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즐겨 보세요.

<누워서 읽는 퍼즐북>은 퍼즐을 잘 푸냐고 묻지 않는다. 퍼즐을 즐겨보라고 권한다. 그다지 수학적인 머리가 좋지 않은 나지만, 퍼즐 푸는 맛이 좋다. 물론, 시간 제한은 없어야 하고 해답지도 없는 편이 좋다. 그저 문제 하나를 두고 이리 생각해보고 저리 생각해보는 그 시간이 즐겁다. 누군가 옆에서 풀었는지를 묻는 것도 사절이다.

위드블로그에 이 책이 소개되었을 때, 옳다구나 신청했다.

생각의 방법 바꿔 보기

퍼즐이 재미 있는 이유는 생각하는 방법을 바꿔보게 하는 것이다. 경로의존성에 따라 바라보던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누워서 읽는 퍼즐북> 을 읽는 시간도 그랬다. 문제 하나를 들고 더듬더듬 생각의 각을 바꿔보는 시간, 답을 금방 찾지 못해 머뭇 거리는시간, 사람 궁금해서 간질 간질하게 만드는 시간 동안은 머릿속이 맑았다.

특히 임백준 씨의 문제 유형에 대한 설명이 굳은 머리를 더 자극했다. 아이들은 80%가 쉽게 맞히지만 어른들은 15% 정도만 맞힌다는 문제에 관련한 이야기를 듣거나, 어릴적 연습장을 펼쳐놓고 친구들과 몰두했던 문제들을 유형으로 정리해 주고, 실물 경제 속에 들어있는 확률을 문제와 함께 예시해 주는 저자의 설명을 들을 때면 마치, 내가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속 루트가 된 기분이 들곤 했다.

기하학이나 패턴, 아름다운 정리를 찾아낸 수학자들의 이야기가 섞여 있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천재 수학자들의 영광과 좌절>을 읽으며 진한 매력을 느꼈지만 생활과는 먼 사람들인 까닭에 잊고 지낸 수학자들의 이름을 다시 만나는 것도 기뻤다.

영화, 그림, 논리, 행동경제학 _ 생활 속 퍼즐

수학이 어려웠던 이유는 똑 떨어지는 답을 정한 시간 내에 토해내야 하는 것 때문이었다. 공식을 외워야 하고, 그 공식에 값을 대입해서 답을 구하는 건 결코 재미있는 공정은 아니었다. 왜 그런 공식이 나왔는지, 그 공식은 생활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친절히 이야기 해주는 선생님은 거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집에 몇 권 있는 퍼즐 책들도 어린 시절 재미없던 암기나 문제 풀이를 다그치는 수학책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헌데, <누워서 읽는 퍼즐북>은 다르다. 다양한 인문, 사회, 경제, 예술과 관련한 퍼즐문제를 꺼내들고, 왜 이런 문제들이 나왔는지, 이런 문제들은 현실의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해설해준다.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문제에 더 애정이 가고 도전의식이 생긴다.

하던 대로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각도로 생각하는 게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동안 지녀보라 권하고 싶다. 실제로 얼마전 강의를 준비할 때 이 책 덕에 좀 색다른 교안을 만들 수 있었다. 머리맡에 두고 야금야금 아껴서 짬짬이 읽고 싶은 책이다.

퍼즐, 수학, 논리, 정리

부제가 눈길을 끈다.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변화의 순방향에 서든, 역방향에 서든 세상에 얽혀진 모두는 세상을 바꾸는데 자기 몫을 한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에 등장하는 열세 사람 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이 쏟아 부은 시간, 세상을 들끓게 만든 파장의 세기와 주목도, 그들이 누렸던 한 동안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세상은 마치 그들이 주목받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일 없었던 듯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기

열세 사람의 주인공들은 모두 실재 했었다. 남들이 갖지 못한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하거나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어떤 일들을 벌인다.

때로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위작을 만들고, 세계 공통어 만들기에 도전을 하거나, 과학이 발견하지 못한 N선을 발견하기도 하고, 파란 조명의 효과를 찾아내기도 한다. '잠언 철학'이라는 새로운 문학 형태를 구현하기도 하며, 지구의 내부가 텅 비어 있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하고, 움직이는 파노라마 그림을 상영하기도 한다.

이 기묘한 작업들 가운데는 의도적인 사기 행각도 있고,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끝내는 사기 행각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으며, 때로는 때를 잘 못 만나 저작권도 보호 받지 못하고 성과도 인정 받지 못한 안타까운 일도 있고, 또 때로는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세상이 추앙하다가 등을 돌리는 일도 있으며, 내적으로 가진 한계 때문에 중도에 반단된 일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실패의 공통점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시도하기'였다는 점이다. 이 한 가지 공통점이 실패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이유를 제공한다.

부질없는 성공을 부추기는 세상의 어리석음

<밴버드의 어리석음>을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실패자들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 때문에 세상의 실패자로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일정기간은 세상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대체로 세간의 이목 따위는 끌 일 없이 조용히 지내던 이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다. 별 뜻 없이 시작한 어떤 일을 누군가가 발견하고, 세상에 소문을 낸다. 자신과 자신이 한 일의 가치를 모르는 주인공은 스스로가 제공한 동기에 따라 몰두 한다. 간절한 바램으로 밤잠을 설치며 몰두했던 일은 우주의 후원을 받았는지, 점점 넓은 세상의 관심을 끈다. 그 뒤로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을 요란하게 만든 유명인사가 된다. '유명인사라는 명예', '세상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라는 지위는 너무도 달콤하다. 다시는 묻혀지내던 조용한 사람으로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의도적인 과장이 섞이거나, 자신에 대한 오만이 생긴다. 있을 수 있는 빈틈이나 오류, 한계를 돌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 사람들이 실체를 확인한다. 열세 사람은 실패한 인생으로 기록되어 세상 사람들이 돌아선 등 뒤에 초라한 모습으로 남는다.  

어리석은 세상은 작은 오류나 실패, 작은 속임으로 그칠 일들이 더욱 커지게 만든다.

집단지성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느린 속도로 오가던 19세기

그럴만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열세 사람이 살던 시대가 19세기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정보를 주고 받으며, 검토하고, 실제 생활 속에서 시험을 한 결과를 나누기에는 19세기는 너무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조금만 교통이 발달했던들, 오리엔트 문화에 대한 환상에 젖어 사기꾼의 거짓말을 못 찾아내는 일을 없었을 것이며, 조금만 더 빠른 속도로 정보가 오갔더라면 눈에 띄는 오류들을 집단 지성의 힘으로 검증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사람의 역량과 사람됨을 검토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통계학적인 결과다. 짧은 기간 안에 영웅을 만들어 내고, 만들어진 영웅에 절대 충성을 바치는 쉽사리 달뜨곤 하는 행태를 돌아보게 한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사건의 주인공들의 우둔함을 비웃지만, 거꾸로 세상의 어리석음을 검토하게 만드는 책이다.

밴버드의어리석음

들라크루아, 들라크루아를 말하다

페르디낭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ene Delacroix, 1798년 4월 26일 ~ 1863년 8월 13일)

어떤 예술가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당대의 예술가들도 말밥에 오르기는 하겠지만, 예술가가 말한 작품이 제대로 해석되는 시간만큼은 걸리는 것 같습니다. 외젠 들라크루아. 백오십년 ~ 이백년 지난 작가니 이야기 할 수 있겠지요?

<위대한 낭만주의자>는 외젠 들라크루아가 쓴 책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글도 예술적으로 깊이있게 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내밀한 단편들입니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일기와 자신만이 아는 이야기들이지요. 그의 독백으로 구성된 글이라서 어떤 점에서는 더 갈증이 일기도 하는 글을 읽으면서, 청춘의 들라크루아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예술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화풍을 초월해서, 아니 외형의 모든 차이를 초월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영혼과 감각을 감동시키는 그림이다. 지성을 고양시켜주고, 지성에 빛을 던져주는 그런 그림을 원하는 것이다." 220쪽

결코 폄하할 생각은 아닙니다만, 들라크루아 자신도 자신이 내뱉은 말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고 자신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만, 깊이 있는 예술관 때문에 더욱 골몰하고, 더욱 부둥키면서 치열하게 그려나갔을 겁니다. 예술가와 관련한 책을 읽는 기쁨입니다. 작품으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그 뒤에 숨겨진 그 말을 내뱉을 당시의 심정을 읽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자존감이 낮았던 화가, 그래서 더욱 그림에 심혈을 기울인 화가

 

 

참 멋진 외모 아닙니까? 그러나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었나 봅니다. 해서 너무도 사랑을 원했으나 사랑을 두려워했지요. 자신에 대한 성찰은 때로 이런 트라우마를 남기나봅니다. 객관적으로 아름답지만, 자신을 들여다보면 부족하고 비어 있는 듯 여겨지는 현상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렇다고요? 아닌가요? 모르긴 해도 전 그 과가 맞습니다.

예술가 자신에게는 무척 괴로운 일이겠지만, 그 덕에 사람들은 행복해집니다. 오만하고 도도함에 넘치는 작가가 작품을 하면서 자신을 깨뜨리고 넘어서기 위해 크나큰 고통을 바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 자신의 천재성에 매료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깨뜨리지 않고 더욱 도도하게 굴었던 작가들도 있지요. 요는 자신을 완전히 깨려고 하든지, 자신을 높고 높은 곳에 올려놓고 도도함으로 지켜내든지, 세상과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가라야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드는가 봅니다. (어렵지만 범인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도 이렇게 말할 만큼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나 봅니다.

"자연이 천재에게 내려준 재능은 너무도 까다로운 것이어서, 어떤 것에도 쉽사리 만족하지 않는다. 예술에 동원되는 모든 수법에서 천재는 그런 재능을 발휘해 보인다.
예술가은 일체감과 깊은 느낌을 안겨주기 위해서, 아무리 작은 부분에서도 소홀하지 않느다. 수백 번을 고쳐 그리면서 붓질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사소한 부분까지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 193쪽

들라크루아가 아름다움에 대해 쓴 글입니다. 전 위쪽의 이야기도 마음에 들지만 "수백 번을 고쳐 그리면서 붓질을 아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더욱 와 닿습니다.

 

색채의 화가, 들라크루아

<위대한 낭만주의자>는 화가의 책인만큼 그의 작품을 연대기별로 보여줍니다. 그림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그의 편지와 일기와 같은 시기에 태어난 그림을 보는 것은 별 맛을 느끼게 합니다.

인상적인 그의 파레트입니다. 대충 봐도 80여 색 되어 보이는 그의 파레트가 많은 이야기를 하네요. 전혀 다른 색상이 아니라 계열색들을 늘어놓는데도 가지수가 참 많지요? 요즘처럼 배합된 색들이 나오던 때도 아닐테고 말이지요.

미디어가 새로운 예술세계를 만들게 한다지요? 그런면에서 들라크루아가 발견하고 만든 색의 세계는 그만큼의 행복감을 줍니다.

보색을 이룬 주인공의 옷 빛깔과 계열 색 속에서 명암이 도드라지는 그림이지요. 저도 그림을 그리 잘 알지는 않지만, 들라크루아의 시대를 감안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도 그의 색은 살아있습니다. 그가 그린 움직임이 읽히는 하늘은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이야기를 공감하게 합니다.

 

예술가, 시대의 통역사

들라크루아는 건강이 좋지 않았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까닭도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림밖에 없어서였다고 고백합니다. '혁명적인 그림'을 그리겠는 결심으로 그린 이 그림은 혁명의 한 복판을 그렸음에도 생경하지 않습니다. 아주 이념적인 그림인데도 말입니다. 낭만주의자의 그림이라서 그럴까요?

<위대한 낭만주의자>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집이면서 동시에 그의 문예관을 잘 담아놓은 책입니다. 그는 "예술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낯선 언어가 되어버린 아름다움을 해석하는 통역사가 되어야 한다." /237쪽 라고 적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잊혀진 '아름다움'을 찾아내서 통역하는 사람, 예술가. 참 멋진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술가들을 설레게도 만들지만 모든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말이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의 시선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굴해내고,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움을 무수한 사람들에게 통역하면서 산다면 세상, 참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리뷰를 쓰는 건 역시 어렵습니다. 빈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책 속에서 살아있는 들라크루아를 여러분도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