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치고 백범 김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웬만한 사람들은 백범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백범의 저서 ‘백범일지’는 1947년 발간 이후 60년동안 국민 필독서가 되어왔다. 최근에는 10만원권 지폐의 인물로 선정돼 백범이 온 국민의 스승이자 지도자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줬다.
왜 백범인가. 첫째는 국권을 침탈당한 제국주의 시대, 임시정부를 이끌며 해외 항일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백범을 빼놓고서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백범은 일제 항일투쟁의 핵심이었다. 임시정부, 이봉창·윤봉길의 의거, 광복군 활동 등 독립운동사를 수놓은 주요한 사건들 뒤에는 어김없이 백범이 있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백범의 최고 소원은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었다. 임시정부의 주석이라는 최고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나라가 자주독립만 되면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겠다고 서슴지 않게 말한 것은 백범의 진심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민족운동가로서의 면모이다. 해방 이후에 백범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신탁통치 반대, 좌우합작 운동, 통일정부 수립 등 해방된 조국에서 그가 벌인 투쟁과 활동은 식민지 시기의 항일운동 못지않았다. 74세나 되는 백범이 반민족, 반통일주의자인 안두희에게 피격된 사실은 역설적으로 백범이 얼마나 간절히, 그리고 치열하게 하나의 민족을 염원했던가를 말해준다.
백범 김구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텍스트는 뭐니뭐니 해도 ‘백범일지’이다. 그러나 `백범일지’는 개항기에서 항일독립운동기를 주 대상으로 하고 있어 해방 이후의 백범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다. 이러한 ‘백범일지’를 보완하며 백범의 면모를 오롯히 채워주는 책이 바로 ‘백범어록’이다.
‘백범어록’은 글자 그대로 백범의 말과 기록을 모은 책이다. 여기에는 1945년 9월3일 충칭에서 발표한 성명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에서부터 사후에 발견된 유고 ‘평화통일의 길’에 이르기까지 해방공간에서 발표되고 기록된 백범의 성명, 어록, 인터뷰, 휘호, 보도기사 등이 망라돼 있다.
이렇게 볼 때 ‘백범어록’은 ‘백범일지’의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록’은 `일지’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널리 읽히지도 않았다. 그것은 백범 자신이 단행본 출간을 염두해두고 계획적·체계적으로 쓰여진 ‘백범일지’와 달리 백범 사후에 백범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엮어 책의 완성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어록’에 실린 글의 성격 때문이다. 이 책에는 남북평화 통일을 강조한 글, 통일정부 수립의 구상, 김두봉에게 보내는 편지 등 이승만·박정희 등 역대 반통일 정권의 비위를 거스릴만한 내용이 적지 않게 들어있다. 그들로서는 쉬쉬 하고 싶었을 것이다.
`백범어록’은 문장의 형식 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백범일지’와 비교된다. 통일된 조국에서 발표되고 쓰여진 글이면서도 오히려 글의 기백, 문장의 기운은 `백범일지’에 미치지 못한다. 해방된 조국에 미군정의 눈치를 보며, 뒤늦게 그것도 임시정부 요원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던 `불안정한 정치인’의 입지가 백범의 운신의 폭을 좁게 했을 것이다.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국도 백범의 언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백범은 “(고국이) 엄중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을 인식한 우리는 삼천만 동포의 부탁에 조금이라도 어긋날까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심사숙고한 뒤에 행하였으며 전전긍긍하는 태도로써 모슨 일에 임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백범의 어록 하나하나는 해방 직후의 정치상황을 증언하고 있어 우리 현대사를 이해하는 1차 사료가 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어록들을 엮고 보탠 역사학자 도진순교수가 각각의 어록에 해제를 붙여 당시의 사회상을 한눈에 읽어낼 수 있다. 또 백범의 휘호와 애독서 등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짧은 기사, 수상록 등도 들어 있어 백범의 내면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백범일지’를 읽는 독자라면 후속으로 읽어야 할 책이 `백범어록’이다. 백범이 왜 피살되어야 했는지, 그가 꿈꾸었던 조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왜 백범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