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적인 만남. 작품을 보낼 때는 퀵을 이용해야하고, 보낸 후 바로 전화를 해줘야하며, 본인도 작품이 도착하면 전화를 하겠다고 하는 둘의 첫 만남과 관계의 끈. 독특할 정도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출판업계 사람. 그리고 그런 완벽함과 독특함을 귀찮아 하는 신예 일러스트레이터.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상황에 의한 자연스러움이었으나 서로 다른 업무적 사고방식에 따라 유독 인상에 남는 그런 관계로 시작된다.
익숙해짐과 친분인지 관심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관계의 매듭. 첫 번째 단편집은 그렇게 시작된다.
파리로 조각을 배우러 떠나는 그녀. 2년의 일정을 준비한 그녀는 보장된 일자리와 수입을 박차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나선다. 용기인지 무모함인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 전문성도 떨어지고 자신의 실력에 대한 의심이 계속 드는 과정에서 더 이상 무언가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는 확고한 생각이었다. 어떻게 물 흐르듯 타고 흘러온 지금의 환경에 변화를 주고자, 스스로를 다잡고 돌아보고자 그녀는 여행을 결심한다. 그런 그녀에게 함께 작업한 나리키요씨는 이렇게 말했다.
허구한 날 쫓기듯이 일하다가 결국은 일에서 헤어나지 못해 거의 아슬아슬한 선까지 자신을 갉아먹는...그렇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죠. 사와다씨가 지금 각오를 다지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겠다고 하면, 그곳이 어디든 저는 응원할 겁니다.
- p.25
2년 후에 그녀는 확실히 성장했다. 의심과 걱정은 믿음과 확신으로 변했고, 어딘가 빠져 있던 조각을 되찾은 기분으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역시,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바를 찾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진정한 삶을 위한 첫 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귀국 당시 새로운 유행이 점령한 일러스트 업계에서 그녀가 설 자리는 이미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만족하고 있었다.
반대로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반듯하고 철두철미하던 나리키요씨는 없었다. 패션 잡지 쪽으로 부서를 옮긴 그는 일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며 자신을 갉아먹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다. 몇년 후 다시 만난 두 사람. 둘은 이야기를 다시 이어간다.
삶 속에서 방황하고 자리를 찾아가며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 먹는 나이만큼 성숙해진다.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처럼, 지금은 방황의 삶, 쫓기는 삶의 연속일지라도 결국은 스스로의 길을 찾아간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그렇고 우리의 삶 또한 다르지 않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다양한 상황과 그에 맞는 옷을 걸치며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간다. 그리고 또 누군가를 만난다.
이어지는 단편집의 주인공들도 그들만의 난처한 상황을 겪은 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흘러가는 스토리의 내용은 당시에 있었던 잘못이나 실수들이 알고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고, 타인 또한 그 나름의 이유로 그 상황을 모면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사연.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오해나 진실도 결국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고, 그 실타레 또한 풀려나간다.
만남과 헤어짐의 순환 속에서 삶과 시간의 흐름은 결국 따뜻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지나간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새로운 것은 또 다른 의미로써 다가오는 것이 우리 삶의 이면이 아닐까. <다시, 만나다>는 그렇게 연결되는 삶의 모습과 "만남"의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스치듯 만난 인연이든, 오래 지속된 인연이든 만남에 대한 감사함으로 내 주위를 돌아볼 때가 아닐까 싶다. 더불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할 때가 아닐까. 비록 지금의 순간은 그 길을 헤메고 있을지라도 결국은 닿게 되는 만남의 연속처럼, 내가 하고자하는 바를 만나게 될 것임을 믿고 우직하게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세월도 있다.
사람은 산 시간만큼
과거에서 반드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맞닿은 손끝의 따스한 열기를 느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p.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