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두 번째인 이 책은 우리나라 고유의 젓가락 문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젓가락이란 주제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엮어갈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 수저란 숟가락, 젓가락을 하나로 합친 개념에서 생긴 독립된 말이다. 이런 개념이 중국, 일본에는 없다. p 55

그저 일상에서 필히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젓가락이기에 평소 별다른 애착이나 눈여김은 전혀 없었다. 국물이 없는 찬에는 굳이 숟가락을 쓰지 않고 젓가락만으로 밥을 먹는다. 유독 고집하는 것이 있다면 젓가락 짝을 맞춘다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도 함께 젓가락을 사용하는 나라이고 우리나라처럼 숟가락은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 알고 있다. 그들의 숟가락은 우리나라와 그 모양이 달라 사용하기 편하지 않다는 게 각인되어 있다.

어렸을 때 어떻게 젓가락질을 배웠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바르게 사용하는 것과 달리 울 두 녀석들은 여전히 젓가락질이 서툴다. 특히 큰아이는 쇠젓가락으로 면 집는 걸 힘들어하는데 젓가락뿐만이 아니라 끈 묶는 것도 서툴고 과일도 못 깎는 울 녀석들을 보면 답답하다. 저자의 말처럼 젓가락은 생물학적 유전자로 전해져오는 것이 아닌 학습해서 전승되는 문화유전자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난 이런 면에서 불량 부모가 된 것 같아 울 녀석들에게 미안하다.

- 젓가락은 가장 확실한 문화유전자의 모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젓가락을 알면 우리의 문화유전자를 알 수 있다. 우리 조상이 쌀밥 먹고 국수 먹을 때부터, 우리도 모르게 전승돼 내려오면서 학습된 나의 문화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토대다. p 206

-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고 하나의 공동체라면 무엇을 알아야겠는가? 한국인이라는 생물학적 유전자가 아닌, 학습하고 전승되는 문화유전자를 배우고 길러야 한다. 만약 우리가 젓가락질도 바르게 못 하고, 젓가락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한국인의 정체성과 그 문화를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p 207

한국인을 통해 본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는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식사 시에 수저를 놓는다. 이는 젓가락과 숟가락이 한 세트임을 말한다. 굳이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습관적으로 함께 챙긴다. 젓가락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숟가락에 관한 내용도 있어 젓가락과 함께 그에 대한 상식도 키울 수 있어 좋았다.

짝은 이루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젓가락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끝없이 뻗어나간다. 조화의 짝 문화, 생명의 가락문화, 인류 문화의 화석, 맞서는 엄지와 젓가락질, 아시아의 젓가락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만이 지닌 고유한 문화와 유전자에 천천히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젓가락을 이용한 미래학적인 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참 획기적인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자의 바람처럼 실용화에 성공한다면 인류의 미래에 대한 판도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되는 부분이다.

- 이 토광묘에서 나온 젓가락만 보아도, 젓가락이란 경제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외래의 것과 내적인 것. 대립되고 서로 다른 모든 것들은 연결해주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 자산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게 생명문화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젓가락에는 생명 공감의 문화가 깃들어 있다. 이걸 개발하자는 거다. p 288

- 불행히도 현재 한국이 아시아 세 나라 중에 젓가락 문화가 가장 뒤떨어져 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젓가락인데, 젓가락질할 줄 아는 아이들의 비율도 낮고 제대로 된 젓가락 학술서 하나 나와 있지 않다. 젓가락은 화합하는 짝의 문화를 의미하며, 문화는 종주국을 따지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우리의 젓가락 문화유전자로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기를 원한다면, 그 지름길은 11월 11일 젓가락의 날 선포에 있다. p 289

- 드디어 2015년 11월 11일 오전 11시, 청주에서 한중일 3국 공동으로 '젓가락의 날'이 선포되었다. p 295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젓가락의 날'이 있는지도 몰랐다. 반성한다.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길을 따라 한국인의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를 따라가보았다. 뭔가 뿌듯한 면도 많았고 현재에 이른 젓가락 문화에 대한 아쉬운 면도 있었다. 나부터가 젓가락질이 별거냐는 의식이 만연해 있는데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꼈다.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를 통해 본 한국인 이야기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의 특징에 대해 몰랐던 부분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책은 처음인데 그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는 점에도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위트와 박식함이 돋보이는 책으로 한국인이라면 모두 읽기를 강추한다. ^^

제목부터 슬프다...

자살이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라 생각되지만 정작 따지고 보면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리기도 한다. 특히 청년 자살은 더욱 그러하다.

둘 중 하나는 자살이라는 청년 죽음.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을까. 그에 대한 답을 이 책 속에서 찾아보았다.

이 책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고독생, 고독사, 청년 자살, 실업, 저임금, 불평등, 미디어 폭력, 차별, 몰이해 등 청년을 절망하게 하는 한국형 불행에 대한 첨예한 보고서'로 가장 외로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이유와 대책 등 실질적인 사례와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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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청년들의 발걸음을 우리 사회가 함께 멈추게 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합니다. 현실 자체가 절망스러운데, "더 잘해", "이겨내" 하는 채찍질은 이젠 그만둘 때가 되었습니다. p 7

- 자살. 한 인간에게는 가장 처절한 절망의 절규이지만, 그 사회와 이웃에게는 경종의 메시지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이들을 절벽의 끝으로 밀어내는 거대한 힘이 작동합니다. 끝내 어떤 이들은 그 절벽의 끝에서 먼저 뛰어내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구조적 힘이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을 우리는 개인의 선택인 '자살'로 덮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p 9

- 현대 한국 사회 청년들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여러시각과 관점이 있겠지만, 진료실에서 청년들과 주고받은 상담의 재료들에 기반하여, 정신과 의사로서 청년 문제를 초단순화하여 진단한다고 하면, '기성세대와 현 사회의 공감 실패'가 청년 절망의 큰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다른 용어로 표현하면 '기성세대의 병적 나르시시즘, 제도와 정책의 청년에 대한 몰이해'가 청년 세대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p 11

- 과거 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한국, 미국, 일본, 중국, 이 네 나라의 부모와 청소년의 관계에 대해 조사했는데, 자녀의 이야기를 가장 들어주지 않으면서 자기 이야기만 쏟아내며, 모든 대화를 기승전-공부 방식의 대화를 고집하고 있는 부모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럴 만한 시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p 15

- 청년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기회를 만들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사회 전체가 청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청년들은 와서 다시 삶을 외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줄어들 것입니다. 잔소리를 멈추고 오해와 편견을 거두고, '청년 대공감 운동'과 함께 청년들에게 실수할 기회와 도전할 자리를 과감히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p 15

- 그렇지만, 오늘날의 청년은 경험에서도, 처한 환경에서도 윗세대와 아주 다릅니다. 연령대가 같다고 해서 똑같은 집단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인구의 10%가 채 대학을 가지 못했던 시대와 인구의 4분의 3이 대학을 가는 시대에 대학 졸업장이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해마다 경제성장률이 10%가 넘고 서로서로 일할 사람을 데려가려던 시대와 하루가 멀다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대에 취직이 같은 시도가 될 수 없습니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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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진 나도 일반적인 기성세대처럼 청년의 자살을 그저 한낱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했다.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는 청년 자살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야기됨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에 서로 다른 분야에서 청년 자살을 연구해온 저자들의 연구 결과물을 토대로 청년 자살의 숨겨진 원인에 대해 하나씩 접근해 나갈 수 있었다.

여러 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청년의 삶. 둘 중 하나가 스스로 죽는다고 하니 참으로 심각한 현상이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있어 전통적인 정신건강 정책의 비효율성의 문제점과 지금의 청년 세대의 특징을 토대로 청년 고통의 키워드에 접근하며 청년의 생명을 살리는 제도적 접근들에 대해 검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청년 고통의 키워드 : 초경쟁 사회에 출생해서, 능력주의 사회, 저성장 사회에서 자라고,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첫 세대로 청년기에 들어서서, 척박하고 차가운 사회에서 고독생으로 발을 딛고 있다가, 고독사하는 세대 p 44

여성 청년 자살, 세대 간 감염된 절망, 주체가 빠진 청년 복지 정책, 자살 및 정신건강 위기 전화로 본 실사례, 코로나 시대 - 통계로 보는 청년 자살을 통해 청년 자살이 지닌 심각한 문제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속 시원함 없는 뭔가 답답함이 느껴졌지만 청년 자살에 대해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청년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정책과 그 실효성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과제로 남겨져 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희망적이라 생각한다.

기성세대로서 여느 기성세대적 사고를 갖고 있었던 나를 반성하며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미미하나마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며 다소 무겁게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