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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서정의 결을 보여주는 김혜원의 시집!

김혜원 시집『물고기 시계』. 1998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김혜원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섬세한 서정으로 상처와 그리움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시인의 투명하고 맑은 시심은 바다의 이미지를 통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상상력의 결합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시인은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원초적인 생명력을 노래한다.

이번 시집에는 관념과 감각, 추상과 구상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여행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나 가족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자극하는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는 정밀하고 치밀하다. [양장본]

상처와 그리움이 공존하는 이미지로 가득한
김혜원의 두 번째 시집

김혜원의 시는 섬세한 서정의 결을 보여준다. 비 쏟아진 날 나비를 묻어 주고 화관을 해주는 일, 지상의 단 한 송이 꽃을 업고 봄나들이 가는 대목에서는 투명하고 맑은 시심을 엿보게 한다. 이러한 시심은 바다의 이미지를 통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상상력의 결합으로 표출된다.

제 등날을 사르며 올라오는
하늘의 심장에
저기 바다가 자지러지는 것 좀 보아!
와우! 기름 부은 듯,
순식간에 제 살을 녹이고 빠져나오는
저 불의 뼈 좀 보아!
-｢하늘의 심장｣ 전문

어디에 저토록
빛나는 뼈가 숨어 있었을까?
더는 태울 수 없는
극점極點에서
스스로의 다비를 멈춘 바다,
무한정의 생명을
쏟아내는 저 금빛의 자궁
-｢바다 사리｣ 전문

위의 두 편은 일출의 황홀경을 묘사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미명을 헤치고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햇덩이를 바라보면서 무한한 기쁨과 경의에 전율하면서 창조력과 원초적인 생명력을 감지한다. ‘불의 뼈’, ‘빛나는 뼈’에 비유된 햇덩이는 만물을 태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요, 바다는 또 그런 생명의 원천을 품고 있는 근원적인 공간(자궁)이다.
김수복 _ 시인․단국대 교수

시인은 서문에서 “허름하나 정갈한 시의 옷을 입혀 야생으로” 내보낸다고 말한다. 그래서였을까. 이 시집은 밤마다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시의 올을 깁은 흔적이 뚜렷해 보인다. 아니, 시어 하나하나에 의해 손끝이 퍼렇게 멍들었을 실핏줄이 보인다. 그만큼 김혜원의 시를 읽는 독자는 행복하다. 비 잠깐 그친 사이 뒤란 호박꽃 깊숙이 든 나비 한 마리가 순식간에 비 다시 쏟아지니 모로 누워 잠든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거, 어지러운 해질 녘 뒤따라온 밤꽃 내음에 문득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시인을 만날 수 있다는 거, 이 아니 행복한가.
허형만 _ 시인․목포대 국문과 교수

끊임없이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고 있다는 점이 김혜원의 시들이 지니고 있는 한 특징이다. 추상은 감추기의 결과라고 생각되고, 구상은 드러내기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감추기가 심화되어 있는 시에는 감각이 드물고, 드러내기가 심화되어 있는 시에는 관념이 드물다. 물론 이번 시집은 관념과 감각, 추상과 구상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 시가 자극하는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는 두루 정밀하고 치밀하여 주목이 된다. 여행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시들이나 어머니나 아버지 등 가족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시들, 곧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은 시들이 특히 그렇다.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것이 이들 시가 뿜어내는 아프면서도 알싸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이은봉 _ 시인․광주대 문창과 교수

■ 시인의 말

시답잖은 원고를 이리 끼고 저리 나르며 여기까지 왔다. 일상에서 보고 느끼며 말 만들기에 소용되는 것들을 정리하고 쓸 때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를.
밤이 아니면 제 시간이 없는 여자, 밤을 기다리는 여자, 밤이 즐거운 여자, 그래서 밤에 제 전부를 던지는 여자라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런 밤을 갖기 위해 입안에 스리가 베기고 혓바늘이 돋도록, 그렇지 않은 날은 입술에 꽈리가 맺히도록 즐거이 낮일을 해 왔다.-즐겁게 일한다는 것과 일이 힘들지 않다는 건 다른 말이다- 그러나 막상 밤이 되면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다른 일과 달리 써 놓은 글이 한심하고 막막해 던졌다가도 애잔자잔한 마음에 다시 집어 들기 몇 번이었나 싶다. 제멋대로 까끄럽고 건한 글에 울망불망 하다 맞은 새벽 또한 그래서 늘 낯익다.
첫 시집에서 보인 순수하거나 따뜻한 눈길 대신 차갑고 까칠한 직선의 그림들을 본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 모두가 이전에 살던 물과 전혀 다른 물의 온도와 수질에 적응하는 동안 자폐가 된 시간의 그림인 것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내놓는다.
이 밖에 시집을 묶으면서 얻은 것들이 많다. 취할 것과 버릴 것의 분별을 놓고 고민하는 동안 비움을 배웠고 그것을 통해 나를 걸고 매진하던 것에서 손을 떼는 결단도 내렸다. 이렇듯 치열한 나를 사랑하는 삶의 방식이 때로 나를 어렵게도 하지만 후회나 연연을 가까이 않으니 문제는 없다. 이 모두 시가 있어 가능하지만 나를 버리고 세우는 것 역시 시라는 걸 잊지 못한다.
분곽 만한 목장의 문간방에서 낙엽송 허리춤만 보이는 다락방으로 옮겨 앉아 잉태하고 생산한 분신의 양수를, 들짐승처럼 알뜰히 닦아내고 허름하나 정갈한 시의 옷을 입혀 야생으로 내보내는 밤, 별이 유난히 굵고 총총하다.

2008년 여름 날머리
우거 다락방에서
김 혜 원

시인의 말

제1부 노랑나비
낮고 푸른 북소리
비 개인 오후
손
사막의 여우
冬柏
갓등이 있는 골목
사라진 사람들
인공수정-목장일기
안락사를 위한 기도-목장일기
서설입니까-목장일기
반전에 대한 작은 생각-목장일기
낙원 가는 길
뭉크의 마돈나에게
나비는 알았을까
프로메테우스에게
불경
동경銅鏡 그 사람의 사랑
내사 보니
미납고지서
노랑나비
근조謹弔-자유로
무정란
찝찝한 증세
무애無碍의 옷은 누가 지었나
'그대'에 대한 변주變奏

제2부 시간의 향기
하늘의 심장
바다 사리舍利
진주조개
바람의 집
내가 부를 노래 섬 집 아기
하늘 궁전
먼 집
양파 껍질 벗기기
물고기 시계
유성 1 시간의 향기
유성 2 명당
유성 3 아름다운 깃발
잃어버린 열쇠
매 한가지
꽃신
타조
적도赤道
물새 우는 강 언덕
거친 소리
비밀통로

제3부 망초꽃 그늘에 무슨 일이
옥님 언니 이야기
그곳에 가고 싶다
섬, 1972
뽀데미장원
망초꽃 그늘에 무슨 일이
가시나무새 먼 집
꼭 닮았어요
이 동네 이야기
병실 이야기
굳은살
1막 1장
공범

제4부 뿔을 잘라 다오
어머니의 그림자
애인
꽃보다 가벼운
어머니의 기억 아버지의 나라
월정역 관광 아버지의 나라
얼굴 아버지의 나라
분홍 구슬
빨랫비누 냄새와 아일랜드 키스향
겨울나무에 접붙이기
뿔을 잘라 다오
초경 이후
겨울 끝 풍경
더스틴 호프만, 그가
항아리 속 이야기
중천에 묵묵한 핏덩이
얼마나 시적이야
용서하지 마
노을 댕기

해설 - 일상속의 존재론적 탐색과 성찰-김수복(시인, 단국대교수)

청태 낀 바위에 미끄러져
금이 간 낡은 시계 큰물에 놓아주고
어망에 걸린
기울어진 달의 남은 조각과
희미한 별 몇 개의 거두어 돌아가는
낚시꾼의 손목에
흔들리는 금빛 지느러미,
멈춘 시계바늘을 돌린다

김혜원 '물고기 시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