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안도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책을 집어들면서부터 공감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작가들에게는 대단히 불공평한 일이 될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역시 작가가 한 줄 한 줄 뽑아낸 경구와 책의 어떤 문장들을 보면서 작가의 심미안에 고마워했다.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는 루쉰의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와 같은 방식의 책이다. 저자가 책이나 작품, 이야기에서 뽑아낸 글들과 그 글들에 대한 비평과 생각을 덧붙인 방식이다. 평소 안 읽던 이런 책들을 연이어 읽게 된 것은 비스킷(buscuit- ebook 단말기)의 영향이 크다. 1164권이라는 제한된 체험 책 안에서 눈길이 가는 책을 골라내다 보니 원하는 장르를 골라보기가 어려웠다. 평소 읽지 않던 '좋은 이야기' 범벅의 책들이라도 감지덕지 받아 읽었다.

물론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가 마지못한 선택이란 얘기는 아니다.

한 줄의 경구와 잠언을 새기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좋은 글들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니 덩어리가 풀어지지도 않은 용액을 벌컥벌컥 삼키는 것처럼 설 읽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이 뒷꼭지를 간지럽혀서다.

 

여튼,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를 읽으면서, 한 꼭지 한 꼭지 내게 주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읽는다. 나 같으면 대충 흘려 보냈을 이야기나 경구를 짚어내는 예리한 눈썰미를 발견하는 것도 덤으로 얻는 기쁨이다.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옮겨와 본다.

50줄을 넘긴 조훈현 씨가 아직도 실험정신 그득한 바둑을 두는 것을 이야기한 글을 보고 작가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미완성의 자리에 놓아두는 것, 다시 말하면 완성을 두려워하는 정신이 조로(早老)를 막아내는 법입니다. 나이 좀 먹었다고, 목에 힘줄 일 아니며, 뒷짐 지고 걸을 일 아니며, 괜히 헛기침 일삼을 일 아닙니다. 나이는 업적이 아니라, 잊어먹으라고, 녹으라고 자꾸 쌓이는 눈 같은 것입니다.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소년 같은 할아버지가 많아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적는다.

 

소년같은 매력적인 할아버지는 만나기 어렵고, 군복과 선그라스 쓰고, 옆구리에 가스통 들고 폭력을 행사 하는 할아버지들은 자주 보는 요즘,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선배'님' 대접 받는 때가 많아지는 요즘 조훈현 씨의 틀 지워지지 않는 도전 정신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가슴 설레는 장면이었다. "나이는 업적이 아니라, 잊어먹으라고, 녹으라고 자꾸 쌓이는 눈 같은 것"이라는 가슴에 콕 박히기 좋게 정리해낸 작가의 글이 고맙게 안겨왔다.

 

흐르는 일상에서 스쳐지나는 빛나는 결정을 건져올릴 줄 아는 시인의 눈이 골라 준 글귀들이어서 더욱 빛이 나는 글들을 조용한 밤 별빛을 더듬어 찾아내듯 읽는 맛.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행복한 맛이다

요즘 읽는 책들은 대체로 아포리즘을 담은 책들이다. 성질 급한 나를 좀 누르지 않고서는 모색의 긴 시간을 견디고, 성질 돋구는 일 그득한 세상에 지레 지쳐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작동하고 있나 보다. 심리학 관련한 책들과 친하지 않은 내가 <관계의 심리학>을 읽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싶다.

 

합리적인 이성이 총체적으로 무시 당하는 일이 너무 많다. 환경을 내세워서 환경을 압사시키는 4대강, 어떤 의문점도 강력한 차단벽으로 봉쇄하고 많은 사회적 이슈를 흡입해 버린 천안함, 지방선거를 통해 확인된 변화의 요구를 '밀어부치기'로 안면몰수해 버리는 것. 광주민주화항쟁의 정신과 정서를 응결한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에 '방아타령'을 넣겠다는 무개념. 남북대결과 전쟁을 주요 컨텐츠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양산과 그도 모자라서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시나리오를 공모하는 서울시. 여론과 정보를 건강하게 주고 받아야 할 공간들 마다에 음험하게 서려있는 메카시적 눈초리...

생산적이며 건강한 것을 꿈꿔도 모자랄 판에 궤선 긋기와 파괴를 앞세우는 삽질논리가 팽배한 대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나를 챙겨야 한다는 강력한 보호본능이 앞선다.

 

그런 점에서 <관계의 심리학>은 꽤 도움이 되는 책이다. 여느 심리학 관련한 책들이 어릴적 상처 치유하기와 나를 심정적으로 위로해주고 등 두들겨 주는데 주목하는 것과 달리, <관계의 심리학>은 입체적인 지형 위에 발 딛고 선 나에게 불쑥 불쑥 일어나는 '나의 심리'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걸 도와준다. 사회심리학을 전공해 온 저자의 고민과 연구가 개인적 상태에 고립된 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심리분석 책들과 다른 시선을 갖기 때문이리라.

 

본문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출발선에 '자신과의 소통'을 두라는 얘기다. 어쩌면 이런 류의 이야기는 백만번도 더 들어본 것 같지만, 자신의 감정 갈래를 객관화 시키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는 이유를 짚어보게 하는 책은 만나지 못한 것 같다.

본문의 지적처럼 '자신과의 소통'에서 출발하는 관계를 일상화 한다면 감정이 공연히 격해져서 폭력적이 되거나 공연히 주눅이 들어서 소심해지는 일들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또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과의 상하 질서나 권위에도 큰 구애 받지 않고 적극적인 관계를 맺어가리라는 것도 기대된다.

어떤 면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든가 혹은 우월하다는 것에 따라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적 촉진'도 약화될 것이며 수평적인 선에서 활발한 교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도 된다.

 

수평적이며 활발한 소통, 정보의 교류, 집단 지성을 위한 링크와 네트워크가 관계를 연결하는 21세기방식에 잘 적응하는데 <관계의 심리학>은 많은 도움이 될 책이다.

경제를 뿌리부터 썩어가게 하는 것 _ 부동산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몸뚱이를 놀려야 한다. 몸뚱이 놀리지 않고 거저 먹으려는 건 도둑놈 심보지."

"부모 잘 만나서, 잘 먹고 사는 게 얼마간은 좋겠지.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냐? 땀 흘려 벌지 않는 놈들은 돈 귀한 줄도 모르니, 허랑방탕 살다가 결국엔 다 거덜나게 돼."

"

경제는 같이 사는 일입니다. 같이 생산하고, 만들어내고, 땀 흘리고, 그래서 거둔 것들을 잘 배분해서 사회가 더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사람살이를 운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헌데, 어느샌가 그 '경제'란 말의 뜻이 달라졌습니다.

본래 의미는 완전히 제거되고, 돈을 수직으로만 쌓는 것, 최대한 큰 돈을 쌓는 것, 남의 등을 쳐서라도 자기 혼자 돈을 막대하게 쌓는 재주를 뜻하는 말이 됐습니다.

 

도박을 권장하는 나라 _ 쪽박으로 가는 지름길

그러니 한 나라를 운영한다는 장관의 입에서,

"제가 땅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투기를 좀 했습니다"라는 말이 뻔뻔스럽게 뱉어지는 것이지요.

 

<위험한 경제학 1>은 우리 경제를 뿌리부터 썩어지게 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경제 전반에 대한 연구 보고서며, 현재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처방전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것이 경제가 됐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예측할 수 없다니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저마다 자신의 호구책을 마련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비지땀을 흘리고 흘리다 나 혼자라도 먹고 살려면, 좀 나쁜 짓이기긴 하지만 도둑질이라도 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기 혼자 먹고 살려고 앙달음치는 순간 함정에 빠져드는 것이지요. 자기 혼자만 빠져드는 함정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다 끌고 들어가도 구멍이 메워지지 않는 커다란 함정. 밑도 끝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함정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천재적 수학자 뉴튼의 낭패

뉴튼은 수학의 천재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뉴튼 조차도 말년을 주식투자를 해서 막대한 빚을 지고 고생했다는 사실은 모릅니다. 뉴튼 조차도 주식투자를 하다가 쪽박을 찾으니, 확률의 게임인 주식투자(투기성 투자가 비율상 높아진)를 성공할 수 있다 장담하겠습니까? 그러니 태생부터 투기성을 띤 부동산을 경제의 밑바탕으로 삼은 이 정부의 정책이 든든하긴 더 어렵습니다.

헌데,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내놓는 이들은 모두 땅(투기)를 신봉하고, 맹신하는 이들입니다. 아마도, 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만드는 이들에게 가서, 당신이 내놓은 경제정책이 대안이라고 믿어줄테니 일단 당신 땅부터 팔아놓고 이야길 해보죠? 라고 묻는다면 펄펄 뛸 것이 뻔합니다.

범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하늘 위의 경제. 그 희미한 경제의 출발점은 부동산에서 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수학적 천재인 뉴튼의 실패만큼이나 믿기지 않는 것이, 미국과 일본의 실패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부동산에 기초한 정책으로 서브프라임 위기와 '잃어버린 10년'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고, 치른 바 있습니다. 헌데, 이미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미국과 일본의 방식대로 한껏 부동산 버블을 부툴리는 정책을 이 정부는 종교마냥 떠받들고 있습니다. 막대한 예산을 부동산 값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정책을 위해 쓰고, 막대한 예산을 부동산에 지원하는 은행을 살리기 위해 쏟아 붓습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을 잘 살기 위한 방법이라 맹신하며, 돈 쏟아붓는 것에 동의 하는 광신도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웃긴 일이지만, 돈 봉투 하나 받아 챙기고는 양심의 가책없이 "부동산 곧 오른다. 지금이 사 둘 기회다"라는 기사를 써대는 언론도 그 중 하나며,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사람을 잡아가두고 실형을 먹이는 경찰이나 검찰도 이미 영혼을 팔아버린 광신도 입니다.

 

따박따박 근거 있는 통계

<위험한 경제학1>의 설득력은 실물경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 미국과 일본 경제 위기에 대한 분석과, 우리 경제정책과 현상이 미국과 일본과 구체적으로 얼마나 일치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명료하게 제시합니다. 같은 환경과 같은 패턴을 보이는 경제라는 시스템을 취하고, 같은 정책을 쓰는데 다른 결론이 날 것이라 호도하는 게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지를 낱낱히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그 분석에 따라 어떤 대안을 찾아나가야 하는지, 국민 개인은 어떤 경제적 선택을 해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지를 정열을 다해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책을 읽고 나면, 실물경제에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정부 정책의 오류나, 언론의 과장 광고들이 눈에 잘 띄게 됩니다. 잘못된 과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잘못을 발견했을 때,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입니다. 잘못을 덮으려고 발버둥치거나, 잘못을 잘못 아니라고 우기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습니다.

그릇된 신화에 빠져버린 경제를 객관의 눈으로 보라고 오랜 연구 성과를 모아서 펴낸 <위험한 경제학1>을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