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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의 희망 수업 :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한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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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욥기의 희망 수업]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한 축복

욥기 그리고 오늘
-어려움 속 당신의 믿음은 안녕하십니까?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억울한 일 한 번 겪지 않고. 불의와 부조리를 한 번도 겪어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직접 겪거나 도처에서 목격하는 삶의 시련들이, 많은 경우 그것을 겪는 사람의 잘못에서 기인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가 부조리해 보인다. 불의의 사고나 질병 등이 특히 그렇다. 행운이 항상 선행의 보상은 아니고 불행이 항상 잘못에 대한 징벌이 아님을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다. 심지어는 요행을 부리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그러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안온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모습, 선량한 이들이 너무나도 가혹한 일을 겪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왜?”라는 의문이 피어난다.
이러한 의문, 또 그 의문을 낳은 세상의 온갖 불의는 현대에 와서 생겨난 것은 아닌 듯하다. 2000년도 더 된 옛날에 집필된 욥기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바로 이 “왜?”이기 때문이다. “왜 악인들은 오래 살며 늙어서조차 힘이 더하는가?”(욥 21,7).
까닭 모를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욥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지속되면 견고하다고 믿었던 신앙도 흔들리기 십상이다. 그리고 외친다. “주여, 왜?” 이러한 인간의 의구심과 항의에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실까?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름의 답을 알려 주는 욥기는 문학적으로 매우 가치 있고 또 아름다운 시문으로 꼭 읽어 보아야 할 지혜 문학의 진수이다. 그래서 더욱 제대로 된 안내서가 필요하다.

욥기의 거룩한 독서
-현대인을 위한 욥기 안내서

[욥기의 희망 수업]은 이러한 욥기를 읽도록 안내하는 친절한 욥기 거룩한 독서의 안내서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성서학자인 저자 암브로지오 스쁘레아피꼬 주교는 깊이 있는 체험을 통해 욥기의 거룩한 독서를 안내한다. 욥기에서 말하는 고통의 의미, 우정과 함께함의 의미, 하느님께서 주신 대답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풀어 준다.
욥기의 배경은 오래 전 구약 시대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그것이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야기임을 느끼게 된다. 마치 시대극에 오늘날 생각해 볼만한 주제가 녹아 있는 것처럼 이 책은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앞으로 욥기를 자연스럽게 끌어온다. 이는 곧, ‘나는,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하느님과 대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이 책은 또 거기에 대한 대답을 욥기에서 찾아 주며 우리를 안내한다.

희망의 책 욥기
-욥과 함께 희망의 길에 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희망’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 질문하고 응답을 청한 욥은 결국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신다.
욥이 원래대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하느님께 끊임없이 호소하며 주님의 자비로운 현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의 표지이다.
(/ p.253)
욥의 회복은 하느님께서 욥에게 내리신 축복일 뿐 아니라, 누구든지 당신께 끝까지 청하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표지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마치 상상 속에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범지구적인 위기에 빠진 요즘 [욥기의 희망 수업]은 괴로움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하느님의 현존을 상기시켜 준다. 욥이 자신의 고통에 눈이 멀어 하느님을 탓하고 고발하였음에도 그분의 현존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결국에는 하느님의 축복 속에 회복되는 욥의 모습을 그저 저자의 해설과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를 받고,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욥기 짧고 깊게 읽기!
-내 가방 속 친절한 욥기 강의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욥기 전체를 빠짐없이 다룬다는 점이다. [욥기의 희망 수업]은 욥기를 1장부터 42장까지 한 장 한 장 세심하게 풀어내어 욥기 전체를 충실하게 안내하는 데에 공을 들이며, 독자들이 각자 자신의 삶에서 능동적으로 욥기를 묵상하도록 길을 슬쩍 열어 준다. 한 장의 욥기 본문을 그 자체로 간략하게 분석하고 설명한 뒤, 해당 부분을 우리 시대에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담긴 해설을 덧붙인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기보다는 하나의 단상이나 사회적 현실에 관하여 가볍게 언급하거나, 그보다도 간접적으로 욥의 말이나 행동의 의미를 상세하고 분명하게 밝혀 주며 독자들이 거기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도록 이끈다.
사실 악과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계속해서 괴롭히는 악의 세력 앞에서 무능해질 때가 많다.
(/ p.92)
욥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느끼지만, 체념하지 않는다. 욥의 믿음은 “당신의 얼굴을 감추시지”(13,24) 않고 당신의 자비로운 현존을 보여 주실 것을, 또는 적어도 침묵을 깨뜨리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실 것을 주님께 강하게 요구한다.
(/ p.102)
[욥기의 희망 수업]에는 욥기 전문이 담겨 있고 그 전체를 꼼꼼하고 밀도 높게 분석하지만,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아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며 읽기에 무리가 없다. 또한 성경 본문을 읽고,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 생각해 보는 패턴의 리듬감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다. 고통과 시련에 관하여, 그리고 그 고통 안에 언제나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관하여 각자 나름대로 정리된 관점과 생각을 갖게 된다.

우정과 동반의 의미!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할 때의 애티튜드

이 책 [욥기의 희망 수업]은 욥과 욥의 네 친구 모두에게서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준다. 섣부른 위로의 말로 더욱 상처를 주거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여 더 깊은 오해를 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을 특히 욥의 친구들에게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우정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할 때 지녀야 할 태도를 소상하게 알려 준다.
빌닷의 말은 기도가 되지 못하며, 욥처럼 고통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표현하지도 공유하지도 못한다.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친구 역시 멀리서 설득력 있는 논거만을 찾는다. 그렇지만 고통받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우정과 함께함과 기도이다. 욥과 그의 친구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즉 좋은 뜻으로 충만한 친구들은 욥에게로 다가간다. 하지만 고통 중에 있는 욥은 악에 굴복하지 않도록 하느님께 다가가 그분께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욥의 친구들은 반론을 제기할 뿐 욥이 울부짖는 그 말의 의미에는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것 같다.
(/ pp.75~76)

목차

들어가는 말
욥기 • 008
욥의 고통과 나의 고통 • 012
욥, 비非히브리인의 믿음? • 025
욥기와 고대 근동의 다른 문학 작품들 • 029

욥기의 거룩한 독서
시험에 든 욥 ── 욥 1,1-22 • 036
이의를 제기하는 사탄 ── 욥 2,1-13 • 042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 욥 3,1-26 • 047
친구 엘리파즈의 첫 번째 담론 ── 욥 4,1-21 • 052
생각을 바꾸라는 엘리파즈의 초대 ── 욥 5,1-27 • 057
자신의 정의를 주장하는 욥 ── 욥 6,1-30 • 062
“내 날들은 한낱 입김일 뿐” ── 욥 7,1-21 • 068
빌닷의 첫 번째 담론 ── 욥 8,1-22 • 073
하느님의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욥 ── 욥 9,1-35 • 078
욥, 고통 중에 오직 탄원뿐 ── 욥 10,1-22 • 083
욥의 죄를 확신시키려 하는 초파르 ── 욥 11,1-20 • 088
욥의 자기 방어 ── 욥 12,1-25 • 093
욥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 욥 13,1-28 • 098
부서지기 쉽고 약한 인생 ── 욥 14,1-22 • 103
욥을 고발하는 엘리파즈 ── 욥 15,1-35 • 108
욥, 포위된 사람 ── 욥 16,1-22 • 114
어디에 내 희망이 있는가? ── 욥 17,1-16 • 119
빌닷의 둘째 담론 ── 욥 18,1-21 • 123
마지막에 정의를 재설정하실 하느님 ── 욥 19,1-29 • 127
초파르의 둘째 담론 ── 욥 20,1-29 • 133
친구들의 신학을 뒤집는 욥 ── 욥 21,1-34 • 138
욥의 회개를 촉구하는 엘리파즈 ── 욥 22,1-30 • 143
하느님을 찾는 욥 ── 욥 23,1-17 • 148
악과 불의를 잘 알고 있는 욥 ── 욥 24,1-25 • 153
빌닷과 욥, 하느님의 업적에 대한 명상 ── 욥 25,1-6; 26,1-14 • 158
계속해서 자신을 변호하는 욥 ── 욥 27,1-23 • 163
하느님의 지혜 찬가 ── 욥 28,1-28 • 168
욥의 그리움 ── 욥 29,1-25 • 173
현재의 씁쓸함 ── 욥 30,1-31 • 178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욥 ── 욥 31,1-40 • 183
엘리후, 거만한 젊은 침입자 ── 욥 32,1-22 • 189
젊은이의 교훈 ── 욥 33,1-33 • 194
엘리후의 둘째 담론, 자비 없는 정의 ── 욥 34,1-37 • 200
엘리후의 셋째 담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신 하느님 ── 욥 35,1-16 • 206
엘리후의 넷째 담론, 고통의 기능 ── 욥 36,1-21 • 211
엘리후의 하느님의 지혜 찬가 ── 욥 36,22-33; 37,1-13 • 216
엘리후의 마무리 담론, 하느님의 능력 ── 욥 37,14-24 • 222
하느님의 대답 ── 욥 38,1-41; 39,1-30 • 226
욥과 하느님의 대화 ── 욥 40,1-14 • 234
브헤못과 레비아탄 ── 욥 40,15-32; 41,1-26 • 239
하느님께 대한 욥의 대답 ── 욥 42,1-6 • 244
맺음말, 욥을 회복시키시는 하느님 ── 욥 42,7-17 • 249

간추린 참고 문헌 • 254

본문중에서

욥기는 불의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강력하게 항의하는 이야기를 쓴 책이다. 욥은 불의한 고통을 하느님 탓으로 돌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항의를 한다. 욥은 하느님께 불의한 고통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욥은 고대의 보상 원칙에 이의를 제기한다. 즉 고통과 죄 사이에 설정되는 관계, 다시 말하면 고통이 죄의 결과로 제시되는 관계에 근본적으로 의문을 갖는다.
(/ pp.13~14)

하느님은 마지막까지 침묵하신다. 하느님은 사람들의 토론에 개입하실 뜻이 없다. 아마 하느님은 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자유롭게 논의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이는 하느님의 부재나 무관심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욥의 친구들의 말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표상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곧, 사람들은 구체적 상황과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달리 말해 사람들의 구체적 사건들을 이해하고 통찰하지 못하면서 단순히 자기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표상을 주장한다.
(/ p.22)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그리고 상처받은 인류의 이야기 속에서 욥기를 읽는 모든 사람은 욥기에서 자신을 보게 된다. 또한 하느님께 항의하고 그분 최고의 정의를 일깨우며 그분의 주의를 끌어 보려는 모든 사람은 욥기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정의가 그들의 처지에 무관심하며 오로지 하느님의 정의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부르짖음, 항의와 기도가 되는 그 부르짖음을 이 고대의 책인 욥기에서 어떻게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욥기를 읽으면서 독자는 자신이 욥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곧, 어쩌면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지만, 세상의 악과 고통 앞에서 무관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적어도 욥의 친구들이 한 것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변명이나 비난을 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그 상황에 있을 수밖에 없는 고통받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말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낫다. 우리는 자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대신 그들에게 있을 수 있는 잘못을 그들 탓으로 돌리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들이 고통받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를 쓰곤 한다. 우리 사회가 가난한 이들에 대해 자주 그렇게 하지 않는가?
(/ pp.26~27)

여기에서 욥기 전체의 토대가 될 질문, 곧 ‘오로지 행복한 삶만이 하느님의 축복의 결과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고통받는 사람, 병자,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의 자비와 축복의 대상일 수 있는가? 또는 고뇌와 고통과 가난은 하느님이 죄 때문에 사람을 포기하신 표지인가? 고대 이스라엘에서 병과 가난은 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 pp.43~44)

욥은 고통받는 사람의 실존의 의미에 관해 엄청난 탄원을 터뜨린다. 이토록 큰 고통으로 위협을 받고 상처를 받는 이의 실존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욥의 중대한 항의는 이렇게 시작한다. 욥은 하느님의 정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욥은 주님을 반대하는 주장을 하지 않고, 출생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묻는다. 그것은 오랜 역사 과정에서 사람들이 제기하는 반복되는 물음이다. 왜 의인은 고통을 받고, 악인은 번성하는가?
(/ p.49)

지혜로운 조언을 한다는 엘리파즈는 실은 욥의 처절한 부르짖음을 이해하지도 통찰하지도 못하였으며, 욥에게 인간적으로 대답하지도 못한다. 사실 고통받는 사람이 하느님 사랑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옳든 그르든 신학이나 교의를 되풀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없다. 우정으로 가까이 있어 주는 편이 더욱 효과적이고 필요할 것이다. 아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겠다. 고통받는 사람은 우정으로만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이다. 엘리파즈의 말은 옛 지혜를 되풀이한다는 점에서 그의 유능함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재앙을 당한 사람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 p.56)

엘리파즈의 확인은 씁쓸하다. 궁핍과 병과 어려움에서 세차게 솟아나오는,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가련한 이들의 땅에서, 궁지에 몰려서, 노년의 외로움에서, 일정한 거처가 없는 이들의 힘겨운 삶에서, 유목민의 땅에서 나오는 부르짖음에 누가 대답하는가? 고통 속에서 때로는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만약 누군가를 부른다면, 누가 그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엘리파즈는 욥을 악과 불행과 괴로움으로 표시된 고된 삶의 현실 앞에 내세운다.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
(/ p.59)

엘리파즈는 잘못된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기 친구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을 받을 때, 사람은 하느님의 꾸짖으심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려운 순간에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도 있다. 어려운 순간이나 질병이 회개의 순간이 되고 친구와 같은 하느님의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이 되는 경우는 굉장히 많다. 만약 고통받는 사람의 곁에 그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아무도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자기의 사랑으로 보여 주는 누군가가 함께 있다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분명히 더 쉬워질 것이다.
(/ p.61)

고통받는 인간은 고뇌의 순간에 자주 혼자 버려지며, 우정은 버림 속에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고통받는 이는 친구들과 멀어지며, 때로는 가족들까지도 멀어진다. 왜냐하면 고통은 두려움을 갖게 하며 고통을 나누는 삶과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뇌를 보면 그것과 연루되지 않기 위하여 멀리 달아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은 자주 버림받았음을 느끼고, 노인들과 병자들은 자주 홀로 버려진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유의 이름으로 홀로 죽도록 버려진다. 그러나 그 자유란 두려움의 표현이며 고독의 결과일 뿐이다.
(/ p.65)

그러나 욥에게는 큰 장점이 있다. 그는 말하고 주님께 질문하면서, 역사와 창조 안에서 끊임없이 주님의 현존을 찾으며 탐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욥의 말은 불신으로 점철된 지평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하느님이 개입하실 공간이 별로 없다. 욥의 기도는 거의 책 전체에서 독백으로 나타난다. 욥이 말을 해도 하느님은 대답하시지 않으며 멀리 계시고 이해할 수 없는 분으로 보인다.
(/ p.81)

하느님이 고통으로 지친 욥에게 이처럼 침묵하신다는 주제는 유다인 대학살의 비극을 이해하기 위한 유다이즘의 귀중한 독서의 열쇠가 되었다. 하느님은 무죄한 무수한 사람들의 절멸 앞에서 어떻게 침묵으로 일관하실 수 있었는가?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의 대량 학살장에서 살아남은 유다 현인 엘리 비젤은 유다인대학살을 욥에게 일어난 일에 비추어 여러 차례 성찰하였다. 욥은 하느님을 향하여 규탄하는 투의 거친 음조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대하시는 것이 당신께는 좋습니까? 악인들의 책략에는 빛을 주시면서 당신 손의 작품을 멸시하시는 것이 좋습니까? 당신께서는 살덩이의 눈을 지니셨습니까? 당신께서는 사람이 보듯 보십니까?”(10,3-4). 그렇지만 욥은 절대로 하느님을 멸시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욥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인식한다. 자신의 무죄를 선언하는 것에 더 이상 관심도 없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불운이 잘못을 저지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여전히 믿고 있다. 그는 하느님이 자비를 지니시도록, 특히 자신에게 정의를 실현하여 주시도록 자신이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린다.
(/ pp.86~87)

초파르에게는 욥의 상황에서 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 사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과 토론하면서 그가 겪고 있는 악에 대해 납득이 가는 이유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악과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계속해서 괴롭히는 악의 세력 앞에서 무능해질 때가 많다. 초파르는 욥의 저항에서, 고통으로 타격을 받으면서도 주님께 나아가 주님과 토론하기를 중단하지 않는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초파르는 욥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으며 욥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 초파르는 오로지 욥에게 유죄를 확신시키기만을 원한다. 그래야 욥의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파르는 하느님도 이해하지 못한다. 초파르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깨닫지 못한다. 초파르는 하나의 이론을 되풀이하며 어떤 것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너무 확신하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느님을 거의 이해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자신들의 냉정한 이성에 갇혀 있는 욥의 친구들은 계속해서 하느님도 사람도 이해하지 못한다.
(/ p.92)

믿음은 단순히 냉정한 추론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인격적, 직접적 관계이다. 여하튼 욥은 다른 사람들, 특히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멸시하는 이러한 판단에 반대한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판단으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멸시하는 경우가 많다. “편안한 자의 생각에는 고통에 수치가 따르는 것이 타당하겠지. 발이 비틀거리는 자들에게 예정된 수치 말일세.”(12,5). 우리는 매일 이런 슬픈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멸시와 방해가 쫓아다닌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홀로 남아 있지 않기 위하여,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하여 또는 소외되지 않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지원과 신뢰를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멸시를 당하고 방해를 받는다. 욥은 자신을 손가락 하나로 살짝만 밀어도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 것처럼 느낀다. 이해와 연대와 연민이 없다. 오로지 토론과 논쟁만 존재한다.
(/ p.96)

고통받고 투쟁하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것, 악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실존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고뇌하는 시간을 받아들이면서 고통의 물음들을 인내롭게 하느님 앞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 p.113)

고통받는 인류의 도전에 직면하여 새로운 지혜, 생각하고 행위하는 새로운 방식,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표시된 새로운 문화가 요구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사람들이 ‘무관심의 세계화’ 앞에서 욥의 비탄과 항의를 되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욥의 부르짖음은 오로지 자신들의 진리만 주장할 줄 아는 현인들에 대한 응답으로서 우리 세계와 믿는 이들을 질책하는 질문이다.
(/ p.121)

욥의 친구들이 하는 것처럼 이론으로 확신시키려고 시도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다. 더욱 어렵고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사람이 절망에 빠져들지 않도록 그 사람 곁에 있는 것이다. 고독은 악과 맞서 싸우는 이를 불안, 더 나아가 절망으로 이끈다. 그리하여 그는 사는 것 대신 죽는 것을 염원하고 선택하게 된다. 욥의 말은 고통을 겪은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는 이런 가능성을 잘 묘사한다. 욥의 말은 고통받는 사람을 버리지 않도록, 엘리파즈와 빌닷과 초파르처럼 스승 행세를 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를 초대하는 말이기도 하다. 욥의 말은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을 강력하게 초대하는 말이기도 하다.
(/ p.122)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면서 그들을 돕고 교정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그리고 단죄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한다. 욥의 친구들의 말은 마치 잘 알려진 연도連禱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욥을 설득하거나 깜짝 놀라게 하려고 하면서 그들의 추론을 반복하는 일밖에 할 줄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말이 아니라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 p.135)

왜 의인은 고통을 받고, 하느님에 대해 무관심하며 자신들의 삶에서 하느님을 배제하는 악인들은 번영하며 즐겁게 사는가? 욥은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욥은 하느님의 친구인 자신이 그토록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고통의 순간에도 욥의 믿음은 확고하다. 악인들과 달리 그는 자기 생애에서 하느님을 멀리하지 않았다. 달리 말해 욥은 계속해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다.
(/ p.142)

특히 하느님의 현존이 더욱 불확실해질 때, 욥은 하느님 앞에 서 있기 위한 투쟁의 무게를 느낀다. 그러나 그는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하느님 없이 살 수 없다. 이 때문에 욥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주는 경고이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신앙 생활을 습관적으로 피곤하게 영위해 간다. 우리도 하느님이 멀리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것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욥처럼 어쩌면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우리 역시 하느님의 부재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매우 약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여하튼 욥은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자신의 고통과 자신의 연약함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역경과 몰이해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을 찾으며 탄원한다. 마지막에는 하느님이 욥을 찾아 나서시는 놀라운 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42장 참조).
(/ p.152)

욥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헛된가를 밝힌다. 그런 사람의 재산은 공포 속에서 사는 그를 구해 주지 못한다. 하느님은 이런 사람의 실존과 함께하시지 않는다. 또한 하느님이 없는 삶은 헛되며 파멸로 향한다. 이 때문에 욥은 친구들이 자신을 악을 저지르는 사람과 동일시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에게 하느님의 존재는 생존에 관계되는 근본 문제이다. 그는 하느님의 현존을 간구하며 하느님의 부재를 두려워한다. 욥은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 여긴다. 그의 말은 고통받는 사람의 중대한 탄원이며, 하느님이 당신을 드러내시고 당신이 곁에 계신다는 표지를 주실 것을 청하는 탄원이다. 악인의 삶은 이와 전혀 다르다.
(/ p.167)

고통과 고뇌로 견딜 수 없어지면 신앙도 흔들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욥은 자기 공동체에게도 도움을 호소하지만, 그 호소는 대답 없는 부르짖음이 되었다. “속은 쉴 새 없이 끓어오르고 고통의 나날은 다가오네. 나는 햇볕도 없는데 까맣게 탄 채 돌아다니고 회중 가운데 일어서서 도움을 빌어야 하네.”(30,27-28). 욥의 호소는 우리에게도 하나의 질문으로 부각된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로부터 솟아오르는 도움의 부르짖음에 우리는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
(/ p.182)

욥은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고통이 하느님으로부터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의문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고통이 생겼다는 것을 의문시한다. 욥에게 있어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진리에 상응하지 않는다. 욥의 이러한 태도는 고통받는 사람의 삶이 곧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같다고 여길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이때 비록 아무리 올바른 교의라 할지라도 교의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도움의 요청을 뿌리쳐서는 안 된다.
(/ p.215)

마침내 욥기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이제 욥이 하느님을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욥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믿음을 가진 이의 깨우침이며,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운 순간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이의 깨우침이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깜짝 놀란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다. 하느님은 일상적인 삶에서 비범한 방식으로 활동하신다. 이 때문에 욥은 자기 자신이 깨달을 수 없었던 것들,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들을 감히 제시하려고 하였음을 인정한다. 친구들이 자신을 고발하는 것에 대해 무죄하다고 여겼지만, 이제 욥은 주제넘음으로 죄를 지었다는 것, 달리 말해 아픔 중에도 하느님은 자기 곁에 사랑으로 현존하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 pp.244~245)

저자소개

암브로지오 스쁘레아피꼬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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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한 영식 [역]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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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되었고, 교황청립 성서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교수와 총장, 우르바노 대학교 초빙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8년부터 2019년까지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현재 반포4동 성당 주임신부이다. 『이야기로 배우는 모세오경』, 『가장 행복한 약속』, 『십계명』, 『창세기 1, 2』,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다 1, 2, 3』 등 많은 책을 쓰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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