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남자가 나만 멋져 보이는 건 아닌가 보다. 티비를 통해 남자 양식 요리사는 많이 봤지만, 한식 요리사가 남자인 경우는 그다지 많이 보지 못 했다. 하지만 백주부가 몇 년 새 인기를 끌면서, 구수한 그의 충청도 사투리와 나이까지도 그의 인기를 깎아 먹지를 못한다. 오히려 연기자 아내 이름이 그에게 묻힐 지경이다. 과히 대세라 할만하다. 예전에 한참 재미있게 본 드라마 파스타를 통해 요리하는 남자가 더욱 멋져 보였더랬다. 직업적인 것을 떠나, 가족을 위해, 혹은 연일을 위해 칼을 들고, 유연하게 프라이팬을 돌리는 남성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면 설렌다. 이제 요리는 여성만의 영역은 아니게 되었다.
 
후쿠모토 요코라는 남성 요리연구가이자 토탈 푸드 프로듀서가 <요리하는 남자는 무적이다>라는 책을 내어 놓았다. 남성만을 위한 요리교실인 '맨스치킨'을  2010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하며 대략 3천 명의 수강생을 길러냈다고 한다. 다년간의 남성들을 주방으로 이끌며 그들이 요리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모든 것을 통찰해 내는 에세이로서, 현시대의 추세에 맞게 남녀 간의 가사분담이 동등해지고 있는 현실을 적극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요리는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승마나 스쿠버, 도예 같은 취미는 순간적으로 성취감과 재미를 느낄 순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중략) 요리를 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깊어집니다.' (p. 38 p. 39)
 
요리의 장점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고, 모인 사람들과 친분을 나눌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하며, 더욱 넓은 인간관계로까지 확장되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이 위에 언급한 다른 취미와 달리, 지속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이다. 의식주처럼 필요 불가피하며,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 한 단계 더 인간관계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 요리의 장점이 많겠지만 후쿠모토 요코 저자가 말한 요리하는 남자는 일도 잘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창의력이 생기고, 순서 파악도 빠르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며, 균형감각도 키울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 동시 처리 기술(multi-tasking)이 연마된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사실 작가가 배출한 3천 명이라는 수강생들 보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겠는가, 하는 것은 당연한 추측의 수순으로 업무적 능력과 요리와 상관관계를 유추해보면 당연한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레시피를 읽고 재료를 준비하고 동선을 파악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 요리를 하는 것은 결국, 작장에서 업무를 파악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같은 시스템을 따르고 있으니 말이다.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구상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이런 장점들을 살리기 위해 처음, 어떻게 요리에 접근하고 어떻게 만들어가고 어떻게 데코레이션을 하는지까지 모든 것을 알려주며 그 장점들을 통해 요리가 여자만의 영역이 아님을, 오히려 남자들의 전문성을 상회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따라서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이 여자이지만, 평소에 요리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업무 영역에까지 넓혀본 적이 있는 나였기에 후쿠모토 요코의 생각들에 무조건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요리법들까지, 혹시 요리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남자들이 있다면 이제, 이 책을 통해 천천히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 살짝 권유해 봐야겠다.
 

 

연속극을 즐겨 보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 보게 된 아침 연속극을 보고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돈 문제, 가족문제 등은 말도 안 되게 흘러가고 주인공에게 수난도 그런 수난이 없다.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한 고생은 더 큰 나락으로 내물뿐이다. 그래서 연속극들을 보는 사람들은 이미 '막장'이라는 것을 예상하며 어느 정도의 수위를 받아들이고, 욕하며 시청하는 것이다. 죽일 놈, 나쁜 놈 욕하면서 말이다. 
 
이번에 다산책방에서 나온 야릇한 소설 하나를 읽게 되었다. <어쩌다 이런 가족>이 그것이다. 얼마 전에 제목도 비슷한 <어쩌다 대가족 이번만은 무사히>라는 일본 소설은 핵가족화가 보편적이 되어버린 현대에서 각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그야말로 어쩌다가 대가족이 되어버린 좌충우돌 가족 스토리였다면 이번에는 단란하며 고상하고 우아해 보이는 4가족에게 벌어지는 큰딸 동영상 사건이 주요 소재이다.
 
의사 집안에서 의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아버지 용훈과 친정에서 고상과 우아함을 모토로 삼아 자란 용훈의 아내 미란, 그리고 맞춤아기로 태어난 '마더 테레사'란 별명을 지닌 완벽한 첫째 혜윤, 서로 잘나기만 한 집안에서 계획에 없이 태어나버린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둘째 혜란은 오늘도 아침만은 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규칙 아래 먹고 싶지 않은 아침을 깨작거리다 언니의 폭탄 발언을 듣게 된다. FM이요 얌전한 고양이라고 생각한 언니 혜윤이 섹스 동영상이 찍혔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협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 식사시간에 밥을 먹다가 나오는 주제는 거창하게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의견 교류나 엄마가 운영하는 미술관의 작품들 이야기가 전부였기에 가족들의 이야기들을 제삼자 입장에서 듣기만 하던 둘째 혜란은 이 사태가 재밌기만 하다. 그리고 언니의 사건은 자신이 시작하려고 하는 사업 '라운지바' 오픈의 촉매제로 만들기 위해 솔선수범 혜란이 나선다. 단, 그녀의 방법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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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나오는 가족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평범한 사람이 없는듯하다. 아빠는 사업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엄마는 친정에서 배운 바대로 가족들을 대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하며 식물인간으로 있는 첫사랑을 놓지 못한 채 병원에서 관리 중이다. 아주 고상한 말로써 말이다. 첫째 혜윤은 자신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끼지만 마음에 내재된 욕망을 성 상품화하는 식으로 분출한다. 둘째 혜란은 자존감 높게 행동하는듯하지만 기본적으로 외로움에 점철된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가장 평범해 보이지 않는, 또한 많이 어색한 것은 이 가족들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고상하고 품위 있는 가족의 모습을 연출하고 진심은 속으로 삭인다는 것이고 첫째 혜윤은 자신의 가족에게 부재한 것이 다른 가족에게 흔히 보이는 '소음'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생각할 때, 오히려 정갈하고 고상하며 우아한 혜란네 가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소음과 소란으로 엇나가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특히나 더욱 말이다. 하지만 하다못해 사회 속에서도 둘 이상 모인 공동체는 서로의 의견을 맞추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타협이 있을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소음과 마찰은 필연적이다. 적어도 이처럼 경직된 혜란네 가족의 모습은 자유와 의지가 억눌린 독재주의적 모습은 아닐 것이다.
 
좀 더 멋지고 이상적인 가정을 얼마나 꿈꾸는가. 그렇다면 가족은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가. 어떤 마찰을 예상하고 타협하며 가족으로 다독일 수 있는가.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화내기도 하지만, 더 이상 감정 소모를 하지 않고 무시한다면 그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타인이 되었다는 뜻이므로. 그래서 이상적인 가정이 되기 위해, 이상적인 부부가 되기 위해, 이상적인 연인이 되기 위해, 즉 관계가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 싸우는 과정은 필수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그 후 어떻게 화해해 나가느냐는 더욱 중요하고 관계를 이루기 위한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읽은 <어쩌다 이런 가족>은 이렇게 사람처럼 보이는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한 좌충우돌 막장 라이프였다.
 

 

요즘 들어 삼국지는 나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삼국지연의를 통해서만, 혹은 영화를 통해서만 접했던 한나라 말기의 상황인지라 영웅호걸들의 모습은 내게 고착화되어 변화될 줄 몰랐다. 거기에 하나, 둘 허구를 바로잡는 글들은 만나고 밀려오는 새로운 사실들에, 실망 반, 호기심 반 그리고 역사를 바로 보는 시각의 변화 등이 합세했다. 이번에 읽게 된 소설 <호접몽>은 그 소재의 특이함은 말할 것 없고 범람하고 있는 인터넷 소설 중 N스토어 SF 판타지 부문 1위라는 기염을 토하며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수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판타지 소설이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꾸었는데 너무 생생해 깬 지금 내가 맞는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지. 즉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내가 나비꿈을 꾼 것인지라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를 제목 속에 넣으며 이 작품은 삼국지의 세계 속을 주인공 용운이 공간이동을 하면서 군사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보이고 있는 소설이다.
 
사실 그에게는 병이라면 병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의 소유자다.  한번 본 것은 전부 기억하는 순간 기억능력과 기억한 것을 절대 잊지 않는 과다기억증후군을 가진 용운. 따라서 그는 한번 스캔한 것은 걸러지는 것 없이 훗날 무한 반복할 정도로 기억 능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해일처럼 다가오는 과거의 기억은 그를 힘들게 할 따름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최대한 현재의 겪으며 보고 있는 것을 보지 않으려 애쓰는 것뿐. 그에게는 고고학계의 거물인 아버지가 남긴 유물과 그가 설계한 구조물이자 유적인 집이 있다. 용운이 17살 되던 해 아버지는 그가 남긴 단서를 제외하고 갑작스레 행방불명 되었다. 
 
그런 용운에게 유일한 취미가 있으니 바로 전략 시물레이션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 스페셜'이다. 조금 다른 것은 턴제인 것으로 내가 작전을 펼친 후 쉬는 사이에 상대편이 전략을 짜면서 한 번씩 번갈아한다고나 할까. 부모님과의 삼국지에 얽힌 좋은 추억에 덧대어 그는 오늘도 집에서 게임 속을 빠져 들어간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 구사일생 몸을 보존하고 아버지가 주신 벽옥접상 나비상을 통해 용운은 이상한 세계로 공간이동을 해 황건적에게 쫓기는 몸이 된다. 조자룡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면서 용운은 자신이 여기 사람들을 보면서 그가 즐겨 하는 게임 '삼국지 스페셜' 속의 캐릭터들 능력을 보던 것처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판타지 소설깨나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류는 처음이다. 무엇보다 게임을 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캐릭터들 외모적인 면이나 그들의 능력을 설명하는 부분이 낯설었다. 용운을 호위하고 있는 사천신녀는 능력이면 능력, 외모면 외모, 대화하는 것까지 글을 읽고 상상만 한 것으로도, 같은 여자인 내가 봤을 때도 역대급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그리고 반으로 접힌 내지에는 유비, 관우, 장비가 멋들어지게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중 우리가 알던 산적 두목 같은 장비는 어느새 근육을 거의 드러내 놓고 있는 상반신과 곱슬머리 미청년으로 나온다. 평소엔 조용하고 시를 즐기지만, 전장에서는 포효하는 사자처럼, 그리고 엄청난 빠르기를 자랑한다. 용운을 공손찬 진영에서 유비의 책사, 즉 군사로의 아낌없는 면모를 보인다. 다만 그는 역사를 알고 있기에 그것을 뒤집을 계책까지 내어 놓는다. 그 후폭풍이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무한 책임을 느끼며 두려움에 몸을 떨기도 한다. 
 
예쁘장한 외모에 허여멀건하고 야리야리한(?) 용운이 삼국의 판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가. 아니 이런 게임 속 삼국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 원래 있던 현실세계로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아버지를 쫓았던 위원회에게 용운 역시 쫓기지만 그는 이 모든 상황들을 타계해갈 수 있을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이제 2권으로 달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