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김연수/민음사

어느 분의 서평과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언론의 왜곡된 기사가 한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에 대한 보고서이자 모범 답안이다.

어느 젊은 여자가 즐거운 기분으로 쾌활하게 전혀 위험하지 않은 댄스파티에 갔었는데 나흘 후에 그녀는 살인자가 된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그것은 신문 보도 때문이었다.

젊은 프리랜스 가정부인 카타리나 블룸은 오랫동안 수배중인 강도로, 은행 강도임은 거의 확실하고 살인과 그 밖의 다른 범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루트비히 괴텐을 자신의 아파트에서 도피시킨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그 사건에 대해 “차이퉁”지는 경찰이 블룸이 오래전부터 이 음모에 연루되어 있었다고 추측한다는 기사와 함께 경찰에서 심문 받은 내용은 물론 아파트를 구입한 돈의 출처와 이혼을 둘러싼 악의적인 소문, 아버지가 공산주의라는 확인되지 않은 혐의 등 그녀의 모든 사생활까지를 왜곡, 보도한다.

심지어 기자는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까지 찾아가서 그 충격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카타리나는 국가가 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와 검찰이 조사한 내용들을 어떻게 차이퉁에서  모두 왜곡되고 오도되었는지에 대해 항의하지만

검사는 모욕적이고 어쩌면 중상일 수 있는 언론 보도의 세부 사항들에 대해서는 그녀가 개인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으며 수사 당국 내부에 ‘허술한 부분’이 있다고 밝혀지는 경우에는 당국이 그에 대해 소송을 걸고 그녀의 권리를 위해 도울 거라고도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검찰 또한 그녀를 보호할 생각이 없었다.

카타리나는 결국 자기 아파트에서 “차이퉁”의 베르너 퇴트게스 기자를 총으로 살해한 후 경찰에 자수를 한다. 무엇이 그녀를 살인에까지 이르게 만들었을까?

신문 기자의 끔찍한 ‘무지’함이 카타리나로 하여금 권총을 뽑아들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 있지만 자신의 잘못을 조금도 반성할 줄 모르는 뻔뻔함을 그녀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은 결코 퇴트게스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으나, 그가 이득을 취할 생각으로 그리고 성적 의도를 가지고 그녀에게 다가왔을 때, 그때 갑자기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그녀를 엄습했다’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될 수 없는 살인은 법의 심판에 맡길 일이며 카타리나와 괴텐의 사랑  역시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언론의 자유를 핑계로 추측과 왜곡으로 휘두르는 검 아래 쓰러져 가는 사람들의 치유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말할 뿐이다.

모든 것을 잃은 뒤에 고작 몇 줄의 정정 보도가 무슨 소용이리요.

근거 없는 기사와 악플로 인한 피해는 우리 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유착한 연예 기획사의 은밀한 거래와 수상쩍은 커넥션은 한 연예인을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지 않았던가.

그녀가 완강하게, 거의 불쾌할 정도로 거절했음에도(......) 그는 그녀를 정기적으로 쫓아다녔고, 늘 찾아오고, 꽃을 보내고 편지를 썼다. (......) 그녀에게 반지를 막무가내로 주었으며 게다가 별장의 열쇠까지 억지로 맡긴, 성공한 실업자 슈트로입레더의 “신사 방문”이라고 이름 지어진 행보에서 어느 선량한(?) 인사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의 삐딱한 시선 때문일까?

이름을 달리한 수많은 “차이퉁”을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이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차이퉁”은 (......) 맘에 들지 않거나 분명하지 않은 사실은 모조리 조작한다. 심지어 조작되지 않은 사실조차 그 신문에서는 거짓말로 보이게 되어 완전히 거짓으로 흡수된다. 그 신문은 진실을 ‘진실에 맞게’ 재연해도 진실을 더럽힌다. 그들이 다시 장미꽃이 핀다고 쓰면, 설사 꽃이 피고 있는 장미 밭 앞에 서 있다고 해도 난 의심하게 될 것이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김영하/랜덤하우스

 

나이 마흔에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유명 소설가이며 예술학교 교수에다 방송 진행자이기도 했던 저자의 고백이다.

성공한 40대의 표본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부족한 게 없던 시절, 노후까지 보장된 안락한 직장을 뿌리치고 떠난 이유는 내 삶이 실로 숨 막히는 때문이라 했다.

예술학교의 명민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재능 있는 학생들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라는 깊은 회의에 빠지게 하였으며 방송 역시 한 편의 쇼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의 생활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까지 서슴치 않는다.

소설 쓰기나 예술에 대해서 말해도 좋지만, 절대로 그 시간에 네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거나 써서는 안되며 그 저주의 댓가로 월급과 연금을 보장받고 출연료를 받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뒤통수 어딘가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기분이다.

옆구리에 빨대를 꽂힌 채 우리에 갇혀 있던 반달곰의 체념어린 눈빛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런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그대 어깨 위에 놓인 짐이 너무 힘에 겨워/ 길을 걷다 멈춰진 그 길가에서 마냥 울고 싶어질 때/(......)/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에 무게로 넘어질 때/ (......)

 

교수직과 방송을 그만두고 뱅쿠버로 떠나기로 결정한 후, 남은 두 달 반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하필 시칠리아야?

2007년 한 번 들른 적이 있던 그곳에는 저자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상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던 것이다.

 

시칠리아 지도를 옆에 놓고 수록된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저자의 발걸음을 뒤따랐다.

시칠리아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섬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해 준다.

시칠리아는 삼각형의 섬이다. 삼각형의 세 변은 각각 유럽과 그리스와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있다. 등을 돌린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섬, 그것이 시칠리아다. 유럽을 바라보고 있는 쪽에 팔레르모가 있다. 그리스를 바라보고 있는 쪽은 메시나에서 시라쿠사까지이고 아그리젠토나 젤라는 아프리카를 향하고 있다.

 

화산섬이며 ‘모두가 모두를 아는 섬’이라는 리파리에서 자기가 살던 곳과 비슷한 곳에 정착하려는 인간들의 모습을 한국의 중산층들이 마치 법률로 정하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아파트 거실 중앙에 대형 텔레비전을 놓고 그 건너편에 소파를 놓은 모습에 비교할 때는 어쩔 수 없는 동의와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 우리 아파트 거실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시칠리아의 기암절벽의 요새로 설계된 도시 타오르미나와 빌라 니세타의 농장, 봉우리 정상에 세워진 도시인 에리체,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자 플라톤의 도시인 시라코사와 노토를 지나 아그리젠토의 콩코르디아 신전을 끝으로 메시나 항을 떠나 올 때는, 시칠리아가 현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음과 동행했던 부인의 말로써 몸과 마음이 모두 치유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 종일 떠들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맞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평생 꿈꾸는 생활임에도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아웅다웅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게 떠날 수 있었던 저자가 차라리 부럽다. 그는 또 이렇게 한권의 책을 얻지 않았는가.

 

시칠리아로 여행을 하고나면 나도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역시 변진섭의 노래는 저자에게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위로였다.

글쓰며 사는 삶/나탈리 골드버그/한진영/페가수스

글쓰기와 섹스의 공통점은?

첫째 손을 계속 움직여라.

둘째 될수록 구체적으로.

셋째 억제하지 말라.

넷째 생각하지 말라.

책 속에서 저자의 말이다.

일상 속 대부분의 다른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으로 유명한 저자의, 글쓰기의

초보 고객(?)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이다.

저자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 친구와 함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힘들고 어렵더라도 무조건 글을 쓴다.

다 쓴 후에는 상대방에게 들려주면서 조언을 얻기도 한다.

저자가 권하는 글쓰기 방법은 서두에서 말한 방법의 구체적

실천이었다.

소설을 쓰고자 하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기본적이고도 평범한 진실은 길게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매일 쉬지 않고 글을 쓰라고 권한다.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글쓰기 방식이다.

문체나 내용은 중요치 않으며 다만 글을 계속 써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말라고 한다.

주변의 사소한 것부터 쓰되 피하고 두려워하던 일에 대해서도 마음속 생각을 진솔하게 써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문장은 어렵게 꾸미지 말고 간단하게 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이나 ‘아주’ 혹은 ‘정말’ 같은 수식을 동원한 문장은 좋은 문장이 될 수 없으며

나는......한다(이다). 라는 단문이 제일 좋은 문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동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사는 놀랍고 문장에 힘을 주는 단어이며 이 또한 가능한 군살을 뺀 현재형으로 간략하게 쓰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가버렸었다’ ‘가버린 후였다’ ‘가버린 후였을 것이다’ 같은 복잡한 동사 때문에 길을 잃기 보다는 간단히 ‘갔다’라고만 썼다.[241p]

힘들고 어렵게 다 써놓고도 자신의 글이 뿌듯하거나 행복하지 않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 마음도 들겠지만 그것은 저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모두 겪는 현상이니 좌절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분노나 화가 나는 것을 묵묵히 견디며 계속 써 나가는 것이라고.

자신의 글에 실망할 때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권한다.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지 말고 1, 2주가 지난 뒤에 편안한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관심과 열정을 갖고 당신이 쓴 글을 읽어보라.

저자가 책 속에 일관되게 말하는 글쓰기의 핵심은 이것이다.

중요한 건 어떤 환경에서든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을 쓰든 글쓰기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저자의 이 말을 믿고 당장 책상 앞에 앉아 써 보자.

무엇을? 무엇이든지.

중요한 것은 쓰는 것, 아니 계속 쓰는 것이니까.

글쓰며사는삶, 나탈리골드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