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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 : 전 국가의 병영화 총력 안보 앞세운 독재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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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인도차이나 사태와 중동 건설 특수,
    유신 체제를 구해준 뜻밖의 구원자

    유신 체제는 1972년부터 1979년까지 7년 동안 존속했다. 이 기간 동안 유신 체제를 존속하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연이어 나타나자 박정희 정권은 민청학련·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 사법 살인을 저질렀고, 갖은 저항 운동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유신 체제를 지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75년 사법 살인이 일어난 후 유신 체제는 4년이나 더 존속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박정희 1인 강권 체제를 연장시켜준 것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계자 등 8명을 사법 살인하고 고려대에 긴급 조치 7호를 발동하는 등의 초강경 조치가 아니었다. 두 구원자가 해외에서 나타나 1인 강권 체제를 연장시켜줬다. 그것은 인도차이나 사태(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공산화)와 중동 건설 특수였다. 전자는 박정희가 열망하던 이른바 총력 안보 체제 구축에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고, 후자는 1976, 1977년의 경제 호황을 가져왔다.
    특히 1975년 인도차이나 사태가 일어나자 박정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총력 안보 체제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4대 전시 입법과 학도호국단, 반상회 등을 통해 기민하게 학원의 병영화뿐 아니라 전 사회·국가의 병영화를 이뤄냈다. 그와 함께 긴급 조치 9호를 선포해 국민들의 입을 철저히 봉쇄했고, 5·21 영수 회담 등 야당 회유·분열 공작을 통해 야당을 무력화했다. 또한 끊임없는 남침 주장, 전 국민적인 간첩 신고 운동, 이승복 동상의 전국화 등 전체주의 방식의 반공 운동을 대대적으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전개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유신 정권은 국민들의 입을 통제했고,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총력 안보 체제, 국가의 병영화와 경제 호황으로 반유신 민주화 운동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권은 유신 체제 시기 박정희 정권의 ‘전 국가의 병영화’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 박정희는 유신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포항에서 석유가 나왔다’와 같은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내몰면서 공포감을 조성했고, 긴급 조치 9호를 발동함으로써 국민들을 일상적으로 통제했다. 또한 반공 운동과 간첩 잡기 운동을 벌이면서 국민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총력 안보를 내세운 독재의 광기를 맘껏 내세웠던 시기였던 것이다.

    출판사 서평

    애인도, 친척도, 이웃도
    간첩인지 의심하라는 무서운 세상


    휴일 없는 총력 안보 궐기 대회, 4대 전시 입법과 학도호국단, 반상회, 극단적인 반공 운동, 긴급 조치 9호 발동, 야당의 무력화, 3차에 걸친 200여 곡의 금지곡 선정과 대마초 사건, 두 차례에 걸친 재일 교포 유학생의 간첩단 사건...... 국민들의 입을 철저히 봉쇄한 전 사회, 국가의 병영화

    숨 막힐 듯한 전 사회·국가 병영화

    1975년 4월에 들어와 인도차이나 3국 상황은 결정적인 국면에 들어섰다. 4월 17일 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즈가 프놈펜에 들어갔고, 4월 30일에는 베트남의 사이공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함락됐으며, 라오스도 파테트라오가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세 나라가 공산화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즈음에 연이어 땅굴이 발견된다.
    박정희은 인도차이나 사태를 자신의 체제 유지에 적극 이용하게 된다. 박정희는 1975년 북한이 "금년에 무모한 불장난을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내용을 담은 특별 담화를 발표한다. 인도차이나가 공산화가 되었으니 한국도 공산화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조성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엄청난 규모의 안보 궐기 대회가 열렸다. 유신 정권은 이 궐기 대회를 뒤에서 조종하면서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용했다. 특히 반유신 민주화 운동을 하는 저항 세력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자들’인 ‘비국민’으로 만들어 이들을 일반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격려시키려고 했다. 안보 총궐기 대회 이면에는 위기에 처한 국가를 대통령이 총력 안보로 이끌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곧 안보 궐기 대회는 박정희의 1인 강권 체제를 지지하는 시위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통해 박정희 정권은 숨 막힐 듯한 전 사회·국가 병영화를 만들어갔다. 1975년 5월 긴급 조치 9호가 선포되고, 그런 속에서 4대 전시 입법(민방위법, 사회안전법, 방위세법, 교육 관계법 개정 법안)이 이뤄진다. 민방위법은 민방위대를 구성하게 하는 법으로 17세 이상 50세 이하의 남성 중에서 군, 경찰, 향토 예비군, 학도호국단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심신에 결함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해서 지역, 직장 단위로 민방위대를 창설했다. 민방위법이 생겨남으로써 1968년 향토 예비군 창설, 1975년 학도호국단 부활과 더불어 온 나라의 병영화가 이뤄진 것 아니냐고 얘기하기도 한다.
    사회안전법은 인권 침해 문제가 심각한 법인데,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출옥 후 보안 처분을 받도록 한 것이다. 2년 단위로 계속 보안 처분을 할 수 있게 돼 있었는데, 그중 문제가 심각하다고 공안 당국이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보안 감호 처분을 할 수 있었다. 방위세법은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며 또 하나의 세금을 부과한 세법이며, 이 법으로 국민들의 세금 부담이 적지 않게 증가했다. 교육 관계법 개정은 대학에서 반유신 민주화 운동과 관계있는 이른바 문제 교수들을 축출하기 위해서 집어넣은 것이었다.

    반공 운동과 간첩 잡기 운동

    인도차이나 사태 이후 박정희는 총력 안보 체제 다지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총력 안보 체제를 다지는 데 반공 운동처럼 유효한 것은 없었다. 1975년부터 굉장히 강화된 반공 운동은 전체주의적인 방식으로 전개됐다. 이승복을 앞세워 반공 교육을 강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승복 동상 세우기, 이승복 추모제, 장학 사업, 영화 제작, 이승복 기념 웅변대회, 이승복을 생각하는 글짓기 대회, 달리기 대회 등을 연 것이다. 반상회를 활용하기도 하고 대한뉴스, 영화, 드라마를 활용하기도 했다. 곧 유신 권력은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거의 모든 것을 반공 교육의 장으로 활용했다.
    또한 간첩을 잡자는 운동이 그야말로 범국민 운동 벌어지듯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온 국민을 감시하라는 것은 불온한 사람을 감시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부질없는 유언비어는 국가 안보를 해친다", "잘살기 위해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자" 같은 포스터도 여기저기 나붙었다. 유신 체제에서 ‘부질없는’ 얘기를 하고 다니는, ‘정화’되지 않은, 정부에 복종하지 않는 수상한 사람, 불온한 사람은 간첩으로 몰리거나 간첩과 동일시됐다. 이로써 애인도, 친척도, 이웃도 간첩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회가 조성됐고, 이는 한국인에게 ‘반공주의’가 내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긴급 조치 9호, 전 국민을 감시·통제하다

    1975년 총력 안보 궐기 대회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인 5월 13일, 박정희는 긴급 조치 9호를 선포했다. 긴급 조치 9호는 여러 면에서 그 이전 긴급 조치와 구별된다. 첫 번째, 총화 단결로 유신 체제를 지지한다는 운동이 거세게 벌어질 때 선포됐다. 두 번째, 1호나 4호와 다르게 유신 헌법 반대 운동만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 유신 체제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고 불평불만을 얘기해도 걸리게 돼 있었다. 그뿐 아니라 삶이 고달파서 불평해도 유언비어로 몰려 걸려들 수 있었다. 세 번째, 긴급 조치 9호는 반유신 민주화 운동 세력을 일반 사람들로부터 격리하는 데 중점을 뒀다. 유신 반대 저항 세력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쉽게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긴급 조치 9호는 박정희 1인 권력 체제를 수호하는 데 결정판으로, 다른 긴급 조치와 다르게 유신 체제가 붕괴할 때까지 장기간 지속됐다.

    체제 유지 위해 간첩단 사건 조작

    이런 분위기에서 1975년 11월 22일 유신 권력은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을 일망타진해 21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발표하는 등 여러 간첩단 사건이 터진다. 그러나 이 시기 간첩단 사건은 후에 대부분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1973년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1974년 문인 간첩단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재일 교포 유학생들, 납북 어부 등이 간첩 조작에 많이 이용되었다.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고문이 가해지고, 심지어 집단 성폭행도 이뤄졌다. "1970년대에 많은 재일 한국인 청년들, 똑똑하다는 젊은 사람들이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유달리 큰 기대, 희망을 가지고 공부를 하러 왔다. 얼마나 벅찬 마음으로 조국을 찾아왔겠나. 일본에서는 사귈 수 없는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다는 기대, 그러면서 공부도 열심히 해서 민족을 위해 정말 뜻깊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큰 뜻을 품고 오지 않았겠나. 그런데 이 사람들이 대거 간첩으로 체포돼버렸다. 그래서 사형 선고도 받고 지독한 고문도 당했다. 그때 이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겠나."

    온 국민을 속인 ‘포항 석유설’

    1975년에는 인도차이나 사태와 관련해 총력 안보 체제가 아주 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면, 1976년에는 박정희가 포항에서 석유가 나왔다고 얘기한 것이 유신 체제를 굳건히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발표에 상당히 오랫동안 온 국민이 들뜰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유신 반대 운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박정희는 1976년 연두 기자 회견에서 "포항에서 석유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건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석유가 나오지 않은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기자 회견장에서 석유가 나왔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박정희의 말을 듣고 국민들은 ‘우리도 이제 잘살게 됐다’고 큰 희망을 품게 됐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서중석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1975년 인도차이나 사태를 계기로 일어난 총력 안보 운동을 통해 박 대통령은 유신 체제 안정이라는 엄청난 효과를 거두지 않았나. 포항 석유에 대한 발언도 그러한 역할을 했다. 1975년은 인도차이나 사태로 유신 체제가 평온하게 됐고 1976년은 이 석유 발언으로 평온하지 않았느냐고 볼 수 있다. 그 정도로 포항 석유 발언은 국민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유신 체제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도록 했다. 그와 함께 유신 체제에 대한 비판이나 유신 반대 움직임을 무력하게 하고 잠재우는 데 대단히 위력적이었다."

    목차

    책머리에
    연표

    첫 번째 마당:
    흔들리는 유신 체제를 구원한 건
    인도차이나 사태와 중동 건설 특수였다

    두 번째 마당:
    4대 전시 입법, 학도호국단, 반상회...
    총력 안보 내세워 병영·감시 사회 구축

    세 번째 마당:
    이승복의 비극 활용해
    아이들에게 증오심을 불어넣다니...

    네 번째 마당:
    북한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심각한 후유증 남긴 극단적 반공 운동

    다섯 번째 마당:
    간특하게 집대성한 긴급 조치 9호,
    민초들도 주요 표적이었다

    여섯 번째 마당:
    박정희 라이벌 장준하는 왜
    의문의 죽음을 맞아야 했나

    일곱 번째 마당:
    재야의 반유신 운동 중 최대 규모였던
    3·1 민주 구국 선언 사건

    여덟 번째 마당:
    박정희 거짓말에
    깜박 속은 김영삼

    아홉 번째 마당:
    김옥선 파동과
    들러리로 전락한 야당

    열 번째 마당:
    죽이고 고문해서 조작 간첩 양산,
    만만한 표적이 된 재일 동포의 비극

    열한 번째 마당:
    조국 찾은 재일 교포 짓밟은
    모국 유학생 간첩단 사건

    열두 번째 마당:
    애인·친척·이웃 할 것 없이 전 국민을
    간첩으로 서로 의심케 한 유신 정권

    열세 번째 마당:
    석유 나와라 뚝딱?
    유신 독재 다진 ‘포항 석유’ 거짓말

    열네 번째 마당:
    백지로 끝난 임시 행정 수도 건설 계획,
    남은 건 천정부지로 치솟은 땅값

    열다섯 번째:
    마당 전쟁 위기 부른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다시 잿더미로 변할 뻔했던 한반도

    열여섯 번째 마당: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을 통해 본
    한반도 전쟁 문제

    열일곱 번째 마당:
    박정희의 이중 잣대, 국민에겐 남침 공포
    외국 언론엔 "北, 쉽사리 전쟁 안 할 것"

    열여덟 번째 마당:
    식민 사관에 빠졌던 박정희
    왜 유신 체제에선 민족 주체성 강조했나

    열아홉 번째 마당:
    앞에선 이순신 성웅화하고
    뒤에선 기생 관광 부추기고

    스무 번째 마당:
    엄숙주의 내세워 대중문화 짓밟고
    환락의 장소에서 종말, 박정희 아이러니

    스물한 번째 마당:
    독재 권력과 저급한 기성 문화에 맞선
    대항 문화의 탄생

    나가는 말

    본문중에서

    "1975년 인도차이나 사태가 일어나자 박정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도 총력 안보 체제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4대 전시 입법과 학도호국단, 반상회 등을 통해 기민하게 학원의 병영화뿐 아니라 전 사회·국가의 병영화를 이뤄냈다. 그와 함께 긴급 조치 9호를 선포해 국민들의 입을 철저히 봉쇄했고, 5·21 영수 회담 등 야당 회유·분열 공작을 통해 야당을 무력화했다. 또한 끊임없는 남침 주장, 전국민적인 간첩 신고 운동, 이승복 동상의 전국화 등 전체주의 방식의 반공 운동을 대대적으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전개했다. 유신 권력은 그해 11월, 12월에 걸쳐 진행된 재일 교포 유학생 간첩 만들기로 1975년의 총력 안보 체제 구축, 반공 운동을 마무리했다."
    (/ p.21)

    "사실 한국인의 상당수는 수십 년간 몸에 밴 반공 대중 심리가 작용해 지금도 보수 정권이나 보수 세력이 내거는 안보 문제, 북한 카드 같은 것에 휩쓸린다고 할까, 일종의 조건 반사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나.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사안인데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점 때문에도 유신 체제에서 있었던 ‘안보 광풍’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 p.34)

    "1970년대에는 축구 대회를 할 때에도 북한하고 일본이 맞붙으면 많은 사람이 일본을 응원했다. 북한은 망해야 하는 존재로 교육받고 주입받은 결과 아니겠나. 전두환 정권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유신 말기에 문익환 목사가 써놓은 걸 보면, 인공위성이 궤도를 벗어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게 북한에 가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걸 보고 놀랐다는 내용이 있다. 한 여고생이 써놓은 걸 보면 ‘북한은 인간이 사는 곳 같지 않구나. 너희들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돼 있다. 이건 공산당만 미워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강렬한 반공 교육을 많이 받은 결과 북한 사람이 사람처럼 안 보이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 p.78)

    "예컨대 한때 북한이라고 불렀던 것을 다시 북괴로 바꿔 학교나 언론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정부에서는 두 가지를 병행해서 쓰고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유신 정권이 ‘남북 대화를 하지 말자’, 이렇게 얘기한 건 아니었다. 남북 대화는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반공 운동, 총력 안보가 유신 체제를 수호하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사용했다."
    (/ p.245)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기지촌 여성들을 양공주 혹은 양갈보라고 비하하고 민족의 타락한 딸로 취급했다. 그래서 이 여성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혼혈아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이승만 정권 때인 1950년대에도 그랬는데, 한국 사회에서 아주 지독하게 인종 차별을 당해서 한국에서 마음 편히 살 수가 없었다. 혼혈아 중에서 유명한 연예인이 된 경우가 간혹 있다고도 하지만, 심한 인종 차별과 편견 때문에 많은 경우 해외 입양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기지촌 여성들은 약물을 과다 복용하면서 자살 기도를 하거나 미군에 의해 린치당하면서 갖가지 악몽에 시달리는 생활을 해야 했다.
    (/ pp.289~290)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8.08.25~
    출생지 충청남도 논산시
    출간도서 44종
    판매수 9,216권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으며,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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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28종
    판매수 4,348권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현재 인문 기획 집단 문사철에 터를 잡고 역사와 사회에 관한 책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김기춘과 그의 시대》를 쓰고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를 기획·공저했으며 《세계를 바꾸는 파업》, 《근현대사 신문》(전 2권),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전 5권)를 함께 쓰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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