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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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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한승헌
  • 출판사 : 삼인
  • 발행 : 2018년 05월 15일
  • 쪽수 : 36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6436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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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인권변호사로, 감사원장으로, 사법제도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헌신한
한국 법조계의 산증인 한승헌 변호사의 말과 글


한 사람의 삶의 크기는 무릇 그가 살아낸 시대의 요구에 그가 얼마나 충실하고 진실하게 응답했느냐에 따라 측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인 신간 [법치주의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의 저자 한승헌 변호사는, 여전히 현존하는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라고 할 수 있다. 법조인으로서의 그의 삶이 ‘민주화’와 ‘인권옹호’라는 시대적 책무에 정확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반응했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숙명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의 가치는 (사회 정의 실현의) 참여와 실천을 통해 두루 증명되는 것이며, 회피와 외면으로 설명될 수 있는 삶은 지극히 예외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 시대가 삶의 조건으로서의 인간의 기본권을 극단적으로 억압하고 제한하는 야만의 시대라면, 저항에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은 개별적인 삶의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웅변할 뿐 아니라 동시대인에겐 사표나 모범으로서의 위의마저 지니는 것이다.

이 책은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한 이후 폭압적인 군사정권 시절 인권변호사로 헌신하다 감옥에 두 차례 투옥되고, 김대중 정부에서 감사원장을 지내고, 노무현 정부에서 사법제도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사법개혁을 이끌어낸 존경받는 법조계 원로이자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인 한승헌 변호사가 평생에 걸쳐 강연하고 발표하고 대담한 원고 중 책으로 묶이지 않은 텍스트를 모은 뜻깊은 산문집이다. 한승헌 변호사는 민주사회의 근간이랄 수 있는 법치주의가 위협받아온 시대의 불행을 증언하면서, 견결한 법치주의자로서의 소신과 원칙, 그리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우리 시대 멘토로서 당신이 지켜온 삶의 가치와 철학, 인간과 세계에 대한 유려한 식견과 사유를 보여준다.

법치주의자 한승헌, 그 원칙과 소신

한승헌 변호사가 이 책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역설하고 있는 것은 법치주의의 올바른 이해와 사회적 정립의 필요성이다. 올해로 법조 경력 60년을 넘긴 한승헌 변호사는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사회가 성숙한 민주 사회라는 확고한 신념을 내비치는데,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법치주의는 그동안 불행하게도 오해와 왜곡의 대상이 되어서 오히려 국민의 권리를 침해해왔다. 준엄하고 냉철한 법 이론가로서 저자는 먼저 "발생적으로 볼 때, 당초에 법은 지배자의 의사요, 명령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법치주의는 지배자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피지배자인 국민의 권리 보장을 주안으로 삼는 사상으로 정립되었"음을 분명히 전제한다. 법치주의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가 "하향적 지배기능 아닌 상향적 견제기능을 중시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체제 하에서는 지배자의 준법이 우선해야 하고, 억압체제 하에서는 피지배자의 준법을 앞세우게" 되며 "지배자가 국민을 상대로 준법을 역설하는 것은 억압적 사고의 표출이며, 거기에는 법치주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갈파한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사법부의 역할이다. "법치를 둘러싼 논쟁과 분규의 사법적 마무리는 법원의 몫이다. 사법부는 인권의 마지막 보루일 뿐 아니라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이다. 여기에는 법관의 양심과 용기를 중핵으로 하는 사법권의 독립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부는 그와 같은 소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음을 증언하면서 정치권력과 밀착되어서 자기 책임을 방기한 사법부의 잘못을 성찰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권을 잡은 집권세력에 대한 다음과 같은 따끔한 충고도 빠뜨리지 않는다. "법치주의가 하향적 지배 아닌 상향적 권력 견제장치임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집권자는 국민에 대한 준법 훈시가 법치주의의 본질에 어긋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교육, 언론,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국가의 안전 보장, 질서 유지, 공공복리 등 국민 기본권 제약의 명분이 남용되지 말아야 하며,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그에 관련된 입법적, 행정적 과오를 엄정하게 시정하여야 한다."

헌신하는 법조인의 초상, 한승헌

한승헌 변호사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일관된 소신은 법조인은 법리에 밝은 기능적인 업자에 그쳐서는 안 되고 당대의 지성인으로서 공익에 기여하는 자세와 사회윤리적인 책무에 책임을 다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소신은 그 자신이 자신의 양심에 부합하는 실천적 삶을 살아오는 동안 하나의 행동윤리로 자신의 몸에 체화된 것일 테다. 2014년 서울대 로스쿨 입학식에서 신입생들을 향해 던진 다음과 같은 축사에 그의 법조관의 일단이 잘 드러나 있다. "법조인이 되는 것을 입신출세라고도 한다. 입신을 바라는 것 자체는 사람의 기본된 욕망일 수도 있고, 따라서 장려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 입신 이후를 말하고자 한다. 한 마디로, 입신을 한 다음엔 반드시 헌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지식과 역량에 따른 신분과 권능을 가지고 남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기여를 해야 한다. 이무런 반대급부나 공명심 같은 것을 생각지 않고 남과 세상을 위해 헌신하며, 때로는 사서 고생도 해야 한다. 특히 법조인에게는 공익적 성격의 기여와 헌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사회윤리적 책무가 있다. 입신의 성취감 못지않게 헌신의 보람은 크고 아름답다."

이와 함께 시대적 책무를 회피한, 도리어 법조인으로서의 독립성과 자율적 권리를 스스로 훼손하면서까지 정치권력에 굴종했던 사법부를 비판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75년 인혁당 사건 때 피고인 8명에게 사형을 언도해 사법살인에 일조한 일이다. 저자는 "최고법원인 대법원도 ‘상고기각’이 ‘18번’이요, 지정곡처럼 되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대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상고기각으로 박정희의 기대에 맞추어 ‘사법살인’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증언하고 "변호사의 변론조차도 생트집을 잡아 긴급조치와 법정모욕죄로 구속했"고 "인혁당 사건은 날조라는 글을 쓴 시인을 구속하고, 그에 대한 변호를 그만두지 않는다고 변호인을 구속했"으며 "군법회의에 질세라 유죄와 실형을 주저하지 않았"고 "대법원장은 전국사법감독관회의에서 법관들의 ‘확고한 국가관’을 강조"했다고 준엄한 비판을 이어간다. 이 모두가 시대적 요구에 헌신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과 입신에만 머무른 법조인의 비겁이 불러온 비극임을 에둘러 설명한 것이다.

역사의 현장마다 마땅한 목소리를 내다

법치주의자로서의 원칙과 소신을 피력한 것 외에도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또 있는데,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굽이굽이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온 한승헌 변호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단순한 수상록이 아닌 기록문학이나 실록으로서 소구력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상기한 대로 저자가 올해 법조 경력 60년의 풍부한 경륜을 자랑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가 증언한 내용 중 특히 최근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해 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하던 시기(2016년 10월 31일)에 국가 원로로서 언론([한겨레21])과 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시국관을 밝힌 것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경륜에서 우러나온 직관으로 박근혜 농단 사태를 다음과 같이 직시하고 규정한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뭐라고 표현하든, 문자 그대로 미증유의 국난이자 국치라고 봅니다. 내가 자유당 정권 이후 지금까지 많은 정권의 부침을 경험해 보고, 참여도 하고, 당해도 봤지만 이런 일은 난생처음이에요. 그러니까 뭐라고 규정해야 하느냐, ‘국정 농단’이란 말을 갖다붙일 수 있죠. 국정 농단이 뭐냐면 권력의 사유화, 반헌법적 국정 문란입니다. 정치라는 게, 또 국가 운영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실정도 할 수 있고,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번처럼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 (그와) 사적 친분을 가진 사람이 일대일로 딱 밀착돼서 장기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킨 것은 처음이에요. 또 하나, 국가기관 안에 온갖 비리의 예방, 적발, 제재 그리고 재발 방지 등을 위한 여러 시스템이 있는데도 그게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거. 그래서 결국 파국에 이르렀다, 그런 점에서 미증유라는 거죠"

뿐만 아니라 3장에 수록된 반공법 필화사건 재심 공판 최후 진술을 통해 1975년 당시 박정희 정권이 휘두른 엄혹했던 억압 정치의 실상을 오늘의 독자들에게 낱낱이 증언하고, 10월 유신 이후 잇따른 긴급조치 법정의 부조리한 판결과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태 등을 준엄하게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수록된 원고 중 가장 오래 전에 쓰인 1972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인권 강좌에서 발표한 필화사건과 창작의 자유를 논한 원고와 1987년 6월 혁명 이후 노태우 정권이 약속한 민주화 조치 실행을 미루고 오히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00여 명을 구속해 인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을 때 [뉴스위크]지 브래들리 마틴 기자와 가진 시의성 있는 인터뷰, 일본 와세다 대학 초청강연과 대한변호사협회 회원포럼에서의 발표, 김대중 대통령 묘비 제막식 추도사, 보도지침 사건 폭로 30주년을 맞이해 민언련과 가진 인터뷰, [한겨레] 신문 창간 25주년 축사 등은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지킨 증인으로서 그 실감을 증언하는 드물고 귀한 가치가 있는 텍스트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목차

머리말
1장 한국의 법치주의와 국가권력
국가의 허상과 주권자의 민낯 -저들만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
한국의 법치주의, 이대로 좋은가 - 고려대학교 제1회 사회인문포럼 주제 발표 요지
변호사의 체험을 통해 본 한국의 민주화 -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초청 강연
한국 법조의 전통과 풍토 - 사법연수원 신임 형사 재판장 연수 특강
내가 겪은 유신, 긴급조치의 법정 - ‘10월 유신, 긴급조치’ 토론회 여는 말
한국의 사법부, 그 60년의 궤적 - 사법제도비교연구회 제53회 연구발표회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외풍’보다 무서운 ‘내풍’ - 프레시안 ‘관점이 있는 뉴스’ 인터뷰
국가 권력과 인권 - 인권연대 연수 특강
압제에 맞선 저항과 수난의 기록 - [한국의 정치재판](일본어판) 출판기념회 저자 답사
낯선 ‘법원의 날’에 대한민국 법원을 생각한다 - 제1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법원 특강

2장 압제에 대한 기억과 지식인
새 시대에 합당한 법조인, 입신에서 헌신으로 - 서울대학교 2014년 로스쿨 입학식 강연
온 삶으로 일깨워주신 민주와 통일의 길 - 고 김대중 대통령 묘비 제막식 추도사
‘재판 실록’으로 상을 탄 ‘수상’한 사람의 생각 - 제2회 임창순 학술상 시상식, 수상자 인사
나의 법조 55년을 돌아본다. - [한승헌 법조 55년 기념 선집] 간행 축하 모임 답사
마사키(正木) 히로시 변호사와 이득현 사건 - 일본 교토 류코쿠(龍谷)대학 초청 특강
분단 속의 독재와 싸운 의로운 피고인들 - [분단시대의 법정](일본어판) 출판기념회 저자 답사
불낸 자가 119 신고자를 잡아 간 ‘보도지침’ 사건 -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민언련 인터뷰
험난한 역사를 증언할 지식인의 책무 - [한겨레]와의 인터뷰
가신 이의 염원과 산 자의 도리 - [김병곤 평전] 간행 출간기념회 축사
반민주에 대한 복습과 예습 - [권력과 필화] 간행에 즈음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3장 법을 통한 정의 실현의 문제
필화사건과 창작의 자유 -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인권 강좌
법치주의는 권력이 먼저 법을 지키는 것 - CBS 인터뷰 ‘키워드로 읽는 한국현대사’
서울에서 벌어지는 만행들 - [뉴스위크] 브래들리 마틴 기자와의 인터뷰
박근혜, 완전 고백・ 완전 사과부터 - [한겨레 21]과의 인터뷰
독재 치하에서의 한국 앰네스티와 한승헌 변호사 - [앰네스티 매거진]과의 인터뷰
42년 만의 재심 무죄, 한승헌 변호사 - [한겨레]와의 인터뷰
과거를 바로 알아야 미래를 바로 본다. - [위클리 서울]과의 인터뷰
역사의 소명에 부응하는 참 언론으로 - [한겨레] 창간 25주년 기념식, 창간위원장 축사 -
법을 통한 사회정의 실현은 가능한가? -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사형제도 비판이 용공・반국가라는 허구 - 한승헌 반공법 필화사건 재심 공판 최후진술

4장 법조인생의 뒤안길
나의 법조 반세기를 말한다. - 대한변호사협회 회원 포럼 발표 요지
분노하고 부딪히고 갇히기도 한 세월 - [한국일보] ‘이종탁이 만난 사람’ 인터뷰
리더의 서재에서 – 한승헌 편 - [경향신문]
우울한 시대의 삶과 유머 - [경향신문] ‘유인경이 만난 사람’ 인터뷰
의로운 피고인들에게서 나도 ‘오염’ - [길을 찾아서] 연재하는 한승헌 변호사
유머라는 언어미학과 정치 - 서강대학교 대학원 특강
대화문화의 업그레이드와 해학 -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최고감사인과정 특강
실패한 변호사의 민망함 -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재미 인권상 수상 인사
세속적인 가치에 안주하는 것은 - 사법연수원 [미네르바]와의 인터뷰
역사와 체험이 곧 스승입니다. - 덕성여고 학생들에게 들려준 인생 이야기

본문중에서

왕조 전제시대에도 백성의 목소리가 있었고, 목숨을 건 비판과 저항이 있었거늘, 하물며 민주공화국 시대의 주권자인 우리 국민이 과연 주권자다운 도리를 다하고 살아왔느냐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짐이 곧 국가’라는 말은 루이 14세만의 어록이 아니었다. 해방 후 정권의 집권자들, 특히 군사정권이나 그와 맥을 같이하는 지배자들은 국가와 자신을 동격으로 착각하고 반정부 곧 반국가라는 우격다짐으로 비판세력을 억압하는 습성을 발휘했다. 몽테스키외는 "모든 권력자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언제나 경험하는 터였다"는 인식에 입각하여 3권분립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권력을 남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권력을 억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그의 권력분립론은 당시 사회적 제 세력 간의 균형을 지향한 것이긴 했지만, 국가 3권의 집중이 빚어내는 위험을 막고자 한 점에서는 수긍할 바가 많았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권력 담당자를 선출, 감시, 비판, 탄핵할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 이 분권과 균형의 이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 알기는 알면서도 행동은 그와 다른 수도 많았다. 국민의 대표적인 선출기관은 국회 내지 의회다. 국회의원 선거에 즈음하여 국민은 과연 주권자다운 선택을 했는가? 정당이나 후보자의 헛소리에 속거나 휘둘려 넘어가지는 않았는지, 각설이처럼 나타나 시장을 누비는 악수꾼의 공세에 마음을 주거나 불의한 강자의 품에 안기려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 pp.33~34)

최근엔 ‘법과 원칙’이란 용어가 난무한다. ‘법과 원칙’의 파괴자들 또는 정치권 사람들조차도 그런 말을 버릇처럼 입에 담는다. 법조인의 사고가 ‘법대로’ 쪽으로 굳어지다 보면, ‘법치주의’도 하향적 지배기능만 강조하는 훈시나 명령쯤으로 곡해하기 쉽다. 또한 실정법 만능주의에 빠질 우려도 있다. 그러나 헤겔도 말했듯이 ‘법의 극은 불법의 극’이다. 자칫 법조인은 법의 이름에 가탁하거나 그 가면을 쓴 불의에 동조할 위험도 있다.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하버드 로스쿨의 한 법학교수는 해마다 신입생들에게 ‘법률가의 첫째가는 책무는 defence of the people 즉 인민(의 자유와 권리)을 지켜주는 일이다.’라는 내용의 강의를 했다고 한다. 적어도 법조 전문직이자 최고의 지성임을 자부하는 법조인이라면, 권력자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맞섰을 경우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법조인은 단순한 법률 기술자 또는 기능공에 그쳐서는 안 된다. 보편적 가치를 사고의 기준으로 삼고 이를 추구하는 지성인이어야 한다. 의를 위해서는 고난도 무릅쓰고, 손해도 감수하는 사람, 개인적으로는 피할 수도 있는 위험 앞에서 비켜서지 않는, 그런 법조인이 되기 바란다. 언필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내세우는 이 나라에서 법조인 또는 법률가의 책무는 더 없이 무겁다. 민주와 법치가 제 길을 따라 정착하지 못하고 위정자에 의해 일탈이 되풀이되는 마당에는 더욱 그러하다. 반민주 반법치를 방관, 방조, 편승하는 법조인은 국민의 기대를 배신하는 사람이다. 반민주적 권력의 엑스트라나 공범이 되는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날의 반민주적 악령이 각설이처럼 다시 나타나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법조인의 각성과 분발이 한 층 더 절실히 요청된다. 참과 거짓 사이에서 아무런 고뇌도 하지 않은 채 영일寧日에 안주하는 것은 적어도 시대정신에 합당한 법조인의 도리가 아니다. 우리는 해서는 안 되는 과오(Sin of comission)뿐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과오(Sin of omission)도 경계해야 한다.
(/ pp.134~135)

저자소개

한승헌(Seunghun HAH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4.09.29
출생지 전북 진안
출간도서 27종
판매수 2,424권

아호 산민(山民), 변호사,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1934년) 전주고와 전북대(정치학과)를 나왔다. 고등고시 사법과(제8회-1957년)에 합격, 검사(법무부, 서울지검 등)로 일하다가 변호사로 전신하였다(1965년). 역대 독재정권 아래서 탄압 받는 양심수와 시국사범의 변호와 민주화·인권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어떤 조사] 필화사건(1975년)과 김대중내란음모사건(1980년)으로 두 번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변호사 자격 박탈 8년 만에 복권, 변호사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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