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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

원제 : Stupid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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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돌아보는 글쓰기

    해체론과 페미니즘을 아우르고, 철학과 문학비평, 자전적 글쓰기를 넘나드는 파격과 유희의 사상가 아비탈 로넬. 자크 데리다와 폴 드 만을 잇는 해체론의 계승자이며 독특한 글쓰기로 현대 문화와 문명을 사유해온 학계의 이단아 로넬의 대표작이자 국내 첫 번역서 [어리석음]이 출간되었다. 번뜩이는 지성과 촌철살인의 풍자로 근대 이후를 수놓은 철학과 문학의 거인들을 거침없이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동시대 사유의 전위를 만난다. 이성의 세계에 백치미와 비웃음으로 치명적 균열을 내는 어리석음, 영리한 자들이 그리도 감추고 싶어하던 사유의 원점! 이 책은 '어리석음'이라는 특정한 주제에 관한 글쓰기인 동시에 글쓰기 자체의 의미를 묻는 글쓰기를 지향한다. 또한 어리석음은 무엇인가를 해명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끔 하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추천사

    "로넬은 언제나 '나의' 형이상학, 내 인생의 형이상학, 내가 글쓰는 모든 것의 '뒷면'이었다."
    - 자크 데리다

    "로넬이 걸어가는 남다른 길은 정확히 차이의 길이다. 그것은 즐겁고, 어렵고, 긍정적이고, 아이러니하다."
    - 주디스 버틀러

    "지식의 억압된 조건들에 관한 문제에서 최전선에 있는 사상가인 아비탈 로넬은 특유의 니체적 대담성으로 철학의 무인지대라 할 어리석음을 파헤친다."
    - 장뤽 낭시

    "이 시대 학계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대담하고 놀라운 사상가의 한 사람."
    - 그레고리 울머

    "로넬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재치와 영민함, 담대함으로 무장한 채, 지성이 자신의 이질적인 동업자인 어리석음과 만나는 그 가느다란 줄 위에 발을 올려놓는다."
    - [북포럼]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천천히 깨닫는 사람

    1. 어리석음의 문제
    왜 우리는 지방에 머무는가

    2. 어리석음의 정치학
    무질, 현존재, 여성 공격, 그리고 나의 피로감

    3. 시험의 수사학
    키르케고르 위성

    4. 백치의 실종과 귀환
    워즈워스 위성
    [백치 소년]
    칸트 위성
    우스꽝스러운 철학자의 형상, 혹은 나는 왜 이리 유명한가


    아비탈 로넬 연보
    해설
    찾아보기

    타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로넬은 말한다. "너는 어리석다"


    어리석음은 '사유의 원점'을 이루는 존재의 거대한 구멍이다.
    인간 지성의 비밀을 담은 이 블랙홀을 중심으로 루소, 괴테, 횔덜린, 니체, 슐레겔, 무질, 플로베르,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바타유, 프로이트, 벤야민, 하이데거, 라캉, 들뢰즈, 데리다, 폴 드 만 등이 성좌星座를 이루고 있고,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저자는 세 개의 위성―키르케고르, 워즈워스, 칸트―을 하늘에 띄운다.

    사유의 전위, 학계의 이단아 '아비탈 로넬'

    자크 데리다가 "내 인생의 형이상학"이라 칭하고, 철학자 장뤽 낭시가 "최전선의 사상가"로 불렀으며, 페미니즘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가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 빗대어 "즐거운 학자"라 명명하고, 언어학자이자 매체이론가 그레고리 울머가 "동시대 가장 독창적이고 대담한 사상가"라 격찬한 아비탈 로넬. 버틀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미국 인문학계의 스타인 로넬은 해체론의 창조적 계승자로 손꼽히는 철학자, 비평가이며, 관념론과 해석학,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문학과 철학, 대중문화와 기술사회, 기독교와 이슬람 문제 등 문명사의 폭넓은 사안을 숙고해온 우리 시대의 독창적 사상가다.
    로넬이 자신의 이름을 학계에 처음 알린 것은 데리다의 영어권 번역자로서였다. 이스라엘인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온 로넬은 베를린 자유대학에 유학해 야콥 타우베스에게 해석학을 배우고 돌아와 1979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독일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해 한 학술대회에서 평생 스승이 될 데리다를 만나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고 이에 데리다가 집요하게 이름을 묻자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 대답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이 만남을 계기로 로넬은 데리다의 저술들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에 소개하기 시작한다.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 비교문학과에 자리를 잡은 로넬은 [받아쓰기: 신들린 글쓰기](1986), [전화번호부: 기술, 정신분열증, 전자 연설](1989), [마약전쟁: 문학, 중독, 조증](1992), [유한성의 악보: 밀레니엄의 종말에 관한 에세이](1994) 같은 문제작들을 잇달아 펴냈고 낭시, 버틀러, 엘렌 식수, 캐시 애커 등과 긴밀히 교류하며 문화운동과 페미니즘에 헌신했다. 1995년 뉴욕 대학으로 옮긴 뒤에도 독문과와 비교문학과의 종신교수로 재직하면서 해체철학을 문화현상의 분석에 활용하고, 특유의 페미니즘 시각에 기반을 둔 독특한 철학서들을 펴내어 학계의 이단아로 불리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로넬은 세계적인 학자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한다. 2002년 주저 [어리석음](2002)을 펴냈고, [테스트 충동](2007), [패배한 자식들: 정치학과 권위](2012) 등을 통해 문명비판의 사유를 지속하고 있다. 2008년 제자 다이앤 데이비스의 편집으로 논문 선집 [위버리더?berReader]가 간행되고, 2009년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아비탈 로넬에 따르면Selon... Avital Ronell'이라는 주제의 컨퍼런스가 개최되어 베르너 헤르초크, 버틀러, 낭시 등이 대담에 참여했다. 같은 해 다이앤 데이비스의 주도로 로넬의 사유를 소개해 정리한 책 [로넬 읽기]가 발간되며, 낭시, 버틀러, 베르너 하마허, 로런스 리클스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타자 앞에서 나는 어리석다"

    2002년 출간된 [어리석음]은 아비탈 로넬의 사유가 가장 원숙기에 이른 시점에 쓰였고, 저자가 걸어온 학문적 궤적이 고스란히 집약된 대표작이다. 이 책은 그 구성에서부터 파격적이다. 얼핏 보기엔 횔덜린, 무질, 슐레겔, 루소 등 '어리석음'을 논한 서양의 다양한 저작을 새롭게 읽는 형식이지만 어떤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거나 일정한 주제에 따라 묶여 있지는 않다. 여기에 핀천, 도스토옙스키, 워즈워스의 작품들에 대한 비판적 읽기가 더해지고, 칸트, 키르케고르, 워즈워스에 대한 명상은 '위성satellite'이라는 명칭 아래 별도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중간중간 로넬 자신의 실존 체험과 관련된 자전적 이야기가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특히 서론 말미에 부록처럼
    삽입된 저자의 '일기'(61~63)라든가 폴 드 만과의 학문적 인연(193~195) 같은 사적인 이야기들이 그렇다.
    인간 지성계라는 우주 공간에 루소, 괴테, 횔덜린, 니체, 슐레겔, 무질, 플로베르,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바타유, 프로이트, 벤야민, 하이데거, 라캉, 들뢰즈, 데리다, 폴 드 만, 그리고 저자 자신이 저마다 하나의 행성처럼 (겉보기엔) 무질서하게 퍼져 있고, 그 중간에 '어리석음'이라는 블랙홀 또는 웜홀이 존재의 구멍처럼 자리해 시간여행을 이끌며, 이 사유의 우주 공간을 관측하기 위한 세 개의 위성(칸트, 키르케고르, 워즈워스)이 띄워져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책에서 로넬은 '어리석음'에 빛을 비추어 철학적으로 해명할 의도가 전혀 없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듯, "억압된 사유의 영역에 빛을 비추자는 주장들은 유보되어야" 하며, "너무나 쉽게 광휘와 빛나는 진리의 상징들에 휩싸여온 지식 영역과 확연히 다른 편에 다다르기 위해…… 이제부터 어둠 속으로 길을 헤쳐나가고 암흑과 대면"(6)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무지無知, 지식/지혜의 결핍과 관련이 있다. 어리석음은 지식 이전의 순수한 상태와는 다르며 지식을 전제하기에 어리석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지식/지성은 어리석음을 억압하고 타자화함으로써 성립한다. 푸코가 갈파했듯, 비이성/광기를 분류하고 통제함으로써 '이성/정상'의 체제가 구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때의 지식/지성은 '안다고 가정된 주체sujet suppos? savoir', 코기토적 주체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앎의 확실성, 주체의 확실성이 불확실해질 때 어리석음에 씌워진 억압과 차별의 멍에는 벗겨진다. 초자아에 억압돼 있던 무의식의 봉인이 풀리듯, 안다고 가정된 주체의 허약한 실상이 드러나는 순간 앎의 세계는 거대한 미궁에 빠진다. 존재의 거대한, 영원한 구멍이 실체 아닌 실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진정한 앎의 시작이다. 이 경계지점에서 취해야 할 윤리적 태도를 로넬은 이렇게 명시한다. "타자 앞에서 나는 어리석다."(103)
    로넬이 이 책에서 펼쳐 보이는 '어리석음'의 만화경은 프로이트와 니체가 이성에 눌린 어둠의 봉인을 푼 이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장 이후 해체된 인간 지성의 풍경에 다름 아니다.

    두 돌파의 사상가[프로이트, 니체]는 더 어두운 광채를 요청했고, 가차 없는 비틀거림의 행보, 무의식의 으르렁거림, 그리고 암흑 언저리의 끊임없는 휘청거림에 우리가 대처할 수 있게 했습니다.
    (/ p.6)

    브레히트는 지능은 유한하지만 어리석음은 무한할 수 있다고 말했고, 아인슈타인은 "우주와 어리석음, 이 두 가지는 무한하지만, 우주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실러는 어리석음이 무한성의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역설적이지만 신에게 한계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본다. "어리석음과 싸우는 과정에서는 신 자신들도 당혹스러워한다."
    (/ pp.122~123)

    삶을 구성하는 근원적 공백

    로넬에게 어리석음은 "모더니티(근대성)의 지울 수 없는 표식으로서 우리의 증상"이다. 어리석음은 주체가 처한 근원적 굴욕의 상황을 나타내며, 우리가 떠안고 살아가는 "일상의 트라우마"(32)다. 우리는 모두 어리석음의 산물이지만 어리석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어리석음은 트라우마의 작용처럼 우리 실존의 근본구조이며, 특정한 지식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무지야말로 가장 근원적 무지를 이룬다.
    우리가 어리석은 존재인 것은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로넬이 보기에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인간의 상황은 진정한 앎의 기반이 된다. 허먼 멜빌이 [빌리 버드]에서 드러내는 "이해의 공백"(164), 폴 드 만이 몰두해 있는 "모든 지식의 완전한 공백"(187), 도스토옙스키의 '백치'가 암시하는 "신성한 공백"(338), 워즈워스의 시 [백치 소년]를 두고 "공백을 그려내는 존재의 떨림"(424)이라 말할 때의 그 공백. 로넬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이 근원적 공백의 표상이며, 라캉의 '그것(사물)', 즉 상실된 대상으로서의 절대적 타자와 가까운 그 무엇이다. 이 책 전체는 이 인식 불
    가능한 공백을 중심으로 저마다의 궤도를 따라 회전하는 사유의 행성들로 채워져 있다. 이 은하계의 중심에는 태양과 같은 빛이 아니라 블랙홀 같은 텅 빈 어둠이 존재하는 셈이다.
    로넬은 서양철학이 이 거대한 공백으로서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억압하고 왜곡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어리석음에 관한 철학적 사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음의 사유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넬은 서양철학이 전제하는 진리 관념의 허구성을 비판한 니체와 그의 사유를 이어받아 해체의 사유를 실천한 데리다를 계승한다.
    로넬의 성찰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하이데거, 루소, 키르케고르, 슐레겔, 칸트, 프로이트, 그리고 폴 드 만에 이르는 어리석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계보 및 그 한계에 대한 비판. 둘째, 횔덜린, 핀천, 무질, 도스토옙스키, 워즈워스를 통해 어리석음을 미학적 범주로 다루는 사유의 흐름에 대한 비판. 셋째, '여성'이자 '철학자'인 로넬 자신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어리석음에 대한 고백과 '타자'에 대한 어리석음의 윤리 모색.
    [어리석음]이 추구하는 궁극적 입장은 어리석음을 무지의 표상으로 억압하며 성립한 서양철학의 사유 일반에 대한 정치적 비판인 동시에 철학적 논증의 타자로 배제되어온 문학적(여성적)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한 옹호로 요약할 수 있다. 철학은 무지와 창조적 글쓰기를 어리석은 타자로 정립함으로써 자신의 근원적 어리석음을 망각해온 역사에 다름 아니다. 이 책 [어리석음]은 어리석음에 관한 왜곡된 사유를 해체하는 작업인 동시에 창조적 글쓰기를 통해 어리석음이라는 근원적 공백을 끌어안고 나아가려는 하나의 실천이다.

    로넬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마치 우리의 몸에 들어와 우리를 구성하고 있으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장 이질적 존재, 우리 삶을 구성하는 근원적 공백空白, 그러나 결핍缺乏은 아닌 일종의 휴지休止caesura를 지칭한다. 결핍이 아닌 이유는 이 공백이 결코 부정否定의 형태로 표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로넬은 어리석음이 결핍이 아니라 차라리 (라캉이 말하는) '그것Das Ding'에 가깝다고 말한다. 즉 그것 없이는 어떠한 앎도 사유도 삶도 가능하지 않은 그 무엇인 셈이다. 그녀에 따르면 서양철학은 이 근원의 어리석음을 공백으로 사유하지 못하고 특정한 표상으로 억압해온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단호하게 해체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이 어리석음에 '관한' 사유가 아니라 어리석음'의' 사유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자 해설' 중에서/ p.528)

    현대의 지성들이 펼치는 깊이 있는 사유와 통찰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우리 시대의 명저


    01. [증여의 수수께끼](모리스 고들리에)
    02~03. [진리와 방법 1, 2](한스게오르크 가다머)
    04. [역사―끝에서 두번째 세계](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05. [죽어가는 자의 고독](노르베르트 엘리아스)
    06. [루됭의 마귀들림](미셸 드 세르토)
    07. [저자로서의 인류학자](클리퍼드 기어츠)
    08. [검은 피부, 하얀 가면](프란츠 파농)
    09. [전사자 숭배](조지 L. 모스)
    10. [어리석음](아비탈 로넬)
    11. [기록시스템 1800~1900](프리드리히 키틀러)

    본문중에서

    이 책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태양, 즉 로고스를 지향했던 위세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발견되지 않았거나 억압된 사유의 영역에 빛을 비추자는 주장들은 당분간 유보되어야 합니다. ……너무나 쉽게 광휘와 빛나는 진리의 상징들에 휩싸여온 지식 영역과 확연히 다른 편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엄청난 분량의 빛 은유에 의존하는 대신 이제부터 어둠 속으로 길을 헤쳐나가고 암흑과 대면해야만 합니다.
    (/ p.6)

    어리석음은 블랑쇼적 의미의 무효성nullity, 즉 전적으로 쓸모가 없는 것, 허무에 이르는 그 무엇에 더 가깝다. 그런 무효성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작품이, 그 작품의 본질적 가능성이 거기서 발원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 p.60)

    순결한 존재는 천진한 백치상태로 점철된 은총을 뜻하는바, 현재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채 타자의 담론과 미래의 약속으로 충만해 있는 순수한 인물이다.
    (/ p.123)

    완전한 굴복으로서의 사랑은 함께함being-with이 어리석게 넘쳐흐를 통로를 열어준다. 사회적 지성과 분별 있는 활동을 명문화하는 법은 언어를 창조하는 사랑의 장면들이 진행되는 동안 중지된다. 이는 또한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 우리는 진짜로 무너지고 터무니없이 멍청해야만 한다는 것, 또는 어리석음이란 오직 사랑만이 허가하고 해방시킬 힘을 지닌 인간 정서의 억압된 기반이라는 것을 뜻한다.
    (/ p.150)

    판단력의 결핍이 아무리 형편없는 판단일지라도 적어도 하나의 판단은 내려졌음을 함축하듯, 판단과 판단력의 결핍을 나누는 경계에는 종종 빈틈이 많다. ……판단의 행위는 "거의 총체적 이해 불가능성"으로 정식화되는 동시에 연기延期되면서, 가능한 이해의 조건들을 마련한다.
    (/ p.189)

    바타유는 철학을 발가벗기고 철학의 의복을 찢어버린 노출증 환자였다.
    (/ pp.245~246)

    상처받고 억눌린 자들의 삶은 일종의 망각 불가능성이라는 주형에 새겨진다. 돌이킬 수 없이 짓밟히지만 어떻게든 하나의 가명이나 유령 같은 환유에 의해 표상되는 이 삶은 기념비나 회상이나 증언이 없는데도 망각이 불가능해진다.
    (/ pp.272~273)

    니체가 기쁨에 겨워 춤추는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공포에 질려 기절한다. 이는 기질 혹은 심지어 기온, 기후의 문제임에 분명하고, 두 사람 모두 이 문제에 매우 민감했다.
    (/ p.280)

    데리다가 지적했듯이, 위조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진리 혹은 기만의 문제가 제기되기나 할까?
    (/ p.317)

    국외자이자 누추한 그[미쉬킨]는 신의 가면은 아니지만 신의 특사로 도래한다. 가난한 자, 비천한 자, 국외자, 가장 비참한 국외자의 출현 뒤에 숨어 있는 손님이 신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겠는가? 데리다가 주장하듯, 이 고전적 구성은 그야말로 방문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도착을 알리면서 환대의 기원을 가리킨다.
    (/ p.320)

    초청된 바 없는 타자성의 한 측면을 구현하는 국외자가 없다면, 즉 다른 곳에서 온 이 특사가 없다면, 신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p.321)

    워즈워스가 가르쳐주었듯 비유로서의 언어는 신체처럼 언제나 결핍상태이다.
    (/ p.418)

    시는, 공백을 그려내는 존재의 떨림으로서, 시는 백치 소년이다.
    (/ p.424)

    오직 칸트 이후에야 철학과 문학을 구분하는 일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필수사항이 되었다. 칸트는 실패한 작가로 자신을 표상했고 그렇게 자기 저작에 서명했다.
    (/ p.431)

    하이네와 니체가 상기시키듯 칸트 이래로는 쭉 철학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형편없이 글을 써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계약의 일부, 즉 칸트 텍스트의 볼썽사나운 정언명령이 되었다. 칸트의 유산 덕분에 진정한 철학자는 이제부터 형편없는 글쟁이가 되어야만 하거나, 아니면 수사적으로 늘어지고, 구문에 있어 밋밋하며, 어법의 측면에서는 궁핍해져야만 할 것이다.
    (/ p.433)

    이론에 대한 수많은 공격이 드러내듯(혹은 감추려고 하듯) 칸트 이래로 아름다운 글쓰기는 여성화되었고 동성애화되었다.
    (/ p.433~434)

    이삭은 트라우마적 반복의 형상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보다 먼저 땅을 팠던 땅에서 구덩이를 팠으며, 어머니 대지에 구멍을 내고 이미 아브라함의 표식이 붙은 구덩이들을 만들어냈다. 아들은 땅을 파서 텅 비워내면서 마치 무언극을 담당한 듯 구덩이를 재생산하는데, 그 무언극의 의미는 나중에 햄릿을 통해 서구의 의식에 각인된다. ……순교자의 위엄을 박탈당한 채, 신과 인간 사이의 유례없는 접촉을 확립하는 공을 빼앗김으로써, 이삭은 공허한 반복이라는 트라우마의 지대에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을 진리의 보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파며 살아갈 운명에 처해졌다.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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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탈 로넬(Avital Ronell)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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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체론의 창조적 계승자로 손꼽히는 미국의 철학자, 비평가, 번역가. 관념론과 해석학,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문학과 철학, 대중문화와 기술사회, 기독교와 이슬람 문제 등 문명사의 폭넓은 사안을, 독특한 글쓰기를 통해 숙고해온 우리 시대의 독창적 사상가다.
    1952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로넬은 이스라엘 외교관이던 부모를 따라 네 살 때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다. 미들베리 대학을 졸업한 뒤, 베를린 자유대학에 유학해 야콥 타우베스와 한스게오르크 가다머가 운영하던 해석학연구소에서 수학한다. 1979년 스탠리 콘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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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19세기 미국문학과 해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성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해체론과 문학의 문제] [일상의 정치성과 욕망], 공저로 [영미문학의 길잡이 2] [미국문학사], 공역서로는 [이론 이후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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