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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양장]

원제 : Herfsttij der Middeleeuw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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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중세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집대성한
    요한 하위징아의 대표작

    중세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집대성한 요한 하위징아의 대표작
    [중세의 가을], 전문번역가 이종인의 문장으로 새롭게 피어나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본격화되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6세기경부터 중세의 유럽은 서서히 기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11세기경 이민족들의 지속적인 이동과 침입이 끝나고 이슬람 세력의 팽창이 주춤해져 유럽은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이후 13세기까지 부흥기를 맞이한다. 하위징아는 이 책에서 전성기를 지나 노쇠해지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단계인 14, 15세기를 ‘가을’이라고 규정했다. 전성기를 지나 쇠락해가는 시대라는 의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로 나아가는 시대’라는 의미로 ‘가을’인 것이다. 중세는 ‘대조’의 시대다. 빈자와 부자, 도시와 시골, 빛과 어둠과 같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들이 공존했고, 중세는 그 두 극단을 오가면서 역사를 만들어갔다.
    역사에 있어서 암흑기라고 잘못 알려진 중세는 그 나름의 소박한 삶의 양식과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환상 등을 통하여 이미 그 속에 화려한 인본주의의 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가을에 열매를 맺듯, 자연스레 르네상스와 근대라는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하위징아는 거시적 접근 이외에도 기사도 정신과 성대한 입성식, 기마 시합, 종교적 신비주의와 금욕적 경건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추천사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하위징아의 투철한 통찰은 학자들에게만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보편적 인간의 관심사들을 폭넓게 추적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에 대하여 평소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또 이해하게 해준다.
    - 멜리사 베네츠 /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20세기 역사학 고전이고, 그것도 가장 위대하고 매혹적인 저서들 중 하나이다. 중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이고,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 프랜시스 해스켈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목차

    옮긴이의 말
    네덜란드어 판 서문
    독일어 번역본 서문
    영역본 서문

    제1장 중세인의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
    양극단의 선명한 대비 / 처형의 행렬 / 순회 설교자들의 위력 / 눈물과 분노의 의식 / 중세 생활의 동화적 요소 / 군주들의 드라마 같은 삶 / 유혈 복수의 모티프 / 파당의 발생 / 중세인의 잔인한 정의감 / 자비와 용서의 결핍 / 죄악의 뿌리인 오만과 탐욕 / 중세인 마티외의 인생 전변

    제2장 더 아름다운 삶에 대한 갈망
    휴머니스트들: 자신의 시대를 칭송한 첫 번째 집단 / 데샹과 메쉬노의 우울한 시들 / 종교적 구원이 없는 멜랑콜리 /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세 가지 길 / 세 가지 길이 실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 / 귀족의 생활과 이상의 형식 / 꿈을 연출하는 귀족 생활 / 인생의 형식과 고상한 게임 / 사회적 관계의 형식화 / 형식의 위반은 용납되지 않는다 / 표준화된 형식의 필요성 / 사망 소식의 전달 방식 /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삶 / 미뇽주의

    제3장 영웅적인 꿈
    기사 계급과 부르주아 / 중세 사회와 제3계급 / 평민들의 고통 / 미덕과 평등의 두 사상 / 중세의 두 기둥: 기사와 학자 / 다양한 연대기 작가들 / 르네상스인의 명예 의식 / 기사도와 명예의식 / 아홉 명의 남녀 영웅들 / 기사들의 모범, 부시코 원수 / 장 르 뷔에이와 [르 주방셀] / 기사도의 금욕 요소와 에로스 / 로맨스는 남성적 상상력의 결과물 / 중세 후기의 문화생활은 사회적 놀이 / 토너먼트의 에로틱한 요소 / 15세기의 파 다르므 / 기사단의 발생과 기원 / 황금양털 기사단과 기타 기사단 / 기사 서약과 놀이 요소 / 갈루아와 갈루아즈 / 잔인한 에롱(왜가리)의 맹세 / 유명한 페장(꿩)의 맹세 / 확산되는 고상한 생활의 형식 / 기사도와 십자군 운동 / 군주들의 1대 1 결투 / 사법적 결투 / 기사도와 현실의 괴리 / 전쟁을 미화하는 기회들 / 문학, 축제, 놀이의 영역으로 후퇴한 기사도 / 귀족-군인 생활의 재정적 측면 / 생활 형식과 실제 생활의 부조화 / 단순한 생활의 찬양 / 프랑스 휴머니스트들의 궁정 생활 비난

    제4장 사랑의 형식들
    에로틱 문화의 바이블, [장미 이야기] / 문학, 패션, 예의범절 / 결혼의 에로틱한 메타포 / 에로스의 형식 / [장미 이야기]의 두 저자, 기욤 드 로리스와 장 드 묑 / 기독교에 저항하는 성적 모티프 / [장미 이야기]에 대한 찬반양론 / 사랑의 궁정 / 사랑의 형식과 실제 생활 / [진정한 사건의 책]: 황혼과 아침의 사랑 / [라 투르 랑드리 기사의 책] / 사랑의 놀이 요소 / 궁정 축제의 전원적 요소 / 여자들의 반격

    제5장 죽음의 이미지
    죽음의 세 가지 주제 / 먼지와 벌레 / 부패와 부패 방지 / 당스 마카브르 / 최후의 네 가지 것 / 파리의 이노상 공동묘지 / 죽음의 순기능에 대한 외면

    제6장 성스러운 것의 구체화
    이미지에 대한 지나친 의존 / 피에르 다이이의 개혁 주장 / 하느님과의 황당한 친밀성 / 성과 속의 혼재 / 성스러움과 에로스의 위험한 접촉 / 사교의 장소가 된 교회 / 성스러움과 욕설의 결합 / 종교를 거부하는 사람들 / 성인 숭배와 교회의 입장 / 중세의 요셉 숭배 / 성인들의 특화된 기능 / 하느님을 대신하는 성인들

    제7장 경건한 퍼스낼리티
    종교적 긴장의 강약 / 경건함과 죄악의 대비 / 과시욕과 신앙심 / 변함없는 종교적 낭만주의 / 샤를 드 블루아의 신앙심 / 어린 성자 피에르 드 뤽상부르 / 루이 11세의 성물 수집벽 / 카르투지오회 수도사 드니

    제8장 종교적 흥분과 판타지
    2원적 형태의 종교적 정서 / 각국의 데보티오 모데르나 / 일반 대중의 과장되고 위험한 신앙심 / 처녀성의 양면적 특성 /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적 표현 / 술취함과 배고픔의 비유 / 종교적 판타지의 부작용

    제9장 상징주의의 쇠퇴
    흐릿한 거울의 비유 / 상징과 상징되는 것 / 실재론과 유명론 / 상징주의의 기능 / 상징의 도식화 / 상징과 알레고리 / 알레고리의 진부한 의인화 / 심리 게임이 되어 버린 상징

    제10장 상상력에 대한 불신
    사물과 생각을 결합시키는 습관 / 개념과 맥락의 분리 / 지옥의 상상과 실천 / 죄악은 실체를 가지고 있다 / 상상력에 대한 불신 / 하느님에 대한 신비적 체험 / 하느님의 본질은 어둠 / 전례와 상상의 관계 /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 아마 네스키리

    제11장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사고방식
    삶 속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 / 무외공 장의 루이 도를레앙 암살 / 속담의 기능과 도덕성 / 결의론과 놀이 / 형식주의와 경제적 이해 / 후기 중세인의 경박성 / 연대기 작가들의 독특한 부정확성 / 놀이와 진지함의 혼재 / 중세인의 미신을 바라보는 태도 / 마녀 사냥: 마법과 이단의 혼동 / 15세기에 이미 시작된 마녀 허구론

    제12장 생활 속의 예술: 반에이크의 예술을 중심으로
    그림과 문학의 차이 / 중세의 미술은 응용 미술 / 일상생활과 연결된 그림 /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혼재 / 축제의 기능 / 축제와 화가들의 역할 / 슬뤼테르의 예술 / 군주들의 입성 행렬 / 반에이크의 그림 <아르놀피니의 결혼> / 궁정 생활과 데보티오 모데르나 / 위대한 그림의 후원자들 / 15세기 그림의 특징 / 반에이크 형제의 자연주의 / 르네상스의 미술 사상 / 중세의 음악 사상 / 빛과 아름다움 / 의상의 색깔들

    제13장 이미지와 말: 그림과 글의 비교
    중세와 르네상스는 거울 이미지 / 중세 후기의 화가와 시인 / 15세기의 실패한 문학 / 반에이크의 <성모 마리아>와 <수태고지> / 15세기 문학의 무제한적 꾸미기 / 디테일이 우수한 15세기 미술 / 무제한적 꾸미기의 구체적 효과 / 15세기 산문의 대가 샤틀랭 / 선량공과 대담공의 부자 갈등 / 대화 처리가 뛰어난 프루아사르 / 문학과 미술의 자연 묘사 / 새로운 것이 없는 15세기 문학 / 사상의 결핍을 가려 주는 수사학 / 서정시의 형식을 확립한 마쇼 / 풍자와 조롱에 강한 15세기 문학 / 문학의 브뢰헬적 요소 / 문학 속의 아이러니 / 우울증이 스며든 에로티시즘 / 누드의 문제 / 정적인 하모니와 동적인 하모니 / 서로 구속하는 이미지와 아이디어 / 몰리네의 진부한 말장난

    제14장 새로운 형식의 등장: 중세와 르네상스의 비교
    르네상스와 중세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 소수의 라틴어 학자로 시작된 휴머니즘 /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 프랑스 휴머니즘과 이탈리아 휴머니즘 / 고전주의의 외피 아래에 깃든 중세의 정신 / 문학적 이교도주의 / 중세의 생활에서 들려오는 르네상스의 소리

    주석
    참고문헌
    용어·인명 풀이
    작품 해설 | 중세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요한 하위징아 연보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우리가 과거에 대해서 눈길을 돌리는 것은 주로 새로운 것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후대에 와서 찬란하게 빛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생활 형식이 어떤 경로로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보아 후대의 시대를 밝혀 주는 데 도움이 되는 관점에서만 과거를 살펴본다. 그리하여 근대 문화의 새싹들에 대한 근원을 찾아내려는 목적 아래 중세 시대가 철저하게 연구되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연구되었는지 ‘중세의 지성사는 곧 르네상스의 이정표이며 그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라는 견해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한때 경직되고 죽어 버린 시대로 여겨졌던 중세의 도처에서, 우리는 미래의 완성품들을 가리키는 새싹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새롭게 발전하는 생활양식을 탐구하다 보면, 역사나 자연이나 죽음과 탄생의 영원한 순환 과정이라는 사실을 손쉽게 잊어버린다. 낡은 사상의 형식들은 죽어 버리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토양 위에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와 꽃피기 시작하는 것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세상이 지금보다 5백 년 더 젊었을 때, 모든 사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한 윤곽을 갖고 있었다. 즐거움과 슬픔, 행운과 불행, 이런 것들의 상호간 거리는 우리 현대인들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먼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경험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새겨지는 슬픔과 즐거움처럼 직접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성격을 띠었다. 모든 사건과 모든 행위는 특정한 표현을 가진 형식으로 정의되었고 엄격하고 변함없는 생활양식을 엄숙하게 준수했다. 인간 생활의 큰 사건들인 탄생, 결혼, 죽음은 교회의 성사 덕분에 신성한 신비의 광휘를 그 주위에 두르고 있었다. 이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건들, 가령 여행, 노동, 순례 등도 다수의 축복, 의식, 격언, 규약 등을 동반했다.
    (/ p.37)

    중세에는 여름과 겨울의 대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했던 것처럼, 빛과 어둠, 정적과 소음의 차이도 아주 확연했다. 현대의 도시는 그와 같은 순수한 어둠과 진정한 정적을 더 이상 알지 못하며, 단 하나의 자그마한 불빛이나 먼 곳에서 들려오는 외로운 고함소리의 위력을 알지 못한다. 이런 지속적인 대비로부터, 그리고 모든 현상이 중세인의 마음에 새겨놓는 다채로운 형식들로부터, 중세인들의 일상생활은 치열한 충동과 열정적인 암시를 받았다. 그런 치열함과 열정은 거친 광란, 갑작스러운 잔인함, 부드러운 정서 등의 동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드러나는데, 중세 도시의 생활도 그런 격렬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어떤 한 소리는 언제나 바쁜 도시 생활의 시끄러운 소음을 제압했다. 방울들의 딸랑거리는 소리가 아무리 요란해도 그 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결코 혼동되지 않았다. 그것은 잠시 동안 모든 것을 질서정연한 세계로 들어 올렸는데, 바로 교회의 종소리였다. 종소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상하면서 선량한 정령精靈의 역할을 했고, 그 친숙한 목소리로 슬픔 혹은 즐거움, 평온 혹은 불안, 집회 혹은 격려 따위를 선언했다. 중세의 사람들은 그 종을 ‘뚱뚱한 자클린(la grosse Jacqueline)’ 혹은 ‘롤랑의 종(la cloche Rolland)’ 등의 친숙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 종소리를 마치 이웃사람처럼 인식했다. 모든 사람이 그 종의 어조를 알아차렸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곧 바로 그 의미를 이해했다. 종소리가 아무리 남용되어도 사람들은 그 소리에 무심해지는 법이 없었다.
    (/ p.39)

    중세의 일상생활은 불타오르는 열정과 어린애 같은 상상력에 거의 무한정한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의 중세 전공 역사가들은 연대기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오로지 공식 문서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역사가들은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가끔 위험한 오류에 빠진다. 공식 문서는 중세와 근대를 구분해 주는 저 미묘한 분위기의 차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공식 문서는 중세의 저 열정적인 애수를 망각하게 만든다. 다양한 색깔로 중세의 생활에 스며들어간 여러 가지 열정들 중에서, 공식 문서는 대체로 보아 탐욕과 호전성이라는 두 가지 열정만 기록했다. 중세의 법정 문서에 나오는 저 믿을 수 없는 폭력과 완고함(탐욕과 호전성의 뿌리)를 의아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는 많은 열정들이 고루 침투해 있었다. 이런 열정의 전반적인 맥락을 파악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이런 갈등들을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중세라는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연대기 작가들의 기록이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실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 아무리 피상적이고 또 사건들에 대한 보고에 오류가 많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연대기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 p.48)

    국가의 행정 기구나 국가 예산 등은 실제에 있어서 아주 복잡한 형식들을 취하지만, 정치는 아주 간단한 형식을 취한다. 특히 일반 민중의 마음속에서 정치는 불변하는 간결한 몇 개의 인물 유형으로 구체화된다. 일반 민중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정치적 틀은 민요나 기사도 로망스에 나오는 그런 틀이다. 따라서 어떤 시대의 왕들은 몇 개의 유형으로 압축되고, 그 유형은 대체로 보아 민요나 모험 이야기의 모티프와 일치한다. 가령 고상하고 정의로운 왕, 간신에 의해 배신당한 왕, 가족의 명예를 위해 복수하는 왕, 역경 속에서도 지지자들의 지원을 받는 왕 등으로 압축되는 것이다. 중세 후기 국가들의 백성들은 엄청난 부담을 담당했으나 조세 행정에는 아무런 발언권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얼마 안 되는 돈이 낭비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품었고, 그 돈이 국가의 복지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국가 행정에 대한 이런 의심은 다시 이런 간단한 인식으로 굳어졌다. 왕은 탐욕스럽고 간교한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또 왕국의 과시적 낭비로 국가 재정이 허약해졌다. 이러한 정치적 문제는 일반 대중의 눈으로 볼 때 동화 속의 전형적인 사건들과 비슷한 것이었다.
    (/ p.50)

    모험과 열정의 분위기가 군주들의 생활을 둘러쌌다. 그러나 오로지 일반 대중의 상상력만이 사태를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보아 현대인들은 중세인의 무절제한 열정과 변덕스러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중세사에 대하여 가장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공식 문서만 참고하는 이들은 18세기의 장관長官 정치나 대사 교환의 정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중세사의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즉 중세의 군주와 민중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저 엄청난 열정의 투박한 색깔은 없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정치에도 열정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하지만 폭동이나 내전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런 열정은 엄청난 견제와 장애를 만나서 유야무야되어 버린다. 현대인의 열정은 공동체 생활의 복잡한 메커니즘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고정된 채널 속으로 유도되어 사라져 버린다. 15세기에는, 급격한 정서적 감정이 직접적으로 표출되었고, 그런 표출 방식은 종종 실용과 타산의 얇은 외피를 박살내 버렸다. 만약 군주의 경우처럼 감정과 권력이 서로 손잡고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그 효과는 두 배로 증폭된다. 연대기 작가 샤틀랭은 다소 과장된 방식으로 이런 점을 과감하게 노출시켰다. 그는 말한다. 군주들이 빈번히 서로 교전 상태에 빠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군주들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관하는 일은 고상하면서도 위험한 것이다. 그들의 본성은 증오나 선망 같은 많은 열정에 의해 좌우된다. 그들은 통치 행위에 대하여 더 없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이런 열정들이 자리 잡는 것이다.” 이것은 부르크하르트가 말한 ‘통치의 슬픔(das pathos der Herrschaft)’과 아주 근접하는 말이 아닌가?
    (/ p.59)

    자신의 파당, 주군, 이해관계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추구하는 열정은 부분적으로 아주 냉정한 정의감의 표현이었다. 중세인들은 그런 정의감을 마땅하고 옳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모든 행위가 궁극적 보복을 정당화한다는 굳건한 믿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정의감은 4분의 3 정도는 이교도적인 것이었고 복수의 모티프에 좌우되는 것이었다. 교회는 겸손, 평화, 화해를 강조함으로써 사법처리의 칼날을 부드럽게 하려 했지만, 현실에 만연한 정의감을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복수의 모티프에 죄악의 증오가 추가되어, 그 정의감은 더욱 엄중한 것이 되었다. 잘 동요되는 마음을 가졌던 중세인들은 적들이 하는 짓은 모두 죄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정의감은 점점 강화되어 양극단의 사이에서 극단적 긴장을 조성했다. 한 극단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야만적 정의였고, 다른 한 극단은 죄악에 대한 종교적 혐오감이었다. 그리하여 가혹하게 처벌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은 점점 더 긴급해졌고 중요해졌다.
    (/ p.66)

    중세에는 현대인들이 정의의 문제를 다룰 때면 늘 발휘하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마음가짐이 결여되어 있었다. 가령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인지에 대한 통찰, 개인의 범죄에 대하여 사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의식, 죄수에게 처벌의 고통보다는 재활의 구원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 등은 아예 없었다. 아니면 좀 더 좋은 쪽으로 이렇게 말해볼 수 있으리라. 이런 것들에 대하여 막연한 인식이 결핍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말로 표현되지 않다가 자비와 용서의 순간적 충동(양심적 죄책감과는 무관한)으로 표출되었다. 그런 충동은 정의의 집행이라는 잔인한 만족감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 현대인은 양심의 가책을 다소 느끼면서 망설이는 자세로 경감된 정의를 집행하는 반면, 중세인들은 잔인한 형벌과 자비라는 양극단의 두 조치만 알고 있었다. 자비를 베푸는 데 있어서, 중세인들은 ‘죄수가 어떤 특정 사유로 자비를 받을 만한가’라는 정상 참작의 질문을 별로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는 그 어떤 범죄, 심지어 중죄도 완전 사면을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사면 쪽으로 저울추를 기울게 하는 것은 순수한 자비심이 아니었다. 중세인들은 고관 친척들의 개입으로 죄수가 ‘특별 사면장’을 받았다는 얘기를 아주 태연스럽게 했고, 우리 현대인은 그런 태연함을 놀랍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면장은 저명한 범법자에게는 거의 해당되지 않았고, 고위 변호인들을 동원하지 못하는 가난한 평민들에게 해당되었다.
    (/ p.68(

    중세의 생활은 너무나 강렬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에 피 냄새와 장미 냄새의 뒤섞임을 견딜 수 있었다. 지옥 같은 공포와 어린애 같은 농담 사이에서, 잔인한 가혹함과 감상적인 동정 사이에서,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비틀거리며 갔다. 그들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 같았다. 모든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절대적 부정과, 부유함과 즐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 이런 두 양극단 사이에서 그들은 살았다.
    (/ p.73)

    오만과 탐욕은 구시대와 신시대를 대표하는 죄악으로 나란히 놓였다. 오만은 부와 물자가 별로 잘 유통되지 않던 봉건적이고 위계질서적인 시대의 죄악이었다. 부는 권력의 느낌이 별로 결부되어 있지 않았고 대체로 개인적인 것이었다. 권력은 그 자신을 널리 드러내려면 다수의 추종 수행원들, 값비싼 장식물들, 권세 있는 자들의 늠름한 등장 등 위풍당당한 전시물을 수반해야 되었다. 남들보다 신분이 월등한 존재라는 느낌을 널리 떨치려면 눈에 보이는 구체적 형식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가령 충성과 동맹을 보여 주는 무릎 꿇기 의식, 근엄한 존경심의 표시와 장엄하고 화려한 각종 의식 등을 연출해야 되었고 이런 것들은 권력자의 우월한 신분을 가시적이면서도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 p.74)

    모든 시대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동경한다. 혼란스러운 현재에 대한 절망과 우울함이 심각하면 할수록 그 동경은 더욱 더 강렬해진다. 중세가 끝나갈 무렵 삶에 내재된 기본적인 가락은 씁쓸한 절망의 음악이었다. 르네상스와 계몽시대를 수놓았던 적극적인 삶의 환희와 개인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15세기의 프랑스와 부르고뉴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때의 삶은 평균보다 훨씬 더 불행했던 것일까? 실제로 사정이 그러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 시대의 사료들, 가령 연대기, 시가, 설교집, 종교적 소논문, 심지어 관용 문서 등 그 어디를 살펴보아도,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갈등, 증오, 원한, 탐욕, 가난의 흔적만이 가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과연 이 시대는 잔인함, 뻔뻔스러운 오만, 무절제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즐기지 못했단 말인가? 그렇다. 확실히 이 시대는 기록상 행복보다는 고통의 흔적을 더 많이 남겨 놓았다. 이 시대의 불행이 곧 이 시대의 역사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본능적인 확신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 시대의 한 개인이 향유했던 행복, 평온한 즐거움, 달콤한 휴식의 총합은 다른 시대에 비하여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중세 후기에 사람들이 누렸던 찬란한 행복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민요, 음악, 풍경화의 고요한 지평선, 초상화 속의 진지한 얼굴들 속에서 살아남았다.
    (/ p.81)

    아름다운 삶에 대한 욕망은 르네상스의 대표적 특징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커다란 조화를 발견한다. 그런 조화는 예술 작품에서도 또 생활 그 자체에서도 골고루 목격된다. 그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르네상스 예술은 삶을, 삶은 예술에 봉사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경우 중세와 르네상스의 경계를 너무 칼같이 구분하는 게 된다. 삶에 아름다움을 옷 입히려는 열정적 욕망, 삶의 기술의 세련화, 이상을 모방하는 삶의 다채로운 방식 등은 이탈리아의 15세기(르네상스)보다 훨씬 더 오래된 개념이다. 피렌체 사람들이 대폭 확대한 삶의 미화라는 모티프는 실은 오래된 중세의 형식이다. 샤를 대담공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로렌초 데 메디치도 오래된 기사도의 이상을 고상한 삶의 형식으로 숭앙했다. 메디치는 그 야만적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기사도 정신에서 일종의 역할 모델을 발견했다. 이탈리아는 삶의 아름다움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새로운 양상을 발견했고, 또 삶에 새로운 분위기를 부여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특징적 태도, 즉 인간의 삶을 보다 높은 예술적 형식의 수준으로 변화시키고 향상시키려는 태도는 결코 르네상스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삶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태도에서 커다란 분수령이 있다면, 중세와 르네상스의 간극보다는 르네상스와 근대의 간극이 더 깊고 크다고 보아야 한다. 대체로 보아 예술과 인생이 서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하나의 방향 전환이 발생한다. 그 지점에서, 예술은 더 이상 인생의 즐거움을 이루는 고상한 것으로서 인생의 한 가운데 있지 않고, 인생 바깥에 초연히 위치하여 멀리서 감상하는 어떤 것이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예술을 교육과 휴식의 순간에만 바라보며 높이 숭앙하는 어떤 것으로 취급한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과 세상을 구분하는 저 오래된 2원론이, 예술과 인생의 구분이라는 또 다른 형식으로 등장했다.
    (/ p.95)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예전과 똑같다. 독서, 음악, 미술, 여행, 자연의 감상, 스포츠, 패션(의상), 사회적 허영(작위 훈장, 명예직, 모임), 감각의 충족 등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고상한 것과 저급한 것의 경계선은 이제 자연 감상과 스포츠의 경계선 정도로 인식된다. 머지않아 스포츠도 고상한 오락으로 치부될 것이다. 그것이 신체적 힘과 용기를 겨루는 경기로 남아 있다면 말이다. 중세인의 지성인들에게, 고상과 저급의 경계선은 독서와 그 이외의 것들 사이에 있었다. 독서라는 오락은 미덕 혹은 지혜의 함양이라는 목적 아래에서만 인정되었다. 음악과 미술의 경우, 신앙에 도움이 될 때에만 좋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향락 그 자체는 죄악이었다. 르네상스는 모든 인생의 즐거움을 죄악으로 배척하는 태도를 물리치기는 했으나, 고상한 향락과 저급한 향락을 구분하는 새로운 방식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르네상스는 인생의 모든 향락을 아무 제약 없이 누릴 수 있기를 원했다.
    (/ p.96)

    중세의 열정적이고 난폭한 정신은 단단하게 굳어졌지만 동시에 눈물을 자주 흘리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대하여 절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화려한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정신은 엄격하게 형식화된 행동의 도움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었다. 흥분은 표준화된 형식의 단단한 틀 속에 고정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오로지 이 방법을 통해서만 삶은 규제 가능한 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나와 남들의 경험은 아름답고 지적이고 즐거운 재현물再現物로 변형되었다. 사람들은 무대의 불빛 아래서 고통과 즐거움의 과장된 광경을 즐겼다. 순전히 정신적인 표현의 수단은 아직 결핍된 상태였다. 오로지 정서를 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만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표현을 충족시켰다.
    (/ p.115)

    중세의 문화적 형식들이 새로운 가치로 흡수되었던 18세기 말에, 그러니까 낭만주의 시대가 시작되던 무렵에, 중세는 무엇보다도 기사도의 세계로 인식되었다. 낭만주의자들은 ‘중세’라는 말을 ‘기사도가 만발했던 시대’로 생각하려 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중세에서 깃털달린 투구의 끄덕거림을 보았다. 오늘날 이러한 낭만주의자들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낭만주의자들은 여러 면에서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했다. 그러나 20세기 현대에 이르러, 좀 더 정밀한 연구가 수행되면서, 기사도는 중세 문화의 일부분이었을 뿐,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발전은 기사도의 형식과는 무관하게 발생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 p.127)

    진정한 봉건주의와 난만한 기사도의 시대는 13세기 중에 끝났다. 그 후에는 중세의 도시적·군주적 시대가 도래했고, 이 시대 동안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요소는 부르주아의 상업적 힘이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한 군주들의 화폐 권력이었다. 수세기가 격리된 우리 현대인의 유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겐트 시와 아우구스부르크 시, 새롭게 발흥하는 자본주의와 새로운 국가 제도에 더 눈을 돌리기가 쉽고, 그 당시 이미 어디에서나 권력이 ‘파괴되어 버린’ 귀족들에게 시선을 주기가 어렵다. 낭만주의 시대 이래 역사적 연구 그 자체도 민주화되었다. 하지만 정치적·경제적 관점에서 중세 후기를 살펴보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거듭하여 만나게 된다. 즉, 중세 후기의 여러 사료들 특히 이야기 사료들은 여전히 귀족들과 그들의 소란스러운 움직임(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 p.127)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는 기사도의 이상은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미학적 이상이고 다채로운 환상과 고상한 정서들로 구축된 것이다. 동시에 윤리적 이상이 되기를 열망한다. 중세 사상은 그것을 경건과 미덕에 연결시킴으로써 생활의 이상으로 만들었다. 기사도는 이러한 윤리적 기능에서 언제나 실패했다. 그것은 늘 원죄에 발목이 붙잡혀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사도 이상의 핵심은 아름답게 장식된 오만함(pride)이라는 얘기이다.
    (/ p.143)

    사랑의 로망스라는 매혹은 독서뿐만 아니라 게임과 공연에서도 체험된다. 사랑의 게임이 발현되는 두 가지 형식이 있는데 하나는 연극적 재현이고 다른 하나는 스포츠(경기)이다. 후자의 형식은 중세 동안에 특히 중요했다. 드라마는 그래도 상당 부분 다른 경건한 주제들로 채워져서 낭만적 주제는 양념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중세의 스포츠, 특히 토너먼트는 그 자체로 아주 드라마틱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또 아주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겼다. 스포츠는 어느 시대나 이런 드라마와 에로스의 요소를 갖고 있다. 오늘날의 조정 경기와 축구 경기는 선수들이나 관중들이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중세 토너먼트의 정서적 특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스포츠가 자연적인, 거의 그리스적인 단순성과 아름다움으로 되돌아간 반면, 중세, 특히 중세 후기의 토너먼트는 장식과 치장이 과도했던 스포츠였다. 토너먼트에는 드라마와 로맨스의 요소가 너무나 강하여 거의 드라마의 기능을 발휘할 정도였다.
    (/ p.161)

    중세의 칼싸움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스러움이 대폭 생략되었다는 점에서 그리스의 체육 운동이나 현대의 운동과도 다르다. 전쟁 같은 분위기를 증폭시키기 위하여, 그것은 귀족적 프라이드와 귀족적 명예의 흥분, 낭만 에로스적·예술적 찬란함 등에 의존한다. 그것은 화려함과 장식미가 넘치고, 다채로운 환상이 흘러넘친다. 그것은 놀이요 훈련인가 하면 동시에 응용 문학이다. 시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의 욕망과 꿈은 드라마틱한 재현을 추구하고,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연출되기를 바란다. 실제 생활은 충분히 아름답지 못하다. 그것은 가혹하고 냉정하고 배신적이다. 궁정 생활이나 군대 생활에서는 사랑에서 나오는 용기의 느낌을 수용할 공간이 별로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영혼은 그런 느낌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 하며 귀중한 놀이 속에서 보다 아름다운 생활을 창조하고 싶어 한다. 진정한 용기의 요소는 5종 경기 시합 못지않게 기사도 토너먼트에서 소중한 가치로 숭상된다. 토너먼트의 노골적인 에로틱 요소가 그 유혈적 강렬함의 원인이다.
    (/ p.168)

    아름다운 삶을 멋지게 놀이하여 고상한 용기와 의리의 꿈을 표현하는 것은 토너먼트 말고 다른 형식으로도 구체화되었다. 이 두 번째 형식은 토너먼트에 못지않게 중요한데 바로 기사단의 결성이다. 직접적인 연결 관계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원시부족의 관습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문시하지 않을 것이다. 즉, 기사단의 뿌리는, 토너먼트나 기사 서약의 뿌리와 마찬가지로, 먼 고대의 신성한 관습으로 소급된다는 것이다. 기사작위 수여식은 어린 전사에게 무기를 수여하는 일종의 성인식으로서,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주 정교하게 고안된 것뿐이다. 연출된 싸움 그 자체는 원시에 기원을 둔 것으로, 한때에는 신성한 의미가 가득했다. 기사단은 원시부족의 의례 집단과 분리될 수 없는 조직이다.
    (/ p.171)

    법률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법적 결투든, 아니면 순간적 충동과 흥분에 의해서 발생하는 결투든 모두 오래된 관습과 사상이 후대까지 존속한 것인데, 특히 부르고뉴 지방과 말썽 많은 프랑스 북부에서 성행했다. 신분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결투가 진정으로 문제를 결판해 준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념은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기사도적 이상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복수의 관념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기사도 문화는 결투에 일정한 위엄을 부여했지만, 귀족들의 세계 이외의 지역에서도 결투가 선호되었다. 귀족들이 관여하지 않은 결투에는 그 시대의 노골적인 잔인함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기사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상관이 없는 한, 그런 결투의 광경을 아주 즐겼다.
    (/ p.198)

    에로티시즘은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나의 스타일 혹은 그 내용의 경계를 지워 주는 형식, 혹은 그것에 베일을 가려 주는 표현을 발견해야 한다. 에로티시즘이 이런 형식을 거부하고 알쏭달쏭한 알레고리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성행위의 묘사로 전락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설사 그럴 의도가 없더라도 여전히 양식화한다. 세련된 감식안이 없는 사람은 그 장르를 에로틱 자연주의로 오해할 것이다. 남자들은 전혀 지겨워하지 않고 여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 에로티시즘의 장르는 가장 고상한 궁정 민네 못지않게 낭만적 허구이다. 사랑의 자연적·사회적 복잡성을 비겁하게 무시하는 것, 성적 행위의 허위적이고 이기적이고 비극적인 요소들을 위장하기 위해 지속적인 쾌락으로 아름다운 겉꾸밈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낭만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저 위대한 문화적 모티브를 만난다. 그것은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동경이고, 인생을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는 욕구이다. 여기서 사랑의 생활은 환상적 욕망에 순응하는 형식의 수립을 강요당하며, 인간의 동물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그런 형식을 수립한다. 여기에 인생의 또 다른 이상이 있는데, 즉 정결하지 않음의 이상이다.
    (/ p.230)

    15세기처럼 사람들에게 죽음의 관념을 강력하게, 또 지속적으로 각인시킨 시대는 없었다. 그 시대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외침이 평생 동안 울려 퍼졌다. 카르투지오회 수사 드니는 귀족들의 교양을 위해 집필한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권유를 하고 있다. “침대에 들 때면 당신 자신이 침대에 눕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들이 당신을 당신의 무덤 속에 눕힌다고 생각하십시오.” 그 이전의 시대에서도, 종교는 죽음에 지속적으로 몰두할 것을 아주 진지하게 권면했다. 하지만 중세 초기의 경건한 소논문들은 이미 탈속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 손에만 들어갔었다. 탁발 수도회의 인기 높은 설교자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메멘토 모리의 경고는 위협적인 합창이 되었고 둔주곡 같은 힘을 발휘하며 온 세계에 울려 퍼졌다. 중세의 말기에 이르러, 설교자들의 목소리에 새로운 시각적 재현물이 추가되었는데, 곧 목판화이다. 이 목판화는 사회의 모든 계층에 널리 보급되었다. 이 두 강력한 표현 수단, 즉 설교와 그림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이고 또 생생한 이미지로 죽음의 관념을 노골적으로 또 선명하게 표현했다. 죽음에 관한 초창기 수도원의 깊은 명상이 이제는 피상적이고, 원시적이고, 대중적이며, 판화적인 이미지로 응축되었고, 이런 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제시되었다. 이런 죽음의 이미지는 죽음과 관련된 많은 관념들 중 오로지 하나만을 표현했는데, 곧 ‘사라져 버림’의 관념이 그것이다. 중세 후기의 사람들은 부패하여 없어진다는 것 이외에는 죽음의 다른 측면을 보지 못하는 듯했다.
    (/ p.265)

    죽음의 묘사는 중세 후기 사상의 전반적 면모를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후기의 사상은 추상적인 생각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보여 주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정신적 생활은 전반적으로 구체적 표현을 추구했고, 황금의 개념이 즉시 황금 주화로 변모되는 듯했다. 성스러운 모든 것에 형식을 부여하고, 또 종교적 아이디어에 물질적 형식을 부여하려는 무제한적인 욕망이 있었다. 그리하여 종교적 아이디어를 마음속에 하나의 선명한 그림으로 간직하고 싶어 했다. 회화적 표현을 지향하는 이런 경향은 고정적인 어떤 것으로 굳어지는 위험을 늘 안고 있었다.
    (/ p.289)

    중세 기독교권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종교적 이미지들이 스며들어가 있었다. 그리스도와 신앙과 관계를 맺지 않는 사물이나 행위는 없었다. 실제로 모든 것이 신앙을 열렬히 토로하면서 모든 사항을 종교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연결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초자연적 분위기 속에서도, 진정한 초월의 종교적 긴장, 혹은 물질적인 것으로부터의 벗어남 등은 언제나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이런 긴장이 없다면, 신에 대한 느낌을 일깨우려는 모든 것은 끔찍하고 진부한 것으로 경직되어 버린다. 그것은 저 세상의 외피를 뒤집어쓴 속세의 물건으로 전락한다.
    (/ p.290)

    중세 사람들은 전적으로 외양에만 매달리면서 미지근한 부패의 양상을 보이는 종교적 생활을 영위했다. 그들의 굳은 신앙심은 두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만들어냈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중세인들은, 후대의 개신교도들과는 다르게, 일상적인 종교 형식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거나 정신적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다. 편리하게 식어 버린 종교적 경외심과 일상생활에 만족하는 시기, 그리고 간헐적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던 광적인 신앙심의 시기, 이렇게 두 개의 시기가 번갈아 교차했다.
    (/ p.335)

    중세 사람들은 늘 종교적 감동을 강렬한 이미지로 바꾸려던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신비를 눈으로 목격해야만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가시적 표징을 통해 형언할 수 없는 뭔가를 숭배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14세기 무렵, 예수에 대한 흘러넘치는 사랑을 표현하려면, 십자가와 어린 양의 이미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것들에 더하여 예수 이름 자체를 숭배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그것이 십자가 숭배를 능가할 정도로 성행했다. 하인리히 조이제는 가슴에 예수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고, 옷에 연인의 이름을 수놓아 입고 다니는 남자에 자신을 비유하기도 했다.
    (/ p.383)

    상징주의는 중세 사상의 숨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 사람들은 으레 의미 깊은 상관관계에서 모든 것을 파악하고 영원과의 관계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바람에, 사물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대신 사상의 세계를 휘황찬란하게 빛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상징의 기능이 사라지거나 기계적으로 전락하자, 하느님의 의지가 작용하는 곳으로 구축된 거대한 도시는 곧 죽음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체계적 이상주의는 어디에서나 사물의 일반적 성질을 본질로 여기고 그것을 분류 기준으로 삼아 사물의 관계를 설정하려 했다. 그런 작업은 뻣뻣하면서도 무익한 분류 작업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순전히 추론에 따라 개념을 나누고 세분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개념들은 우주 세계의 둥근 천장에 딱 들어맞도록 쉽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 p.407)

    중세의 사상을 전반적인 통일성 속에서 이해하려면, 신앙과 철학에서 이루어지는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지혜와 세속적 관행에서 발견되는 고정된 틀까지 연구해야 한다. 중세 사상은 드높은 것이나 하찮은 것이나 정해진 사고방식의 틀로부터 똑같이 지배받았기 때문이다. 신앙 및 철학과 관련된 사고방식은 오래된 저서들의 전통에서 비롯된 결과 또는 영향과 얼마나 밀접한지가 늘 문제로 제기되었다. 오래된 저서들은 멀리 그리스와 유대, 심지어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일상생활의 사고방식은 신플라톤주의 등의 부담에 짓눌리지 않은 채,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나타났다.
    (/ p.437)

    일상적 사건을 도덕의 모범으로 끌어올리고, 모든 문장을 격언으로 승화시켜 논쟁의 여지가 없는 구체적 생각으로 굳혀 주는 형식이 있었다. 바로 속담이었다. 속담은 그런 구체적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또 보편적으로 표현해 주었다. 속담은 중세의 사고방식에서 아주 효과적인 기능을 발휘했다. 일반적으로 수백 가지의 속담을 사용했는데, 대부분은 적절하고도 함축성 높은 것이었다. 속담에 드러난 지혜는 때때로 평범했지만 유익하고 심오한 경우도 있었다. 어조는 자주 빈정거리고, 분위기는 아주 친절하면서도 체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속담은 저항을 설교하는 경우가 없고, 늘 굴복을 충고했다. 미소와 한숨 속에서, 이기주의자가 승리를 하게 만들고 반면에 위선자를 훈방해 준다.
    (/ p.444)

    중세 사람들은 예술을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세 예술은 대부분 응용 예술이었고 작품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경우에도 응용성은 여전히 중시되었다. 중세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주문 제작하는 이유는 실용을 위한 것이었고, 예술 작품은 삶의 형식에 봉사해야 되었다. 실용과 무관하게 아름다움의 순순한 이상이 창조적 예술가를 지배하는 경우는, 겉으로 드러난 게 아니라 대부분 예술가의 잠재의식 속에서만 존재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애호는 먼저 예술 작품의 왕성한 수집에서 그 첫 번째 발아를 볼 수 있다. 군주와 귀족들이 예술 작품을 축적하다가, 결국 그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컬렉션(수집품)이 되었다. 그리하여 작품의 실용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군주가 수집한 보물의 귀중한 일부, 진기한 물건으로 존재하면서 즐거운 감상의 대상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크게 되살아난 예술 취향은 이런 수집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15세기의 위대한 예술 작품, 특히 제단화와 능묘 기념물을 평가할 때, 중세인들은 미학적 고려사항을 넘어서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것들의 실용적 중요성과 목적이 그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소중했다. 그것들이 묘사한 대상이 성스럽거나 혹은 그 목적이 고상한 것이었기 때문에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했다. 대표적 예술품인 제단화는 이중의 의미를 지녔다. 큰 축제 중에 예식을 위해 전시되는 작품들은 첫째, 신자들의 신앙심을 높이고 둘째, 경건한 기증자의 기억을 유지해야 되었다.
    (/ p.477)

    중세 끝자락의 프랑스·부르고뉴 문화는 화려함이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문화였다. 중세 후기의 예술은 당시의 쇠퇴하는 정신, 이미 수명을 다하여 조락하는 정신을 여실하게 반영한 다. 중세 후기 사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면, 아주 지엽적인 세부 사항까지 철저하게 묘사하는 것, 끝없는 형식적 재현의 체계로 정신이 과부하된 것, 등인데 이런 것들이 중세 예술의 본질을 이룬다. 그 예술은 또한 모든 것을 일정한 형식에 따라 재현하고 제시하며 장식했다. 불타오르는 듯한 고딕 양식은 예배 뒤에 끝없이 흘러나오는 오르간 소리와 비슷하다. 이처럼 장식이 과도하기 때문에 형식들의 구분이 애매모호했다. 모든 세부 사항은 연속적으로 공들여 다듬어지고, 각각의 선線은 거기에 대응하는 선과 마주친다. 이것은 형식을 내세우면서도 아이디어가 무절제하게 웃자란 경우이다. 화려한 장식의 세부 사항은 모든 표면과 선을 공격한다. 공백에 대한 두려움(horror vacui)은 정신적 발전이 끝나 버린 시대의 특징이고, 이런 두려움이 중세 후기의 예술을 지배한다.
    (/ p.485)

    현대인은 스스로 원할 때면 언제나 휴식하고, 혼자서 인생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즐거움이나 오락에 전념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부족한 중세의 사람들은 축제라는 집단적 행동을 추구했다. 일상생활의 비참한 모습이 두드러질수록, 축제는 더욱더 필요했다. 그리하여 아름다움과 쾌락에 대한 도취로 삶에 화려함을 더하고, 현실의 어두움을 희석시켜야 했다. 15세기는 실의失意와 염세에 깊이 물든 시대였다. 이미 살펴본 대로 당시 사람들은 부정과 폭력, 지옥과 영겁의 벌, 페스트, 화재와 굶주림, 악마와 마녀 등에 짓눌려 살아왔다. 비참한 사람들은 날마다 되풀이되는 공허한 위안, 가령 천상에서 누릴 행복에 대한 약속, 하느님의 빈틈없는 보살핌과 자비 따위로는 충분히 만족할 수가 없었다. 공동체는 때때로 삶의 아름다움을 영광스럽고 엄숙하게 다짐할 필요가 있었다. 삶의 기본적인 향락―놀이, 사랑, 술, 춤, 노래―만으로는 불충분했다. 삶은 아름다움을 통해 더 고상해져야 하고 사회적 축제로 양식화되어야 했다. 개인들은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과 조각을 관람하거나 자연을 즐기는 근대적 향락을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책은 값이 비쌌고, 자연은 위험했으며, 예술은 축제의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 p.489)

    중세 신앙은 완전히 직접적이고 노골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15세기의 화가를 원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런 오해를 피하면서 살펴볼 때, ‘원시적’이라는 용어는 어떤 그림이 시기적으로 앞서 있다, 혹은 더 오래 되었다 정도의 뜻을 가진다. 따라서 ‘원시적’은 순전히 연대를 표시하는 형용어구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사용하면서 15세기 예술가들의 마음도 당연히 원시적일 거라는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옳지 못한 판단이다. 당시의 예술 정신은 이미 설명한 대로 신앙심의 구현이었다. 즉,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탐색하고 정교하게 가다듬어 작품으로 구상화하는 것, 그런 쪽으로 창조적 상상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그 시대의 예술 정신이었다.
    (/ p.516)

    중세에서 르네상스적인 것을 찾을 수 있듯이, 그 반대 르네상스에서도 중세를 찾아볼 수 있다. 아무 선입견 없이 르네상스의 정신을 살펴보는 사람들은 거기서 르네상스 관련 이론이 주장하는 것보다 더 많은 ‘중세적인’ 요소를 발견한다. 르네상스 미술이 형식과 내용에 서 중세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아리오스토Ariosto, 라블레,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Marguerite de Navarre,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등 르네상스 작가들의 작품에는 여전히 중세적인 요소들이 충만하다. 우리가 볼 때, 둘 사이의 차이는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는 사과와 딸기가 분명히 다르듯이, 시대적 본질이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하지만 보다 자세한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면 이 차이는 사실상 가뭇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 p.533)

    중세 후기에는 아름다움의 묘사가 기존에 분류된 정신적 소재들의 순수한 표현과 정확한 묘사에만 집중했다. 따라서 이런 시대에는, 회화가 문학보다 더 심오한 가치를 지닌다. 이것은 물론 중세인들의 판단은 아니다. 그들이 볼 때, 비록 전성기가 지난 아이디어일지라도 여전히 설득력 있고 중요한 특성을 많이 간직했다. 그런 아이디어는 특히 미화美化를 강조하는 문학 형식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현대인의 감수성에 비추어 볼 때, 칠칠치 못할 정도로 단조롭고 피상적으로 보이는 시들이 그림보다 훨씬 더 열렬한 칭송을 받았다. 그림의 심오한 정서적 가치는 아직 중세인들에게 싹트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 가치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정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 p.535)

    중세 후기 정신의 기본적 특성은 시각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 특성은 정신의 쇠퇴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중세 사람들은 오로지 시각적인 상상력을 통해서만 생각했다. 표현된 것들은 모두가 시각적인 용어에서 나왔다. 그들은 우화 이야기와 시에 지적 내용이 아예 없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시각적인 성취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물의 겉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은 문학적인 방법보다 그림을 통해 더 강하고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이런 시각화는 시보다 산문에서 더 효과적으로 성취되었다. 이렇기 때문에 15세기의 산문은 여러 가지 면에서 회화와 시의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 시, 산문, 회화는 모두 ‘세부 사항의 무제한적인 꾸미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림과 산문에서는 이런 공통점이 직접적인 사실주의로 결실 맺어졌지만, 시는 그렇지 못했고 그것을 보충하는 대체물도 갖고 있지 못했다.
    (/ p.553)

    우리는 자연을 꼼꼼히 묘사한 문학 작품들 중에서 회화의 수준에 근접한 것을 찾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자연 묘사는 주로 ‘비의도적인 관찰’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15세기 문학의 자연 묘사는 아직 비의도적인 관찰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다. 자연 속의 사건들은 중요하다고 생각될 때에만 이야기되었다. 필름이 빛에 반응하여 기록하듯이, 어떤 의도에 맞추어 사건의 외부적 상황만을 묘사했다. 의도가 배제된 문학 특유의 표현 방식은 여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화에서 자연 묘사는 부차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자연 묘사는 비의도적인 관찰이 가능했다. 하지만 문학에서는 자연 묘사가 여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 p.564)

    산문이 시보다 더 뛰어난 장점을 나타낸 것은 형식의 측면에서였다. 산문도 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상은 그리 많지 않았다. 프루아사르는 아무 생각 없이 묘사에 집중하는 작가의 완벽한 전형이다. 그에게 사상은 거의 없고 사물에 대한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그는 몇 가지 윤리적인 동기와 감정, 이를테면 충성, 명예, 탐욕, 용기, 그 밖의 단순한 형태의 덕목을 인식할 뿐이다. 그는 신학, 알레고리, 신화에는 관심이 없고 도덕도 마지못해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정확하게, 별 힘 안들이고, 당연하다는 듯이 문장을 써나가지만 내용은 공허하다. 그는 영화에서 현실을 보여 주는 방식대로 겉모습을 기계적으로 찍어 묘사할 뿐, 내면의 진실로써 독자의 가슴을 강력하게 사로잡지 못한다. 그의 사색은 비길 데 없이 진부하다.
    (/ p.572)

    새싹이 피어나는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인문주의)과, 시들어가던 중세 정신의 상호 관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사람들은 두 문화를 아예 다르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고대 문화의 영원한 젊음을 받아들이고, 중세적 사고방식의 진부한 표현 방식을 거부한 현상이 갑작스러운 계시처럼 일거에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마치 의인법과 화려한 양식에 지칠 대로 지친 정신이 문득 깨달아 아, 이것이 아니라 바로 저것이구나! 하고 소리치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또는 고전 고대의 훌륭한 조화가 마치 오래 기다렸던 해방처럼 그들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 구원자를 영접하듯이 환호작약하며 르네상스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p.617)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정신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다가올 시대의 사상이 중세풍의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중세적인 사상은 다수의 신화적 인물을 등장시키는 사포Sappho(고대 그리스의 여류시인) 같은 운율 속에서 제시되기도 한다. 고전주의와 근대정신은 전혀 다른 두 개의 실체이다. 이렇게 볼 때 문학적 고전주의는 노인으로 태어난 아이다.
    (/ p.636)

    15세기에 소수의 프랑스 사람들이 인문주의의 형식을 받아들였지만, 아직 르네상스를 대대적으로 환영할 만큼 다수는 아니었다. 그들의 정서와 방향 감각은 여전히 중세적이었다. 지배적인 ‘삶의 가락’이 바뀔 때, 혹은 치명적인 현세 부정의 썰물이 새로운 밀물에 길을 내주면서 상쾌한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비로소 르네상스는 찾아온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숭상해 온 고대 세계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반가운 확신(아니면 환상?)이 마음속에서 무르익을 때, 마침내 르네상스는 도래하는 것이다.
    (/ p.637)

    저자소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72.12.17~1945.02.01
    출생지 네덜란드
    출간도서 5종
    판매수 2,143권

    1872년 12월 17일 네덜란드의 북부 지방 도시인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무렵 흐로닝언에 들어온 카니발 행렬을 보고 그 광경에 매료되어 평생을 의례, 축제, 놀이 연구에 주력하였다. 부친은 흐로닝언 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다. 흐로닝언 대학 네덜란드 어문학과에 입학한 하위징아는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히브리어, 아랍어, 산스크리스트어의 연구에 심취하였고 점차 비교언어학으로 기울어 라이프치히에 유학하기도 하였다. [호모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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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54~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지금까지 25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번역 입문 강의서 『번역은 글쓰기다』, 『살면서 마주한 고전』 등을 집필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 『진보와 빈곤』(헨리 조지), 『리비우스 로마사 I, II』, 『로마제국 쇠망사』, 『고대 로마사』, 『숨결이 바람 될 때』, 『변신 이야기』, 『작가는 왜 쓰는가』, 『호모 루덴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중세의 가을』, 『동물농장』 등이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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