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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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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주영
  • 출판사 : 김영사
  • 발행 : 2019년 07월 26일
  • 쪽수 : 28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34996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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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세상이 평온할수록 법정은 최소한 그만큼 참혹해진다”
    판사가 써 내려간 법정 뒷면의 이야기

    법원은 세상의 원망과 고통, 절망과 눈물, 죽음과 절규가 모이는 곳이다. 판사는 법정에 선 모든 이의 책망과 옹호를 감당하며 판결문을 써 내려간다. 피도 눈물도, 형용사와 부사도 존재하기 힘든 판결문에는 사건 당사자들의 울분과 고함을 담아낼 자리가 없다.
    건조하고 딱딱한 판결문이라는 형식에 미처 담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눈빛과 사연은 저자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저자는 법정에서 마주친 이들과 폐쇄된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을 “풀어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어떤 양형 이유⟫는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법정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다.

    출판사 서평

    “세상이 평온할수록 법정은 최소한 그만큼 참혹해진다”
    판사가 써 내려간 법정 뒷면의 이야기

    김영란, 남궁인, 정서경, 김동조 추천


    법원은 세상의 원망과 고통, 절망과 눈물, 죽음과 상실이 모이는 곳이다. 판사는 법정에 선 모든 이의 책망과 옹호를 받아내며 판결문을 써 내려간다. 피도 눈물도, 형용사와 부사도 존재하기 힘든 판결문에는 당사자들의 울분과 고함을 담아낼 자리가 없다.
    이 책을 쓴 저자 박주영은 현재 울산지방법원 형사합의부에서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7년간 변호사 생활을 한 후 경력법관제도로 판사가 된 그는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판결문을 썼다. 건조하고 비정한 판결문이라는 형식에 미처 담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눈빛과 사연은 저자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저자는 법정에서 마주친 이들과 법정에서 느꼈던 감정을 “풀어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어떤 양형 이유⟫는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법정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이 아닌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사람들
    판결문에서 소실된 구체적 인간과 고통을 복원하다

    형사 판결문 말미에는 ‘양형 이유’라는 란이 있다. 공소사실에 대한 법적 설시를 모두 마친 후 이런 형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원래 판결문은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만을 추출해 일정한 법률효과를 부여할 뿐 모든 감상은 배제하는 글이지만, 그나마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판사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형사 판결문에 있는 ‘양형 이유’ 부분이다. 저자는 피고인에게 특별히 전할 말이 있거나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싶을 때 양형 이유를 공들여 썼다.
    이 책에는 저자가 형사재판을 하며 만났던 사건들, 해당 사건의 실제 판결문에 있던 양형 이유 일부뿐만 아니라 판결문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당사자들의 아픔과 판사의 번민이 담겨 있다. 저자는 가정폭력 사건, 산업재해 사건, 성추행사건, 성전환자 강간 및 부부강간 사건, 사람들의 편견으로 사회적 약자가 피고인이 된 사건 등을 통해 ‘왜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한편, 법의 한계와 사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밀려드는 사건, 무수한 희구와 간청
    책망과 옹호 사이에서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판사의 눈물

    테드에서 강연을 했던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형사2부 빅토리아 프랫 판사는 “판사가 된다는 건 중간광고 시간도 없고, 시즌 종영도 없는 비극 리얼리티쇼를 예약석에 앉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 법원도 마찬가지다. 법원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아프고 슬프지 않은 사연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다. 저자에게 재판은 “대책 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아야 하는 고행의 연속”(164쪽)이다.
    지방법원 판사는 1년에 약 700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2017년 기준). 사건은 밀려오지만 선택이 어렵다고 마냥 미룰 수도 없다. 사건 당사자들은 최대한 빨리 답을 받아야 한다. 희구와 간청이 넘쳐나는 법정에서 저자는 시간이 없어 당사자들의 말을 자르고, 잘려진 말의 무게에 짓눌린다. 법적인 해석을 내려야 하는 사람으로서 모두가 만족할 결론을 주지 못한다는 것에 죄책감도 느낀다. 당사자들의 사연과 법원에서의 삶을 읽다 보면 판사로서 짊어진 무게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법이 취해야 할 정의는 무엇인가

    지난 몇 년간 사법농단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법관 블랙리스트로 판사들을 탄압했고, 정권과 재판거래를 했다. 법원의 신뢰도는 걷잡을 수 없이 하락했고, 판사들은 이유 있는 돌을 맞았다. 사람들은 판사들이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는지, 정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깊게 의심하고 있다. 자신을 “변두리 시골판사”라고 칭하는 저자 또한 이 사실에 고통스러워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저자는 법원이 시련을 극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대한민국 법관이 같은 생각으로 단일대오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불온하고 끔찍한 환상”(234쪽)이라는 법원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저자는 법과 법원이 추구해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정의란 극한의 고통에 빠진 소수자의 편이자 수고로움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으며 눈앞의 대의에 연연하지 않고 유려한 언변으로 치장되지 않더라도 발광한다. 법해석의 신축성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게로만 늘어난다. 저자에게 법은 이런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곳이자 반드시 인간을 향한 사랑에만 부역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차라리 법을 정의할 수 없다면 자랑스럽게 법은 마치 사랑 같다고 말하리라”라는 W. H. 오든의 시 <법은 사랑처럼>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이 책에 따르면 정의와 법에 “마지막까지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274쪽)

    자연히 판결문을 넘쳐버린 사랑과 회한
    그리고 이토록 유효한 절망

    저자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양형 이유를 적는 날은 언제나 비감(悲感)하다”며 다음과 같은 양형 이유를 적었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폭력으로 누군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곳에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_ 가정폭력 사건 양형 이유 중에서

    법대로 판단해야 하는 판사는 그 법이 악법이더라도 지켜야만 한다. 저자는 산업재해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고래는 빠져나가고 피라미만 걸리는 이상한”(93쪽) 산업안전보건법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벌금을 매기려 했다.
    ‘저녁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삶이 있는 저녁’을 걱정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다수 존재한다는 현실은 서글프기 그지없다. (중략) 빈부나 사회적 지위, 근로조건의 차이가 현저한 여명(餘命)의 격차로 이어지는 사회는 암울하다. 개별 피고인들 전부에게 예외 없이 금고형과 징역형을 선택해 무겁게 처벌하는 이유는, 생명은 계량할 수 없는 고귀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자 함에 있다. _ 산업재해 사건 양형 이유 중에서

    저자는 주로 형사재판을 했지만, 소년법원 판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때 저자가 만났던 아이들의 6~7할은 집안환경과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었고, 그중에는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아이, 10년 조금 넘게 사는 동안 보호자가 여섯 번 바뀐 아이, 앵벌이를 하며 살았던 아이, 무허가 판잣집에 살던 아이, 쓰레기더미에 살다 주민들의 신고로 구조된 아이 등이 있었다. 저자는 어른들의 악행을 기억하기 위해 당시 썼던 메모를 버리지 않았다.
    한 아이가 망가지는 데도 온 집안과 마을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이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이들을 유기하고, 방치하고, 학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부모와 가족, 그 아이들 중 누군가와는 같은 마을 사람들인 우리도 함께 엄벌을 받아야 한다.
    (/ pp.149~150)

    기록이 아닌 사람을 마주했던 저자는 사회와 상황에 깊게 절망하지만, 그 절망은 결코 무용하지 않다. ⟪어떤 양형 이유⟫는 깊은 절망이 어떻게 유효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추천사

    “그가 운명이라고 하는 사건이 다른 많은 판사에게는 처리 건수 하나짜리에 불과했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책을 추천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 문장을 “판사에게는 처리 건수 하나짜리에 불과한 사건이었으나 그에게는 전 운명이 달린 사건이었다”고 바꿔 읽었던 것 같다. 저자가 써 내려간 양형 이유는 판결문에 자연히 흘러넘치는 마음의 소리를 옮겨놓은 듯하다.
    - 김영란 / 전 대법관

    감당하기 어려운 인간의 모든 고뇌를 끌어안고 그는 어떻게 버텨왔던 것일까.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판결에 분노하지만, 판사도 분노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허나 세상사 모든 희비와 증오를 굽어보는 인간의 평정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는 신분을 무릅쓰고 자신의 분노를 활자로 옮겨 세상에 내어놓았다. 법복 차림의 그는 이성적일 테지만, 이 글을 쓴 그는 분명하게 지옥을 주시하며 똑바로 진심을 담아 분노한다.
    - 남궁인 / 응급의학과 전문의, 《만약은 없다》 저자

    무심코 책을 펼쳤다가 자세를 고쳐 앉아 읽기 시작했다. 문장은 간결했다. 단순하고 건조한 언어로 쓰였다. 그런데 왜 그 안에 담긴 타인의 고통과 분노, 사랑과 회한이 이토록 생생할까? 냉혹하고 메마른 판결문의 형식 앞에서, 자신이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장 인간적인 관점으로 써 내려가기 위해, 저자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작가의 일은 이런 것이 아닐까?
    - 정서경 / 시나리오 작가, <아가씨> <마더> 집필

    법관의 양심은 시대정신과 불화하고 대중의 법감정과 충돌하기도 한다. 심지어 불의에 부역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의 지옥을 두 눈 뜨고 목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몽의 데자뷔는 끔찍하지만, 그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울었는데 울 때마다 더 강해지는 걸 느꼈다. 대단한 경험이다.
    - 김동조 / 트레이더,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

    목차

    프롤로그

    1장 나는 개가 아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타인의 몸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타인뿐이다
    산 고래, 죽은 고래
    참고판례 없음
    삶이 있는 저녁
    나는 개가 아니다

    2장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장화 신은 고양이를 위한 변명
    본투비 블루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 자기
    습설
    얼어버린 어깨

    3장 부탁받은 정의
    회전문 집사
    법대 아래에서
    무지외반증
    부탁받은 정의
    법은 사랑처럼

    에필로그

    본문중에서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불개입 풍조는 극복되어야 한다. 가정은 사적 영역이므로 공권력 개입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명제는, 그 가정이 가정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폭력으로 누군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곳에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 p.28)

    재판을 하다 보면, 법률의 존재나 의미를 잘 몰랐다는 주장을 많이 접한다. 실제로 많은 법규정은 전문가가 보아도 이해하기 어렵고 모호하다. 세법같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법도 있다. 그러나 성범죄사건에서 수범자(受範者)에게 부과된 정언명령이나 금지규정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그리 복잡한 기술이 아니다. 간단하고 단순하다. 다른 사람의 몸을 허락 없이 만지지 말라. 폭력이나 협박, 이와 동일시할 수 있는 힘을 사용해 간음하지 말라. 무엇이 어려운가.
    (/ p.43)

    피고인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 고래를 포획하고 유통⦁판매하는 것이 비난 가능성 높은 범죄라는 점을 거듭 환기하고자 함은, 도도새를 비롯해 인간의 탐욕으로 멸종되어 사라져 간 수많은 비잠주복(飛潛走伏), 그 숨탄것들처럼, 고래를 더 이상 아이들의 그림책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로 남겨둘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은 고래고기 몇 점을 앞에 두고 자연을 노래할 시인은 어디에도 없다.
    (/ pp.66~67)

    주 52시간 근무 시대를 맞아 이제야 저녁이 있는 삶이 왔다고 다들 호들갑이다. ‘워라밸’이니 ‘소확행’이니 정체 모를 말들이 떠돈다. 크레인기사로, 선박 용접공으로, 족장 비계공으로 허공을 떠돌고, 택시운전사로, 화물차 운전사로 양화대교를 건너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이들과 그 가족들의 소소하지 않은 유일한 행복은, 일하다 죽거나 다쳤다는 이야기가 그저 저녁 뉴스에 나오는 남의 이야기고, 일 나간 아빠와 엄마가, 장남과 둘째가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다.
    (/ p.91)

    판결을 쓰다 말고 창밖을 바라볼 때가 있다. 시골 할머니 취득시효 소송이나, 13년 전 학자금 대출 채무를 아직도 추심당하고 있는 김씨 사건이나, 임금 한 푼 못 받고 두들겨맞은 채 쫓겨난 블랑카 씨 사건과 같은 판결을 쓸 때 주로 그렇다. 창밖으로 파릇파릇한 잎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살가운 소리를 낸다. 나는 내가 쓰는 판결의 할머니와 김씨와 블랑카 씨가 나무 이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흔하고 별볼일없고 언제 나무에서 탈락해버릴지 몰라 늘 파들거리며 자글자글 불안에 떠는 연약한 존재지만, 나무는 이파리의 광합성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소수자는 보이진 않지만 우주의 4분의 1을 구성하는 암흑물질이거나 우리 사회의 가장 변방에서 호흡하는 피부 같은 사람들이다. 왜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냐고? 사실 이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잎이 없고 피부가 없으면 유기체가 죽고, 암흑물질이 없으면 우주가 존재하지 않듯, 다수가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자가 그들을 보호한다.
    (/ pp.116~117)

    보스턴 천주교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보도한 <보스턴 글로브>의 실화를 옮긴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잘 알려진 대사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이 말은 소년범을 대할 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한 아이가 망가지는 데도 온 집안과 마을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이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이들을 유기하고, 방치하고, 학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부모와 가족, 그 아이들 중 누군가와는 같은 마을 사람들인 우리도 함께 엄벌을 받아야 한다.
    (/ pp.149~150)

    그들이 준비한 사연의 반의반도 못다 얘기했음을 알면서도, 뒤 사건으로 채근하며 8시쯤 겨우 사무실로 올라왔다. 창밖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무거운 이야기들은 무겁게 법원을 다시 나선다. 충실히 듣겠노라 매번 다짐하지만 빽빽한 기일표를 보면 늘 한숨이다. 성의껏 들었다는 말도 해선 안 된다. 그들의 성의는 언제나 내 성의의 백만 배 이상이다.
    (/ pp.186~187)

    나는 법대를 오르내릴 때마다 이 기이한 역설을 실감한다. 살인재판을 끝낸 뒤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강간재판을 마친 뒤 금목서 향기를 맡으며 산책을 한다. 내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고, 다음 날이면 무자비한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할 것이다. 세상이 평온하고 빛날수록 법정은 최소한 그만큼 참혹해진다.
    (/ pp.223~224)

    판사는 결코 법이라는 인식의 틀을 닮으면 안 된다. 인식의 틀이 강퍅할수록 인식하는 주체는 다정다감해야 한다. 그것이 기계가 아닌 인간에게 재판을 맡기는 이유다. 판결과 재판이라는 비정한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결코 서정을 잃어서는 안 되는 모순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 p.270)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일말의 애정과 연민조차 품고 있지 않다면, 재판이라는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정녕 용인될 수 있겠는가. 법이 곧 정의고, 법이 곧 사랑일 수는 없지만, 법은 정의이면서 사랑일 수 있다.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한 치 틀림없이 설명할 수 없다면, 법은 적어도 사랑에 기반하고, 사랑에 부역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떤 누군가는 반드시 시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27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현 울산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부장판사.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7년간 변호사로 일하다 경력법관제도로 판사가 됐다. 지금은 지역법관제도가 폐지되어 지역법관이 아니지만 자의로 부산고등법원 관내에서 근무하고 있다.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부산지방법원, 울산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등에서 주로 형사재판을 했지만 부산가정법원에서 소년재판을 한 적도 있다. 언론을 상대하고 행정기획업무를 하는 공보기획판사도 세 번이나 했다.
    공보기획판사로 일하며 인터뷰와 대외행사를 많이 했지만 실제로는 낯을 많이 가리며 소심하다. 읽고 보고 듣는 것을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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