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면 떠오르는 건 헤어짐이다. 살아가면서 우린 작별보단 이별을 많이 경험하는 것 같다. 굳이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작별은 사별에서 종종 이루어지는 행위란 생각도 든다. 사별이라고 해도 작별 인사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그 애통함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어렵다.
이 책은 이어령 작가의 유고집으로 그가 생전에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는 도서이다.
처음을 시작하는 '마지막 인사말'이 울컥하다.
- 내가 모르는 사람들, 그분들이 나를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는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땅에서 한 시대를 살아왔어요.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서 함께 나누어 생각나는 집합 기억이라는 것이 있고,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온, 같이 마음을 나누었던 것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여러분과 헤어지는 인사말이 되고, 내가 없는 이 땅에 태어날 미래의 생명들에게 전하는 그런 마리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미래를 향한 작은, 나의 유언과도 같은 것이죠. P 5~6
뜻밖의 어린 시절 종종 불렀던 노래를 마주하게 되니 잠깐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뒤 하나씩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노랫말 속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이 책을 선택한 것이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다.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다.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빠르다. 빠른 것은 비행기, 비행기는 높다, 높은 것은 백두산..... 어린 시절 누구나 즐겁게 불렀던 구전 동요로 그저 사실에 기반하여 지어진 노래구나-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하나하나의 단어가 지닌 의미는 실로 대단한 것들이었다.
- 이것을 이 키워드를,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이 다섯 가지를 내가 어떻게 경험했는가, 그 말과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오늘 여러분과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의미를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환히 들여다볼 수 있게, 살아온 발자취를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겁니다. ... 이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가 경험했고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해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살아왔던 게 무엇이고, 우리가 없는 세상 저 먼 미래에는 이러한 키워드들이 어떻게 바뀌고 거기에서 어떤 문화 유전자들이 이어져갈 것인가 하는, 내가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가려 합니다. p 16 ~ 7
이 다섯 가지 키워드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민족성이 깃들여 있었다.
-개화란 뭐냐, 우리와 똑같이 사랑할 줄 알고, 또 어머니 아버지 공경할 줄 알고, 그리고 자식을 끌어안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이 땅에 살고 있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이에요. 우리는 이런 가족, 똑같은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른 채 은둔하며 폐쇄적인 생활을 해왔지요. p 24
폐쇄적인 생활을 해 온 우리 민족이 아는 거라고는 겨우 중국 사람, 일본 사람 정도였다. 그런 우리에게 모습이 다른 외국인을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부터 외국 체험이 시작되었다니 전혀 예상 밖의 내용이었지만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 엉덩이 빨간 짐승 같은 사람들이 사실은 기막힌 능력이 있고, 우리보다 훨씬 월등한 문명인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 콤플렉스, 한쪽으로는 무시하면서도 한쪽으로는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중 복합 감정, 그게 바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의 뜻이며,, 외국을 숭배하고 외국이 우리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업신여기고 비하하는 이중 감정이 우리 개화기의 외국관, 외국인관입니다. p 25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니 어릴 때 그저 재미로 불렸던 구전 동요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사과는 그냥 먹거리가 아닌 서양 문명이 압축된 상징적 이미지로 그에 대한 이야기 역시나 술술 풀어나갔다. 미국 전역을 다니며 사과를 심은 조니 애플시드란 인물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그 외 바나나, 기차, 비행기가 지닌 의미는 직접 이 책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생각지 못한 의미들에 감탄할 것이다.
내가 헤어질 때와, 떠날 때의 인사말 ···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