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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권은 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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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신조
  • 출판사 : 작가정신
  • 발행 : 2012년 09월 11일
  • 쪽수 : 208
  • ISBN : 97889728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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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L은 love, M은 mommy, N은 night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 같은 스물두 살 어린 여자의
    뜨겁고, 아프고, 무서운 그러나 따뜻한 치유 이야기


    1999년 제4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기대어 앉은 오후]를 비롯해 [감각의 시절] [21세 라운지] 등을 통해 섬세한 묘사와 감각적인 문체, 영상적인 표현력을 바탕으로 독특하고 안정된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온 작가 이신조가 작가정신 소설락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우선권은 밤에게]를 내놓았다.
    이 작품에는 스물두 살, 어린 여자 '나'가 등장한다. '나'는 계부가 운영하는 서울 어느 동네의 작은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사람들에게 집을 소개해주며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아직은 많은 것들이 낯설고 서툴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집을 남다르게 느낄 수 있는 재능이 있다. '나'는 어느 날 자신만의 방 한 칸을 찾고 있는 남학생을 만난다. 또 어느 날은 나이트룸과 함께 집을 옮겨 다니며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쌍둥이 여사님들을 만난다. 그리고 나이트룸 속으로 들어가 온전한 밤을 경험하게 된다.
    이신조의 [우선권은 밤에게]는 '밤(나이트룸=모성)'이라는 상징을 통해 도시 공간 속에서 결핍된 모성을 채우고자, 상처를 치유하고자, 안식을 갈구하고자 하는 스물두 살 어린 여자의 성장 이야기를 섬세한 묘사와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 소설이다.

    이신조가 묻는다,
    당신에게 집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집을 찾는다. 편안히 몸을 누이고 마음을 쉬게 할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는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너의 집은 어디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깃들어 있는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집이 되어줄 수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집이 한 사람의 재력을 보여 주는 표상이 되었을까. 집을 사고팔면서 우리는 집(또는 방)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한 사람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고된 육신을 누이는 곳,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새로운 삶의 의미를 공유하는 곳, 일생의 땀과 눈물과 손때와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그래서 평안히 눈 감을 수 있는 곳. 이 소박하지만 중요한 무형의 가치는 집 또는 방이라는 유형의 공간을 통해 의미화된다. 때로 집 또는 방의 개념은 이러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기도 한다. 한 공동체가 개인에게 집이 되고, 개인이 한 공동체의 방이 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집이 되고, 한 마음이 다른 한 마음에게 방이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이다. 작가는 이러한 공간의 다양한 의미를 소설 속에 부리면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공간을 제시한다. 그것은 공간이면서 시간이고, 물질이면서 비물질이다. 그것은 있으면서 없고, 없음으로 있다. 꽉 차 있으면서 비어 있어서, 그것 안에 있는 대상을 정화시킨다. 그게 뭘까? 그것은 밤의 방, '나이트룸'이다. 나이트룸을 만나려면, 우선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집과 방의 의미를 하나씩 '느껴야' 한다. 그 느낌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궁극의 공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물두 살 어린 여자의 밤,
    그리고 필요한 것은 나이트룸

    나이트룸에서, 나는 길고 긴 잠을 잤다. 온밤 내내 잤다.
    빛과 무관한 어둠처럼, 깨어 있음과 무관한 잠. 내 몸의 털 한 올, 피 한 방울,
    세포 하나하나까지 모두 동의하고 받아들여진 잠. 그런 잠이었다.
    쌍둥이 여사님들의 말대로 나는 밤의 일부가 된 것이다.


    도시와 인간의 성장에 관심을 보여 온 이신조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주인공 ‘나'를 통해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처럼 변해가는 도시인에게 인큐베이터와 같은 집과 방을 보여 준다. 뚱뚱하고 평범한 외모의 스물두 살 어린 여자, '나'는 계부의 부동산중개소를 관리한다. 집을 구하는 고객들에게 제각각의 공간들을 보여 주면서'나'는 그들의 삶에 접촉을 시도한다. 사람의 삶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처럼, '나'가 보여 주는 집들과 방들의 이력도 그 공간이 가진 특유의 인상에서 드러난다.'나'는 그렇게 집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본다.'나'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숨 쉬는 공간의 의미를 몸으로 알아내는 재주를 가졌다. 그리고 어두운 밤에 소곤소곤 들려주는 집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집에게 들려주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나'는 거의 매일 밤을 배회한다. 먼저는 부동산중개소를 찾은 손님들에게 낮에 보여 주었던 집들을 밤이 되어 다시 찾아가 집을 정리하고 청소한다. 그리고'밤의 집'과 공감하고 소통한다. 때로는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에 들러 음식을 사고, 찜질방에 들르기도 한다. 또 때로는 한 남학생의 일상을 추적한다.
    ‘나'는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인근 전문대 신입생에게 관심이 있다.'나'는 그가 찾는 방을 하나씩 보여 주면서 그를 읽어 나간다. 살기 좋고 쾌적하지만 그의 여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복층 원룸부터, 그의 여력이 미칠 법하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다소 불편한 지하방까지, 스무고개를 풀어나가듯 그 공간들의 차이를 통해 그를 추측한다. 그는 결국 그날'나'를 통해서 어떤 방도 계약하지 못하고 '나'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후에‘나'는 우연히 인근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그를 본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의 생활 반경을 배회하다, 어느 깊은 밤에 그를 다시 만난다. 그는 방을 얻을 보증금이 없지만 그때 보았던 지하방이 나갔는지 궁금하다. '나'는 그에게 매일 조금씩 청소했던 그 방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나'와 그는 서로의 처음을 나누고, 그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나는'춥고 뜨겁고 아프고 무섭다'. 지금'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이트룸.

    당신도, 밤의 일부가 되어 보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제 온밤 내내 잘 수 있어요.
    밤이 되었으니 그럴 수 있어요.
    아주 오래전의 그때처럼요.


    ‘나'는 맞춤옷을 만드는 쌍둥이 여사들을 통해 나이트룸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나기 전에 중년의 두 자매에게 집 한 채를 소개하는데, 집 임자가 쉬이 나타나지 않아 오래 비워져 있었던 그 집은'나'에게는 비밀스럽고 소중한 공간이다. 장독대가 많아서'장독대집'이라고 부르면서 혼자서 집을 청소하고, 가끔 그곳에서 잠을 자며 쉬다오는 곳. 모성 결핍의'나'에게 그 집은 일종의'품'과 같은 곳이었다. 쌍둥이 여사들은 장독대집을 보자 흔쾌히 계약하기로 한다.
    중년의 두 자매가 장독대집을 계약한 이유는 나이트룸 때문이다. 작은 골방에 들어가 흔들의자에 몸을 의지하면서 잠시 잠을 자면, ‘나'는 온 밤을 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온전히 밤이 된다.
    빛 이전에 어둠이 있었다. 우리가 최초로 경험한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우리는 오롯한 어둠을 누렸고, 완전했고, 깊은 잠을 잤다. 완벽한 평안 속에서 어떠한 두려움도, 아픔도, 상실도 없었다. 어둠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 어둠이 내려앉아 세상을 덮는 밤이 따뜻한 이유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그 온전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주와 밀착되어 있었다. 어쩌면 우주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스물두 살, 성년도 미성년도 아닌,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 같은 어린 여자,‘나'는 그 나이트룸 속에서 결핍된 모성을 채운다. 다시 한 번 자궁을 경험하면서, 온전히 밤이 되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에서 누락된 모성을 나이트룸을 통해 체험한 것이다.'나'는 그렇게 차고 단단한 도시 속에서 밤을 만난다. 이제 그녀는 그 밤 속에서 세포 하나하나 올올이 다시 태어난다.
    ‘나'는 신입생과의 처음 이후 나이트룸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때 나이트룸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직후인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나'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이제 자신만의 모성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모성이란 전 생애를 또 하나의 인격체에게 비추는 것. '나'가 어떤 삶을 만들어갈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그것은 어쩌면 독자 자신이 만들어 나갈 삶의 그림자와도 같을 것이므로.

    주요 내용
    스물두 살, 어린 여자‘나'는 계부가 운영하는 서울 어느 동네의 작은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일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집을 소개해주며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아직은 많은 것들이 낯설고 서툴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집을 남다르게 느낄 수 있는 재능이 있다.'나'는 어느 날 자신만의 방 한 칸을 찾고 있는 남학생을 만난다. 또 어느 날은 나이트룸과 함께 집을 옮겨 다니며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쌍둥이 여사님들을 만난다. 그리고 나이트룸 속으로 들어가 온전한 밤을 경험하게 된다.

    목차

    작가의 말
    우선권은 밤에게
    작품 해설

    본문중에서

    나는 밤의 시간 안에 있다. 이삿짐 박스처럼 가득 채우는 시간, 영수증처럼 무심히 구겨지는 시간, 빈 시소처럼 갑자기 기울어지는 시간, 낮 동안 흐른 시간을 잼처럼 저어 묵처럼 굳히는 시간, 밤의 시간.
    (/ pp.43~44)

    누군가 나를 본다면, 나는 그저 하나의 검은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나는 그저 하나의 검은 덩어리로 보이는 커다란 검은 외투를 입고, 그 외투에 달린 커다란 검은 모자를 덮어 쓰고 밤의 거리를 걷는다.
    (/ p.45)

    봄날의 얼마 동안, 마치 나무가 심한 병을 앓는 것처럼 보였다. 펄펄 열이 끓어오르고 괴롭게 뒤척이고 혼잣말을 횡설수설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붉은 꽃송이가 불쑥불쑥 돋아나 무거워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나뭇가지를 감쌌다. 이내 알전구가 깨지듯 펑펑 꽃이 피었다. 꽃을 피우느라 힘겨워 보이는 나무를 바라보는 일이 힘겹게 느껴졌다. 목련은 예쁘고 환하고 아름다웠지만, 뜨겁고 어지럽고 무서웠다. 그리고 얼마 후 골목길 바닥은 잔인한 전쟁터처럼 변했다. 검붉게 시들어 짓이겨진 목련꽃잎들이 온통 핏자국처럼 바닥을 뒤덮었다. 그게 또 그렇게 힘겨워 보일 수 없었다.(……) 봄이면 피할 수 없는 한바탕 요란한 사건. 마음을 졸이며 담장 너머 자목련을 올려다보던 기억. 그러나 힘겹고 버겁다 생각하면서도,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 차라리 빨리 지나갔으면 바라면서도, 나는 그 압도적인 봄의 사건을 내심 기다렸던 것 같다.
    (/ p.104)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야 해요.”
    “…….”
    “사람은 잘 먹지 않고 잘 입지 않고 잘 자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잘 살 수는 없어요.”
    (/ p.159)

    여름과 겨울, 방학 때면 나는 할머니가 있는 T읍의 미니슈퍼로 돌아갔어요. 내내 할머니와 지내다 개학이 다 되어서야 서울로 돌아왔죠. 열세 살의 여름방학. 나를 할머니에게 데려다주고 엄마와 계부는 휴가를 떠났어요. 일주일이 흐른 뒤, 계부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어요. 엄마가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이었어요. 엄마는 사흘 뒤에 사망했어요. 병명은 급성 패혈증. (……) 계부와 나와 할머니는 그렇게 엄마를 잃었어요. 태어나지 않은 아기도 잃었어요. 얼마 뒤 나는 다시 양 씨에서 권 씨가 되었어요. 나는 가끔 그때의 내 이름을 중얼거려보곤 해요. 오래전의 일이에요. 나는 이제 온밤 내내 잘 수 있어요. 밤이 되었으니 그럴 수 있어요. 아주 오래전의 그때처럼요.
    (/ pp.161~162)

    부슬부슬 분무기를 뿜어대는 것처럼 비가 내리고 있다. 해가 뜬 걸까, 어둑어둑 흐린 하늘 탓에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밤이 완전히 지난 걸까, 이제 밤이 아니라면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이트룸에 가도 되는 걸까. 나는 장독대집 앞 골목을 몇 번이나 왕복하며 날이 더 밝기를 기다린다. 구겨지고 뜯겨진, 딱 알맞은 옷들이 비에 젖는다. 나는 춥고 뜨겁고 아프고 무섭다.
    (/ p.170)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4~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13종
    판매수 1,789권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8년 [현대문학]신인추천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새로운 천사] [감각의 시절],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가상도시백서] [29세 라운지] [우선권은 밤에게] [크리에이터]가 있다.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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