 전쟁은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인종주의는 오로지 흑인이나 유대인을 겨냥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사회주의처럼 완전한 형식을 갖춘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그 나름의 긍정적 호소력을 가지고 자기 영역을 확보했다. 그러한 운동들의 부정적 측면만 보는 것은 그들의 힘을 대단히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이것이 나치의 권력 장악 전후에 흔히 저질러진 실수다.
(/ pp.208~209)

우리는 우파의 주된 기반이 전쟁과 그 공격적 전우애, 남자다움이 촉진한 야만성, 그리고 모든 독일인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던 이상들 간의 상호작용에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우파는 대중정치 시대의 특성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잘 설계된 정치적 도구들과 태도들을 취했다. 대중의 국민화는 적절한 동력을 보유하고 신화와 상징의 호소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운동들의 성과였던 것이다.
(/ p.209)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부터 우파를 특징지은 정치의 야만화는 결국 나치의 권력 장악과 함께 제3제국의 공식적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야만화 과정의 중심에는 전쟁 경험의 신화가 있었으니, 이 신화는 전쟁의 기억을 변형하고 전쟁을 받아들일 만하게 만들면서 전후 내셔널리즘에 가장 효과적인 몇몇 신화와 상징을 제공했다.
(/ p.210)

저자소개

조지 L. 모스(George L. Moss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18~1999
출생지 독일 베를린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독일 출신의 미국 역사가로, 내셔널리즘과 파시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1918년 독일 베를린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다. 외조부 루돌프 모세는 [베를리너 타게블라트] 등 유력 언론매체들을 소유한 언론계의 거물이었다. 모스는 어린 시절 유명 사립학교인 몸젠 김나지움과 살렘에서 교육받는다.
1933년 나치 집권 후 영국으로 망명해 퀘이커교 계열의 부댐 학교에 다니며, 이곳에서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알게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했으나, 1939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고 해버퍼드 칼리지에서 학부과정을 마친다. 1946년 ‘16~17세기 영국 헌법사’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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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한 뒤 출판 편집자로 일해왔고 번역공동체 ‘펍헙번역그룹’의 일원으로 이 책을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 『크리에이티브 드로잉』 『취직하지 않고 독립하기로 했다』 『사커노믹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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