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무슨 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은 일단 읽기전에 신뢰를 선사한다. 몇년전에 <캐비닛>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 역시도 오늘과 같은 신선함을 줬던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잽>은 9편의 단편이 함께 한다. 일단 책제목이기도 한 <잽>을 먼저 읽었는데, 솔직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과연 주인공 남자에게 가해진 처벌이 정당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잘못을 끝끝내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벌을 계속 수행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옳음을 보여줬다.

분명 탤런트로 데뷔해 활동하던 사람인데, 극중연기를 소화하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복싱의 매력에 빠져 마침내는 국가대표로까지 발탁된 이시영이라는 여배우가 있다. 참 대단하다 싶다.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두가지의 직업을 갖게 된 그녀의 선택에 무한한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처럼 <잽>속의 고등학생은 수업시간에 창밖으로 보이는 회오리바람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날렸을뿐인데, 자신의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생으로부터 뺨을 맞아야 했고, 반성문을 내기전까지는 화장실청소를 해야 하는 벌을 받는다. 요즘은 솔직히 아이들의 의사표현이 정확하고, 부당한 처우에 대해 정당하게 대처하기 때문에 학생이나 선생이나 서로 조심하고 존중하는 추세다. 그렇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시점에는 교실의 왕좌는 선생이었다. 그렇기에 선생이 하라 지시하면 100% 따라하는 흉내라고 내야 했고, 또 선생이 잘못되었다고 반성문을 요구한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순응했던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 책속의 주인공은 그 황당한 상황을 납득할수 없었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피해가기 위해 선생에게 반성문을 제출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에 계속적으로 벌당번을 서는 것을 택했고, 마음속에 잠재된 울분을 정당하게 털어놓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복싱이었다.

도장에서 가르쳐준 '잽'이라는 기술은 어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도 절묘하게 활용해야 하는 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잽은 약육강식, 수많은 얽히고 설키는 관계의 흐름도속에서 결코 평온할수 없는 우리네 상황을 잽을 날려 나만의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상대로부터 뭔가를 다 획득하겠다는 독기나 오기를 품지 말고, 분노하지 않게끔 자신을 다스리라는 것, 또 살아가면서 톡톡 건드리듯 자연스럽게 잽을 구사할수 없다면 상대에 대한 내감정상태와는 달리 끌어안는 홀딩도 적절하게 섞을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준다.

너무 멋있는 내용이었다. 그 한편을 읽고 났더니, 괜시리 이 책을 읽는 속도를 더디게 차분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상당히 묵직했고, 그것을 음미하려면 최대한 속도를 늦춰야겠다라는 생각까지 해 준 책이다.

어떤 집단이든 그 나름대로의 정의와 이유를 대며 철저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행동을 취할수 있다는 것이 다시금 느껴졌던 책이 아닐까 싶다.

성경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그 소재만으로도 괜한 경건함을 갖게 되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의 탐욕은 그 누구도 피해갈수 없구나를 느낄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성경 필삿본인 알레포 코덱스는 어쩜 처음 의도된대로 세상을 구원하고, 믿는 자 모두에게 평온함과 확실한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해버렸다. 뺏으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암울한 생활을 했던 것이 이 알렉포 코덱스의 운명이었다.

논픽션인데도,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파울로 코엘료가 극찬했다는 수식어가 붙을 만 했다.

알렉포 코덱스에 적혀 있는 헌사에는 이 책을 보존하는 이 축복받고, 훔치는 자 저주 받고, 책으 파는 이나 저당잡히는 이는 저주받을것이니 결코 팔리거나 더렵혀지는 일이 영원히 없으리로다라 했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훼손되고, 심지어는 찢겨져 나가고, 누군가의 이속을 챙기기 위해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설들을 가진채 알레포 코덱스는 게속 전해져 왔고, 그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보이지 않는 알력이 생겨나기도 했다. 정확한 경위를 알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역추적하며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자에게조차 그들은 돈이 아니면 어떤 정확한 정보도 주려 하지 않는 인간들이었다.

알레포 코덱스를 찾아오는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스라엘 정부도 가담을 했고, 또 벤즈비 연구소로 이관되는 이후부터는 알레포 유대인 공동체와 이스라엘 정부간에 소유권 다툼이 있었고, 결국은 소유권은 인정하되 보관은 벤즈비연구소에서 하기로 했다고 한다.

난 가장 마지막부분에서 만나게 되는 한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보면서 괜시리 얼굴이 화끈거리며 무한한 죄송함이 들었다.

히브리어 성경은 인간에게 주어진 윤리기준이고 이것을 가장 완벽하게 필사한 것이 알레포 코덱스인데, 그것이 훼손되었다는 것.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마이모니데스가 접했을 경우 '사람들이 하는 일 이 다 그렇지'라는 의미의 슬픈미소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고 한 부분 앞에서 괜시리 안타까움 만큼이나 슬퍼지려 했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줄 기준을 제시하려 했고, 그 기준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결코 아웅다웅하느라 세월을 흘려보내지 않았을 것 같은 알레포 코덱스가 결국은 우리네 이기심때문에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던 책이다.

제목이 참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말은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부터 주워담을수도 없고 고칠수도 없기에 쉽사리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 "미치겠다" "죽을것 같다"라는 소리를 자주로 하게 된다.

요즘은 특히나 사무실내 돌아가는 형상이 너무 웃기지도 않고, 업무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막가파 팀장때문에 스트레스 수치가 매일매일 올라가고 있기에, 매번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야 하는데..."라는 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이 우리의 변화를 돕고 또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복잡한 심정을 말하고 또 뭔가 상대로부터 위로와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준다고 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과 정신분석상담을 했는데, 사례 역시도 천차만별이었다. 특히나 남에게 좌절감과 고통을 주기 위해 자신의 거짓죽음을 알리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인지.

이 책은 총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새로운 시작,변화,사랑,거짓말,마지막에 관한 각각의 주제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어떤 누구에게나 닥칠수 있는 회피하고 싶은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내냐가 그사람의 정신건강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죽을것 같고, 피할수 없을 것 같은 지옥같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 시간이 지나갈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나느느 이런 심리쪽과 관련된 책을 읽을때면 궁금한점이 있다. 이런 수많은 성향의 사람들과 상담하는 사람들은 그 엄청난 정상궤도를 벗어난듯한 사례들과 어떻게 조율하며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킬수 있나 싶어서. 이래서 정신과의들도 일정간격으로 자신들조차 정신과치료를 받는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아무튼 이 책은 31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떤 정답이나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가 나 자신과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미처 꺼내놓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문제가 비단 나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에게 나를 온전히 드러낸다는 것이 나를 다독여주는 치료법이 될수도 있음을 가르쳐준다.

신은 우리가 겪어낼수 있을만큼의 고통을 준다라는 말도 떠올리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