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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이냐 헤쿠바냐 [양장]

원제 : Hamlet oder Hek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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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비극의 원천은 역사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통렬히 비판한 정치신학자는
현대의 신화가 된 ‘햄릿’의 비극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고대 비극 너머로, 복수의 주제를 통해, 이 에세이는 유럽 정신의 정치적 운명을 문제삼는다.”
_자크 데리다 (철학자)

“『햄릿』에 관한 이 탁월한 에세이에서 슈미트는, 당대 관객이 극작가와 공유하는 것은 문화적, 역사적 지식의 지평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관객은 극에서 작동하는 정치적 무의식의 몽환적 잔영에도 깊게 공명한다는 것이다.”
_에릭 샌트너 (시카고대 교수)

20세기의 가장 논쟁적인 사상가 카를 슈미트가 1956년에 발표한 대표적인 문예비평서.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 ‘주권자의 결단이 법질서의 원천’이라 주장한 슈미트는 왜 만년에 이르러 ‘햄릿’에 주목하며 ‘비극의 원천은 역사’라고 단언했는가? 이 책은 스스로 밝힌 대로 슈미트 자신의 내면적 고백이자, 그의 사상에 접근하는 흥미로운 우회로이다.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 답하는 보론 수록!)

출판사 서평

“내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것인가”

『햄릿이냐 헤쿠바냐』는 법학자이자 정치신학자인 카를 슈미트의 저술 목록에서 단연 이례적인 책이다. 1920년대에 『독재』『정치신학』『정치적인 것의 개념』으로 학계의 스타로 떠올랐고, 나치 시대에는 파시즘과 독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던 슈미트는 전후戰後에 왜 난데없이 ‘햄릿’에 관한 책을 썼을까?
이 책에서 슈미트는 문학작품(예술)을 역사적 현실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햄릿’을 현대의 신화적 인물로 내세운다. 그는 이 책 출간 이후 논란이 일자 「내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것인가」(1957)라는 글을 발표하고, 여기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햄릿』에 관한 나의 소책자는 무엇을 목표로 하거나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생각의 내면적 의미에 충실할 뿐.”
『햄릿이냐 헤쿠바냐』는 일차적으로 햄릿을 경유한 슈미트의 자기고백이자 과거 행적에 대한 은밀한 자기정당화로 볼 수도 있지만, 2차대전 후 모든 공적 활동을 금지당하고 고향에 칩거한 상태에서 ‘주권’과 ‘정치적 현실’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저술로도 읽힌다. 또한 이 책이 출간된 1950년대 중반은 아도르노의 주도로 발터 벤야민의 저서들이 재출간되기 시작하면서 벤야민이 재조명되던 시기였다. 벤야민은 일찍이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햄릿’을 중요하게 다룬 바 있고, 슈미트의 예외상태, 주권 개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이런 벤야민이 복권되던 시기에 슈미트는 『햄릿』 해석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드러내고 싶었을 수 있다. 이 점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 답하는 보론 「셰익스피어 희곡의 야만적 성격에 관하여」를 『햄릿이냐 헤쿠바냐』 말미에 수록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이 글에서 슈미트는 『햄릿』을 ‘바로크 비애극’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벤야민의 견해를 비판한다.)
슈미트가 어떤 의도에서 이 책을 집필했건 간에 비극, 역사, 주권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이 짧은 책을 통해 우리는 슈미트 사상의 핵심에 다가가는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유희가 시작되는 곳에서 비극은 중단된다”

슈미트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라는 비극이 현대의 신화로까지 자리매김한 까닭은 이 작품이 극적 유희(비애극)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극 속으로 침투한 시대적 현실을 절묘한 극적 장치로 담아내어 현실이 비극에 개입하는 구조를 재현해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비극적 사건을 창작했다는 데 있지 않다. 작가는 비극적 사건을 창작해낼 수 없다. 비극적 사건은 역사적 현실이 제공한다. 위대한 작가는 비극의 핵심을 파악해 비극적 사건(정치적 현실) 가운데서 신화로 승격될 만한 구조적 유형을 추출해낸다.
『햄릿』2막 2장에서 배우가 헤쿠바(그리스어로는 ‘헤카베’. 트로이전쟁 때 남편과 자식들을 모두 잃은 트로이의 왕비)에게 감정이입해 눈물을 흘리자, 햄릿은 이렇게 말한다. “이 배우의 눈에서는 무슨 이유로 눈물이 흐르는가? 그저 헤쿠바 때문이라고! 헤쿠바가 대체 그에게 무엇이고 그가 헤쿠바에게 무슨 존재라고?”
슈미트가 볼 때,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 인물 헤쿠바는 아무리 관객을 눈물짓게 할지라도 연극적 유희에 머문다. 유희는 근본적으로 비상사태(예외상태)의 반대를 의미한다. “유희가 시작되는 곳에서 비극적인 것은 중단된다.” 반면에 햄릿은 진정한 비극적 인물이다. “유희로도 가려질 수 없는 비극적 요소”(47쪽)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표현을 돌려 말하자면, 햄릿의 경우 유희가 중단되는 곳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햄릿은 셰익스피어 당대에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는 제임스1세의 연극적 가면이다. 햄릿이라는 인물은 가공의 덴마크 왕국 왕자이기 이전에 런던에 실존하던 인물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카를 슈미트는 자신의 딸 아니마가 독일어로 번역한 영국 문학사가 릴리언 윈스탠리의 저서 『햄릿과 스코틀랜드의 승계문제』를 긴요하게 참고한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극 속으로 침투한 시대’는 『햄릿』에 내재된 비극적 요소의 핵심이다. 여기서 슈미트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왕비라는 터부’와 ‘복수자 유형의 햄릿화’이다.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가 선왕(남편) 살해 사건에 공모했는가 여부는 이 이야기에서 끝내 터부이자 미스터리로 남는다. 왜 그럴까? 제임스1세의 어머니가 바로 메리 스튜어트이기 때문이다. 희곡 『햄릿』이 집필된 때는 1601년경이며, 1603~5년에 여러 판본이 출판되고 상연되었다. 스튜어트왕가 출신인 제임스1세는 1603년에 엘리자베스여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다. 제임스1세의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남편이자 제임스의 친부인 단리경을 살해한 보스웰백작과 재혼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고(당시 그녀가 남편 살해에 공모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왕위에서 쫓겨나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여왕에 의해 처형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연극 〈햄릿〉이 상연되던 17세기 초의 런던 관객은 당연히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햄릿의 우유부단한 태도는 이 ‘왕비라는 터부’와 무관하지 않다. 전형적인 복수극의 주인공과 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주저하는 이 새로운 복수자 유형의 이면에는 스튜어트왕가의 비극이라는 당대의 역사적, 정치적 현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분열된 세계와 햄릿 신화의 탄생

나치에 협력했던 전력 때문에 한동안 학계로부터 외면받아온 슈미트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것은 공교롭게도 우파 지식인들이 아니라 아감벤, 지젝, 샹? 무페 같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적과 동지의 구분’ ‘주권’ ‘예외상태’ 같은 개념에 주목하면서 오늘날의 현실정치 상황에 대입하면서였다.
『햄릿이냐 헤쿠바냐』도 이런 관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우선 햄릿의 배경에 자리한 제임스1세는 종교 대립의 한가운데서 살았던 인물이다. 가톨릭 신봉자인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적 죽음 이후 엘리자베스여왕을 비롯한 어머니의 적들(프로테스탄트들) 사이에서 자랐던 제임스1세는 왕의 신적 권리를 열성적으로 옹호했다. 신학에 기반하여 절대적 주권을 강조했던 슈미트는 릴리언 윈스탠리의 『햄릿과 스코틀랜드 왕위계승』 독일어판 서문에서 “『햄릿』은 왕의 신적 권리를 성찰이나 토론 가운데 소진시켜서는 안 된다는, 제임스1세를 향한 간곡한 당부”라고 했다.
그러나 제임스1세가 매달렸던 신적 권리는 극심한 종교 분열의 시대에 전혀 가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무너져가는 봉건 체제의 마지막 수호자에 지나지 않았다. 햄릿과 같은 우유부단한 복수자의 등장은 이런 시대적 현실을 벗어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 햄릿은 클로디어스왕을 왕위 찬탈자로 규정하고 자신이야말로 적법한 왕위 계승자라고 주장하면서도, 복수를 향해 과감하게 나아가지 못한다. 그가 주장하는 왕권의 기반 자체가 허약할 뿐 아니라 그가 적법한 왕위계승자인지도 확실치 않고(보론1에서 슈미트는 햄릿의 왕위계승권 문제를 상세히 다룬다), 자신의 어머니가 적인지 동지인지도 구분하지 못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역사적 현실과 정치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로, 주어진 현실상황에 따라 변형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슈미트는 계시종교적 신의 권위에 의존하는 규범이 이성의 힘을 기반으로 확립한 인간의 규범에 비해 더 강력하고 절대적이라고 본다. 햄릿의 경우처럼 현실이 인간을 옭아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할지라도, 이러한 역사적 현실은 주인공의 실존을 사로잡는 그 절대적 성격 때문에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슈미트에겐 근본적으로 역사적 현실도 신적 권위에 따른 현실이다.
“비극적 사건에 직면한 모든 당사자들은 뒤엎을 수 없는 현실의 존재를 잘 알고 있다. ……이 뒤엎을 수 없는 현실이란 잠자코 선 바위와 같은 것으로, 유희로서의 극은 이 바위에 굴절되고, 진정한 비극이라는 파도도 이 바위에 몰아치고 부서진다. 바로 여기에 자유로운 문학적 창작이 넘어설 수 없는 마지막 경계가 존재한다.”(53쪽)

카를 슈미트는 르네상스 이래로 유럽의 문화예술이 세 명의 상징적 인물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바로 돈키호테, 파우스트, 햄릿이다. 이 세 인물은 모두 지성 때문에 정상궤도에서 벗어났는데, 유일하게 햄릿만이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여기서 돈키호테는 정통 가톨릭이고, 파우스트는 프로테스탄트이다. 슈미트에 따르면, 이 두 인물 사이에 해당하는 햄릿은 유럽의 운명을 결정지은 종교 분열의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며, 바로 이런 역사 속에서 비극적인 햄릿 신화가 탄생했다고 본다.

목차

이 책에 대해 9
머리말 11

왕비라는 터부 17
복수자의 형상 27
비극의 원천 38
작가의 창작의 자유 40
유희와 비극적인 것 44
극중극: 햄릿이냐 헤쿠바냐 48
비극적인 것과 자유로운 창작 간의 불일치 53
결과 59

보론 1 왕위계승자로서의 햄릿 63
보론 2 셰익스피어 희곡의 야만적 성격에 관하여-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 답하며 70

주 79
해설: 한 정치신학자의 『햄릿』 해석 87

본문중에서

유럽 정신이 르네상스 이래로 얼마나 탈신화화되었는가를 고려해보면 유럽에서, 그리고 유럽 정신의 정수로부터 햄릿 신화와 같은 강력한 규범적 신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4쪽)

참담한 역사적 현실은 연극을 수놓은 가면과 의상을 뚫고 끈질기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26쪽)

왕비의 터부는 역사적 현실이 셰익스피어의 『햄릿』 속으로 강력하게 침투한 사례이다. 이와 더불어 또하나의 침투, 첫번째 사례보다 더 강력한 두번째 침투가 존재한다. 복수자의 형상이 성찰을 거치면서 소심하고 멜랑콜리한 인간으로 변형된 것이 그것이다. (27쪽)

유희가 시작되는 곳에서 비극적인 것은 중단된다. (47쪽)

이 뒤엎을 수 없는 현실이란 잠자코 선 바위와 같은 것으로, 유희로서의 극은 이 바위에 굴절되고, 진정한 비극이라는 파도도 이 바위에 몰아치고 부서진다. 바로 여기에 자유로운 문학적 창작이 넘어설 수 없는 마지막 경계가 존재한다. 작가는 많은 것을 창작할 수 있고 창작해내야 하지만, 비극적 사건의 현실적 핵심까지는 꾸며낼 수 없다. (53쪽)

고대의 비극이 신화와 조우해 그로부터 비극적 사건을 길어내는 데 비해, 『햄릿』의 경우에는 작가가 자신이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현실에 입각해 신화를 확립하는 식의 드물면서도 전형적인 근대적 성과가 등장한다. (57쪽)

셰익스피어의 비할 데 없는 위대함은 그가 혼잡스러운 시사정치적 현실 가운데서 신화로 승격될 만한 구조적 유형을 추출해냈다는 데 있다. 그가 비극의 핵심을 파악해 신화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터부를 존중하고 복수자의 형상을 햄릿이라는 인물로 변형시켰던 조심스러움과 경외심 덕분이었다. (58쪽)

유럽의 문학예술은 돈키호테, 햄릿, 파우스트라는 세 명의 비중 있고 상징적인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이 가운데 하나인 햄릿만큼은 분명 이미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다. 기이하게도 이 세 인물 모두는 독서가로, 말하자면 지식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세 인물은 모두 지성 때문에 정상궤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61쪽)

저자소개

칼 슈미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888

1888일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 플레텐베르크에서 중산층 가톨릭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7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해 뮌헨 대학을 거쳐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1년부터 1928년까지 그의 이름을 전 유럽에 알린 일련의 논쟁적 저작들, 즉 '독재'(1921), '정치신학'(1922), '정치적인 것의 개념'(1927) 등을 잇달아 발표해 논단의 스타로 부상했고, 1933년에는 베를린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는 동시에 프로이센 추밀고문관으로 임명되어 나치스와의 밀월관계를 시작했다. 이후 소년간 나치스의 어용학자로 위용을 떨치지만,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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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역] 신작알림 SMS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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