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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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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발행 : 2012년 11월 30일
  • 쪽수 : 191
  • ISBN : 978893202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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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00년대 시의 불온하고 매혹적인 얼룩!

한국시에 영원히 마르지 않을 생명샘의 가는 한줄기가 되어주며 옛것의 귀환이라는 사건을 때마다 일으키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R」 제4권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당시 독자를 충격했던 새로움을 보존하고 같은 강도의 미지의 새 새로움의 애채를 옛 새로움의 나무 위에 돋아나게 하는 시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제4권은 첫 출간된 지 7여 년 만에 선보이는 시인 김경주의 첫 번째 시집으로 김경주 시의 근원적 우주를 만나볼 수 있다.

‘이것은 기형(畸形)에 관한 얘기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연극과 미술과 영화의 문법을 넘나드는 다매체적 문법과 탈문법적인 언어의 범람, 낭만적 감수성의 극한에서 그것이 어떻게 폭발하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시간, 삶의 다른 계기, 삶의 다른 기미를 읽는 저자의 눈을 따라가며 시는 불가능성에 대한 추구, 즉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라는 것, 시는 결국 부재하는 언어에 대한 언어라는 것 등의 저자 시의 중요한 출발점을 엿볼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역동적 상상력과 무한한 체험의 반복Repetition,
몸 잃은 거룩한 말들의 부활Resurrection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일련번호 가운데 새로운 기호 ‘R’이 생겨났다. 한국 시의 수준과 다양성을 동시에 측량해 한국 시의 박물관이 되어온 문지시인선이지만 이 완전하고자 하는 노력 밖에서 일어나는 빗발치는 망망한 말의 유랑이 있었음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거룩한 유랑들이 출판 환경과 개인의 사정으로 독자들에게로 가는 통로가 차단당하는 사정이 있어,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이에 내부에 작은 여백을 열고 이 독립 행성들을 모시고자 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R’. 문지 시인선 번호 어깨 근처에 ‘리본’처럼 달린 R은 직접적으로는 복간reissue을 뜻하며 이 반복repetition이 곧 새로 태어나는 일이기에 부활resurrection의 뜻을 함축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일련번호 속에서 다문다문 R을 만날 때마다 그 안에 숨어 있는 낱낱의 꽃잎이 신기한 언어의 화성으로 울리는 광경을 목격하기를 기대한다. 그때쯤이면 되살아난 시집의 고유한 개성적 울림이 시집에 내재된 에너지의 분출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그렇게 수용하고자 한 독자 자신의 역동적 상상력의 작동임을 제 몸의 체험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가장 먼저 만날 문학과지성 시인선 R은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유하의 『무림일기』,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다.


R 04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체감 불가능한 것들의 무한한 체험
한 시인의 우주를 체험하는 ‘어떤 회귀’


2000년대 한국 시단에서 김경주의 등장은 돌발적이고 뜨거운 사건이었다. 연극과 미술과 영화의 문법을 넘나드는 다매체적 문법과 탈문법적 언어들, 그리고 시각의 층위를 넘나드는 다차원적 시차(視差), 그러면서도 ‘폭력적’일 수준의 낭만의 광휘는 서정적 논리 자체가 내파되는 언어적 퍼포먼스였다.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권혁웅)는 평은 지울 수 없는 그의 시의 한 자국으로 남아 있다. 김경주의 이러한 시작(詩作) ‘행위’는 두번째 시집 『기담』과 세번째 시집(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이) 『시차의 눈을 달랜다』에서도 이어져 아직 실현해보지 못한 장르 미상의 어떤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욕망하며 타고 난 직관으로 온몸으로 그곳을 향해 나아가며 눈앞의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간파하는 모험을 해 왔다. 그런 뒤에 우리는 다시 시인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읽는다. 그리고 숨차고 울렁거리는 언어의 폭우와 틈을 파고들어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하는 다른 층위를 보고 느끼는 분명한 ‘있음’에 대한 감각은 모두 이 시집 안에 내재된 에너지의 기화였음을 깨닫는다. 김경주 시의 근원적 우주인 첫 시집을 다시 읽는 이 ‘회귀’의 경험은 또한 다시 살아난 이 시집의 당위를 실감하게 할 것이다.
시차,라는 불구의 조건은 영원한 예술의 조건
김경주의 눈은 다른 시간, 삶의 다른 계기, 삶의 다른 기미를 읽는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들을 기웃거렸다”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목련」)에서 볼 수 있듯 시인의 눈에는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상이 맺히는 듯하다. 화폭에 그려진 바람을 보고, 그늘의 비린 냄새를 맡는 시인의 이러한 시차적 체험은 시인을 시인이게 하는 불구의 조건이자 영원한 예술의 조건이 된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_외계(外界) 전문

다르게 읽고 외곽의 것을 눈 안에 먼저 들이는 김경주의 이러한 시적 증상은 불가능성들의 시적 가능성을 탐하는 시인만의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이자 모든 시들이 나아갈 모험에 앞장선 선구가 될 것이다.

시인의 말
헌책방에서 우연히 첫 시집을 발견한 적이 있다.
가격표 아래 2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볼까 봐 가방에 넣었다.
그날 나는 자신의 시집을 훔친 시인이 되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시집을 훔쳐본 경험은
시를 쓰는 동안
머쓱한 궁리를 물리치는 힘이 되고 있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사이 첫 시집은 절판되었고
더 이상 어디에서도 첫 시집을 구할 수 없었다.
내가 몰래 훔쳐온 그 시집 한 권만이 남아 있었다.
복간이 된 첫 시집을 받아보며
나는 이 시집을 또 어디선가 훔칠 것인가 상상해본다.
그대가 제때 버려주었으니
내가 지금껏 구석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슬하에 구석이 이만큼 다정도 하다
데리러 갈게……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2012년 가을
김경주

목차

1부 음악은 자신이 품은 열이 말라가면 스스로 물러간다
2부 오래된 종에서만 조용히 흘러나온다는 물
3부 죽은 새가 땅에 내려와 눕지 못하고 하늘을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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