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롭고 아린 눈물 한 방울

Arco.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그렇게 열심히 보면서도 OST에 실린 음악을 연주한 사람들을 찾아볼 생각을 안했다. 그저 사랑에 빠진 사람들만이 느낄 것 같은 저릿저릿한 슬픈 선율을 흘려 들으며, 드라마 주인공의 감성에 젖어들곤 했던 것이다. 

혹, 나처럼 Arco를 몰랐던 분이라면, 이 곡을 들어 보자. 드라마에서 이쁘기만 했던 사랑들이 조금씩 어긋날 때, 사랑이 그 마음에 가 닿지 않거나 차마 그 마음을 내 보이지 못할 때, 흐르던 음악이 바로 Arco의 Perfect world다. 슬프지만 펑펑 눈물 쏟아지게 슬픈게 아니라 가슴에 가득찬 사랑이 어딘가로 나아가지 못해 가슴을 아프고 아리게 만들 때 느껴지는 그런 슬픔의 빛깔이랄까?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눈물 한 방울 볼 위로 굴러 내리는 걸 느낀다.

 

 

나 역시 음반을 받고 나서, 애써 무미한 듯 부르는 것 같은 보컬의 노래와 간결하게 고르고 골라 선율을 만들어낸 기타 연주에 취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음반은 어찌나 봄을 닮았는지, 온 몸의 기운을 쪽 빼내며 사람을 무방비로 만드는 걸 느낀다.

도시청년다운 절제된 작별 인사 - Yield
음반은 Arco가 이 음반을 끝으로 활동을 접겠다는 뜻을 담았는지 제목도 Yield다. 파스텔 뮤직 홈페이지에서 길어 온 세번째 트랙에 실린 곡 Stars 다. Arco를 설명하는 카피에 붙은 "지구별에서 가장 슬픈 밴드"라는 설명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말린 장미곷들을 모아놓은 재킷의 표지 사진이 음반의 제목과 어울린다. 하지만 미리 이별을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통보하듯 작별음반을 낸 Arco처럼 냉정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한 때 싱그럽고 짙은 향기를 뿜었을 살아있는 꽃을 아쉬워 한다면 저렇게 말라서 정갈한 함 속에 담긴 꽃을 들여다 보는 게 더 슬픔을 자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음반에 담긴 노래들이다.

01. dry
02. eyes to see
03. stars
04. weatherman
05. restless
06. show
07. out of myself
08. michael
09. undone
10. down

첫곡 <dry>. 어쿠스틱 기타가 한 1m쯤 앞에서 이야기 하듯 노래하는 보컬과 잘 어울리는 간결한 곡이다. 음반 도입에 들어 앉은 이 노래를 들을 때부터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면서 네 얘기를 들어볼 게 하고 말이다.

dry에 이어지는 노래들은 한 곡 한 곡이 뚜렷하지 않다. 다만 애틋한 감정들과, 때론 허전하고 외로운 감정들과, 곱고 아름다운 추억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가수의 노래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마음에 띄워올렸다 서서히 가라앉히길 반복하는 과정과 같았다.

어느 한 구석 불편하고 모나게 찔러오는 이야기 없이 부드럽고 잔잔한 사운드와 노래에 빠져서 음반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이제 막 꽃이 피고 잎이 달리기 시작하는 봄 들판을 지나온 기분이 되기도 하고, 잔잔히 허나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바닷가에 한참 앉아있었던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 되기도 한다. 기타를 앞세워 끌어나가는 연주, 전자음은 아끼지만 적절한 사운드로 곡의 분위기와 공간감을 마련해주고, 단조로운 선율과 정갈한 편곡과 리듬, 가볍게 얹혀지는 노래가 아주 자연스런 나른함을 주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감미로운 Arco의 Yield와 이 봄을 보낸다면 짧아서 더욱 고운 봄이 더 선명하게 느껴질 것 같다.

봄날,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 있다거나, 너무 팍팍한 일상에 건조해진 자신에게 촉촉한 감성을 선물하고 싶다거나, 누군가와 들판에서 하냥 앉아 이야기 할 마음으로 나들이를 할 생각이라거나, 시끄러운 음악에 지친 귀를 쉬고 싶을 때, 문득 하늘을 봤는데 하늘이 너무 넓고 높아 보인다거나 달빛이 너무 고와서 그 달빛을 더 느끼고 싶을 때나, 조용히 부는 바람이 유난히 감미롭게 느껴지는 날, 유리창에 부딪히는 햇살이 부드럽게 빛나는 걸 보게되는 날... Arco의 <Yield>를 듣길 권한다.

음반, Yield, Arco

50년을 매일같이 날이 새기 전에 들로 나가, 허리 한 번 펼 짬 없이 살아도, 내내 땅 한 뼘 없는 소작인이었고, 흰 쌀밥은 일년을 두고 생일상과 추석 명절 두 번 밖에 받아 보지 못한 농민들의 이야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양반들에게 천대 받고, 땅 한 뙤기 어렵게 마련한 것, 가뭄과 홍수로 소출 하나 못 건지고, 장리빚을 내어 입에 풀칠하다가, 빚 갚지 못해 지주의 아가리에 한 뼘 땅 마저 빼앗기고, 밤새 울분에 겨워 잠 못 이루던 한이 가슴병으로 번져 겨울밤만 되면 마른 기침을 해대던 농민들의 이야기.

자식까지는 좀 고생 하더라도, 손주 녀석만은 제대로 먹이고 싶어, 푼푼이 모아둔 돈에 빚 얹어 마련한 방아 사서 들여놓고는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불러 웃는 것도 잠시, 마을에 새로 들어온 기계방아에 밀려 추수철 내내 방아 한 번 못 찧어보고, 새로 들인 방아에 목을 맬 결심을 하는 농민의 한스런 이야기.

자식이 재산이라, 힘 잘 쓰고, 효성 지극하고, 무던히 일 할 줄 알고, 강직한 마음씨에, 기골이 장대한 아들 얻어, 두고 두고 믿음직 하게 여겼으나, 그 아들과 혼인한 며느리가 곱고 고운 것이 화근이 되어 인간 같지 않은 지주놈에게 아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일생 작인으로 살며 지주 앞에서 고개 한 번 쳐든 일 없던 아버지는 아들 살려달라 하소연하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지주에게 큰 소리 한 번 쳤다고 아들과 나란히 지주집 마당에 끌려가 달초를 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내내 작인 놈들은 인간도 아니라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패악질을 멈추지 않던 양반 지주가, 갑오년에 들고 일어난 농민들의 봉기를 괘씸히 여겨 동네 청년들 그러 모아, 집 주변을 밤새 지키게 하고, 겉으론 푸들푸들 화를 내면서도 속으로는 지은 죄가 겁이나 오줌 질금 거리다가 급기야 마을에 들어온 농민군들 소리에 앞이 깜깜해져 자식도 가족도 아랑곳 않고 제 목숨 살릴 길 구차하게 찾으면서도, 노비문서 땅 문서 챙기느라 결국 덜미 붙들려 봉욕을 치르는 이야기.

농촌을 떠나려는 젊은 아들에게 배운 것 없지만, 살면서 땅에서 배운 철학으로 배운 것 있는 아들도 생각 못할 세상사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이야기 하는 들녘과 산과 강을 닮은 아버지 농부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들을 흙냄새, 땀냄새, 거름냄새, 마른 흙 먼지, 가물어 갈라진 땅을 기는 벌레, 뜨거운 불볕 더위, 하늘 뚫린 것처럼 퍼부어 대는 억수같은 비..... 오감으로 맡아지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형상과 버무려 읽는 사람에게 시간여행 생생히 한 것처럼 느끼게 하고, 그 여독으로 가슴 먹먹해 지게 만들 줄 아는 이무영 작가의 놀라운 솜씨를 만나게 해주는 책. 

<농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농민의 모습을 이무영 작가는 빼어난 글로, 농민을 설핏만 아는 독자에게 보여준다.  우리 문학사에 이무영님 같은 작가가 있다는 데 감사한다. 책을 읽고 나면 사람냄새 나는 들이 보고싶어 진다.

<농민>은 소설가 이무영님의 중편과 단편을 모아 작가 탄생 100년을 맞아 펴낸 책이다. 

농민, 이무영, 근현대사, 농사, 땅

<지식 갤러리> 51명의 미술가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이름 있는 화가들을 작가가 한 권의 책에 모았다. 51명의 화가가 책 한 권에 담기니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미술세계를 촘촘히 볼 수는 없다. 그래도 백과사전 보다는 조금 더 친절하게, 미술 교과서 보다는 생생하게, 일반 미술 교양서 보다는 더 많은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강점이 된다.

 

아쉬운 점은 빽빽하게 담아내다 보니 책 속 이미지의 크기가 작아 책 속 이미지만으로는 그림의 느낌을 충분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출판용으로 쓴 글들이 아니라 블로그에 올려온 글들을 모아서 엮는 과정에 교정이나 감수 작업이 생략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아쉬움이다.

하지만 화가의 개성과 독특한 삶을 소개하는 데 들인 정성은 읽혀진다. 그림 속에서 보여지지 않던 작가의 생각이나 생활을 읽는 것은 그림을 공감하며 보게 만드니 말이다. 도상학적인 설명으로 이해하는 그림책은 아니지만, 미술사 속 화가들이 거닐었던 거리나 화실을 들여다 보는 기분은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지식 갤러리>란 제목이 말 해주듯, 책은 그 시대 작가에 대한 비평은 담지 않는다. 확인된 객관을 조목조목 적어낸 책이라 보면 된다. 때문에 책에 등장하는 화가와 작품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이 담은 화가와 그림을 목록으로 삼고 다른 자료들을 덧붙여 보아 나간다면 좋을 듯 하다.

 

아쉬움도 있지만, <지식 갤러리>는 역시 그림과 친해지도록 해주는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히려 말을 아낀 작가의 해설이 그림과 화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니 긍정적이기도 하다.

 

예술, 책, 지식갤러리, 윤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