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블로그 이웃의 서평 제의를 받고 만나게 되었다. 책이나 저자에 대해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청와대로 간 착한 농부』라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문재인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인 줄로 알았다. 그렇다면 현 시국과 관련이 있을 테니 흥미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책을 기다렸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음을 깨달았다. 나는 제목의 ‘청와대’를 보면서 농부는 문재인 대통령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농부가 농작물을 가꾸는 것으로 비유했으리라고 지레짐작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농부’는 실제로 농부였던 최재관 저자였고, 그 농부가 청와대의 농어업비서관으로 들어갔으니 ‘청와대로 간 농부’까지는 사실이다. 저자가 ‘착한 농부’인지 착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사람에 대해서 평가가 다르겠지만, 땅만 믿고 농사를 지은 농부 중에 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제목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 ‘청와대로 간 착한 농부’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내 생각이 틀린 것이지 왜 절반은 맞는다고 했는가? 비서란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직속되어 있으면서 기밀문서나 사무를 맡아보는 직위이다. 즉, 비서는 상사의 뜻을 받들어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가 한 일 중에서 자신의 뜻이 반영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사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니 비서는 상사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상사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저자가 한 모든 일은 대통령의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농부는 대통령일 것이라고 한 것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둘째, 최재관 저자의 이력이 인상적이다. 그는 고물상집 아들로 태어나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개천에서 용이 난 예라고 할까?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를 나왔으면 대기업이나 고위관직에 진출해서 뜻을 펴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그는 농촌을 지키는 농민운동을 하겠다면서 고향인 여주에 정착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운동을 하다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를 1년 만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글쎄, 내가 저자의 부모라면 천당과 지옥을 몇 번을 오간 기분이었을 듯하다. 힘들게 자란 아들이 명문대에 입학했을 때는 천당에 간 기분이었을 테고, 그 아들이 입신출세가 아니라 농민운동에 뛰어들었을 때는 지옥 비슷한 곳에 떨어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청와대 비서관이 되었을 때는 다시 부활한 느낌이었을 텐데, 그 자리를 1년 만에 그만두었을 때는? 아무튼 특이한 이력의 저자이다.

 

셋째, 책장을 넘기면서 새삼스럽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나도 농촌에서 성장했고, 지금 농촌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이웃의 어른들이 고생을 하는 것을 보았고, 지금 이웃사촌들이 힘들게 땅을 파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상당히 도약했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는 농촌 현실은 더 후퇴했다는 것이다. 농촌이 과거보다 못 살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의 어린 시절보다 경제는 좋아졌다. 집집마다 텔레비전, 냉장고, 승용차 등이 대부분 있다. 그것들은 과거에는 부의 상징이었다. 단순히 절대적인 비교만 한다면 과거보다 좋아진 것은 분명한데……. 상대적으로 나빠졌다는 의미이다. 어린 시절에 그 동네에서 부잣집은 농사를 크게 짓는 집이었다. 교사가 된 나의 첫 발령지는 농촌이었는데, 그때 농사를 짓는 학부모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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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힘들게 선생 일을 하시는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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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은 교사나 공무원을 경제적으로 힘든 직장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농사를 짓는 분 중에 부유한 분은 많지 않고, 교사나 공무원을 안쓰럽게 보는 농민도 많지 않다. 농민들은, 아니 우리 농촌은 상대적으로 과거보다 후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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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현실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어려워진 상황을 각종 통계를 통해 제시하기도 했다. 그것을 확인하면서 한숨도 나고 가슴이 먹먹했다.

 

넷째, 이 책은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책이다. 저자는 단순히 농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책을 쓰지 않았다. 그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농민 운동을 했고, 그 뜻을 펴기 위해 청와대 비서관이 되었으며, 보다 효과적으로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정치에 뜻을 두고 청와대를 나왔다고 한다. 국회에 진출해서 농촌을 살리는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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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청와대비서관으로 있으면서 학교 급식 등을 통한 우리 농업 살리기에 노력했고,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두었으나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의회에서 농촌을 살리기 위한 법과 정책을 추진하고 싶단다. 여주를 살리기 위한 숲 개발과 환경보호 등 여주형 일자리를 통한 수익 사업 계획을 볼 때는 다른 지역에 사는 나의 가슴도 뛰었다. 그것은 막연한 꿈이 아니었다. 저자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성공사례를 들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포부를 보여주었다. 여주의 성공은 비슷한 다른 농촌의 성공이 아니겠는가? 우리 농촌을 위해서 그의 꿈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농촌의 민심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천당과 지옥을 몇 번 오락가락했는데, 저자의 선택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

 

다섯째, 역지사지의 마음에 공감했다. 연말연시나 각종 행사 때 정치에 뜻을 둔 이들을 자주 만나고 있다. 저자는 예전에는 그때마다 번거로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그 길에 뛰어드니 그들에게 무심했던 자신의 지난날이 죄스러웠단다. 나 역시 그런 이들의 명함을 자주 받았고, 대부분 받자마자 버리곤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꿈을 향해 뛰는 우리 이웃이 아니겠는가? 이제 명함을 받으면, 나의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격려 문자라도 보내려고 한다. 정말 고생이 많다고, 꼭 뜻을 이루기를 빈다고……. 그것이 우리 이웃을 돕는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별로 어렵지 않다. 중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으면서 자신의 뜻을 진솔하게 펼치고 있다. 농촌은 우리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이 땅에 사는 이들은 누구라도 읽어볼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글씨가 크고 줄 간격이 넓은 것은 농촌의 연로한 분들을 배려한 저자의 뜻이 아닌가 싶다.

 

청와대로간착한농부, 최재관

안흥성당 주일미사에 갔다가 구입한 책이다.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 모음집이다. 천주교에서는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거나, 생전에 뛰어난 덕행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믿어져 공식적으로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이 된 사람을 '가경자-복자-성인'의 존칭으로 부르고 있다. 최양업 신부님은 지금 '가경자'로서 교황청에서는 복자위에 오르는 과정을 심사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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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본당 신부님께서 구입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원주교구에서는 최양업 신부의 복자위 승품을 노력하고 있는데, 신자들이 그의 삶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기도를 하라는 의도일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이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뜻밖에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에서 많은 정보를 알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최양업 신부는 한국의 두 번째 사제(최초의 사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로 사제가 된 뒤 1년 만에 병사한 분이다. 그의 삶이 순교자 김대건 신부와 같이 드라마틱 한 대목도 없을 듯하고, 역사에 대한 어떤 정보가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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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장을 펼치는 순간에 바로 지식의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제1부에서 한국천주교회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 한국교회와 관련 있는 용어들(지목구, 대목구, 교구, 대교구, 관구 등)이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성당에 오래 다녔으므로 교구에 대해서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목구, 대목구, 관구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기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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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주교에는 명의주교와 교구주교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주교는 교회의 전통에 따라 자신이 담당하는 교구가 있어야 하는데, 은퇴주교나 부주교는 교구장이 아니니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위해서 명의주교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은퇴주교들은 지금은 사라졌거나 기능을 상실한 교구를 담당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것이 명의주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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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약사와 용어 설명은 비록 30여 쪽의 짧은 분량이지만 내게는 지식의 보고를 만난 듯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둘째, 최양업 신부와 최방제 신학생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1835년에 조선에 입국한 최초의 서양 선교사인 모방 신부는 조선의 선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선인 사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세 명의 소년을 뽑아서 마카오로 유학을 보낸다. 그들은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다. 그중에 김대건 신부는 26세인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했고, 최양업 신부는 1861년 41세의 나이로 과로로 병사했으며, 최방제 신학생은 1837년에 서품을 받기 전에 위열병으로 병사(10세 이전으로 추정)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는 1984년에 성인으로 선포된 뒤에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의 대표로 한국 교계에서 추앙을 받고 있으며, 2019년 11월에는 유네스코는 제40차 총회에서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확정되는 등 국제적으로도 조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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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신학생 신분으로 병사한 최방제, 과로로 병사한 최양업 신부는 김대건 신부의 그늘에 가려진 면이 있었다. 하지만 최양업 신부는 단순한 병사가 아니었다. 그는 신부로 서품을 받은 뒤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입국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는 동안 만주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그는 입국 이후 불과 1년여 만에 병사했으나 관할구역인 5개도의 127개 공소를 관헌의 눈을 피해 걸어서 찾아갔다가 한다. 1년 동안 거리만 7천여 리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과로로 숨이 진 것이다. 최양업 신부의 희생이 김대건 신부에 비해 결코 뒤진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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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방제 신학생 역시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제가 되어 조선의 백성을 하느님 품에 안기겠다는 꿈을 품고 이역만리 마카오까지 갔다가 병마에 쓰러질 때 그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김대건 신부뿐만 아니라 최양업 신부와 최방제 신학생과 같은 선구자가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교회가 세워졌을 것이다.

 

셋째 최양업 신부의 편지를 읽는 동안 감동의 연속이었다. 이 책에는 최양업 신부가 그의 스승인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보낸 열여덟 통(19통의 편지 중에 9번째는 분실되었다고 함)의 편지가 실려 있다. 이 편지들은 단순한 안부가 아니었다. 만주에서 조선 입국을 기다리는 동안(1~6통)의 심경과 입국 계획 등이 실려 있고, 조선 입국 이후에는 사목활동에 대한 보고도 겸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동정이나 통계만 담은 것이 아니라 조선 신도들의 고통과 신앙의 자유를 갈구하는 모습이 간곡하고 애절하게 담겨 있었다. 특히 18세의 나이로 신앙을 위해서 동정을 지키다가 병사한 바르바라의 이야기(일곱 번째 편지 중 66~73쪽)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했다. 

 

넷째, 교회사로는 물론 한국사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조선 시대에 외국인에게 20통에 가까운 편지를 보낸 경우가 최양업 신부 외에 있었을까? 개인적인 감정은 물론 조선의 상황을 진솔하게 담은 이 편지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보물이지만, 내용 역시 아름다웠다.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지식과 신앙적이면서 인간적인 감동을 주는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누구에게 권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톨릭 신자에게는 신앙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일반인에게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한다. 중학생 이상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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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느낌을 덧붙인다면 나는 이 책에 대해서 특별한 지식이나 감동은 기대하지 않고, 신앙적인 의무감으로 구입을 했다. 그러나 책장을 덮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었다.

최양업, 너는주추놓고나는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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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도서관의 토지 전질(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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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화백이 그린 만화 『토지』를 읽은 것이 2007년이다. 그 무렵에 작가인 박경리 선생이 원주에 거주하고 계셨고, 직접 뵌 인연도 있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애착을 느꼈지만, 나는 토지 원본을 읽지 못했다. 5부 20권이라는 방대한 작품을 읽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만화로 나왔다는 말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구입했다. 나로서는 상당한 지출이었다. 전질 7권, 권당 1만 원이니 모두 7만 원인데,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액이었지만, 과감하게 구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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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실망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완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구입할 때까지만 해도 완간된 작품인 줄 알았다. 그러나 1부 5권만 만화로 구성한 것이었다. 하기는 나의 잘못이 컸다. 아무리 뛰어난 만화가라고 하더라도 20권의 대작을 7권으로 꾸밀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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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1897년 한가위에서부터 1908년 5월까지가 담겨 있는데, 평사리의 전통적 지주인 최참판댁과 그 마을 소작인들을 중심인물로 하여 최참판댁의 비밀(최치수의 살해 사건 등)과 조준구의 계략, 이용·귀녀·김평산 등의 애욕 관계 등이 얽혀 있었다. 조준구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긴 서희가 간도로 이주하는 장면에서 막을 내리는데……. 완간인 줄 알고 구입했던 나로서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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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등장인물만 해도 수백 명인데, 만화로 구성하다 보니 사건의 압축이나 생략이 많았다. 인물을 봐도 그가 누구인지 금방 감이 잡히지 않았고, 여러 사건이 얽혀 있다 보니 윤곽이 잘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 2~5부가 완간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구입을 하지 않은 이유는 쉽게 읽기 힘들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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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안흥도서관에 전질(17권)이 들어왔기에 읽게 되었다. 10여 년이 흐르다 보니 앞의 내용을 상당수 잊기는 했지만, 예전에 구입한 책의 뒤인 8권부터 읽은 것이다. 나로서는 드물게 10여 년에 걸쳐서 읽게 된 이 작품에서 느낀 생각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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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역시 읽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소설이라면 만화로 구성할 때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1897년부터 1945년까지 반세기에 걸쳐서 평사리와 만주와 서울과 일본 등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 사이에 동학혁명, 한일합방, 삼일운동, 독립운동 등에 얽힌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전체적인 주인공은 서희와 길상이라고 하겠지만, 그밖에도 많은 인물들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초기의 중심인물이었던 이용과 월선은 세상을 떠나고, 그들의 자녀나 손자들이 성장해서 나름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것을 17권의 만화에 어찌 담을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그가 누구이고,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니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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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작가가 바뀌었으나 그것은 큰 변수는 아니었다. 원작 작가는 박경리 선생이지만, 1부(7권)는 오세영 화백이 그렸고, 2~5부(10권)는 박명운 화백이 그렸다. 그림 작가가 바뀐 연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로 인한 혼란은 없었다. 다만 왜 바뀌었는지는 궁금했다. 오세영 화백이 2016년에 타계했는데……, 건강 문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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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원작을 먼저 읽고 만화를 읽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만화는 명작에 어울리게 만든 작품으로 정성과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컷도 허술하게 그리지 않은 듯하며, 등장인물의 복장이나 소품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것이 느껴졌다. 다만 원작을 먼저 읽었다면, 만화에서 압축된 부분도 쉽게 이해를 하면서 더 깊고 넓게 감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례로 이 작품에서 최고의 악녀를 꼽는다면 임이네가 될 텐데……, 그녀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남편인 이용과 아들인 이홍을 괴롭히면서 짐이 되었다. 나름 비중이 큰 인물이었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생략이 되었다. 등장인물의 소개에서는 임이네가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고 언급하고, 아들인 이홍이 그녀의 마지막을 지켰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생략된 것이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마지막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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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등장인물 소개가 좋았다. 각 권마다 5쪽 정도에 걸쳐서 40명 가까운 인물을 소개하는데, 그때마다 등장인물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의 서희의 경우 1권에서는 10세 안팎이었지만, 17권에서는 50대가 되었는데 그때마다 변화된 얼굴로 소개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려면 등장인물 소개를 최소한 세 번 이상 숙지를 하고, 책장을 넘기면서도 등장인물을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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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권말부록이 좋았다. 각 권마다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면서 독자가 주목해야 할 부분을 안내하고 있고, 관련된 사건들도 백과사전 형식으로 압축해 놓았다. 원작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책의 서두에 있는 등장인물과 권말에 있는 줄거리 요약과 안내 부분을 먼저 읽고 책을 읽으면 이해가 쉬우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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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개인적으로 인생을 잘 보여주는 명작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수백 명의 등장인물이 반세기에 걸쳐서 활동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절대적인 선인도 없고, 초인도 없다. 누구나 이런저런 약점과 갈등을 겪으면서 때로는 좌절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인 서희나 길상이마저 완벽한 인물로 그리지는 않았다.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겠는가? 누구나 내로남불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이 사람만은 언제라도 믿을 수 있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이미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한국인의 작품으로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작품성으로는 박경리 선생이 가장 근접한 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오세영, 박명운 두 화백은 명작에 어울리는 훌륭한 작품을 합작했다.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전질을 모두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다. 『토지』원작을 읽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원작의 내용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읽기가 힘겨울 수도 있을 것이다. 원작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독서는 가능할 것이다. 서두의 등장인물 소개, 권말의 작품 요약과 시대 배경 안내 등을 읽는다면 작품은 물론 역사와 인생을 이해하면서 감동을 얻을 수 있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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