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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모먼트 : 되돌아갈 길은 없다, 당신과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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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페미니즘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강렬한 순간(moment)들이 모여 거센 물결이 되기까지,
몸으로 부딪쳐 만들어 낸 페미니스트들의 생생한 삶 이야기!


2015년, SNS를 가득 메운 페미니스트 선언(‘#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은 그 자체로 거센 물결이었지만, 뒤이어질 수많은 변화들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 페미니스트 선언에는,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페미니스트로 살겠다’는 다짐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온오프라인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싸워 승리를 거두는 짜릿한 순간들도 있지만, 각자의 삶터, 일터로 돌아왔을 때 부딪쳐야 하는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이러한 굴곡의 시간들을 다들 어떻게 ‘견뎌 오고’ 있는 것일까?
이 책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1990년대 중후반에 뜨겁게 페미니즘을 만나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고, 페미니스트로서 삶을 지속해 온 여섯 명의 ‘굴곡의 시간들’을 엮어 낸 책이다. 성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고, 조직 내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를 폭로하고(‘명예훼손’ 역고소에 대응하고), 다양한 게릴라 액션들을 기획하고, 이로 인해 때로는 ‘과격한 페미니스트’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2016~17년 현재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다만 ‘그때’에 머물러 있지 않다. 질문과 고민의 이동들, 몸담은 장소의 이동들, 그리고 때로는 부딪히고 깨지면서 자신의 페미니즘을 갱신해 왔던 과정들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최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연결’이다. 그만큼 페미니스트들, 여성들의 연결과 연대를 저해하는 요인들이 사회 곳곳에 배태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양한 세대와 정체성, 관심 영역을 교차하여 페미니스트들이 연결될 수 있으려면, 서로를 향해 더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어떤 순간들이 힘이 되었는지, 또 어떤 순간들이 서로에게 뼈아픈 상처를 남겼는지 등의 이야기가 각자의 서사로 남는 한 ‘연결’되기는 어렵다. 이 책은 지금껏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흩어져 존재하던, 현재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모아내는 작업이며, 이러한 작업이 앞으로도 계속 더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며 엮은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처럼, 당신과 나, 우리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들이 모여 더 거센 물결을 촉발하는 계기(moment)들을 마련하기를 바라 본다.

출판사 서평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어떤 페미니즘’과 ‘어떤 시간들’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첫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아주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썼다. 누군가 20~30대의 우리에게 들려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 페미니즘의 어떤 순간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 줄 거야.” 우리의 기획은 그곳에서 시작했다.
('서문' 중에서)

2015년, SNS를 가득 메운 페미니스트 선언(‘#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은 그 자체로 거센 물결이었지만, 뒤이어질 수많은 변화들의 ‘시작’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로서 각성한 ‘순간’(‘페미니스트 모먼트’)들을 지나 온 이들은, 사회 곳곳에 공기처럼 스며 있는 여성 혐오와 차별을 발견하고, 이에 항의하는 액션들을 이어 나갔다. 가부장제의 ‘코르셋’을 벗은 이들의 분노와 연대는 끝없이 이어져 왔고, 2017년 새해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페미니스트 선언에는,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페미니스트로 살겠다’는 다짐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온오프라인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싸워 승리를 거두는 짜릿한 순간들도 있지만, 각자의 삶터, 일터로 돌아왔을 때 부딪쳐야 하는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이러한 굴곡의 시간들을 다들 어떻게 ‘견뎌 오고’ 있는 것일까?
이 책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1990년대 중후반에 뜨겁게 페미니즘을 만나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고, 페미니스트로서 삶을 지속해 온 여섯 명의 ‘굴곡의 시간들’을 엮어 낸 책이다. 성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고, 조직 내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를 폭로하고(‘명예훼손’ 역고소에 대응하고), 다양한 게릴라 액션들을 기획하고, 이로 인해 때로는 ‘과격한 페미니스트’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2016~17년 현재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다만 ‘그때’에 머물러 있지 않다. 질문과 고민의 이동들, 몸담은 장소의 이동들, 그리고 때로는 부딪히고 깨지면서 자신의 페미니즘을 갱신해 왔던 과정들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이 글들에 박혀 있는 ‘나’라는 말이 우리 개개인으로 환원되지 않고 한 시대 안에서 우리가 놓여 있었던 어떤 자리에 대한 좌표로 읽혔으면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이 이야기들은 단절된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서로 연결된 우리의 역사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서문' 중에서)

최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연결’이다. 그만큼 페미니스트들, 여성들의 연결과 연대를 저해하는 요인들이 사회 곳곳에 배태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양한 세대와 정체성, 관심 영역을 교차하여 페미니스트들이 연결될 수 있으려면, 서로를 향해 더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어떤 순간들이 힘이 되었는지, 또 어떤 순간들이 서로에게 뼈아픈 상처를 남겼는지 등의 이야기가 각자의 서사로 남는 한 ‘연결’되기는 어렵다. 이 책은 지금껏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흩어져 존재하던, 현재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모아내는 작업이며, 이러한 작업이 앞으로도 계속 더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며 엮은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처럼, 당신과 나, 우리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들이 모여 더 거센 물결을 촉발하는 계기(moment)들을 마련하기를 바라 본다.

이 책은 여섯 편의 에세이와 저자들 간의 ‘기획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들의 질문을 환대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그럼에도 질문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던(권김현영), 남성 중심의 가족사와 세계사에서 지워져야 했던 할머니들에 대한 사유를 통해 ‘보편’의 기억에 틈입해 간(손희정), 오랜 시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기를 망설였지만 끝내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싶지 않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한채윤), 학생운동-여성운동-장애여성운동-퀴어운동으로 이어지는 궤적으로 자신을 추동한 의미 있는 타자들과 만나게 된(나영정), ‘페미니스트 집착’의 시기를 거쳐 ‘페미니스트 연결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깨달음에 이른(김홍미리), 100인위원회-언니네-살림의료생협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통해 페미니즘을 갱신하고 ‘계속, 끝까지’ 페미니스트로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전희경) 이야기들 속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기를, 내 삶과 연결되는 통찰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페미니스트,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존재들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은 괜찮은 걸까. 불행한 여자의 운명을 반복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나은 걸까. 이런 생각조차 하면 안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자의 호기심에 대한 오랜 저주가 나를 함정에 빠트린 것 같았다.
(/ p.18)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적으로 변해 가는 시간들,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시간들 …… 이 시간/순간들을 이 책은 ‘페미니스트 모먼트’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통해 구성된 사회는 여성들의 질문을 환대하지 않았다. 이 책을 여는 글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권김현영)는 호기심 많고 지적인 열망을 가졌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던 유년기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필자에게 ‘여성학’이란 질문을 환대하는 학문이었고,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던” 용감한 여성들의 말과 글은 ‘보약’과도 같았다.
이 책에 실린 모든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바로 세계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할머니들은 왜 가족사와 세계사에서 지워지게 되었는지(손희정), 성별에 따라 왜 다른 기대들이 주어지는지(한채윤), ‘민주주의, 평등’에서 배제된 이등시민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혐오의 대상이 되는지(나영정),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다는 말을 전하는 데에 어떻게 아무런 머뭇거림이 없을 수 있는지(김홍미리),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고자 하는 완고한 의지가 어떻게 ‘논리’로 통용되는 것인지(전희경). 이들은 공고한 가부장적 질서와 세계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는 살 수 없었고,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되돌아갈 길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페미니즘은 그렇게, “오랫동안 흐르지 못한 말, 얼어붙었던 질문들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된 시간들

레즈비언으로서 나를 긍정하자, 지금의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이고 굳이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음도 비로소 함께 긍정하게 되었다. …… 이 모든 해방감을 나에게 안겨 준 것은 바로 ‘페미니즘’이 아니던가.
(/ p.88)

페미니즘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알아 온 것들을 재인식하는 렌즈이고 ……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너는 여자로 살 필요가 없단다. 남자로 살 필요도 없지. 그냥 너는 너로 살면 된단다. 그게 바로 너란다!”라는 것만큼 강렬한 메시지를 나는 이제껏 받아 본 적 없다.
(/ p.166)

페미니즘을 처음 만났을 때, 많은 이들이 느끼는 희열은 바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민족해방이나 노동해방에 대한 학습은 받았지만 여성해방이나 성정치란 단어는 듣지 못했”던 대학 시절을 보낸 한채윤은 PC통신을 통해 접한 ‘페미니즘’과 ‘레즈비어니즘’ 덕분에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비로소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페미니스트이기보단,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싶지 않은]). 이 글은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레즈비언 정체성이 구분되어 사유되던 사건들로 인해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을 오랜 기간 망설이기도 하였으나,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싶지 않’다는 답을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을 촘촘히 엮어내고 있다.
아들 바라는 집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들로 태어나면 좋았을’, ‘사람이 되다 만’ 자식으로 여겨지며 유년기를 보내 온 김홍미리에게 스무살 넘어 만난 페미니즘은 마치 ‘동아줄’과도 같았다(「[페미니즘 고딕체’ 권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법]). “싱크로율 높은” 경험을 공유한 동시대의 여성들과 함께 분노하고, 함께 페미니즘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잘못은 내가 아니’라 차별적으로 구성된 사회였다는 깨달음은 그동안 부정해 온 자신의 존재를 복원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차별의 세계를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 낼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사회는 이제 겨우 힘겹게 살갗을 뚫고 나온 분노를 존중하기는커녕 여러 방식으로 기각하고 있다. 김홍미리는 ‘메갈리아로 쏟아진 비난’의 불공정성을 비롯하여 페미니스트들 간의 연결을 저해하는 요인들에 대해 짚는다.

사회, 역사 속에서 지워진 존재들에 대한 사유

페미니스트로서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보편’이라는 것이 기실은 다양한 차이의 배제와 몰살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 pp.52~53)

불온한 자리에 할당되어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이등시민 혹은 비국민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것 …… 되돌아봤을 때 이 앎이 내 인생에서 국가를, 젠더를, 소수자의 성격과 위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106)

여성, 소수자의 자리는 ‘보편’의 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페미니스트로서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보편의 자리로부터 배제된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할머니들]에서 손희정의 시선은 가족사에서 존재가 지워져야 했던 ‘일본인인 작은할머니’, 고통의 기억을 꺼내 놓음으로써 세계사 안에 새로운 자리를 찾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싸움,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의 카르텔에 맞서 싸우고 있는 강정과 밀양의 싸움으로 이동해 간다. 리베카 솔닛의 말을 빌리자면, ‘할머니들’은 우리의 세계를 존재하게 했지만 배제된 거대한 영향력이다. 필자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여성들의 역사’를 계속해서 쓰리라 마음먹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작업의 첫 페이지이다.
한편, 나영정은 「세계와의 불화, 피부의 연대」에서 간첩, 페미니스트, 소수자, 퀴어라는 ‘타자’의 자리에 대해 사유한다. 이들은 국가, 사회와 불화하며, ‘이등시민’으로 배제된 이들이다. 필자의 경험 속에서 “페미니즘은 각성된 타자가 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에서부터 느끼도록 만들었지만 그것을 회피하지 않을 용기와 불화하는 것이 괜찮다는 신뢰도 동시에 주”는 것이었다. 이 글은 타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만연한 가운데, 피부를 가까이 맞대고, 서로를 ‘오염’시켜 나가는 경험의 중요성을 짚는다. 필자는 학생운동-여성운동-장애여성운동-퀴어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해 간 과정들을 정리하며,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고 변하고 유연해진 몸’을 만들게 되기를 원한다.
지워진 존재들에 대한 사유는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적인 열망을 품었던 ‘그 많던 여학생들’과 ‘여성 논자들’, 열정적이었던 여성 활동가들과 이들이 조직에서 행해 온 숨겨진 노동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그 지워진 존재들에게 온당한 위치를 찾아 주려 했던 분투의 기록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갱신하며 계속된다

페미니즘 고딕체를 고수하던 때의 나는 홀로 단단했다. 홀로 단단해지는 일은 필연적으로, 연결된 이들과의 단절로 이어졌다.
(/ p.144)

정작 어려웠던 건, 어디에도 ‘페미니스트 1등급 인정’ 같은 승인 체계는 없다는 것, 홀로/스스로 자신의 페미니즘을 끝없이 갱신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 p.171)

‘굴곡의 시간’에 대한 고백도 빠질 수 없다. 이 책에는 더 세고, 날카롭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졌던 기억, 입장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대화를 더 진전할 수 없었던 기억, 분열의 기억들도 담겨 있다. 또, 페미니스트와 레즈비언 간의 긴장, ‘양성 평등’ 개념을 고수하며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배제를 묵인했던 진영과의 갈등 등 소위 ‘흑역사’들도 곳곳에 담겨 있다. 필자들은 이를 ‘흑역사’로 남겨 두지 않고, 페미니즘이 스스로 갱신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논쟁의 역사’라고 이름 붙인다.
전희경은 100인위원회-언니네트워크-살림의료생협으로 이어지는 몸의 이동을 ‘페미니즘 시즌 1~3’이라고 이름 붙인다([계속, 끝까지, 페미니스트로]). 이 글에는 쓰라린 기억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던 사건들과 그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뜨거운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서술하는 필자의 시선은 ‘같이 계속 운동하게 하는 힘’을 향해 있다. 그리하여 ‘몸으로 만드는 신뢰’와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소란을 참아 내는 동시에 의미 있는 소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 세계관을 다른 사람들과 뒤섞으면서도 타협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 그 속에서 페미니즘은 진화하고 넓어질 수 있다고 말이다.
김홍미리는 ‘페미니스트 집착’에 빠졌던, 나 홀로 단단했던 ‘페미니즘 고딕체’의 시기에 대해 고백하기도 한다. 지켜보고, 대화를 걸어 준 선배 페미니스트들의 신뢰와 애정, 그리고 ‘삶의 방식’으로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동료들과의 만남 속에서, 페미니즘은 함께 갱신해 가야 하는, 연결 속에서 그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된다.

연결될수록 힘이 되는 페미니즘

이 책의 후반부에는 필자로 참여한 여섯 명의 페미니스트들이 책의 내용을 기획하며 나눈 대화의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들은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이 ‘낙인’이 되던 암흑의 시기를 지나 오기도 했다. ‘기획 대담’ 안에는 서로가 보내 온 시간에 대한 공감, ‘과연 내가 이 굴곡의 시간들에 대해 쓸 수 있을까?’라는 주저와 망설임, ‘그럼에도 쓰면 좋겠다’는 응원과 지지, 현실에 대한 분석과 비판적 개입 등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여성 혐오와 페미니스트 혐오가 만연한 세계에서, 페미니스트 선언한 주체들이 ‘계속, 끝까지’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이야기들을 모아 보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운동은 변해 왔고 변하는 중이며 변할 것이라는” 감각을 발견하기를,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스트 주체들이 매번 맨 땅에서 시작하는 것만 같은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기를, 종과 횡으로의 연결을 모색하는 단초들을 발견하기를 바라 본다.

목차

서문 _ 우리들의 울퉁불퉁한 페미니스트 모먼트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_ 권김현영
운명이야
저주받은 호기심과 환대받지 못한 질문들
‘여류’라는 딱지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제대로 질문하는 법
우리에겐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가 있다

할머니들 _ 손희정
어떤 휴가
나의 할머니
페미니스트 모먼트
그리고, 오키나와
12·28 불가역적 합의
배봉기, 할머니
할머니들
마지막 고백

페미니스트이기보단,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싶지 않은 _ 한채윤
‘여성’이기에 주어진 다른 기대들
해방은 PC통신을 타고
계속되는 질문들
페미니스트 줄에 설래? 레즈비언 줄에 설래?!!
‘페미니스트’, 직업도 직위도 자격증도 아닌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싶지 않은 이들의 연대

세계와의 불화, 피부의 연대 : 페미니스트, 소수자, 퀴어 _ 나영정
통제 불가능한 각성된 타자
종북게이페미니스트의 시민권
소수자 되기: 비주류 여성 운동과 페미니즘
스킨십을 정치화하기
부딪히고 변하고 유연해진 몸으로

‘페미니즘 고딕체’ 권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법 _ 김홍미리
‘처음’에 대하여
문제는 내가 아니었다
처음 만난 페미니즘과 나의 페미니스트 집착
옳은 나와 틀린 당신들 : 단단한 페미니스트와 모자란 페미니스트들
2015년의 ‘영페미니스트’를 환영하며
낯선 질문을 향해 몸을 움직이는 페미니즘
‘진짜’ 페미니즘, ‘진짜’ 페미니스트라는 덫에 걸리지 않기

계속, 끝까지, 페미니스트로 _ 전희경
여성, 세대, 시대
분노의 조직화
“타임라인에 잠 못 이루는 페친들이 보인다”
100인위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물러설 수 없으므로 앞으로 간다
개인 네트워크 조직의 이상(理想)과 고통
우리는 누구였는가? : 피해자/당사자/운동가
여성들 사이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발명하기
‘마이 페미니즘’의 세대성과 비혼 선택의 정치성
정치적문화적 동질성의 힘과 칼: 액티비스트 조직의 ‘시간’과 ‘공간’에 대하여
몸으로 만드는 신뢰
계속, 끝까지, 페미니스트로

기획 대담 _ 다시, 새롭게, 페미니스트 모먼트

지은이 소개

본문중에서

우리는 각자의 ‘페미니스트 모먼트’에 대해서 썼다. 이는 한편으로는 어느 사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 페미니스트들의 자기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쌓였다는 것,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이처럼 기록할 수 있는 언어를 페미니스트 역사 안에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즐겁다. 이는 기념하고 축하할 만한 일이다.
(/ p.8)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던 용감한 여자들의 글은 나의 불안의 진정제였고 미래의 빛이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만난 여성학이 바로 호기심 어린 여자들의 질문을 환대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여성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내 불안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 p.21)

페미니스트로서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성(性)을 구성하는 다양한 조건들에 대해 인식한다는 것, 그러니까 계급과 연령, 신체적 조건, 민족, 성적 지향 등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인식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로서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보편’이라는 것이 기실은 다양한 차이의 배제와 몰살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 pp.52~53)

동성애의 반대말은 이성애가 아니고, 나는 이성애자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주의와 싸우는 중이란 것을, 그리고 기존의 언어로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기존의 언어의 쓰임새 자체에 의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등을 이렇게 부딪쳐 나가면서 배웠다. 또 그렇게 레즈비언으로서 나의 삶에 대해 처음과는 다른 자긍심이 점점 생겨났다.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다르게 읽기’를 해야 함을, 그것이 주는 즐거움과 감사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pp.82~83)

세계의 불평등과 적대, 인간의 정체성과 욕망, 관계 그리고 몸과 질병, 심지어 호르몬과 같은 신체적 조건에 대한 것까지. 이런 맥락에서 나에게 페미니즘은 인식을 위한 그 어떤 장벽도, 금기도 필요하지 않고 그렇다고 손쉽게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지도 않으며 언제나 내적인 부정을 통해서 새로운 공간이 창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인식의 틀이자 정치이다.
(/ p.103)

이 글은 내가 ‘처음’ 페미니스트 하기로 했던 날부터 바로 오늘의 나 사이에 있는 온갖 것들을 써야 하는 첫번째 시도다. 그래서 이 글은 더디고 두서없고 불안하다. 내가 그런 회상, 그런 해석, 그런 들여다보기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 문장을 적었다. 확신도 없이 이 글을 시작할 수 있는 건 ‘확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의 ‘메갈 이후 페미니스트’들이 겪고 있을 분노, 그리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 주고 싶다는 ‘희망’ 때문이기도 하다. 사라 아메드가 말한 ‘페미니스트 연결감’(feminist attachments)은 이런 때 더 능동적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 p.137)

페미니즘은 ‘아는 것’을 넘어 ‘하는 것’이고 ‘사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사는’ 일은 평생 이어지며, 어떤 면에서는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40대 중반이 된 나는 ‘할머니 페미니스트’가 된 나를 상상하고, 20대 페미니스트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려고 고민한다.
(/ p.211)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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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PC통신과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에 나우누리 여성 모임 '미즈'의 운영진을 맡았던 영페미니스트이다. 같은 시기에 게릴라 여성운동 모임을 표방한 돌꽃모임 멤버로 활동하며 '편협한 페미니스트들의 저열한 잡지'를 만들고 지하철 성추행 방지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여성주의 네트워크 [언니네]에서 편집팀장이자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하며 이화여대, 국민대, 성공회대 등 여러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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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대중문화를 연구했습니다. 대중문화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대중문화에서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 왔어요. 서로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성평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 이외에도 《페미니즘 리부트》를 썼고, 《유쾌한 섹스, 10대의 섹슈얼리티》 《그럼에도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모먼트》 등을 함께 썼습니다.

생년월일 1972~
출생지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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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퀴어문화운동과 성적소수자인권운동의 영역에서 20년째 활동중이다. 최근에는 종교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한채윤의 섹스 말하기]가 있고,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등 다수의 편·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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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계속 옮겨 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지금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일들을 해왔다. 위험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의지와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 퀴어 활동가로서 장애여성공감,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말과활" 편집위원회, 연구모임 POP 등에 몸담고 있다. 최근에 쓴 글로 [퀴어한 시민권을 향해], [치안국가에 맞서는 성정치에 대한 메모], [재생산권리는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공편저로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공저로 [전환극장], [남성성과 젠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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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연구 활동가다. 누구 말대로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착각으로 20년을 살았다. 자존감은 낮았고 자만심은 하늘을 찔렀다. 페미니즘을 만나고 나서 자존감은 높아졌고 자만심은 낮아졌다. 덕분에 20살 이후의 20년은 매일이 새로웠다. 매일 똑같다고 여겼던 것 혹은 똑같아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 각기 다른 질서와 리듬으로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차별은 당연하지 않았고, 혐오는 어쩔 수 없는 정동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사라질 수 있다고 믿고, 그날을 기다리며 조금씩 움직이며 산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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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가부장제와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나이 문제를 연구하고 의료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인생이 또 어디로 흘러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계속 페미니스트 친구들 틈에서 진화하는 영혼으로 살고 싶다. 공저로 [성폭력을 다시 쓴다: 객관성, 여성운동, 인권], 저서로 [오빠는 필요 없다: 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자들 이야기]가 있고, 나이와 젠더에 관한 책을 쓰는 중이다. "공동체 성폭력 ‘이후’,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다", "1960~1980년대 젠더-나이체제와 ‘여성’ 범주의 생산", "마을공동체의 ‘공동체’성을 질문하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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