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염시키는 아이 - 알리체의 일기

/ 알리체 스투리알레

 

“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하고 잔인한 폭력은 영혼에, 정신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알리체가 어린이들의 권리에 관해 작문을 할 때 쓴 문장이다. 열두 살 먹은 소녀의 글이라니 놀랍다. 이탈리아 소녀 알리체 스투리알레가 쓴 ｢알리체의 일기｣엔 어른을 놀라게 하는 글들이 툭툭 자주 눈에 띈다. 물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쓴 일기와 시, 소설엔 그맘때 아이다운 생각과 생활도 담겼다. 알리체가 태어날 때부터 척추성 근위축증이라는 불치병과 싸웠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알리체의 일기｣는 상상력과 글쓰기에 재능을 가진 평범한 아이의 이야기였을 게다. 허나 몇 차례 위험하고 힘든 수술을 견디고, 숱한 도전을 거치고 나서야 밥을 먹고 학교에 가는 알리체의 일상은 글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나를 사랑하는 하는 아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과 자신이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 또한 자존감 높은 사람의 징표다.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남의 탓을 하고, 내 억울한 사정만 쏟아놓느라 다른 사람의 사정을 살필 여유가 없다.

알리체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 일어나서 아빠가 식사를 하는 식탁으로 가는 것을 혼자 해낸 것을 자랑스러워 할 줄 알고, 그런 알리체를 아빠가 안아준 것을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아는 아이다. 혼자서 스키를 탈 줄 모르지만 아빠에 기대어 스키 위에서 똑바로 선 것을 기뻐하며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과 혼자 도전할 것을 구분하고,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로 진심으로 기뻐한다. 상황과 일의 종류는 달라도 누구나 맞닥뜨리는 문제를 대하는 알리체의 태도는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또, 알리체처럼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것을 따라하고 싶게 한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아이

알리체는 자기가 어떻게 했을 때, 상대를 웃게 하는지 행복하게 하는지 안다. 눈치 보고 슬프고 화나지 않게 하는 게 아니라 기쁘고 즐겁게 해주려는 노력을 한다.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고, 호기심이 생기면 물어본다, 친구들이 해주는 비밀 이야기를 신중하게 들어주고 비밀을 지킨다.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편지를 쓴다. 친구에겐 왜 자신에게 소중한 친구인지 구체적으로 말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들려주길 즐기고, 기발한 장난과 재치 있는 답변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알리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이다. 때문에 알리체는 세계 여러 나라 정치인들이 모여서 특정한 나라를 혼내주고 제재를 가할 궁리를 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나라를 돕고 행복하게 해줄 대책을 세우는 회의를 하는 걸 꿈꾼다. 날아가는 새와 파도도 무언가 할 말이 있어 지저귀고 일렁인다는 상상을 한다. 자신만큼 다른 사람도 간절한 소망과 아픔이 있다는 걸 헤아리고 도와주길 원하는 알리체. 알리체가 일기에 적어 보여주는 그 간단한 사랑법을 새삼 깨닫는 게 민망하다.

 

 

세상과 우주에 보내는 상상의 신호들

알리체는 국제어린이회의에 ‘장애인에게 장벽이 되는 도시건축의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내어 주목을 받았다. 휠체어가 있어서 밖에 나갈 수 있는 것은 다행으로 여기지만,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느라 더 먼 길로 돌아서 가거나 갈 수 없는 생활의 장벽을 없앨 방법도 고민한다. 신문을 보고 전쟁터에 있는 아이를 구할 방법을 상상하고 별을 보면서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한다. 우주여행을 꿈꾸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방법 찾기를 꿈꾼다. 알리체의 상상과 설계가 담긴 일기를 보다보면 절로 그 꿈의 동조자가 된다.

알리체의 행복한 웃음에 전염될 기회를 여러분도 갖길 바란다.

알리체의일기, 희망

어른들을 향한 아이들의 하이킥

우리들의 7일 전쟁 / 소다 오사무 지음

 

 

 

도쿄의 한 중학교.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1학기 종업식 날, 1학년 2반 남자 아이들 스물 한 명이 모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성적 관리에 철저하던 아이도, 꼭 엄마 곁에서 잠을 자야 하는 아이도,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던 아이도 돌아오지 않았다. 비상연락망으로 아이들의 행방을 찾던 부모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보지만 아이들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다. 그날 저녁, 라디오 방송에서 애타게 찾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해방구 방송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아이들만의 세계

“애들은 무조건 어른이 하는 말을 다 들어야 해?”

도루가 다그쳐 묻자 에이지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힘을 합치면 어른들이랑 싸울 수 있어.”

- 중략 -

“그래. 해방구는 우리의 성(城)이야.”

“거기서 뭘 하는데?”

“아이들만의 세계를 만드는 거지.” - 본문 30쪽 -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어른들의 세상을 보게 됐다. 말도 안 되는 이유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 교사와 학생들 앞에서는 이상한 규율을 앞세워서 권위를 휘두르지만 힘센 사람들 앞에선 고개를 조아리는 교장의 모습을 봤다. 아이들은 멍청하거나 나쁜 짓만 골라하면서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자신들의 말을 들으라는 어른들에 맞선 항전을 준비한다. 방법은 어른들이 대학생일 때, 잘못된 사회에 맞서 벌였던 ‘전공투’식 점거농성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이들은 민주적인 토론으로 규율을 정하고 역할을 나누고, 행동을 결정한다.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아주 작은 능력이라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빛이 난다. 누구 하나 소외시키거나 얕보는 일 따윈 없다. 전에는 몰랐던 친구의 생각과 성격을 알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고 감탄하는 시간이 쌓여간다.

“그게 좋은 어른이에요? 순 멍청이잖아.”

소다 오사무의 <우리들의 7일 전쟁>은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아이들의 명쾌한 판단과 체면이나 뒷일을 걱정하지 않는 과감한 결정을 따르기 때문이다. 만화를 보는 것처럼 붕붕 뛰어다니는 상황 전개가 영락없는 아이들의 발상을 닮았지만 뭉기적거리지 않고 눈치 보지 않는 전개가 읽는 사람을 통쾌하게 한다. 한껏 가벼운 말투로 던지는 직설적인 질문은 어찌나 많은지, 도무지 책을 읽는 어른들의 체면을 위한 배려는 손톱만큼도 없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대화 한 번 해보자고 폼 잡고 앉아 얘기할 때 날아오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연타로 받는 느낌이다. 게다가 어떻게 대답할까 끙끙 궁리하는 사이에, ‘그런 건 이렇게 해결하는 거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니 제아무리 뻔뻔한 어른이라도 얼굴이 붉어질밖에.

우리나라엔 올해 나온 <우리들의 7일 전쟁>은 1985년 일본에서 첫 출간됐다. 하지만 20년 넘는 시간이 흐른 오늘의 우리 이야기와 다를 게 별로 없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아이들이 전쟁을 선포한 멍청한 어른들이 너무도 많다. 그 때문이다. 아이들의 유쾌한 해방구에 갈채를 보내고 지원을 보내고 싶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김려령 글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어차피 세상은 속도위반 하는 차들과 끼어들기 하는 차들, 살짝만 스쳐도 억대의 돈을 물어줘야 하는 값비싼 외제차와 후면 등이 고장 나서 뒤따라가는 차에게 좌회전 우회전 신호를 못 보내는 차들과, 느닷없이 폭주 하는 오토바이들이 뒤엉켜서 달리는 도로와 같다. 세상이라는 길과 담 쌓고 산다면 모를까 길 위에 나선 이상 위험하거나, 답답하거나, 생각지 못한 돌발 상황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김려령 작가는 이렇게 메케하고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에도 가슴을 따뜻하게 울리는 동화가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통해 보여준다.

어른들부터 솔직해지시지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오명랑이라는 동화작가의 고민에서 시작한다. 몇 해째 제대로 밥벌이를 못한 동화작가 오명랑은 가족의 눈총을 피하기 위해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연다. 모집 전단을 붙이고 들어와서야 들려줄 이야기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온갖 책들을 뒤져가며 이야깃감을 찾는다. “동화부터 고전, 소설, 자기계발서, 심지어 국어사전”까지 살피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할 이야기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을 여는”이란 말에 멈칫한 오명랑 작가는 자기 안에 숨겨두고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낼 생각을 한다.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오명랑 작가가 이야깃감을 고르는 장면은 이 동화를 읽는 어른들이 많은 생각을 물고 오게 만든다. ‘어른들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법이야.’라고 말하기 전에, 멋진 어른답게 말할 생각을 하기 전에, ‘그래봤자. 네가 애지 뭐.’라는 생각을 품기 전에 ‘마음을 열고’ 이야기 하려고 했는지 대놓고 묻는다. 또 당신도 동화에 담긴 이야기처럼 거칫하고 부끄럽고 불편한 진실을 당신의 귀한 아이들에게도 솔직하게 말 할 차례라고 슬쩍 떠민다.

사람에게로 세상으로 가는 길에 선 든든한 ‘건널목’

동화는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건널목씨’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파트단지에서 학교를 가거나 시장을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아파트 후문을 나와서 이차선 도로를 건너는 방법이다. 신호등도 건널목도 없지만, 먼 길을 돌아서 가는 ‘헛수고’를 할 생각이 없는 아파트 주민들은 누구나 이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한다. 그런 어느 날 아침, 아파트 후문에 수염 덥수룩하고 남루한 옷차림에 신호등이 달린 우스꽝스런 모자를 쓴 사람이 나타난다. 등에 메고 온 검정 바탕에 하얀 줄이 쳐진 건널목 무늬 카펫을 이차선 도로에 깔고 ‘호르륵’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를 한다. 매일 아침이면 단지 후문으로 와서 건널목 카펫을 펴는 그를 아파트 단지 사람들은 ‘건널목씨’로 부른다. 처음에는 놀리기로 응수하던 아이들도 신기함과 냉소와 호기심을 섞어서 뾰족한 시선을 보내던 어른들도 매일같이 카펫을 메고 나타나는 ‘건널목씨’의 고마움을 알아간다. 시간이 가는 동안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과 ‘건널목씨’ 사이에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지고 인연이 만들어진다. 그 인연의 똬리 안에는 오명랑 작가의 가족사도 뭉클뭉클 담겼다.

｢완득이｣를 먼저 읽은 독자라면 짐작하겠지만,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도 김려령 작가 특유의 민낯이 보인다. 우회하지 않고 직구를 던지는 작가의 동화는 여름날 장아찌 몇 가지 놓고 찬밥에 물 말아 먹으며 밥알 튀기는지도 모르고 수다를 떠는 언니나 이모의 이야기를 닮았다. 그 솔직함이 유쾌하고 진한 감동을 만든다.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동화 곳곳에 나오는 장경헤 작가의 그림은 맛깔 나는 이야기와 호흡이 잘 맞는 추임새가 되어 책 읽는 맛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