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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화공간 1 조선초기 - 태평성세와 그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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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21세기 문화의 시대, 문화 강국 조선의 생생한 문화 창조의 대서사시

    이언적(李彦迪)의 독락당(獨樂堂)이나 정경세(鄭經世)의 청간정(聽澗亭)처럼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도 있고, 이주(李?)가 유배살이를 하던 진도의 금골산이나 이황(李滉)이 우리 집 산[吾家山]이라 한 청량산은 변함없이 서 있다. 그러나 인왕산 옥류동처럼 지금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이 더욱 많다. 모두가 조선의 문화가 잉태하여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이 책은 문학, 사상, 예술, 풍류를 아우른 조선의 사람과 땅, 그 시대의 문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의 문화 공간이 매혹적인 이유는 그곳의 주인이었던 조선의 문화인이 있기 때문이다. 개국, 태평성대, 유배, 은둔, 강학 등 새로운 도전과 좌절, 꿈과 절망의 소용돌이를 살며 ‘조선’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만들어낸 조선의 사대부들. 따라서 이 책은 조선의 문화인들의 생애에 대한 특별하고 생생한 대서사시가 된다. 조선의 개국에서부터 망국으로 치닫는 19세기까지 조선 500년을 풍미한 조선의 사대부 87인의 전기적 초상이 아름다운 문화 공간을 무대로 하여 펼쳐진다.

    《조선의 문화 공간》은 조선초기에서 후기까지 시대 순으로 모두 4책으로 구성하였다. 옛사람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시대에 따라 사랑한 땅과 그곳에서 살아간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책을 나누고 처지에 따라 다시 장을 나누었다.
    1책 ‘조선초기-태평성세와 그 균열’은 조선 개국 후 태평을 구가하던 시절에서부터 사화로 인하여 사림이 유배를 떠나는 시기까지를 다룬다. 도성에 끌어들인 산수와 한강변의 누정을 살피고, 유배지에 이어 강학의 공간 독서당을 살핀다. 2책 ‘조선중기-귀거래와 안분’은 선조대에서 광해군대까지 우리 문화사에서 중요한 인물과 관련한 공간을 다루었다. 사림정치가 본격화되는 시기로 자의와 타의에 의한 귀거래, 그리고 그곳에서 수양에 힘쓰거나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3책 ‘조선중기-나아감과 물러남’은 광해군과 인조대에 영욕의 세월을 산 문인과 이후 17세기 사상계와 문화계를 호령한 명인들이 살던 땅을 펼쳐 보인다. 4책 ‘조선후기-내가 좋아 사는 삶’은 18-19세기 문학과 학문, 예술을 빛낸 문인들의 이야기다. 벌열가의 화려한 원림에서, 궁벽한 땅에서 예술혼을 사른 사람들이 대비되는 가운데 세상을 구하고자 노력한 실학자들이 돋보인다.

    저자 이종묵(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은 옛것을 좋아하여 우리나라 한문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특히 고서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장서각과 규장각이 있는 학교에서 근무한 관계로 고서와의 인연이 더욱 깊다. 이 책은 저자가 아름다운 우리 땅에 대한 기억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10여년 간 작업한 결실이다. “내가 좋아 쓴 글이지만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조선의 문화 공간》이란 책으로 펴낸다. 옛사람이 살던 땅을 통하여 조선시대 문화사를 보이고 싶다”고 하면서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 책이 옛사람들의 와유(臥遊 누워서 유람하며 노닌다)처럼 마음에 상상의 정원을 꾸미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문학, 사상, 예술, 풍류를 아우른 조선의 사람과 땅, 그 시대의 문화 공간에 대한 이야기


    16세기의 이름난 문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집은 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분천(汾川) 강가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이황(李滉)이 우리집 산이라 한 청량산(淸凉山)이 바라다 보인다. 그런데 그 집 앞에 소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시야를 가려 청량산이 온전하게 보이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소나무를 베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현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소나무가 있는 곳에 작은 집을 짓고 그곳에서 청량산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망령된 생각을 막는다는 뜻으로 두망대(杜妄臺)라 이름하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산과 물에 어울려 서 있는 아담한 집과 누정, 그리고 사찰 등 조선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도처의 문화 공간에는 훨씬 더 깊고 넓으며 매혹적인 문학, 사상, 예술, 풍류가 살아 숨신다. 아름다운 땅에 그보다 더욱 아름다운 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태평성세와 그 균열’, ‘귀거래와 안분’, ‘나아감과 물러남’, ‘내가 좋아 사는 삶’ 등의 책별 부제가 연상하는 것처럼 《조선의 문화 공간》은 시대와 환경, 처지에 따라 무척 다양한 삶의 방식을 생생한 서사시로 격조있는 풍경화로 담아낸다. 태평을 구가하던 시절, 도성 안이나 근기의 명가들은 원림과 가산을 경영하며 집안에 산수를 끌어들였다. 물을 즐기고자 강가에 따로 정자를 지어 시회를 즐겼다. 귀거래 한 사대부는 강호로 물러나 사는 맛, 안분하는 삶을 글로 지어 세상에 고향을 이름나게 하였다. 시대 격랑을 만나 유배지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조차 그들의 글로 인해 황량한 땅이 빛나게 되었다. 어떤 선비들은 벼슬길에 나가서 출세하기보다는 물러나 강학과 절조, 이념의 공간을 만들었다. 산과 물은 근엄한 유학자들에게 수양의 공간이지만, 예술과 풍류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산과 물을 배경으로 시와 노래를 지어 부르고 그림을 그렸다.
    조선의 문인들은 대개 정치가이면서 사상가이고, 또 시인이기도 하였다. 때로는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고, 때로는 은둔하며 심신을 수양하고 강학에 몰두하며 이념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더욱이 이들의 문학적 재능은 뛰어나 그들의 붓끝으로 조선의 산하가 그려질 수 있었다. 《조선의 문화 공간》은 문학, 사상, 예술, 풍류를 아우른 조선의 사람과 땅, 그 시대의 문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풍미한 조선 사대부 87인의 생애를 읽는다

    《조선의 문화 공간》은 개국, 태평성대, 유배, 은둔, 강학 등 새로운 도전과 좌절, 꿈과 절망의 소용돌이를 살며 ‘조선’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만들어낸 조선의 사대부, 조선의 문화인들의 생애에 대한 특별하고 생생한 대서사시이다. 16세기 같은 시기를 살았으면서도 모두 조선의 대표 선비로 꼽히는 조식(曺植), 이황(李滉), 이이(李珥), 서경덕(徐敬德). 평생 학문을 익히던 지리산, 청량산, 고산, 화담은 조선 학문을 상징하는 성지이다. 이들보다 조금 앞선 시기를 살았던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김안국(金安國) 등의 젊은 선비들은 강학과 절조로 후세에 영원히 기려진다. 18세기의 주인공은 실학자들이다.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정약용(丁若鏞), 서유구(徐有?)는 각자의 처지에서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불우했지만 살아서 명예를 누린 자들보다 죽은 후에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개국에서부터 망국으로 치닫는 19세기까지 조선 500년을 풍미한 조선의 사대부 87인의 전기적 초상이 그들이 마련한 아름다운 문화공간을 무대로 하여 저자의 깊고 세심한 문체를 통해 펼쳐진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인물 평전이 출판되었지만, 한 시대에 같이 살았던 여러 인물에 대해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양하게 평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에서는 87인의 주인공과 함께 각자의 환경과 처지에서 교우하고 살아간 1,872인이 함께 소개된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깊고 넓으며 매혹적인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가, 조선의 문화인을 만나러 간다.

    아름다운 사람과 글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조선의 문화 공간

    산수의 아름다움은 절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있어 산과 물은 이름이 나고 글이 있어 더욱 아름다워진다. 이름난 사람과 아름다운 글이 있으면 산과 물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심지어 글은 이미 사라진 산과 물, 공간을 살릴 수도 있다. 조선시대 서울의 대표적인 유상공간의 하나였던 곳이 인왕산 자락의 옥류동(玉流洞)이다. 그곳에서 살던 張混은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니,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나는 법이라 하였다. 지금 인왕산 자락의 옥류동은 주택가로 변해 현대인의 기억에는 그곳에 아름다운 개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혼이 예언하였듯이 옥류동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그의 글을 통하여 지금도 200여 년 전 옥류동의 아름다움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장혼은 아름다움이 절로 존재하지 않고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고 하였으니, 사람이 남긴 아름다운 글이 있기에 옥류동이 당시에 드러날 수 있었고 지금에도 상상 속에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장혼의 글을 알고 옥류동이 그처럼 아름다웠다는 것을 기억하는 한 옥류동은 살아날 수 있다. 이는 마치 아름다운 청계천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아스팔트 아래에 있던 청계천이 살아나게 되었던 것과 같다.

    와유(臥遊)하며 마음에 상상의 정원을 꾸미자

    진정한 관광은 문명을 보는 것이다. 문명은 옛사람이 살던 집이나 노닐던 산수에 있는 것은 아니다. 땅과 집에 의미를 부여한 글을 함께 읽어야 문명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땅에 가서 옛글을 나란히 읽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조선의 문화 공간》을 가지고 방안에서 글을 읽고 누워서 노닐 수도 있다. 이를 옛사람들은 와유라 하였다. 아름다운 그림을 걸어놓고 대리만족을 한다는 말에서 유래하는데 옛글을 읽으면서 산수 유람을 대신하였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와유를 위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도시에서 물러나 아름다운 산수 자연에서 살고자 한다. 그러나 늘 산수간에 살 수는 없기에 부지런히 대자연을 찾아가 산에 오르고 물에 임하는 것이다. 현대인보다야 옛사람이 이름난 산과 물을 찾을 기회가 잦았겠지만, 그들 역시 대부분 벼슬에 매인 신세인지라 늘 산속에 들어가 있거나 물가에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산수를 찾아 한때의 흥겨움을 누리고, 그 추억이 사라질까 염려하여 시로 그 흥감을 표현하고 글로 자세한 여정을 기록하였다. 현대인들이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하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것도, 옛 사람들의 기행시와 기행문이 문명의 도구로 탈바꿈한 결과이다. 그러나 직접 대자연으로 달려가 산과 물을 즐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마음 뿐, 시간의 여유를 낼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늘 전원주택을 구하여 뜰에 꽃나무를 심고 텃밭에 채소를 키우는 생활을 꿈꾸면서도, 생활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어 아파트에 살면서 화초를 키우는 것으로 만족한다. 마찬가지로 선인들도 이렇게 대자연의 일부를 자신의 집 안으로 끌어들여 즐겼다.

    1책 조선초기 - 태평성세와 그 균열

    조선 개국 후 태평을 구가하던 시절에서부터 사화로 인하여 사림이 유배를 떠나는 시기까지를 다룬다. 대략 명종 무렵까지에 해당한다. ‘태평성세와 그 균열’을 부제로 한 이 책의 이야기는, 먼저 조선시대 도성을 두른 사산 자락에서 시작한다. 태성성세를 누린 대부분의 이름난 문인들은 사산 아래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았다. 인왕산의 앞뒤에 살았던 안평대군(安平大君)과 성임(成任)이 자신과 벗들의 글로 인왕산을 아름답게 꾸몄고, 백악은 맑은 선비 성수침(成守琛)이 있어 세상에 이름이 드리워졌다. 또 낙산에는 신광한(申光漢), 남산에는 김안로(金安老)가 살며 글을 지어 그 주인이 되었다.
    다음으로 한양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한강이다. 조선 초기부터 풍광이 아름다운 한강에는 이름난 문인들의 정자가 들어섰다. 도성을 두르고 있는 산 아래 살면서도, 물을 즐기고자 따로 정자를 지어 태평세월을 즐겼던 것이다. 한명회(韓明澮)의 압구정(狎鷗亭)과 월산대군(月山大君)의 망원정(望遠亭)이 시회의 공간으로 이름이 났다. 조선 초기 한강에서 가장 이름난 시회의 공간으로 잠두봉(蠶頭峯)을 들 수 있는데, 그곳에서 박은(朴誾)과 이행(李荇)이 시회를 즐겨 크게 빛이 났다. 또 부귀영화를 누린 후 한강이 좋아서 아예 강가에 집을 짓고 산 사람들도 있었으니 양성지(梁誠之)와 강희맹(姜希孟)이 그러하였다.
    조선 개국 이후 100여년 시대와 임금을 잘 만난 문인들은 부귀영화와 함께 아름다운 산과 아름다운 강까지 함께 소유하여 태평성세를 누렸지만, 16세기로 접어들어 태평성세는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게 된다. 연산군의 광기로 태평성세를 이어보겠다던 문인들이 도성의 집을 떠나 유배지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부친의 죄에 연좌되어 불우한 삶을 살았던 유방선(柳方善), 무오사화를 당하여 남쪽 땅 끝으로 유배된 조위(曺偉)와 이주(李?), 갑자사화에 처음으로 위리안치의 형벌을 받게 된 이행(李荇)과 기준(奇遵), 하지만 이들의 글에 의하여 황량한 땅이 빛이 나게 되었다.
    연산군의 폭정이 종식되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태평성세를 다시 회복하려 하여 뜻이 곧은 선비들을 기용하였지만,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딪쳐 젊은 선비들은 죽음을 당하거나 먼 땅으로 내쳐지게 되었다. 기득권층이 관료출신의 문인이라면 젊은 선비들은 학자 출신 문인들로 정여창(鄭汝昌)과 김굉필(金宏弼)의 뜻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벼슬길에 나가서 출세를 하기보다는 물러나 마음을 수양하려 하였다. 조광조(趙光祖), 이자(李?), 김안국(金安國), 김정국(金正國) 등이 강학을 하고 절조를 가다듬던 공간은 그들의 글로 후세에 영원히 기려지게 되었다. 조선전기 국가적으로 학문과 문학을 연마하던 독서당(讀書堂)도 함께 다룬다.

    2책 조선중기 - 귀거래와 안분

    선조대에서 광해군대까지 조선 문화사에서 중요한 인물과 관련한 공간을 다룬다. 사림정치가 본격화되는 시기로 자의와 타의에 의한 귀거래, 그리고 그곳에서 수양에 힘쓰거나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귀거래는 물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대부가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은 아니다. 호미와 쟁기 대신 붓을 잡고 자신이 사랑한 고향땅과 그곳에서의 안분자적하는 삶을 그려내었다. 그리하여 그 고향땅은 세상에 널리 이름이 나게 된다. 이현보(李賢輔)의 분천(汾川), 송순(宋淳)의 면앙정(?仰亭), 양사언(楊士彦)의 감호(鑑湖), 박순(朴淳)의 창옥병(蒼玉屛), 그리고 임훈(林薰)과 노진(盧?)이 물러나 살던 안의삼동(安義三洞)이 그러한 곳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선비를 꼽자면, 서경덕(徐敬德), 이언적(李彦迪), 조식(曺植), 이황(李滉), 이이(李珥)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화담(花潭)은 서경덕의 호이면서 그가 평생 학문을 익히던 땅이요, 독락당(獨樂堂)은 이언적이 수양을 하던 집이다. 지리산은 태산벽립(泰山壁立)의 기상을 자랑하는 조식의 상징이 되었고, 청량산은 온유(溫柔)한 이황의 덕을 닮은 산이다. 해주 석담(石潭)의 고산(孤山)은 이이가 주자(朱子)처럼 살고자 한 땅이다. 뛰어난 선비들을 상징하는 곳인지라, 임금조차 이곳의 그림을 구하여 그 뜻을 배우고자 하였으니, 조선시대 학문의 성지라 할 만하다.
    산과 물은 근엄한 유학자에게 강학과 수양의 공간이었지만, 예술과 풍류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산과 물을 배경으로 시와 노래를 지어 부르고 그림을 그렸다. 송인(宋寅)은 한강 동호에 수월정(水月亭)을 지었고, 동호 건너에 있는 봉은사(奉銀寺)는 조선을 대표하는 시인 최경창(崔慶昌), 백광훈(白光勳), 이달(李達) 등 세칭 삼당시인(三唐詩人)의 낭만적인 시가 제작된 공간이다. 이정(李霆)은 금강에 달이 먼저 뜬다는 뜻의 월선정(月先亭)을 짓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되는 권필(權?)은 마포와 강화도를 오가면서 주옥같은 시를 지었다. 조선의 문제아 허균(許筠)은 부안에서 혁명을 꿈꾸고 사랑을 속삭였다.
    조선 개국 후 200여 년 전란이 없는 태평의 세월 속에 길러내 인재가 선조 연간에 크게 활약하게 된다. 시조와 가사로 유명한 송순(宋淳), 정철(鄭澈), 이황의 제자 권호문(權好文)은 <독락팔곡(獨樂八曲)> 등을 지어 시가사를 빛내었다. 이황의 제자로 남인(南人)의 영수가 된 유성룡(柳成龍)과 서경덕의 학문을 계승하여 북인(北人)의 영수가 된 이산해(李山海)는 가장 빼어난 정치가로 꼽을 수 있다. 또한 이이의 제자 김장생(金長生)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3책 조선중기 - 나아감과 물러남

    광해군과 인조대에 영욕의 세월을 산 문인과 이후 17세기 사상계와 문화계를 호령한 명인들이 살던 땅을 다룬다. 임진왜란 후, 정치는 어수선하지만 한양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나갔다. 도성 안에 명가들의 집이 속속 들어섰다. 이항복(李恒福)은 장인 권율(權慄)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인왕산 필운대(弼雲臺)에 집을 꾸몄으며, 김상용(金尙容)은 그 곁 청풍계(靑楓溪)에 저택을 마련하였다. 이안눌(李安訥)은 외가의 재산을 바탕으로 하여 남산 아래 대저택을 소유하였으며, 김육(金堉)도 스스로 재력을 마련하여 남산 밑에 큰 집을 지었다. 천민 출신의 유희경(劉希慶) 역시 천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창덕궁 옆에 운치 있는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러나 도성에 아름다운 집이 있었지만 그곳에서 행복한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대북파가 정권을 잡은 광해군 시절 서인의 핵심적인 인물들은 암흑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항복은 북청으로 유배가서 죽었고, 김상용은 지방관으로 떠돌았다. 정경세(鄭經世)는 고향땅 상주로 내려가 바보처럼 살고자 하였고, 신흠(申欽)은 김포로 방축되어 가현산(歌絃山) 아래 집을 짓고 살면서 맑은 운치를 즐겼다. 김상헌(金尙憲)은 양주의 미호(渼湖)로 물러나 석실(石室)을 강학의 공간으로 삼아 학문에 힘을 쏟았고, 이식(李植)은 지평으로 가서 숨어사는 집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살았다. 장유(張維)는 안산의 고향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세월을 보내었다.
    권력에서 소외된 서인은 패륜과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워 광해군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성의 대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세상은 더욱 혼란해졌다.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이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났다. 서인들이 내세운 명은 망하고 오랑캐라 욕하던 청이 들어섰다. 명분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어수선한 세상을 등지고 심신을 수양하고 강학에 몰두함으로써 절개를 지키고자 하였다. 채득기(蔡得沂)는 자천대(自天臺)에서, 송준길(宋浚吉)은 회덕(懷德)의 송촌(宋村)에서 은거하였다. 조선후기 사상계를 호령한 송시열(宋時烈)은 화양동(華陽洞)에 머물면서 이념을 실천하고자 하였고 제자 권상하(權尙夏)는 황강(黃江)에 한수재(寒水齋)를 짓고 살면서 스승의 유업을 받들었다. 김득신(金得臣)은 우둔하지만 억만 번 책을 읽어 대가의 반열에 올랐으니 세상의 귀감이 될 만하다.
    학자의 땅은 세습되지 않는다. 특히 먼 삼남(三南)으로 내려간 사람들의 후예는 다시 벼슬길에 올라 도성으로 올라오기 쉽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사람들은 한양에서 멀지 않은 땅을 골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하였다. 이정구(李廷龜)의 아들은 양주의 영지동(靈芝洞)을 골라 대를 이어 살 터전을 마련하였고, 남용익(南龍翼)과 박세당(朴世堂)은 동서의 수락산을 나누어 차지하였다. 남구만(南九萬)은 용인의 비파담(琵琶潭)에 집을 장만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김수증(金壽增)은 화천의 곡운(谷雲)을 발견하였다.

    4책 조선후기 - 내가 좋아 사는 삶

    조선후기에 해당하는 18-19세기 문학과 학문, 예술을 빛낸 문인들의 이야기다. 18세기 이후 조선 사회와 문화는 서서히 근대로 이행하게 된다. 중세의 문인은 대개 정치가이면서 사상가이고, 또 시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획일적인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뜻에 맞는 삶을 지향하는 문인들이 등장하게 된다.
    어떤 이는 산수가 좋아 누대에 걸친 명문가의 명예를 뒤로 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산다. 당대 문벌 김창흡(金昌翕)은 금강산과 철원, 양평 등 산수가 아름다운 곳을 떠돌면서 살았다. 판서를 역임한 이덕수(李德壽)는 고향인 양평과 여주 등 아름다운 물이 있는 곳에 살고자 하였다. 물론 아름다운 땅에 산 것만으로도 부러움을 살 만하지만 더욱이 이들의 문학적 재능은 당대 최고였기에 그들의 붓끝에 조선의 산하가 그려질 수 있었다.
    벌열가들은 도성 근교에 화려한 원림을 꾸몄다. 자연을 자신의 대저택에 끌어들여 살고자 한 것이다. 부마였던 오태주(吳泰周)의 후손들은 종암동에 저택을 마련하여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기능을 하였고, 채제공(蔡濟恭)은 오늘날 번동에 집을 짓고 꽃과 물, 풍류를 즐겼다.
    진정한 선비는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홍대용(洪大容)은 목천에 자신의 과학정신을 담은 농수각(籠水閣)을 세우고 새로운 학문을 열고자 하였다. 박지원(朴趾源)은 현감으로 나간 안의에서 관아를 보수하면서 중국 여행에서 깨달은 실학 정신을 구현하려 하였다. 물론 이들 실학자의 마음이 실용으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어서 맑은 풍류도 함께 누렸다. 오랜 세월 강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거대한 학술체계를 수립한 정약용(丁若鏞)이 누린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땅과 그곳을 배경으로 한 글을 보고 읽을 때, 조선후기 실학적인 저술이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서 배태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명응(徐命膺)에서 서유구(徐有?)의 거대한 저술이 이루어진 장단과 서울 번동 일대의 공간에 대한 소개도 이러한 뜻을 담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정치적으로 좌절을 겪거나 비천한 신분을 타고나서 자신들의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또 개성적인 성격 때문에 스스로 유폐된 삶을 살아간 예도 많아진다. 정쟁에서 패배하여 절도의 섬에 유배되었던 이광사(李匡師), 스스로 뜻을 펼 수 없다고 여겨 원주에서 횡성으로 점점 깊은 산골로 들어가 스스로를 설화의 주인공이 되게 한 안석경(安錫敬), 떳떳한 양반 신분이 아님에도 김정희(金正喜) 등과 절친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절해고도에 유배되었던 조희룡(趙凞龍), 이들은 모두 불우했지만 영혼이 아름다워 궁벽한 땅에서도 예술혼을 살라 살아서 명예를 누린 자들보다 죽어서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목차

    1부 도성 안에 끌어들인 산수
    ㆍ인왕산 무계정사와 안평대군의 꿈 / ㆍ성임이 누워서 노닐던 인왕산의 석가산 / ㆍ솔바람 소리가 맑은 성수침의 청송당 / ㆍ누항의 삶과 김안로의 희락당 /ㆍ낙산의 기재에서 학을 키운 신광한

    2부 태평시대 강호로 물러나 사는 맛

    ㆍ통진 대포동 양성지의 별서 /ㆍ갈매기를 벗한 한명회의 압구정 / ㆍ농부와 함께한 강희맹의 금양 별서 / ㆍ월산대군의 풍류와 서호의 망원정 / ㆍ한강 최고의 명승지 잠두봉과 박은의 우정

    3부 실의의 땅 안분의 삶

    ㆍ원주 법천사의 강학과 유방선 / ㆍ조위와 임청대에서의 안분 / ㆍ진도 금골산의 석굴과 이주 / ㆍ유배의 땅 거제의 소요동과 이행 / ㆍ온성의 위리안치와 기준

    4부 강학과 절조의 공간

    ㆍ하동 악양정에 깃든 정여창의 절조 / ㆍ용인 사은정과 조광조의 꿈 / ㆍ달천 강물 위에 띄운 이자의 집 / ㆍ김안국과 은일의 공간 이호 / ㆍ고양 육무당의 교육자 김정국 /ㆍ사가독서의 공간 독서당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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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태어나 살다가, 서울로 유학 와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계산 아래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관악산 아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옛글을 읽노라면 도심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도 아름다운 옛풍광을 즐길 수 있다. 남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다른 세상을 옛글을 읽음으로 차지할 수 있으니, 옛글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세상을 호령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옛글이 지닌 힘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하루라도 글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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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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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뿌리 깊은 나무], [중앙일보] 사진부 기자를 거쳐 신구대학 정보미디어학부 사진영상미디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일본 및 아시아권에서 사진을 요청해 올 정도로 방대한 양의 한국사 사진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중·일의 역사 현장을 두루 섭렵하여 역사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춘 데다 발 빠른 취재력을 바탕으로 누구도 찍지 못한 역사 사진을 찍은 사진가로 평가받았다. 유작 사진집으로 [노마드-변화하는 1980년대 한국인 의 삶에 대한 작은 기록](201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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