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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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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건넌 예술가들

    서경식의 세 번째 미술 에세이로 이 책에는 딕스, 놀데, 키르히너, 콜비츠, 베크만 등의 여러 예술가들의 고뇌가 담겨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모두 과거 수년간 일본의 매체를 통해 발표한 것으로, 먼저 출간 된 두 권과는 달리 국내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는 저자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 화가들의 그림 속에 녹아 있는 그들의 삶과 미학적인 탐구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출판사 서평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응시한 화가들을 찾아서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 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현재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 않다. (……) 뒤러, 그뤼네발트, 카라바조, 고야, 렘브란트, 피카소, 고흐……. 이 거장들은 ‘예쁜’ 작품을 그려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직시해서 그리려 했다.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거기에서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이 생긴다. 그들의 힘으로 우리는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공유하고 있던 통념으로서의 미의식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시대의 미의식을 개척해온 것이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서경식의 서양미술 순례]와 [청춘의 사신]을 이은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세 번째 미술 에세이이다. 이 책은 고전적인 그림들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교양서나 낭만적인 예술 기행이라는 관습화된 에세이를 벗어나 시대와 인간이 충돌하는 장으로서의 예술을 절절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앞의 두 권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의 조국 생활을 통해 다듬어진 문제의식을 한국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쓴 책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권과 다르다. 한국 근대미술에 ‘아름다움’에 대한 치열한 의식이 존재하는가 ‘근대’라는 폭력의 시대와 정면으로 맞선 ‘근대예술’이 우리에게 있는가 에밀 놀데,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카라바조, 고흐,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 등 길고 긴 우회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물음들을 던진다. 또 그런 치열한 예술 정신 없이는 새로운 공공성(새로운 근대)이라는 화두 자체가 공허하게 지배의 도구로 환원되고 말리라는 시대적 경종이, 그런 물음들 아래로 의미심장하게 울리고 있다.
    저자 서경식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는 화가들은 주로 독일 표현주의 계열의 화가들이다. 표현주의란 거칠게 말하면 현상이 아닌 본질에 천착하고, 그것을 강렬한 형상과 색감으로 표현해내는 예술이다. 하지만 본문에는 ‘표현주의’라는 말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더구나 2부에서는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그와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묶여야 할 고흐나 카라바조의 예술이 동일한 문제의식 아래 다뤄지고 있다. 바로 ‘현실을 극한까지 응시하고 인식하는 시선과 그것을 강렬하게 표현해내는 힘’이다. 이런 문제의식하에서 다양한 유파와 다양한 시대의 예술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전쟁, 폭력, 식민주의 등 근대의 그늘은 모두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모두 이 지옥과 같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하고 증언한다. 이들은 도덕에 대한 환상이나 구원에 대한 (중세적인) 희망 없이,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전제도 없이, 오직 인간적인 감각에 의지해, 극한의 악을 그려내고 초월한다. 근대란 이렇듯 인간의 ‘악’을 최대치로 보여준 시대이자, 또한 그것을 놀라운 예술적 시선으로 포착해내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준 시대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루는 예술들은 결코 ‘일반적인 의미에서’ 아름답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오히려 추한 것을 끝까지 응시하고 담아내려는 인간적인 고투,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바이에른 혁명과 바이마르 시대를 거쳐 나치 독일로, 시대의 역행에 온몸으로 맞선 화가들
    에밀 놀데, 에른스트 키르히너, 막스 베크만, 조지 그로스, 존 하트필드, 캐테 콜비츠


    첫 번째 장 ‘통일독일 미술기행’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후속편이라 할 만한 글이다. 1980년대 처음 유럽을 여행한 이후 10년이 지나 1990년대에 다시 독일을 찾은 저자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기에) 그때는 갈 수 없었던 구동독 지역을 관심 있게 둘러본다. 우선은 냉전이라는 ‘전쟁’에서 패배한 구동독 사회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고, 거기에 어렴풋이 조선의 미래를 겹쳐보기 위해서였다. 또 슈베린 미술관, 라이프치이 미술관, 드레스덴 미술관 등 중요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들을 둘러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제뷜의 에밀 놀데 미술관에서 본 [그리스도의 생애] 연작에 대한 감상이다.

    “이건 정말 독특하다. 이상하다고 말해도 좋다. 무너진 형태와 격렬한 색채로 진절머리 날 만큼 농후한 감정이 표현되어 있다.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석에서 직접 분출하는 듯한 감정이 방 전체에 충만해 있다.”(40쪽)

    이 그림에 대해 나치의 이데올로그 알프레드 로젠베트크는 “경건한 종교 감정을 모독하는 흑인 같고 야만스럽고 신앙심이 없는” 거짓 종교화라고 공격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놀데는 격렬하게 항의했다.

    “놀데를 반나치 투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는 적극적인 투사도 아니었고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는 나치즘의 동조자이자 나치당의 다원이었다. 그러나 이 완고한 노(老)화가는 시대의 강풍을 맞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북방의 농민다운 끈기를 발휘했다. 그것은 북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휘청거리면서도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저 가로수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럼으로써 놀데는 나치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정치적 희비극에도 불구하고 예술 세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52쪽)

    킬 미술관에 전시된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목욕하는 나부>와 <군인으로서의 자화상>에 대한 감상 역시 중요하다. 후자에는 군복을 입은 작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뜻을 암시하듯 손과 손목이 없다. 키르히너는 다리파라는 전위예술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1차 세계대전 때 강제징병 되었다가 심신이 쇠약해져 스위스로 이주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을 악랄하게 모독한 나치에 항의의 편지를 보내고 피해망상증에 빠져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가 1936년 자신의 작품들을 불태우고 권총으로 자살한다.

    뤼베크를 거쳐 구동독 지역으로 들어선 여정에서, 저자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날 언론 보도를 통해 장벽 틈새를 비집고 서독으로 넘어온 동독 시민들이 서독 측으로부터 배급 받은 돈으로 앞 다투어 바나나를 사먹는 모습을 보았던 일을 떠올리며 사회주의의 이상이 무너진 씁쓸한 현실을 소회하기도 한다.

    “바나나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면 사회주의는 정신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능가할 삶의 기쁨을 대중들에게 제공했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은 권력을 이용해 대중들에게 내핍을 강제했을 뿐이다. 과도기적인 상황이라 여겼던 그 내핍이 장기화되고 관습화되어 마침내는 권력을 쥔 특권층만이 바나나를 먹고 트라비를 탔던 것이다. 그렇게 사회주의는 부패하고 자멸해갔다”(66쪽)

    슈베린에서 플랑드르파의 작품들, 식민주의를 발판으로 태동한 자본주의의 욕망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정물화들을 확인한 저자는 다시 베를린으로 향한다. 바이에른 혁명의 기운이 가득했던 독일에서 반전과 반나치를 내걸고 활동한 막스 베크만, 캐테 콜비츠, 조지 그로스, 존 하트필드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감한다. 바이에른 혁명기와 바이마르 문화, 그리고 나치의 집권에 이르기까지, 마치 지금 우리 시대를 보는 듯한 독일 역사의 장면들이 화가들의 삶 혹은 작품들과 함께 생생하게 펼쳐진다.
    .

    종교도 이념도 아닌 예술의 힘으로 오토 딕스

    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글은 오토 딕스를 다룬 장이다. 1, 2차 세계대전의 격랑을 헤치며 작품 활동을 한 화가 오토 딕스에 관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다시 독일을 찾은 저자는 오토 딕스의 작품들뿐 아니라 그 작품이 탄생한 공간들과 주변 인물들을 취재해 화가와 화가의 시대에 대한 흥미롭고도 입체적인 해설을 시도한다.
    오토 딕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저자가 ‘기적’이라고도 표현한 <전쟁제단화>이다.

    “전통적인 제단화라면 중앙의 대화면에는 인류의 원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그려져야만 한다. 하지만 딕스의 전쟁제단화에서는 그 자리에 예수가 아니라, 포탄을 맞고 철책에 걸린 채 부패해가는 병사의 시체가 그려져 있다. 이 제단화에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그것도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존재구나,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전쟁을 반복하면서 질릴 줄 모르는 인간, 그리고 그 어리석음과 잔혹함을 이렇게까지 철저히 꿰뚫어보고, 남김없이 그린 것 또한 인간이다. 말 그대로 ‘신 없는 시대의 제단화’이다.”(116쪽)

    다음으로 오토 딕스의 자유로운 성향과 유머 감각을 잘 보여주는 <늙은 연인들>에 대한 해설이다.

    “그때까지 내 미의식으로 보자면 추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작품이 독특한 설득력을 가지고 육박해왔던 것이다. 이상할 정도의 인력이었다. 게다가 유머까지 넘치는 작품이라니! [……] 노인에겐 성욕이 없다라는 사이비 도덕관이나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아름답다라는 위선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형태로 철저히 파괴한다. [……] 다른 한편에서 딕스는 인간의 본능이나 욕망에 대해 솔직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확실히 ‘추한’ 그림이지만 ‘추하다’고 단정 짓거나 외면할 수 없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매력이라 고쳐 말해도 좋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의 미추를 둘러싼 감성이 협소하고 평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124~125쪽)

    또 전장에서의 체험을 고스란히 그려낸 동판화 연작 [전쟁]의 한 컷 한 컷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무]와 한 장면 한 장면 대입해보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토 딕스는 <프라하 거리>, <상이군인> 등의 그림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드러낸 도시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서 자유로운 예술가였을 뿐 아니라 이념에서도 자유로운 예술가였다. 그가 동서독일 양쪽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가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아낌없이 지옥을 보고 들은 딕스는 종군 경험을 가진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추악함을 격렬하게 고발했다. 피터 게이가 [바이마르 문화]에서 쓴 것처럼 딕스의 작품에는 ‘플로레타리아적 주장’이 함축되어 있으나, 이는 그가 공산주의 이념에 치우쳐 있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터 게이가 말한 대로, 딕스가 적에게 드러낸 반감과 증오에 대해, 그의 적들이 그런 이름을 붙이고 정치성을 부여했을 뿐이다.”(146쪽)

    오토 딕스는 뛰어난 초상화가이기도 했다. <여성반신상>, <노동자 소년>, <아이를 안은 어머니>, <모피 위의 여성> 등 모든 작품이 신랄한 진실주의와 함께 자유로운 유머 감각을 갖추고 있다. 자신의 눈만을 믿고 대상과격투하는 화가의 모습이 드러나 있는 작품들을 보며 서경식은 오토 딕스 자신의 말을 상기시킨다.

    “근대 이후 오늘날 초상화 제작은 자율성 없는 예술가의 일로 여겨지지만, 어떤 화가에게는 매력이 넘치는 중요한 작업이다. [……] 따라서 형태만이 아니라 색채가 매우 중요하다. 색채는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개개의 인물을 특별한 색채를 띤다. [……] 각 개인의 본질은 그 외모에 나타난다. 그리고 외모는 내적인 것의 표현이다. 즉 외부와 내부는 동일하다. 즉 의복의 주름, 사람의 자세, 그의 손과 귀도 바로 모델의 정신적인 것을 눈이나 입 이상으로 화가에게 설명해준다. 초상화가는 바로 각각의 얼굴에 숨겨진 아름다움이나 결점을 읽어내 그것을 회화에 표현하는 위대한 관상학자로 생각되기 십상이다. 이것은 문학적인 생각이다. 화가는 판단하지 않고 직시한다. 나의 모토는 ‘너의 눈을 믿어라!’라는 것이다.”(157쪽)

    오토 딕스는 뒤셀도르프에서 미술품 수집가이자 의사 한스 코흐 부부를 만나고, 곧이어 코흐의 부인이었던 마르타와 결혼한다. 그리고 한스 코흐 박사는 마르타의 동생과 다시 재혼한다. 저자는 한스 코흐 박사의 손자, 또 오토 딕스의 차남인 얀 딕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두 집안이 이런 엉뚱한 재결합 이후에도 줄곧 우정을 지켜왔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1933년 이후 나치에 의해 드레스덴 아카데미에서 쫓겨나고 란테크로 망명해 그곳에서 풍경화만을 그려온 딕스, 그러다가 징집되어 2차대전에 참전했다 생환하기도 한다. 노동자의 자식다운 완고한 장인 기질, 반권위주의와 개인주의, 자기 자신의 눈을 무기로 어떤 단체나 조직에도 의존하지 않고 세계전쟁의 세기에 맞섰던 화가 딕스는 결국 추상미술의 유행 속에서 전후에 거의 잊혀진 채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69년 사망했다. 그의 작품은 1968년 이후에야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냉전구조가 붕괴하고 동서독일이 통일된 이후의 세계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 이라크에서 체첸에서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세계의 모든 곳에서 전쟁과 살육은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전쟁이 일상화되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예전에는 전장이 멀고 비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잔혹함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전쟁이 너무나 가까이 있으며 일상화되었기에 전쟁에 대한 실감이 오히려 희미해지려 하고 있다. 눈을 뜨기만 하면 잔혹하고 추악한 장면이 눈앞에 뛰어들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급적 눈을 감으려 한다. 하지만 딕스는 감기는 우리의 눈을 억지로 벌리려 한다. 다름 아닌 예술의 힘으로.”(192쪽)

    근대미술의 문을 열어젖힌 선구자 카라바조

    2부를 여는 4장은 포츠담에 있는 <토마스의 불신>을 비롯한 카라바조의 그림들을 다룬다. 서경식은 ‘보고 그린다’는 위험한 욕망의 문을 열어젖힌 카라바조야말로 근대 회화의 선구자라고 평가한다. 반종교개혁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상식 밖의 치열한 묘사로 그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카라바조. 이러한 예술의 정신을 잇는 수많은 화가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카라바조가 열어젖힌 문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면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게’라는 [예수의] 말에, 토마스는 ‘그럼 사양하지 않고 (넣어보겠습니다)’라며 실제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손가락을 집어넣은 상태로도 여전히 ‘정말입니까’라고 말하는 듯한 눈초리로 상처를 응시하고 있다. 보면 볼수록, 예수에게는 생기가 없지만 토마스를 포함한 세 명의 형제들은 표정도 매우 생생해, 의심 많은 서민의 완전한 표상 그 자체이다. 보고 있는 나에게 전해진 것은 예수 상처의 아픔이 아니라 타인의 상처 속에 자신의 손가락 끝을 넣고서 그 온기와 습기까지 느끼는 감각이다. 즉 이 그림을 보는 이는 예수가 아니라 토마스와 동일시한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라, 보고 만지고 확인하려는 욕망에 마음을 빼앗긴 토마스이다. 저 혁명적인 전도가 여기에서도 실행되고 있다. 카라바조는 성서의 예수 부활 이야기를 주제로 하면서도 실제로는 의심으로 똘똘 뭉친 밉살스런 서민들의 생기 넘치는 초상을 그린 것이다. 토마스는 당장이라도 집어넣은 손가락 끝을 상처 속에서 그대로 움직이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일종의 포르노그래피가 아닐까.”(246쪽)

    근대미술의 고뇌를 원형적으로 보여준 선구자 고흐

    고흐에 대한 대담은 이 책에서도 가장 풍부한 주제들을 다룬다. 무엇보다 고흐의 작품들을 독일 표현주의 화가나 다다이스트들의 작품들과 나란히 세울 수 있는 것은, 그가 자본주의 세계에서 예술가로 살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뇌의 원형을 보여준 화가이기 때문이다.

    “그것[예술]은 ‘신’(神)이라고 말해버리면 간단하겠지만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보편적인 것을 위해 몸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150프랑만 보내줘’라고 무심하게 말해야 합니다. 즉 고흐라는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인간 고뇌의 원형을 발견하게 됩니다.”(274쪽)

    엉뚱하지만 ‘더러움’도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말이 된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질서로부터의 자유, 체제로부터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예술적 장치이다.

    “매우 단정한 차림의 테오가 선 채로 옆에 누워 있는 고흐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더러움은 현대 화가인 프랜시스 베이컨과도 상통합니다. 베이컨의 유명한 아틀리에 사진이 있는데요, 상당히 지저분합니다. [……] 질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만큼의 더러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죠. 베이컨은 디자이너 출신이라서 원래 무척 깔끔한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그림도 깔끔한 그림이 많습니다. 그로테스크한 그림이라도 깔끔한 색채를 배경에 사용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유 속에서 살아갑니다. 질서로부터 벗어날 때 더러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277쪽)

    무엇보다 핵심적인 주제는 고흐의 그림에 일관적으로 표현된 ‘원근감’이다. 고흐는 원근법을 부정하기는커녕 제대로 지키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근법을 뚫고 지나가는 감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고흐라는 인간의 삶에서도 일관되게 발견되는 태도이며, 따라서 작품을 인간이나 삶과 떨어뜨려놓고 보려는 해석의 경향에서는 쉽게 해명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고흐라는 화가는 삶과 작품을 떨어뜨려놓으려는 현대적 경향에서 빗겨선 존재라는 것이다.

    “제가 고흐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 것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고흐의 그림을 보고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옆에 세잔이 있고 반대편에 마네며 르누아르도 있었습니다. 허나 고흐의 방에 들어선 사람은 벽에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즉 그만큼 그림을 열심히 보게 됩니다. 고흐에게 매혹되는 것입니다. 희한하지 않습니까. 고흐의 방에서는 모두가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습니다. [……] 로이스달 같은 거장의 풍경화들은 더 정교합니다. 하지만 로이스달의 그림은 사물이 거기에 있다고 믿는 그림입니다. 멀리 있는 물건은 보이진 않더라도 반드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신념이 화면에 또렷이 드러납니다. 수백 미터 앞에도 반드시 사람이 있고 밭이 있다고 말입니다. 고흐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고흐는 사물의 화가니까 그렇게 믿습니다. 믿긴 하지만 고흐가 그리면 그 물질을 뚫고 지나가 저 건너편에 가닿는 감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물건이 없지만, 고흐는 그 건너편에 갑니다. 그곳을 꿰뚫고 지나가는 감각이 있습니다. 그 끝 간 데 없는 느낌이 고흐의 그림에는 나타나며, 그런 감각이 고흐 자신의 인간성 속에도 존재합니다. [……] 뚫고 나가는 것은 일종의 비극이지만 인간 중에는 그런 비극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현실로 환원되거나 현실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291쪽)

    고흐의 원근감에 투영된 자신의 감각을 끝까지 관철하는 삶의 방식은 그의 색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해바라기>의 노란색이나 <피에타>의 푸른색이 그 예이다. 한동안 동거했던 불행한 매춘부 시엔과의 관계 역시 그러한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보통의 배려를 뚫고 지나가는” 관계였던 셈이다.

    “고갱은 자신의 글에서 결국 ‘고흐는 광인이다, 정신 나간 놈이다, 그 선량함도 밑도 끝도 없다,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평가에는 보통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런 점은 우리가 고갱에게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고흐는 적당히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하나가 됩니다. 가령 이런 면이 동거인이던 시엔에게 좋았을지 어떨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흐 자신도 불행했을 터이니, 불행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은 인간 입장에서 보면 고흐 같은 인간은 역귀나 마찬가지죠. 바로 옆에 자신과 같은 인간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셈이니까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요. 다만 고흐의 감각에서 본다면 그 사람의 불행을 짊어지는 것은 똑같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흐의 현실 감각이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판단할 땐 이상하고 병든, 고흐의 특별함입니다. 그 불건강함이 역으로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이 지니고 있는 병적인 상태를 비추어 보게 합니다.”(305쪽)

    동생 테오와의 관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테오는 고흐가 ‘저편’으로 가버리지 않도록 꼭 붙들고 있던, 중요하지만 고통스런 역할을 떠맡은 존재였다. 고흐가 테오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한 것 역시 테오를 바라보는 일이 자신의 등을 바라보는 일처럼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또 이 둘의 관계는 근대 사회에서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된 예술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상징하는 하나의 알레고리로 읽히기도 한다.

    “고흐에게 테오를 바라보는 일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 이상으로 어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등처럼 절대 보이지 않는 거죠.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고흐의 급소 내지는 중심이었던 셈입니다. [……]
    형이 테오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한 인격의 자기분열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정신병리학적으로 말해도 그럴지 모르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더 간단한 것으로, ‘생활’이라는 키워드와 연관됩니다. 19세기 후반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 그림을 그리는 인간의 예술 행위가 자본주의 속에서 상업으로서 성립하게 되었음은, 테오와 고흐의 관계가 잘 말해줍니다. 게다가 원래는 둘 다 화상이었다는 점이 매우 상징적인데요. 동생이 끝까지 화상을 했기 때문에 형은 그림을 계속해서 보내줬던 것이죠. 형은 속물근성이나 상품화에 반역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런 입장도 어디까지나 배후에 테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테오도 그림을 매매하는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형을 보살핀 건 아닙니다. 자신에게 나름의 역할을 환기시키면서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310쪽)

    고흐의 그림이 그의 삶의 방식을 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그림은 그의 신체와도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그림이 그 몸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해석이다. 가령 그림에 최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투여해 점묘로 그린다든가 붓터치를 여려 겹으로 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신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엄청난 힘과 품이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시간에 그린 그림과 달리 그가 ‘밭을 가는 것처럼’이라고 말한 것처럼 구불구불 굴곡을 만들며 그린 것입니다. 한 번의 ‘구불’마다 생명이 깎인다고 할까요, 깎인 생명이 캔버스 위에 쌓인다고 할까요. 그런 변화는 아를 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생레미 시대에 전면적으로 드러납니다. 죽음에 접근함과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지요. [……]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화가의 욕구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하고 관계를 맺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고 싶다는 욕구지요. 한 줄의 선으로 그리면 끝나버릴 것을 점으로 그린다면…….(웃음) 점을 찍다 보면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요.
    화가가 그림과 관계 맺는 시간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거라고들 합니다. 아웃사이더나 정신병자가 자주 점묘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으로 말입니다. 그런 욕구가 있으면 그림 속에 들어가는 시간을 화면에 쌓아가는 방법을 만들어내게 마련입니다. 화면상에서의 효과도 있습니다만, 시간을 체험하고 싶다는 것이기도 합니다.”(317~319쪽)

    학살의 증언, 학살의 애도로서의 예술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천사들


    6장 학살과 예술은 과테말라의 원주민 학살을 증언하는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사진 작품들을 토대로 학살과 예술의 관계를 다시 묻는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함부로 묻힌 영혼들을 다시 기억해내 제대로 애도하고 제대로 매장하는 행위로서의 예술이 어떻게 과테말라에서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연대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이 장은 (강연, 질의응답, 산문시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과테말라에서는 내전에 의한 ‘학살’이 36년간 계속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 지배한 기간에 상당하는 세월이다. 젖먹이가 장년이 될 만큼의 세월. 이 시간을 ‘길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외부에 있는 사람뿐이다. 그 내부에 있는 이들, 내부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일상이다. ‘상상을 초월한다’고 가볍게 입에 담을 수 없다. ‘상상한다’는 최소한의 노력, 그들이나 그녀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노력조차, 가볍게 잊어버리기 위한 구실이 되기 때문에.
    ‘학살’이 이만큼 흔해빠진 사건인 이상, ‘학살’을 다룬 영상이나 예술작품도 드물지 않다. 이런 작품들 모두 비통하며 충격적이다. 하지만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어느 천사의 기억>은 어딘가 다르다. 어디가 다른가 그건 밀림 깊은 곳에서 나타난 기괴한 원숭이처럼, 명부에서 온 사자처럼,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떨쳐내려 해도, 떨쳐내려 해도, 환시(幻視)처럼 우리의 눈에 들러붙어, 전철을 타든 밥을 먹든 상관하지 않고, ‘호―옷, 호―옷, 여기에 있어, 여기에 있다니까’라는 불길한 목소리로 쉬지 않고 불러댄다. 그 목소리는 마침내 멀리 동아시아에까지 미쳐 메아리를 일으킨다.”(365쪽)

    목차

    1부
    1장 통일독일 미술 기행

    2장 너의 눈을 믿어라!
    오토 딕스의 생애와 작품

    3장 증언으로서의 예술
    누가 펠릭스 누스바움을 기억하는가

    2부
    4장 문을 열어젖히는 자
    카라바조 <토마스의 불신>에 관하여

    5장 고뇌의 원근법
    고흐에 관한 대담

    6장 학살과 아트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천사들
    부록 1 질의응답
    부록 2 원숭이의 불길한 목소리

    본문중에서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것이 아니었을뿐더러,현재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않다.
    뒤러,그뤼네발트,카라바조,고야,렘브란트,피카소,고흐...
    이 거장들은 '예쁜'작품을 그려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직시해서 그리려 했다.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거기에서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이 생긴다.
    그들의 힘으로 우리는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공유하고 있던 통념으로서의 미의식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시대의 미의식을 개척해온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1~
    출생지 일본 교토
    출간도서 31종
    판매수 7,602권

    1951년 일본 교토시에서 자이니치 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 봄에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로 한국에 2년간 체류하면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 예술과 정치의 관계, 국민주의의 위험성 등에 대해 널리 알렸다. 저서로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난민과 국민 사이],[고뇌의 원근법], [언어의 감옥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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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미시건대학교(The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명청시기 중국과 조선의 범죄소설과 법률문화에 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인문한국(HK)연구교수로 있으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동아시아 법률문화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 논문 및 저서로는 ''중국 근대의 풍경'(공저), '권력, 이미지, 텍스트 - 명청대 공안 삽화를 중심으로', '그들이 범죄소설을 읽은 까닭은' - 공안소설과 명청시기 중국의 법률문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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