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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시인)
김순영 시인의 모든 시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포용이 들어 있다 텅 빈 어둠을 뚫어본 자만이 가지는 정서적 인자를 언어화하여, 시는 견디고 일어서는 일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때로는 당당하게 구원자를 호명하면서 불안과 고통 안에서 출몰하는 삶의 신화를 “은사시나무에 햇살이 살랑거리”듯 따뜻하게 보여준다. 그는 내면에서 퍼 올린 간결하고 묵직한 시어들로 원초적 슬픔이 숭고한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을 극적으로 구축하면서 가장 낮은 지점에서 우리의 삶을 통찰하게 한다.

김학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고문)
세상은 신비로 가득합니다. 그 신비를 골고루 맛본 김순영 님은 시와 그림으로 삶의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그 짐을, 그 상처를, 그림 속에 녹이고 시로 수놓으면서 치유와 회복을 넘어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일어선 그녀, 강인한 의지와 인내로 모진 세파와 맞서 싸우며 그늘진 옷을 벗고 늘 미소를 놓지 않은 듯 보입니다. ‘절망은 없다, 내 심장에 좌절의 자리는 없다, 구름에 가린 해는 머잖아 빛을 발하리라’ 그렇게 믿는 중심에는 그녀를 사랑하고 지켜보는 분이 계신다는 확신 때문일 것입니다.


일흔일곱 방울, 꿈으로 적신 꽃
가을바람에 한 송이 들국화가
레이니어 들녘에서 흔들리고 있어요

지금까지 견뎌온 무릎을 가만히 펴봅니다

2022년 가을
김순영

제1부
행운목 12
꽃비 14
봄의 길목에서 15
홀로 지는 낙엽 16
은사시나무가 햇살에 살랑거려 18
봄의 날개 아래 20
겨울나무 22
그 많던 꽃잎이 24
마른 가지, 벼랑에 서다 26
눈처럼 살 순 없을까 28
왜 바다는 파란 멍이 들었어 30
보혈의 강 32
추운 어느 겨울 34
실어증 36
박꽃 38
망각의 미로 39
부르시는 음성 40

제2부

지우개 44
백목련 필 때 45
홀로 바라보는 하늘 46
삭아버린 낙엽아 48
울지 말아요 50
아침이슬 52
파도의 신음 54
하얀 세월 앞에 56
겨울 벤치 58
겨울비를 감춘 들판 59
터널 속으로 60
오월의 빛이여 62
내 안에 작은 뜨락 64
절망의 늪에 66
무릎 꿇고 68
갈대의 노래 69
천번의 낙서가 70 82
칼춤 84

제3부
어둠이 밀려와 창을 열면 72
영혼의 강가에서 73
마지막 작별 74
살아 있음에 76
정겨운 가을 녘을 바라보며 78
새해에는 갑절의 은총을 80
개미 82
잎새의 외출 84
파도의 속울음 86
하늘 바라고 88
회랑의 벽 89
겨울 나들이 90
잃어버린 언어 92
깊어가는 거리 94
풀 내음 96
쌍무지개의 의미 98
지금 그리고 내일 100

제4부
환상적인 시애틀 104
새싹과 함께 106
바람이 불면 108
에덴이 중병에 걸렸어 109
그림자와 같이 112
계곡물 소리 114
길 잃은 회색 116
바람처럼 강물처럼 118
주님의 뜻대로 120
거절의 벼랑에 서다 122
같이 갈 수 없어 124
세 가지 더하기 일곱 126
산, 가을빛 128
재앙의 소용돌이 130
하늘 가는 길목에서 132
인디언의 애가 134
샤론의 백합화 138

〈은사시나무가 햇살에 살랑거려〉

살랑거려
잔잔한 물결에 햇살이
여유롭게 길게 누었어

묶였던 시간이 화들짝
잊혀져 갔던 그리움도 깨어나
바람을 목에 두르고 피어나길

구겨진 마음의 주름을 펴고 있어
더는 눕지 말고 일어서라
세상을 휘젓는 검은 바람아

하얀 구름자락으로 날개를 지어
어둠의 속살을 걷어내리라

시린 눈빛으로 멀어져 가는 길
휘청거려도 초라하지 않으리라

물살 고르며 자꾸만 씻고 있노라면
대지의 몸살이 열을 내리겠네

회복의 꿈을 키워 가는 갈망으로
햇살이 물비늘을 가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