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 시기. 그런 시기를 누구나 겪어 넘어간다. 나를 향한 물음, 세상을 향한 물음 등 세대별로 그 고민의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그 무게는 다르지 않다. 무섭고도 무겁게 파고드는 생각의 끈은 그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든다. 편하게 생각하고, 떠오르는 것들을 무시하거나 전환하면 좋겠으나,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살아, 눈부시게>는 그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그린 에세이다. 비록 말 뿐이라도 말이다.

 

“김보통의 내 멋대로 고민상담”이라는 부제의 말처럼 저가 툭툭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책. 자신의 경험과 누구나의 경험을 더하고, 때로는 그게 정말 고민인지 생각 그대로를 다시 되묻기도 하는 그런 답변들이 과하지 않게, 보통의 위로로 다가온다. 웃어넘기거나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는 느낌이랄까. <교육부 학생건강 증진분야> 표창까지 받은 작품인 만큼 고민이 한참 많은 청소년들이 보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고독이, 미묘, 노골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름값 한다는 말처럼 이들 등장인물은 고독하지만 긍정적으로, 미묘하지만 들어주는 대로 고마운, 노골적으로 팩폭(팩트폭행)하며 다가온다. 캐릭터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자가 되어 질문에 답변해주는 방식으로 글이 진행된다.

 

자존감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진로에 대해서, 연애에 대해서 들어주고 말하는 이들의 행보가 제법 따스하고 긍정적이다. 많이 무겁지만 감내하며 이겨낼 수 있다고 토닥이고, 또 어느 때는 무의미한 짐은 과감히 벗어 던지기를 권하는 그런 작품.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가볍게 호흡하며 읽기 좋은 에세이다.

 

 

종종 헤매는 것을

죄악처럼 여기는 상황들이 안타깝다.

헤매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

4~5년 헤매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노력할 수 있는 가치를 찾는다면

긴 우리의 인생으로 보자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p. 214 -

 

말을 예쁘고 곱게 쓴다는 것. 단순한 한마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 힘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위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인성과 더불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위로로 피어 날 수 있는 위력 때문일까. 말뿐인 위로지만 그 말 안에는 말을 넘어서는 힘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가 큰 위로로 다가 올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꽃이 지는 이유는 다시금 열매 맺기 위해서라고 한다. 피어나기를 포기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 인생의 굴곡 가운데 헤매고 있는 우리네 삶이 보다 아름답게 꽃피길 기대한다.

 

네 인생 네 멋대로

대충 살아

뭐가 되든, 되지 않든

응원할 테니까

 

- 책의 목차 中 -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느낌이 먼저 든다. 철이라는 글자에서 오는 강함과 더불어 학이라는 글자에서 오는 반복적인 학습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까. 무엇이든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깊고, 전문적으로 다가서는 경우가 많기에, 철학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쉬운 말”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래 철학의 ‘철(哲)’자를 살펴보면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든다. “지혜로움”을 뜻하는 ‘밝을 철’. 철학이 내포하는 음과 뜻에 기초하여 “밝고 슬기로우며 현명하다는 뜻으로서의 철, 배우고 가르친다는 뜻의 학.”의 철학(哲學). 즉 삶을 논하는 지혜의 학문을 뜻한다. 백과사전 용어를 살펴보면 철학은 곧 인간과 인생을 뜻하고 있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 그런 각각의 개인들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 속에 담겨진 가치가 곧 철학인 것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문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매우 중요하고도 난해한 문제이다. 그 이유는 철학이라는 학문의 폭이 아주 넓고 그 대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가 70억 명이라면 70억 가지의 사유, 70억 가지의 철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 철학 [Philosophy] (학문명백과 : 인문학, 형설출판사)

 

이번 작품 <철학이라 할 만한 것>은 영화감독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오시이 마모루의 인생, 삶,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공각기동대>, <인랑> 등을 직접 만든 감독으로 애니메이션을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거장으로도 평가 받는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삶과 인생에 대한 모습을 담은 작품이 바로 이 에세이집이다. 한 개인이 바라보는 인생과 그 관점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라 볼 수 있겠다.

 

“개인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인생에 관해 생각해보는 시간, 한 사람의 고유한 인생과 삶이 담겨 있기에 그 자체가 이미 철학이다.”

 

공상과 비현실적인 애니메이션 소재를 주로 쓰는 작가지만 그가 가진 생각과 행동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주관적이다. 뜬구름 잡는 미래, 기대, 이상보다는 현실에 집중하는 사람이랄까. 저자는 “작품 속 주인공의 모습과 환경에 감정이입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표현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장비, 환경만 좋다고 모든 작품이 멋지게 완성될 수 없으며, 자신만의 우선순위에 따라 중요한 부분을 점검하고 반영해야 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실제적으로 접근하는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삶을 지탱하는 저마다의 무언가에 대해, 행복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에 대해 그 조건을 늘 점검하고 우선순위 메기는 습관은 곧 자신을 늘 점검하는 주체적인 삶을 뜻한다. 목표가 없는 항해는 망망대해 속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을 터, 책에서는 자신만의 목표가 있다면 그에 관한 리스트를 통해 삶을 점검하며 나아가야 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가능성이라는 개념에 절대적 가치는 없다. 자유와 마찬가지다. 가능성은 선택할 때 비로소 가능성이 된다. 자유는 무언가를 책임질 때 비로소 자유가 된다. -p.132

 

나아가야 할 때를 아는 것, 어떻게 가야할 지를 점검하는 것, 그 점검에 따른 선택에 의해 가능성 또한 생겨난다는 것. 삶은 선택의 과정이고 그런 과정 속에 우리가 이루는 모든 것들에 대한 ‘가능’이 존재한다. 선택과 책임을 짊어지는 것은 본인의 몫이라 말하는 오시이 마모루는 그렇게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에세이에 잘 담아 놓았다.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지금의 삶이 있는 것.

앞으로의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으며, 그 선택 또한 오롯이 본인의 몫이라는 것.

리스트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나아 갈 것.

자유롭게 나아가되 책임감을 가질 것.

당신의 인생 또한 그렇게 철학이라 할 만한 것.

인간 세상에 어리석은 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신은 명령한다. 어리석은 영혼을 모두 자루에 담아오라고, 그들은 보다 지혜롭게 만들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명령을 수행하는 천사는 쉽게 어리석은 영혼을 자루에 담았다. 세상에는 어리석은 자들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그 임무는 너무나도 쉬웠다.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자루는 이동 중에 찢어지고 만다. 천사의 실수로 바보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다. 바로 헤움이라는 마을.

 

작가가 마을이름을 ‘헤움’이라고 지은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령 예를 들면 어리석은 마음을 지혜로움으로 변하게 하는 혜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감을 뜻하는 헤움 등으로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헤움이라는 작은 마을에는 어리석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다. 이 작은 마을 공동체는 어떻게 변하고 또 발전해 나갈까?

 

그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어리석다. 말, 생각, 행동 모든 것이 어리석음 그 자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그대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감춰진 이면이나 이해관계에는 둔한 그런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랑이나 정의, 행복 등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우화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게 그려지지만 그 안에는 저자가 이야기했듯 사회에 대한 풍자가 그윽하게 서려 있었다. 겉모습, 외적인 것에만 몰두하는 편협에 대한 비판적 웃음으로 말이다.

 

의심 많은 친구여,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되네. 자만심과 의심에 눈이 어두워 그대는 하임이 매우 겸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어. - p.206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우화. 이야기의 내용은 때론 은유적으로, 때론 직접적으로 우리 사회를 관통한다. 더불어 우화가 지니는 순수함과 간단함으로 어렵게 꼬여있는 인생의 문제들도 쉽게 풀어낸다. 헤움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마치 전신거울을 바라보듯 우리사회의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드러나는 풍자적 교훈들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 던지는 중요한 과제이자 가르침이 되지 않을까.

 

역사적인 개봉 순간, 나무통을 여는 순간 모두가 경악했다. 정의가 있어야 할 통에 썩은 생선이 철철 넘치게 담겨 있었다. 베렉은 즉시 선언했다. 긴 여행 때문에 정의가 부패한 것이라고. (중략) 우리가 구입한 정의에서 악취가 나는 이유는 세상 어디에서나 정의가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 p.46

 

나의 모습을 넘어 우리, 관계, 사회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을 비교하고 관찰하기 좋은 작품이다. 훈훈한 모습에 기분 좋고, 나와 닮은 모습들에 대한 재미와 만족, 때로는 어리석은 행동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일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환기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던 작품이다. <인생 우화>는 세상 속 화려함에 현혹되어 잠시 잊고 지냈던 가치들을 상기시키고, 경직된 사고를 조금은 유연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