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음악, 체육은 항상 내 발목을 잡았다. 그중에서도 음악과 체육은 어쨌든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되는데, 창의성이 기본인 미술은 노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나라를 강타한 컬러링북 열풍에서도 나는 컬러링북에 도전하지 않았다. 윤곽선만 그려져 있고 속을 채워야 하는 그 페이지를 대하면 한 칸을 채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막막했다. 학창 시절 숙제라면 어쩔 수 없이 해야겠지만, 그 시절을 잘 견뎌낸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러나 컬러링북을 이어 등장한 스크래치 북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배경이 칠해진 위에 검은색이 덧발라져 있어서, 독자가 할 일은 끝이 날카로운 나무 막대를 들고서 선을 따라 긋는 것뿐이다. 어렸을 적 미술 시간에 비슷한 것을 했었다. 크레파스로 알록달록 색칠한 후 위에 검은색 크레파스로 덧칠해서 아래 그림을 덮는다. 그러고서 역시 날카로운 것으로 검은색을 긁어서 아래에 있는 색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때는 아래에 어떤 색이 있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으니, 순전히 우연에 의한 효과를 얻는다.

1세대 스크래치 북은 검은색 아래의 색이 노란색뿐이었는데, 이번에 만난 <Colorful Night View>(스키아 지음, 보랏빛소 펴냄)은 드디어 아래의 색도 컬러풀한 2세대 스크래치 북이었다.

'유럽과 아시아로 떠나는 스크래치 북'이어서 유럽의 이탈리아와 영국, 프랑스, 헝가리, 러시아, 아시아의 중국과 일본과 인도, 오스트레일리아가 총 12페이지를 채워준다. 콜로세움, 오페라하우스, 에펠탑, 타지마할 등 그림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명소들이 즐비하다. 그런 명소는 보통 명도가 다른 노란색으로 구성되고, 컬러는 그 건물을 둘러싸고 하늘을 색색으로 물들이는 불꽃놀이, 조명이 설치된 수풀, 신비하게 푸르게 빛나는 초승달 등에서 빛난다.

컬러링북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스크래치 북도 이번 책으로 처음 만났다. 검은색은 손에 묻어나지 않고, 나무 막대로 잘 긁힌다. 검은색 아래는 매끈한 재질이어서, 막대로 긁는 데 어렵지 않다. 스크래치 북으로는 섬세한 표현이 어려울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려진 대로 잘 따라 그어보면 충분히 섬세했다. 배경 자체에 색상이 단조롭지 않게 칠해져 있으니 조금 실수해도 티 나지 않는다.

컬러링북에 색을 칠하면서 힐링과 평안을 얻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처럼 컬러링북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스크래치 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을 누리다 보면 어느새 컬러링북에 도전하려는 마음도 생길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셨다. 아이 숙제가 아니라 부모님 숙제였다. 매일 20분 이상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라는 것. 선생님이 숙제 검사는 하지 않으시겠지만, 어쨌든 책을 읽어주려고 며칠은 노력하다가 금세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주지 않았던 탓인데, 회사를 다니면서 집안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가 어렸을 때는 책을 좋아하는 나를 따라 책도 꽤 읽었는데, 스마트폰이 생긴 후로는 책과 멀어져버렸다. 아마 많은 아이들이 그럴 것이다. 공부 부담뿐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강적이 생긴 탓이다. 이런 현상은 어른도 마찬가지이니,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책은 지식과 경험과 감성과 상상과 사람과 깨달음을 담고 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이 책을, 그것도 좋은 책을 읽게 해야 한다. 책 읽기는 공부하다 잠깐 시간이 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공부보다 더 필요한 생존력을 책임지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초등 인문독서의 기적>(2016, 임성미 지음, 북하우스 펴냄)은 인성이 형성되는 초등학생 때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적는다. 저자는 '20년 넘게 독서 지도를 해온 독서교육 전문가'로 소개되어 있는데, 전에 이분의 책 <책벌레 선생님의 아주 특별한 도서관>을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문독서'를 '좋은 책으로 평판이 나 있는 책 중에 아이에게 맞는 책을 골라 함께 읽는 것'으로 설명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단서가 있다. 바로 좋은 책, 아이에게 맞는 책, 함께 읽는 것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왜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야 하는지, 왜 초등학생 때 인문독서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Chapter 3까지가 인문독서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도입부가 되겠다.

Chapter 4 '처음 시작하는 4가지 인문독서법'부터 실전편인데, 아이의 성향과 수준을 파악하고서 그에 맞춰 읽고 생각하라고 권한다. Chapter 5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으로 나눈 다음, 각 시기에 독서를 통해 성취해야 하는 덕목을 설명한다. 저학년에는 읽기와 말하기를 익히고, 중학년에는 독서의 수준을 점검하며, 고학년에는 독서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 목적이다. 아이의 지식과 경험이 늘어나는 만큼 아이와 함께 읽는 책도 넓고 깊어져야 한다. 마지막 Chapter 6은 책을 덮은 후 하는 '독후 활동'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독후 활동, 참 어려운 일이다.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삶과 지혜로 녹여내는 이 독후 활동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이 모든 일에는 부모의 관심과 정성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 아이의 삶을 위해 정말 바른 길이고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지침대로 실행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교육에 시간과 돈을 들이는 대신, 아이와 함께 앉아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렇게 귀중한 기회와 정성을 들여주지 못해서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다. 일찍 이 책을 읽는 행복한 부모들은 꼭 아이와 책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나는 대학 학과를 정할 때까지도 진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가 생기면 인생의 테크트리를 만들고 그에 따라 유치원부터 평생을 관리한다던데, 나는 나 자신부터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내 아이를 인도하고 끌어줄 능력이 없다. 그래서 진로에 대한 책에 관심이 많고, 그렇게 해서 이번에 읽은 책이 <김상호의 10대를 위한 진로 특강>(2016, 김상호 지음, 노란우산 펴냄)이다.

저자는 직업과 진로 전문가이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미래인재자격연구본부에서 직업과 자격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고, 책표지 날개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벌써 20년째 연구해온 전문성과 지식, 통찰력을 바탕으로 강연과 저술, 논문 출판 등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단 이번 책 <김상호의 10대를 위한 진로 특강>에는 '꿈과 현실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진로 하면 이상적인 것을 용납한다. 초등학생이 너무나도 현실적인 꿈을 꾼다면 꾸중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진로가 '꿈과 현실'이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꿈만 좇다 보면 현실에서 벗어나 가능성이 떨어지고, 현실만을 보다 보면 시야가 너무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현실에 기반해서 인생 목표를 세우는 법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먹는 소크라테스가 되라'(18쪽)고 강조한다. 저자는 꿈과 현실의 중간점이라는 균형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학생과 부모가 진학과 진로의 유용한 지침으로 받아들이는 적성도 그다지 신뢰할 것이 못 된단다. 적성도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어떤 일이든 적응할 능력이 사람에게는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직업과 진로를 찾기 전에 더 큰 시야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방법, 적성과 끼가 아니라 진정한 꿈을 꾸는 방법, A와 B 중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법, 진로를 위해 미리 준비해서 진학할 수도 있고 고졸로 끝낼 수도 있다는 조언 등을 해준다.

더 크고 빛나는 꿈을 꾸라고 말하기는 참 쉽다. 그러나 저자는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해서 철저하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TV에서, 영화에서, 책에서 만들어진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각 장의 말미에 실린 '선생님~ 이런 게 궁금해요!'는 학생과 부모님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과 대답이 가득하다. 그리고 부록으로 실린, '미래에 사라질 300가지 직업'은 충격적이었다. 로봇과 드론이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 많은 직업이 사라지리라는 것이 막막하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서 일할 수 있으려면 시대를 바라보는 눈과 더불어 직업을 바라보는 눈, 자신의 인생을 향한 마음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참 어려운 일인데, 이처럼 현실적인 지침이 있으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