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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넘게 지리산을 다닌 저자가 산을 오르며 얻은 단상과 깨달음을 담았다. 지리산에서 숨져 간 이들의 그림자를 읽어가는 시인의 눈과 환경오염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지리산이 훼손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그렸다.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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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외로우면 지리산을 간다. 30년 넘게 가까이 다녔지만 아직도 지리산을 모른다. 오늘도 배낭을 꾸리는 이유다. 지리산은 영원한 신앙처럼 높은 곳에 머물러 있다. 내가 만난 지리산의 아주 작은, 털끝만치도 잘 모르는 그것을 어눌한 말로 꾸며낸다는 것은 고통이다. 이 짝사랑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지리산을 간다.

지리산은 눈물이다. 지리산을 생각하면 어쩐지 비감에 빠진다. 지리산은 아픔을 바탕으로 한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도피와 동족상잔의 무대로써 그 산이 가진 숙명 때문에 산에 들어도 아픔과 슬픔으로 목이 메인다. 벽소령에서 휘엉청 솟은 달을 보면 슬픔의 절정을 보는 것 같다.

지리산이 오염과 훼손으로 무너지고 있다. 짐승 같은 사람들로 오염되고 그들이 배설한 쓰레기와 소리들로 오염되고 그것들은 산의 파괴로 이어진다.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산을 저희들이 주인인양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마구 파헤치고 있다. 산중에 댐을 건설하고, 산록에 도로를 개설하고, 심지어 케이불카를 놓는 계획까지 있다지 않는가. 몇 겁을 그리해 있는 산을 사람들이 뜯어고친다면 기후가 바뀌고 생태계가 변화되어 결국 인간도 추방당하고 말 것이 뻔한 일인데 나는 이런 것에 분노를 느끼며 아름다운 지리산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리산을 간다.

이 시편은 절반도 못 간 지리산을 위해 남겨 둔 여백의 시작점이다. 그 나머지 시편들이 언제 보여 질 지 다시 지리산을 가봐야겠다. 그리고 지리산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행간에 담아 본다. 그러기에 신앙처럼 다시 지리산을 간다.

2005. 강 영 환

제 1부 중산리- 천왕봉-세석평전
제 2부 세석평전-노고단
제 3부 남녘 계곡과 능선
제 4부 동-북-서 지리산

금낭화
―단천골


피투성이 상처를 안고
4월 그대 품에 들었다
그대는 말없이 상처를 빨아 주었다
찢어진 마음 위로 지나가는
부드럽고 따뜻한 그대 입술
눈에 핏발이 가시고
상처에는 새 살이 차올랐다

이듬해인가
아니, 더 먼 먼 시간
그 골에는
금낭화가 방울방울 흰 피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