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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 : 난세를 잠재우고 치세를 열다[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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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을 조명하면서 그의 업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필자는 이미 2018년에 ‘오다 노부나가 - 중세적 권위를 차갑게 베다’를 저술하여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는데, 이번에 그것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부장으로 명성을 얻었고, 노부나가가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의 지위를 쟁취하여 일본 열도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룬 인물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자로 한국인의 원수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의 악행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인이 영웅으로 받드는 존재이다. 필자가 이미 서문에서 상세하게 밝혔듯이, 그는 적어도 17세기 중엽부터 일본인의 가슴속에 살면서 인기를 누려온 존재였다. 그만큼 시대를 초월하여 일본인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 할 것이다.

출판사 서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는 이미 한국에서 몇 권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인 독자가 읽기에 부적절할만큼, 히데요시의 이미지가 과장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의 일생을 소략하게 묘사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히데요시에 대한 과장된 기술을 벗겨내고, 한국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히데요시의 삶의 궤적을 있는 그대로 추적한 책이 아쉬웠던 차제에 구태훈 교수가 ‘난세를 잠재우고 치세를 열다’를 부제를 달아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생을 조명한 책을 펴냈던 것이다. 저자는 앞으로 (1) 전국시대 다이묘들 (2)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에도 막부 등의 저서를 잇달아 펴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미 펴낸 ‘오다 노부나가’와 더불어 인물의 관점에서 본 전국시대에서 에도 시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과도기의 역사가 완결되는 것이다. 이번에 펴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프롤로그
[ 제 1부 ]
1. 불우했던 유소년 시절
2. 오다 노부나가의 종자
3. 소부대의 지휘관
4. 용장 히데요시
5. 다이묘 히데요시
6. 방면군 사령관
7. 지장 히데요시
8. 야마자키 전투
9. 기요스 회의
10. 시즈가타케 전투
11. · 고마키 나가쿠데 전투
12. 오사카성 건설
13. 시코쿠 정벌
관백 정권 14.
15. 규슈 정벌
16. 오다와라 정벌
17. 오슈 평정
18. 병영국가 체제 완성
1) 병농분리
2) 도시와 상공인
3) 농촌과 농민
19. 히데요시의 실력
1) 정치력
2) 경제력
3) 군사력
20. 동아시아 정복 계획
21. 수군 창설
22. 조선 침략
23. 만년의 히데요시
24. 임종과 장의

[ 제 2부 ]
25. 가족과 친족
26. 인물과 성격
27. 가신단의 구조와 변용
1) 소부대 지휘관 시절의 가신단
2) 나가하마 시대의 가신단
3) 최고 권력자 시대의 가신단
4) 조선침략 시기의 가신단
(1) 임진왜란
(2) 정유재란
5) 히데요시 가신단의 특징
28. 종교와 문화
1) 히데요시와 불교
2) 히데요시와 크리스트교
3) 히데요시와 다도
에필로그
참고문헌
색인

본문중에서

1) 일본인은 히데요시가 밝고 활달한 성격의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에도 시대 일본인은 히데요시의 바로 그런 점을 좋아했다. 히데요시와 대비되는 성격의 소유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이에야스에게 너구리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매우 음험하고 교활한 인물로 그려졌다. 밝고 활달한 성격의 히데요시와 음험하고 교활한 이에야스는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와 비교되면서 더욱 인기를 얻었고,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 인기를 누릴 수 없었다.(서문)
2)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7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입신출세의 화신으로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역사 인물들은 정치 · 사회적 조건과 환경이 바뀔 때마다 인기가 부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인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언제나 최고 수준에서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이다.(서문)
3)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의 능력에 감탄했다. 수개월 후에 노부나가가 히데요시를 불러 말했다. “너에게 장작 담당 부교의 일을 맡기는 것은 준마에게 소금을 실은 마차를 끌게 해서 괴롭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큰 재목을 사소한 일에 쓰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더 중요한 직책을 맡겼다.(42p)
4) 하시바 히데요시는 주고쿠 방면군 사령관이 되면서 지장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히데요시는 백병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투보다는 포위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백병전은 많은 사상자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적군을 포위하는 전략은 사상자가 거의 없이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전쟁방식이었다.(72p)
5)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실력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 지위를 쟁취한 후, 자신이 난세를 종식시키고 치세를 여는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히데요시는 마에다 도시이에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에게 보낸 서신에서 다이묘는 영지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는 중세 이래의 관념을 부정했다. 다이묘들의 거성 한 곳을 제외하고 여러 전략적 요충지에 쌓은 성을 파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119p)
6) 히데요시는 일찍부터 상인의 자금을 전쟁에 이용했다. 1581년 히데요시는 돗토리성鳥取城을 공략하기 수개월 전부터 상인들을 돗토리성 조카마치로 보내 시가보다 3배 비싼 값으로 미곡을 사들이게 했다. 그러자 돗토리성 무사들이 비상시를 대비해 비축한 군량미까지 시장에 방출했다. 히데요시가 보낸 상인들이 사들인 미곡은 항구에 대기시켜 놓은 선박으로 운반해 다른 지역으로 수송했다. 히데요시군이 돗토리성을 포위했을 때, 적의 비축미는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군량이 고갈된 적이 항복했다.(176p)
7) 히데요시는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1584년의 겐치에서는 농민에게 은전?田 즉, 신고하지 않은 경작지를 두지 않을 것, 뇌물을 주고 숨겨 둔 경작지를 신고할 것, 겐치 후에 새로 개간한 땅도 숨기지 말고 신고할 것, 경작지의 등급을 속이지 말 것 등을 서약하게 했다. 만약에 서약을 어길 경우에는 여자와 아이를 포함한 촌락의 전 농민을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182p)
8) 1585년 7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관백關白에 취임해서 일본을 통치하는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그 해 10월 초 히데요시는 규슈에서 교전 중인 오토모大友 가문과 시마즈島津 가문에게 “영토의 경계를 둘러싼 다툼은 내가 처리할 것이다. 두 가문은 전투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이것은 천황의 뜻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186p)
9)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투에 임하면서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면 섣불리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히데요시가 수세에 몰리는 싸움도 거의 없었다. 히데요시가 악전고투한 전투는 한두 번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전투가 히데요시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은 경우는 있었지만, 결국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히데요시였다. 히데요시는 군사 수는 물론 무기, 화기, 탄약, 군장, 군량, 군수품, 말의 사료 등 경제력 면에서 적을 압도했기 때문에 항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193)
10) 히데요시에 맞서 싸운 다이묘의 운명은 또 두 방향으로 갈렸다. 히데요시가 적장을 죽이고 그의 영지를 몰수하여 다른 다이묘에게 주는 경우, 적장을 죽이지 않고 그에게 이전보다 축소된 영지를 다스리게 해서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적장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히데요시였다.(200p)
11) 조선을 나누어 다스리기로 한 다이묘들은 하루라도 빨리 조선 민중의 일상생활을 안정시키고, 그들을 경작하게 하여 조세를 징수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모든 것이 일본 내 점령지 정책과 동일한 내용이었다. 다이묘들은 조선의 지역별 미곡 생산량을 파악했다. 일본군은 조선 민중에게 광산의 채굴과 특산물 생산을 장려하는 한편, 자원을 철저하게 약탈했다. 일본군을 위한 기초 조선어독본을 간행하기도 했다. 일본군 장수들이 조선인과 기초적인 의사소통을 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36p)
12) 왜성의 거의 대부분은 오늘날 경상남도 해안가에 쌓았다. 왜성이 본격적으로 축조된 것은 평양까지 진군한 일본군이 경상남도 일대로 후퇴한 1593년 4월부터였다. 일본군은 전략적 요충지인 거제도에 먼저 왜성을 쌓은 후 이어서 다른 지역에 왜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동쪽으로는 울산에서 서쪽으로는 전라남도 순천에 이르기까지 해안을 따라 왜성을 쌓고 그곳에 주둔했다.(244p)
13) 히데요시는 무사사회에서 매우 특이한 존재였다. 비천한 농민 출신이 오다 군단의 사령관으로 출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될 만했다. 히데요시의 얼굴이 원숭이를 닮았다는 것도 화젯거리였다. 얼굴이 특이하다는 것은 인상적이라는 말과 같다. 그것은 추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웃음을 짓게 하는 장점이 될 수 있다. 히데요시의 원숭이상은 세상 사람들이 그를 친근하게 여기는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306p)
14)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이묘 출신의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에게 대를 이어 충성하는 가신단이 없었다. 그의 가신은 모두 오다 노부나가의 부장 시절에 인연이 된 사람들이었다. 히데요시는 친족은 물론 사소한 인연이라도 있는 사람은 모두 불러서 가신으로 삼았다. 이른바 규벌閨閥 가신단이었다. 보통 규벌이라고 혼인관계로 맺어진 집단을 지칭하는데, 이것을 폭넓게 해석하면 양자나 측실의 가족이나 친족도 포함된다.(338p)
15) 가미야 소탄은 황금의 다실뿐만 아니라, 히데요시가 다실에서 사용하는 다도구도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증언했다. 가미야 소탄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네발달린 탁자, 찻잔을 놓는 거치대, 물동이, 가루차를 담는 그릇, 달인 차를 푸는 국자, 솥뚜껑이나 국자를 올려 놓는 받침대, 풍로, 차를 다리는 솥, 물주전자, 가루차를 떠내는 숟가락, 찻잔 등이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황금이 아닌 것은 차를 젓는 솔과 손을 씻는 수건 두 가지 뿐이었다.”(356p)
16) 1615년 4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대군을 동원하여 오사카성을 공격했다. 이미 해자가 메워지고 정치적으로도 고립된 오사카성은 불과 수일 만에 함락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그의 모친이 자결하면서 도요토미 가문이 멸망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사카성에 들어가 농성한 자들을 수색하여 처형했다. 약 5000명의 수급이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큰길가에 매달렸다. 이것을 오사카의 여름 전투라고 한다.(380p)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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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근세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학보' 편집위원장, 한국 일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일본무사도', '전통사회의 사회질서와 경제발전', '일본고대, 중세사', '일본근세, 근현대사', '일본사 파노라마', '구태훈 교수의 안중근 인터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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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근세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학보' 편집위원장, 한국 일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일본무사도', '전통사회의 사회질서와 경제발전', '일본고대, 중세사', '일본근세, 근현대사', '일본사 파노라마', '구태훈 교수의 안중근 인터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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