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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 최진영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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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아름답고 충격적인 젊은 소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최진영의 첫번째 소설집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뒤 2010년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신예작가 최진영의 첫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전작 장편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박력있는 서사가 여실히 응집되어 있는 가운데, 폭력과 착취가 상존하고 욕망과 불확실성이 넘실거리는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약자들에게 정면으로 시선을 던진다. 주제의식이 투철하고 강렬한 인상을 갖추었으면서도 하나같이 탄탄한 구성과 밀도있는 문장이 뒷받침된 빼어난 작품들이다. "신예 소설가들 중에서 최진영만큼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를 보지 못했다"(송종원, 해설), "이 소설가와 함께 인생을 늙어갈 거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젊은 독자들이 여럿 생겼다"(전성태, 추천사)라는 상찬이 결코 지나치지 않을 만큼 단연 주목받아 마땅한 젊은 작가를 만나는 기쁨이 크다.

    이 시대의 약자를 대변하는 강인한 목소리

    이 소설집에 수록된 10편의 작품들은 각각 서로 다른 이야기와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강렬한 필치로 이 시대의 현실문제들에 직핍한다. 최진영 소설의 인물들은 서민, 비정규직, 여성, 실업청년, 십대 등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형상화된다. 작가는 이들 인물이 처한 결핍과 고통의 세계를 직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묘사하는 한편 절묘한 여백을 더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에서 저들의 현실을 사유하게 만든다.
    첫번째 수록작 [돈가방]은 부모님의 산소에서 우연히 3억이 든 돈가방을 발견한 형제 부부의 이야기이다. 첫째 장수 부부가 외제차를 굴리며 사업을 하면서도 돈가방에 대한 탐욕을 숨기지 않는 반면 둘째 두수는 눈먼 돈을 가지는 데 죄책감을 느끼며 다른 식구들까지 챙기려 한다. 두수의 아내는 그런 남편이 답답하고 경멸스럽기까지 하지만 결국 두수의 고집스러운 도덕심 때문에 돈은 모두 장수가 가져가고, 사업상 급한 용무를 해결한 뒤 절반을 준다던 장수는 가증스러운 거짓말로 나 몰라라 하고 만다.
    [남편]의 주인공은 어느날 경찰로부터, 멀쩡히 출근했던 남편이 여고생 강간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내에게는 늘 일상에 힘겨워하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안쓰러운 남편이었지만 그는 이내 주변 모두에게서 강력범죄자로 낙인찍히고, 그로 인해 아내마저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마트에서 해고된다. 그럼에도 자신만은 남편을 믿고 보듬겠다고 면회 간 유치장에서 아내는 억울하다는 남편에게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들 작품은 얼핏 통속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인물들의 흥미로운 내면과 현실의 모순을 절묘하게 배합함으로써 그 깊이를 더한다. 주저하지 않고 성큼성큼 내딛는 특유의 문장들이 몰입도를 배가하는 것은 물론이다.

    휴대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남편은 맘 약하고 착한 남자다. 아이를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그의 심성에 반해 결혼까지 결심했다. 다은이가 예쁘니까 자꾸 봤을 테고 혼자 사는 미스 박이 걱정되어 그녀를 보살폈을 것이다. 그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그를 범죄자 취급하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뭔가. 의심은 소문을 만들고 소문은 진실을 만든다. 의심과 소문과 진실의 삼각형에 갇힌 채 그는 결백을 주장하고 나는 더러운 손톱을 자근자근 씹어 먹는다. 열심히 돈 모아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으면 아이부터 갖자며 소주 한 병도 세번에 나눠 마시던 안쓰럽고 애달픈 사람. 그런 그가 어쩌다 더러운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버렸을까. ([남편], 47면)

    작가는 동세대로서 청년세대가 느끼는 정체 모를 불안과 공포를 작품 안에 담아내는 데도 탁월함을 보인다. 이름조차 확실치 않은 어느 빌딩으로, 왜 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버지의 당부에 따라 밤새 끝없이 거리를 헤매는 [어디쯤]의 주인공이나, 영화감독이 꿈이지만 가족들에게마저 멸시의 대상이 되고 홀로 코끼리 한마리를 아무도 모르게 데리고 사는 [엘리]의 화자는 알레고리화된 이야기로 독자에게 마치 그들과 함께 답답한 미로를 더듬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렇듯 다양한 내용과 형식 속에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담아내는 수작들을 계속 만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장이라 할 수 있다.
    [월드빌 401호]와 [창]은 생존의 불안을 느끼는 청년(혹은 모든 세대)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충격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월드빌 401호]의 '종철'은 어머니의 유일한 유산인 좁은 집 안에서 창문과 문틈마저 봉한 채 두문불출한다. 그는 자신을 학대한 '괴물'이 살인죄로 복역 중이지만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유일하게 애틋한 기억으로 남은 소녀와의 한때를 추억하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먹을 것이 없어 머리카락을 태워 먹고 벌레를 구워 먹으며 지내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떠돌이 개 '종철'은 유일한 친구인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받은 끔찍한 폭력을 고스란히 전가하는 대상이다. [창]의 주인공은 비정규직 여성이다. 다니는 회사에서마다 왕따를 당하고 종종 크고 작은 성희롱에 시달리지만 참을 수밖에 없는 그녀는 우연히 동료들이 메신저로 자기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험담을 나눈 것을 보고 그들의 컴퓨터와 유리창을 박살낸 채 집으로 향한다. 외로움과 상처로 아파하던 그녀는 앞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커플을 보고 설레지만 그로 인해 이내 파국적인 반전을 맞는다. 이들 작품이 전달하는 일상의 억압과 폭력성은 커다란 충격을 전하는바, 이 강렬한 설정은 역설적으로 인물이 처한 상황이 우리 모두에게 놓인 명백한 현실임을 자연스레 자각하게 한다.

    바깥세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른다. 자기의 그런 행동이 누군가의 존재를 통째로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보인 사소한 야유 때문에 나는 상상한다. 머리카락을 모두 쥐어뜯는다거나, 혀를 깨문다거나, 팔목을 긋거나 목을 따버리는 상상. 모두 기겁하겠지. 놀라 소리 지르겠지. (...)
    감옥에서 나를 죽일 궁리만 하고 있을 괴물이 그리웠고,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여자애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상처에 된장을 발라주며 내 코를 비틀던 엄마와, 악수하듯 내 손을 꽉 깨물던 떠돌이 개가 자꾸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종철이를 팼다. 패다가 울었다. 울면서 벌벌 떨었다. 무서웠다. ([월드빌 401호], 167~68면)

    이곳의 젊은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참혹한 현실은 다양한 이야기로 변주된다. [새끼, 자라다]는 사막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펭귄과 자라의 이야기를 통해 흥미로운 우화를 전해준다. 자신의 기원과 생의 목적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펭귄과 자라, 이들을 상시적으로 위협하는 사마귀, 힘을 가졌지만 세계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낙타 어미들이 어우러진 사막의 풍경은 이 세계의 단면들을 절묘하게 연상시킴으로써 스산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주단]은 쌍둥이지만 건강하고 활발한 형 '주'와 갈수록 쇠약해지는 희귀병을 앓는 동생 '단'의 이야기다. 가장 평범한 일상조차 허락받지 못한 단은 점차 주에게 피해의식을 키워가는 한편으로 담배나 연애 등 십대들이 호기심을 느낄 법한 것들에 대해 갖는 은밀한 욕망을 주에게 표출한다. 주는 단과 나눠 가져야 할 모든 것을 자신이 독식했다는 죄의식과 그것을 부정해버리고 싶은 갈등 사이에서 시달린 나머지 순간적으로 기억을 잃는 증상을 갖게 된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우리 문학의 낭보


    한편 작가는 슬픔과 설렘을 동시에 자극하는 나직한 서정을 풀어내기도 한다. [첫사랑]은 십대의 어느 한 시절 누구나 경험했음직한 첫사랑의 기억을 자분자분 이야기한다. 섬세하게 그려진 소설 속 장면들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속박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 부지불식간에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근본적으로 추동해낼 수 있는 힘을 지녔음을 아름답게 각인시킨다.
    등단작이자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팽이]는 소박한 이야기로도 독자들을 깊이 매료시키는 작가의 힘을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야광 팽이를 돌리며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동생 앞에서 어른처럼 굴려 애쓰는 오빠, 플로리다의 예쁜 집에 살게 되었다며 엽서를 보내온 엄마 '루시', 표 나지 않게 재이의 상대가 되어주는 떠돌이 개에 이르기까지, '재이'는 자신을 둘러싼 작은 세계 안에서 조금씩 무언가를 배워나간다. 작가는 오빠와 단둘이 살아가는 소녀 재이의 성장담을 통해 한 개인이 끝내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가게 되는 과정을 애틋하게 그려내면서 감동적인 여운을 선사한다.

    오빠가 떠난 뒤 방에 누우니 처음부터 나 혼자만 살던 방처럼 다른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방은 오빠가 떠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제 몸을 알아서 오므렸다. 언젠가 오빠가 말해준 백색왜성처럼, 방은 점점 작아지고 작아지다 빛도 잃고 열도 잃고, 결국 보이지도 않는 검은 구멍이 되어 나를 빨아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방을 떠날 날을 헤아려보았다. 당장이 될 수도 있고,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날이었다. 아무 균형도 규칙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따뜻한 품을 느끼며, 다시는 깨지 않을 사람처럼 잠을 자고 잠을 자고, 잠을 잤다. ([팽이], 286~87면)

    미학적 고뇌와 현실과의 접합점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작가와 그들의 역작들은 우리 문학을 지탱해온 중요한 힘이다. 이런 미더운 작가를 새롭게 만나는 기쁨은 우리 문학을 아끼는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최진영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문학을 이야기함에 있어 가장 앞서 거론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가이다. 수다한 이야기를 다양한 화법으로 담아내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단단히 구축해가는 뚝심, 그리고 작품 안에서 독자로 하여금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읽어내게끔 유도하는 작가적 역량은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이 작가의 행보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추천사

    [팽이]는 최진영이 두편의 장편에서 이룬 서사적 힘에 더해 단편미학에서도 강한 작가임을 입증한다. 그의 소설에서는 독하고 애틋한 마성이 느껴진다. 능청맞고 때로 청승맞다. 이야기 푸는 솜씨가 시원시원한 데도 있다. 최진영 소설의 맛은 역시 화법이다. 말투가 직설적이되 화자들이 정면으로 앉은 경우가 드물다. 빗겨 앉은 각도에서 그녀는 웃는 소리도 하고 우는 소리도 한다. 그 각도는 최진영이 세상과 대결하는 거리이고, 최진영 소설언어의 영토이기도 하다. 그의 세대에서 그만큼 생을 적나라하고 깊게 보는 시선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어느덧 그의 소설이라면 군침이 돈다. 자기 세대의 감성과 문법에 정통한 가운데 최진영은 제 갈 길을 따로 마련한 신진예술가로 성장했다. 이 소설가와 함께 인생을 늙어갈 거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젊은 독자들이 여럿 생겼다. 나 역시 책장에다가 그의 소설들을 모으고, 여유공간도 충분히 확보해두고 있다.
    - 전성태 소설가

    저자소개

    생년월일 1981~
    출생지 -
    출간도서 20종
    판매수 3,928권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팽이]가 당선되었다. 2010년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과 소설집 [팽이]가 있다. 한겨레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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