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로 더 유명하다고 하는 후지와라 신야...

그를 인터뷰하는 또 한 명의 여행작가 김윤덕...

둘다 본인의 원래 직업보다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이 더 편안하고 익숙한듯 여겨진다.

사진가, 작가...날선 비판의 시대정신을 가진 그가 들려주는 삶의 언어들이

두 사람이 그려내는 만남의 편안한 색채위에 쓰여진 이책 <겪어야 진짜>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이라는 단어를 무수하게 반복하며 들려준다.

흔히들 여행을 하는 이유가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라고들 하고,

다시 돌아오기위해서 여행을 떠난다고들 하는데,

이 책에서는 여행의 이유를 날선 단어로 아주 선명하게 도려내어준다.

 

김윤덕 : 왜 여행을 하십니까
후지와라 : 지기 위해, 좌절을 맛보기 위해 합니다. 여행은 자기가 무너지는 일입니다. 43쪽

 

흠칫 놀라며 책을 읽어내려가던 눈길이 멈춰졌다.

여행지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정보, 언어 등의 통상적인 준비들을 아예 거부한다는 그에게서,

진정한 여행에 대한 철두철미한 준비정신을 엿본다.

자신의 벌거벗은 존재 그대로 낯선 땅과 그곳의 존재앞에 다가가 온전히 내어놓는 것...

그것이 그만의 빠짐없이 행해지는 철두철미한 여행 준비로 여겨진다.  

그는 시간순으로 여정을 기록하는 데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꼭 가봐야할 명소는 물론이고 맛집과 숙소는커녕 교통편도 안중에 없다.

신야에게 여행은 관광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위한' 날것의 삶,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70쪽

 

날것의 삶...가공되어진 세상, 가공되어진 인간관계, 가공되어진 자신의 삶...

무엇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하려는 시도조차 피곤해져버린 우리들의 삶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말 날것의 외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지와라 신야, 그의 잔잔하면서 힘있는 음성에 귀기울이면서,

내안에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벌거벗은 자신의 음성 또한 공명처럼 들려오지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의 날카롭지만 자비로운 시선이 어느 높이에서부터 시작되었지도 잊지않으려한다.  

 

구두닦이를 했을 때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봤지요...그러니까 젊은 시절, 세상의 가장 낮은 관점에서 세상을 올려다 봤습니다. 140쪽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심이 느껴지는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들이 세대를 걸쳐 이어지다 보면, 계급의 기호로 인식되던 물건들이 횡적인 영역 확장을 이루어 각각 또 누군가의 취향적 기호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223~224쪽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절대적 심미안中

 

'디자이너의 흥미로운 물건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책에서, 기대와 다르게 눈길과 마음이 사로잡히는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진심', '마음'이라는 단어들이었다. 이 책을 선택하고 읽기 시작할 때의 기대는 남다른 선택의 기준과 차별화된 감각을 가진 이들이 보여주는 색다른 '물건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 색다른 '물건들'에 대한 앎음을 내것으로 삼아 그들의 놀라운 취향에 살포시 편승해보고 싶은 기대에 다름없었다. 그러나 점차 책을 넘겨갈 수록, 듣도 보도 못했을 물건들에 대한 발견과 몰입은 점차 옅어지고 인터뷰이들의 취향에 담겨진 사람냄새, 그들의 '물건'에 담겨진 마음에 대한 시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떤 물건을 심사숙고해서 고르고 사용할 때마다 기억을 덧붙이며 새록새록 소중하게 대하는 즐거움은 허락되지 않는 거예요. 저는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오래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물건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디자인을 보는 눈도 생기지 않을까요.?"...디자이너는 겉모양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소비문화를 촉진하는 산업화의 첨병이 아니다. 오히려 사물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색다른 시각으로 소비문화를 바르게 재편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 존재들이다. 168~169쪽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반영하는 생명력中

 

시대를 대표하는 감각을 가진 이들의 놀라운 취향의 대상이 된 '물건'들을, 상세한 스펙을 살펴보고 쇼핑목록으로 담도록 돕지않는 너무나 불친절한 이책에서 발견하는 따스함은 무엇일까. 인정조차하지않고 지내온 자신과 물건들과의 관계, 그안에 담겨진 마음, 서로 다르지만 반복되어진 선택에 담겨진 사유의 세계...그것들에 대해 새로이 눈길을 주고 발견하게 된 것은 아닐까.

 

건축가는 건축을 통해 취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그의 말...186쪽 백지위 수용의 건축中

어디선가 읽은 얘긴데, 사람을 누구나 자신이 쓴 글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이 똑같대요. 238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절대적 심미안中

 

뒤통수를 때리듯 나에게 꽂혀온 두 글귀다. 서로 상반된 의미를 전달해주는데, 둘 다 모두 수긍이 가니 이를 어찌해야할까. 자신을 정직하게 온전히 드러내던지, 아니면 요구되는 상대의 필요나 시대의 필요를 자신을 온전히 배제한 순백지위에 그려내던지 둘 중에 하나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다시한번 새기련다. 둘 가운데 어정쩡히 서서 이도저도 아닌 어지러움속에 나와 남을 헷갈리게 하는 것에서 탈출하려면 말이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우주와 같다는 말들을 한다. 그래서 사람 사이가 우주처럼 먼 것인가.

우주처럼 먼 사람들 사이의 까마득한 만큼, 그 '사이'를 마다않고 다가가서 일궈내는 이야기들이 이토록 절절한가보다.

이 책 「사실은 외로워서 그랬던거야」은 그런 외로운 우주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이 우주래도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우주같다 할 수 있을 법, 까마득한 거리에선 그저 하나의 점일 것이다.

그런 점들인 주인공 여고생 고무기, 그리고 고무기의 엄마와 할아버지, 이혼한 아빠, 할아버지의 옛사랑...

부모의 이혼과 새로운 학교에서의 어려움들이 스스로를 외로움의 자리로 떠밀어놨다고 여기는 주인공.

외로움의 탓을 모두 다른 이에게 돌리며 자신만의 은신처인 강가 나무배에 숨어있기를 즐긴다.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병환에 자신이 짊어지게 된 할아버지의 그림 배달.

무겁고 힘겨운 일이지만 왠지 마다할 수 없는 그 일을 통해 주인공인 새로운 만남과 성장을 준비하게 된다.

힘겹게 찾은 할아버지의 옛 연인이 지키고 계시다는 오래된 여관에는 그림의 주인이 될 분을 만나질 못한다.

대신 여관을 정리하기위해 며칠 묵고있다는 치사 언니는 주인공에게 뜻밖의 말을 한다.

"나만 외롭고 불행해. 그건 전부 주변 사람들 때문이야. 라고 생각하지?"

 

오랜 세월의 기다림을 비워놓은 동화책의 여백으로 간직하며 남겨놓은 할아버지의 옛 연인, 

그분을 위한 그림을 그려놓고서 생의 마지막에 전해주고서 언제나처럼 함께였다는 마주하는 두 사람,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달려와주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온전히 함께하며 그 아름다운 떠나보냄을 경험하는 주인공,

이후에 전해진 할아버지의 그림엽서를 통해 오래된 할아버지의 외로움속에 삶의 의미를 준것이

바로 갓 태어난 주인공 자신이었으며 마지막에도 자신과 함께함을 너무나 기뻐하고 고마워했다는 것을

알게된 주인공....그 모든 함께함을 알아버린 주인공이 책의 마무리에서 들려주는 말이다.

"모두가 서로에 대한 그리움 속에 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