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2초, 3초. 한 명이 굶어 죽었어요." 2009년 그녀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MC 강호동에게 한 말이다. 방송에 나와서 그녀가 한 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그만큼 충격이 컸고, 믿기지 않았다. 장난을 걸듯이 하지만 진지하게 "1초, 2초, 3초. 방금 한 명이 죽었어요."라고 말하던 그녀, 한비야.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던 내가 이미 중반을 달리고 있는 무릎팍도사를 멍하니 보기 시작한 지점이 바로 이 때부터였다. 이름만 들어봤지 관심조차 없었던 그녀인데도, 방송에 출연한 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어? 한비야다!"라고 외치며 TV 앞에 다가가 앉았던 지난 기억이 불쑥 떠오른다. 그리고 내 책상 책꽂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꽂혀 있는 그녀의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도. 내게 끝없는 긍정의 에너지를 주었고 도전 의식을 불태우게 만들었던 고등학교 3년 동안의 멘토이자 지금도 내 가슴 한켠에 멘토로 자리 잡고 있는 前 월드비전 긴급 구호 팀장이자 現 UN 중앙 긴급 대응 기금 자문위원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어린이 버전으로 재출간 되었다는 소식만큼 기쁘고, 주위에 알려주고 싶어 안달날 만한 것은 없다.

 

 

이 책에는 한비야씨가 국제NGO에서 긴급 구호 팀장으로 활동할 당시 겪었던 일들과 목격했던 긴급구호현장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고스라니 담겨있다.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했던 이야기, 전해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던 이야기,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지는 이야기,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 여겨졌던 이야기, 공감조차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두 눈으로 직접 읽고, 책에 실린 사진과 김무연씨의 그림을 봄으로써 지구 곳곳에 만연한 비극적인 현실을 보다 빠르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만 바라보고 이해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나 IT산업이 고도로 발전한 현 상황에서 지구촌 사회를 넘어 SNS를 통한 실시간 스마트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고, '내가 모르는 이야기'이고,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현재에는 각 나라별로 모든 문화, 경제, 정치와 같은 사회 전반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어서 작은 균열에도 쉽게 휘청거릴 정도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가 급변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범세계적인 국민 의식이다. 주어진 정보를 보고 자신들이 스스로 깨달아 행동할 수 있는 성년의 경우엔 걱정이 별로 없지만, 목말라 하면서도 물이 어디있는지 몰라 마시지 못하는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가듯이 스스로 깨닫기 힘든 어린아이들에겐 적절한 교육을 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조금만 자극해줘도 금방 깨닫는다. 우리나라가 선진국가로 갈 경제적인 방법을 따져볼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양식이자 미래인 아이들에게 세계에 대하여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고안해야 한다.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줄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린이를 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다. 총 2권으로 구성된 『어린이를 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아이들에게 넓은 시야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특히나 지구 반대편에 일어나고 있었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잔혹한 현실(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에 걸리고, 심지어 독초를 먹어야 하는 긴급구호지역의 상황)을 직면함으로써 아이의 자립은 물론, 선진화된 사고방식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아이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도 아니다.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잔혹한 현실이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눈을 뜰 것이고, 코 묻은 자신의 돈을 꼬박꼬박 모아 자신보다 못 살고, 못 먹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써야 한다며 두둑히 차오른 돼지저금통을 깨부술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불쌍하군.', '우리나라에도 불쌍한 아이들이 많은데 무슨 후원?'이라며 갖은 변명과 핑계, 씹을 거리들을 찾아 도움을 미룰지라도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고,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한비야씨의 긴급구조현장에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와 그녀만의 생각은 아이들의 사고를 증진시켜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지도자로서 아이가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을 가르쳐줄 것이다.

 

솔직히 밝히자면 나는 '어린이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출간되어 있는 책을 읽히면 될텐데 굳이 어린이를 위한다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출간을 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생각에서도 그렇지만, 타겟에 어울리지 않는 문체의 사용으로 오히려 혼동을 주는 책을 몇 번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것 다 재쳐두고서라도 나의 후배들에게,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반드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한 가지 고르라면 한비야씨의 『어린이를 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지 않았다면 『어린이를 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어보길 권장하고 싶다. 기존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큰 차이는 없지만 책이 2권으로 구성되어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 사진과 그림이 많이 사용되어 이해가 편하다는 점, 부가적인 설명과 수평적인 레이아웃으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가지 것들이 독서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나아가 책에 실린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 중 영양실조로 거의 죽어가던 아이에게 2시간 간격으로 미음과도 같은 영양죽을 돌아가며 먹인 끝에 아이가 힘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가슴이 찡하다. 그 아이의 총기 어린 눈빛을 직접 마주한 한비야씨는 어땠겠는가? 그리고 마을에 씨앗을 심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물을 수확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굶주림을 이겨내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이들을 구할 것이 아니라 마을을 재건해야 한다.'던 본문의 내용이 머리 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해외의 원조를 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월드비전 내에서도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지원국으로 발전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당시 다른 나라의 코흘리개 아이들의 코 묻은 돈과 해외 할머니들의 쌈짓돈으로 생활을 이어갔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가와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조금만 나누어 주어야 할 때다.

 

 

　이 포스트는 '푸른숲주니어 모니터원 4기' 활동 중 제공 받은 12월 평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고전문학은 읽기 어렵다. 성경책이 읽기 힘든 이유처럼 익숙하지 않은 문체가 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진부한 설정이 판을 치는 현대 문학계와 달리 쌍팔년도의 개그와 소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묘한 즐거움과 흥분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며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하는 호기심과 의외성 때문이다. 『홍루몽』은 그러한 의외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출판된 『홍루몽』에는 중국 청나라 때 조설근이 써낸 『홍루몽』만의 멋과 맛이 제대로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다. 양이 많아서 대략적인 줄거리만 맛볼 수 있도록 편집을 시도한 것 같지만 그 편집이 상당히 제멋대로인 것이라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은 제8회와 제97회 부분에서였다. 앞에서 잘 가는구나, 싶었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 중간부분을 통으로 빼먹고 비극적 결말 부분으로 치닫게 만든 편집은 씁쓸하기 그지 없다.

 

 

 

가문을 살리기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보옥과 대옥의 비극적인 사랑

『홍루몽』의 대표적인 인물은 '남자는 진흙으로 만들어졌고 여자는 맑은 물로 만들어 졌다'는 말을 한 완벽한 페미니스트 보옥과 어려서부터 보옥과 함께 자라며 보옥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병약한 대옥과 건강하고 현모양처가 될 것 같은 보차, 집안의 세력을 손에 쥐고 있는 가모, 매파와 같은 역할을 떠맡은 희봉까지 총 5명이다. 이 다섯 인물은 가씨의 집안을 배경으로 서로 얽히고 섥히는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데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보옥과 대옥, 보차의 3각 관계이다.

 

보옥은 태어날 때 입에 통령옥을 물고 나왔는데, 그 옥에는 '첫째 사악한 기운을 없애고, 둘째 원통한 질병을 고치고, 셋째 미리 화복을 알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 통령옥은 속세를 구경하고 싶어 했던 커다란 바위산이 도사에게 간청해 그의 술법으로 변한 모습이었는데, 도사는 영험한 힘을 주기 위해 이러한 글귀를 적고 속세로 내려 보낸 것이었다. 보옥은 항상 자신이 입에 물고 나온 옥을 목에 걸고 다녔는데 우연한 기회에 감기로 고생을 하는 보차의 병문안을 갔다가 자신의 구슬 앞면에 적힌 글귀, '잃지도 말고 잊지도 말아라, 신선 같은 천수를 언제까지나 누리리라.'와 보차가 매고 있는 금쇄(금 목걸이)에 적힌 글귀가 대구를 이룬다는 보차의 시녀, 앵아의 말을 듣고 보차의 금쇄를 살펴보니 '떠나지 말고 버리지 마라. 꽃 같은 수명을 영원히 누리리라.'라고 적혀 있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던 두 사람의 운명이 하나로 얽히게 됨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각자가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옥과 금쇄에 서로 대구를 이루는 글귀가 적혀 있다는 것은 곧 이 둘의 결합을 의미하는데, 안타깝게도 보옥은 보차와의 결합을 원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홍루몽』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시작된다.

 

보옥은 대옥을 연모하고 있었기에 대옥과의 결혼을 원했지만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모든 결정을 하는 가모는 보차와 결혼라고 엄포를 놓았다. 가문을 살리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보옥이 쉽게 따르려 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이에 희봉은 계략을 세우는데, 그것은 바로 보옥이 항상 차고 다니는 옥을 빼앗는 것이었다. 희봉의 계략대로 보옥은 옥을 잃고 바보가 되어 버렸는데, 이러한 보옥의 이상행동은 옥을 잃어버렸다는 충격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옥이 가지고 있는 '사악한 기운을 없애고, 원통한 질병을 고치는' 능력이 옥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사라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모는 옥의 분실로 정신이 이상해진 보옥을 두고 고민을 하지만 희봉과 가모는 보차와 보옥의 혼례를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 사실을 알게된 대옥은 보옥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으로 몸져 눕게 되고 각혈을 하면서 보옥을 잊기 위해 그를 연모하며 썼던 시를 불태운다.

 

한편, 보옥은 결혼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희봉이 대옥과 혼례를 치루게 되었다고 속이는 말에 감쪽 같이 넘어가게 되지만, 대옥과 자신이 이어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정신을 조금씩 차리고 몸을 회복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혼례 당일, 희봉과 가모가 대옥을 모시던 시종 하나를 데려다가 보차의 들러리를 서게 만들었는데 그 시종을 본 보옥은 자신과 혼례를 치루는 여인이 필시 대옥이라고 믿고 기뻐했지만 신방에서 대옥이 아닌 보차가 자신의 신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정신을 놓는다. 보옥과 보차가 희봉의 계략에 의해 혼례를 치루게 된 당일 대옥은 병세가 악화되어 쓸쓸히 숨을 거둔다.

 

가문을 지키기려고 원하지 않는 결혼을 시킨 가모나 그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보옥의 통령옥을 빼앗아 총명함을 잃게 만든 희봉의 역할은 『홍루몽』 안에서 철저한 악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종종 보옥의 건강을 걱정하는 가모의 모습을 보면 절대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가모를 부추기고 보옥을 속이는 희봉이 진정한 안타고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이 편집한 『홍루몽』에서는 보옥과 대옥의 사랑을 방해하는 희봉과 가모의 모습이 담긴 중간 과정에 대한 회차가 나오지 않아 이 둘의 비극적인 사랑이 절절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고전을 출판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고 주목할만한 정보이지만 책을 억지스럽게 요약한다면 오히려 '고전문학'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홍루몽』의 회차가 1회, 4회, 8회에서 97회로 뛰어 넘어갔는데, 갑자기 눈을 떠보니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는데 희봉 때문에 대옥은 각혈을 하고 보옥은 정신을 놓을 정도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구나, 하는 사실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서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읽는데 시간은 많이 걸리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편집 된 『홍루몽』보다 전체적인 내용이 적힌 『홍루몽』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포스팅은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제공한 『홍루몽』을 읽고 쓴 것 입니다.

 

 

1. 역사에 대한 시점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점은 모두 다르다. 보는 관점도 다르고, 시선도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도, 전해주는 것도 모두가 다 달라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다. 연예인이 행한 일이 오해를 불러와 누구는 욕을 하며 키보드 워리어로서의 능력을 발산하게 만들고, 누구는 그 행동을 존경하고, 존중하며 실드를 쳐주기도 한다. 개인적인 일 역시 그렇다. 남이 A를 B 혹은 C로 오해하진 않을까, 전전긍긍 하기도 하고, 정말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그 시선을 바로잡기 위해 다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을 예로 들 수 있다.

 

　전두환 정부의 독재정권 당시 호남권에 위치한 광주에서는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독재적인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목을 매달았지만 그 때부터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였고 한계에 다다른 박정희 정권은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에 의해 시해되었다. 그 당시 박정희 측에서 함께 움직이던 전두환파는 민주화 운동이 불기 시작하는 틈을 타 자신들의 시나리오를 펼쳤는데,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흔들리는 정권을 장악하여 제 2의 독재정권이자 군사정권을 시작한 것이다. 12.12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다음,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민주화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을 제거해야만 했는데 그 희생제물로 선택된 곳이 바로 광주였다. 이유는 광주가 민주화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자 야당의 정적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 전라도 광주였기 때문이다.1

 

　전두환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민주헌정 정지, 민주정치 지도자 투옥 등 군사독재가 재발하자 민중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그것이 결국 정부에 대한 대항으로 번진 것이다. 그동안의 불만이 쌓인 학생들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에서 대규모 민주항쟁 시위를 벌였다. 그로부터 이틀 뒤, 정부는 전국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사건은 그 때부터였다. 광주에서도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는데 정부측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못하게 막아서기 시작했다. 전남대학교 학생과 비상계엄군 간에 충돌이 있었고, 계엄군과 공수부대원들은 총격을 가하는 등 무차별 살상을 자행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을 개 패듯 패는 이들로부터 도망쳐 시민들의 집에 숨어 들었는데 주부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성인 남자들 중에는 함께 맞서 싸우는 이들도 있었다. 성난 학생들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 거센 저항이 이루어 졌는데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의 시가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것이 바로 5월 민주화 항쟁이다.

 

　하지만 그 당시, 정부는 군사들을 이용해 광주를 외부로부터 차단시켰다. 기자도, 외신들도 들어올 수 없었고, 다른 이들도 들어오지 못했으며, 광주에 있던 모든 사람들 역시 그 안에 갖힌채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다. 철저하게 눈이 가려지고, 귀가 막히고, 입이 막힌 상황 속에서 바깥에서는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떠들어 댔지만 안에서는 민주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피비린내 나는 거센 항쟁과 싸움이 불어 닥쳤다. 얼굴이 찢기고, 배가 갈리고, 사지 중 하나가 나가 떨어지고, 최루탄에 눈물, 콧물을 다 쏟아 내는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은. 광주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5.18 항쟁이 끝난 후, 사람들의 시선은 냉담했다. 폭동이라 잘못 알려진 탓에 경멸하고, 두려워하고, 욕했다.오랜 시간이 지나 그것은 폭동이 아니라 민주화 항쟁이었다고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5.18 민주화 항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기 다르다. 심지어 5.18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지금에 와서는 '5.18민중항쟁'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인정되어서 '5.18민주화운동'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으며 2011년 5월에는 그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기도 하였지만 개중에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는 없다.2

 

　무엇을 어떻게 보든지 그것은 각자의 자유라지만, 적어도 '진실'은 왜곡시키지 말아야 한다. 특히 기존에 제공된 것을 응용하거나 변형시키거나, 새로운 것을 첨가시켜 무엇인가로 만들 때(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킬 때), 그 내용은 모두 상상력에 의존하여 진행되되 역사적인 흐름에는 일절 왜곡됨이 없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부터 소개할 책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정말 잘 되어 있는 책이다. 문화콘텐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국사책에 나와 있는 단 한 줄의 문구3를 읽고 생긴 의문점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고, 거기에 작가 본인만의 상상력을 더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잘 풀어 냈다. 앞에서 필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그것은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를 두고 한 말이었지만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라면 어떻게 될까? 시선의 위치가 달라지면 이야기하는 사건의 본질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그 점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아이가 바라보는 시선과 어른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남자가 보는 시선과 여자가 보는 시선이 다르며, 당사자가 바라보는 시선과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르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동학농민운동이 성행하던 당시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지만 내용은 동학농민운동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이의 시선으로 전개해나가는 이야기는 동학농민군이 얼마나 용맹했고, 필사적이었으며,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울분해 처해 살아야만 했는가를 보여주기 보다는 동학농민군의 행보를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목격한 잔혹한 사회상을 그대로 내보여준다.

 

　작가 한윤섭씨는 작가의 말에서 "처음 푸른숲주니어 관계자분들과 만나서 동학 농민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전봉준의 이야기는 쓰지 말자.'였습니다. '동학 농민 운동' 하면 전봉준이란 인물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전봉준을 전면에 내세우면 이야기가 진부해질 수 있다는 염려를 했던 겁니다."라고 밝혔다. 작가는 자신의 다짐을 지켜냈다. 시대적인 배경인 동학농민운동 당시를 그리고 있지만 메인 인물은 동학농민운동 총대장 전봉준이 아니라 보부상의 아들을 사용해 역사를 다시 풀어냈던 것. 이야기는 '전봉준이 자신이 밀고될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내주는 것은 전봉준 자신이 아니라 동학농민군과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없는 한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진다. 독자들은 바로 여기에서 동학농민운동의 아픔과 아이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야기 자체도 간접적으로 에둘러 가는 것 같지만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는 서찰을 전하기 위해 전라도로 가던 중 도방에서 비명횡사한 아버지 대신 아이가 여행길에 오르게 된 것부터 이 이야기는 동학농민운동을 둘러 싸고 벌어진 상황을 조명한다. 동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열세살의 어린아이가 아버지 대신 서찰을 전하기 위해 몇몇 사람에게 한자를 써보여 서찰의 내용을 알아가고, 전달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아가는 상황 속에서 주위 어른들에게 전해 듣는 동학농민군에 대한 소식과 한탄은 독자들에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데, 이 아픔이 가장 절정에 치다르는 순간은 아이가 우금치에 갔다가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우금치 전투의 상황이다.

 

　아이는 서찰에 적힌 내용을 전부 알게 되고, 그 서찰을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지 또한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하는 곳이 어딘지도. 아이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주막에서 다른 이들에 의해 동학농민군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전해 듣게 되고 조선 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본과 청나라 간의 싸움에 대해서도 전해 듣게 된다 아이에게는 다른 것들 보다도 전봉준의 위치가 가장 중요한 힌트이자 정보겠지만 독자들은 아이가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통해 동학농민군이 처해있는 상황과 당시 조선사회를 파악할 수 있다. 국사 교과서에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는 부분이 동화책에서는 발단까지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이는 동학농민운동이 패배하고 전봉준 장군이 관군에게 잡혔을 때 슬퍼한 조선 서민들의 마음의 집약체이자 조선 전체의 슬픔이기도 하며, 동시에 현대와 과거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소설적 장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각기 다른 역할을 배정 받는다. 필요에 따라서 인물들은 특별한 능력을 작가로부터 배부 받기도 하는데, 그 능력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간에 중요한 점은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빌어 작품 내부에 만연해 있는 문제가 해소되거나 부정부패한 사실이 드러난다는 사실이며, 이 사항은 『서찰을 전하는 아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보부상의 아들인 열세살의 어린아이가 전봉준에게 서찰을 전하기 위해 혼자 여행길에 올라 부조리한 세상에게 당당히 맞서 싸우는 동학 농민군을 찾아 가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을 장터에서 배운 노래로 치유해주는 모습은 책을 읽는 내내 자주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아이의 노래를 듣고 한결같이 "너의 노래에는 약이 들어 있구나"라고 말하던, 심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상처를 가지고 있던 이들의 말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노래의 힘'을 의심하게 만든다.

 

　노래의 힘은 아이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능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갖게 된 능력이다. 아이가 여행길에 오르기 전, 북한산에 있는 노스님을 만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올랐다가 거인의 배꼽처럼 보이는 샘터에서 물을 길러 마셨는데 그 물이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기분을 맛본 아이가 그 뒤로 노래를 부르는 족족 듣는 이들은 아이가 물을 마실 당시 받았던 그 느낌 그대로 전달 받게 된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임무를 모두 수행한 다음 북한산에서 다시 한 번 그 물을 떠 마셨을 때, 아이가 가지고 있던 노래의 힘은 사라지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아이가 어떻게 노래의 힘을 얻었고, 어째서 노래의 힘을 잃어버렸는가가 아니라 '아이가 노래의 힘을 가지게 되었던 이유'이다. 아이가 노래의 힘을 갖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거인의 배꼽은 아이에게 노래의 힘을 선물해주고 어떻게 하길 바랐던 것일까?

 

　앞서 필자는 아이가 조선 전체의 슬픔이자 조선 서민들의 마음의 집약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아이는 그러한 마음들을 치유하는 자였다. 아이가 가진 노래의 힘은 바로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심적이나 육적이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어 그 상처를 치류하는 것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노래의 힘 자체가 아니라 아이가 부르는 노래다. 아이는 같은 노래를 반복적으로 부르지 않는다. 길에서 만난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이전에 불렀던 노래를 또 불러주거나 하지 않는다. 모두 노래를 불러 그들을 쓰다듬고, 안아주고, 어르지만 그들 개인개인에게 맞는 노래들을 선물한다. 특히 다리가 아픈 뱃사공 할아버지에게 아이가 불러 드렸던 '뱃노래'와 기침이 멎질 않았던 우금치 주막 아주머니께 불러드린 '여탄가', 피노리에서 관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던 녹두장군 전봉준을 위해 불렀던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모두 그들에게 어울리는 노래였다. 배를 띄울 때만 아픔을 잊을 수 있고, 행복하다 생각하던 뱃사공 할아버지를 위해 불렀던 '뱃노래'도, 관군과 일본군, 청나라군이 조선 땅에서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혹여나 아이가 죽지는 않았을까, 걱정해주던 우금치 주막 아주머니께 불러 드린 '여탄가'도, 전봉준을 위해 마지막에 불렀던 '새야 새야 파랑새야'도 모두 아이의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 나온 노래였다. 어찌보면 아이는 노래의 힘을 얻은 것이 아니라 위하는 힘을 얻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진심이라는 이름의 힘 말이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치유의 형태로 나타나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깃들어 듣는 이들에게 전달되어 '약'이 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아이가 어디에서 이 힘을 얻었느냐, 하는 것이다. 아이는 초반에 보부상인 아버지를 따라 북한산에 올라 샘물을 길어 마시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바로 그곳에서 노래의 힘을 부여 받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어째서 북한산일까? 북한산이 주는 이미지는 신선이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영엄한 기운과 신성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산과 같은 느낌을 안겨주는데,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자리잡고 살 만한 땅을 고를 때 이 봉우리에 올라 서울의 지세를 살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서울 근교의 산 중에서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라 불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소년은 이 북한산에서 노스님을 만났다고 말하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신통한 능력이라도 있었을까? 노스님께서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피노리에서 김경천으로 인해 밀고 당해 관군에게 잡힐 것을 어떻게 알고 소년의 아버지에게 서찰을 써서 맡기셨던 것일까? 그 의문은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 쉽게 풀리진 않는다. 뿐만아니라 아이가 노래의 힘을 얻은 것도 이 산에 있는 샘터에서였다. 거인의 형상을 한 것 같은 곳에서 거인의 배꼽에 고인 물과 같은 샘물을 손에 떠 올렸는데 신기하게도 그 물이 흐르지 아니하였고, 손에 담긴 그 물을 마셨더니 목에서부터 가슴까지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물이란 손을 오목하게 만들어 퍼 올리면 흐르기 마련이다. 물을 마시려고 하면 모두 다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그만큼 퍼올리기 힘든 것인데 아이마저도 자신의 손에 그대로 모여 있는 물을 보고 신기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 신기한 물을 마셨다. 여기서 아이가 '노래의 힘'을 가지게 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노스님 앞으로 나아간 아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새로 부여 받은 힘을 확인 받는다.

 

"네 노래엔 약이 들어 있구나."

 

장터에서 손님이나 불러올 정도의 잔재주 밖에 되지 않던 아이의 소리에 약이 들어 있다니, 아이도 아버지도 과분한 칭찬에 믿지 못할 말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이가 새로 받은 이 힘은 앞으로 아이 혼자 전라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에게서 거듭 확인 받으며 힘의 위력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이제 아이가 어째서 이 힘을 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굳이 다른 것도 아니고 노래의 힘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가 노래의 힘을 받은 이유는 바로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는 국악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하는 소리들은 모두 장날, 아버지를 따라 장을 돌아 다니며 사당패들이 부르는 노래나 주위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를 어깨 너머로 배워 조금 부르는 정도다. 그러니 아이가 부르는 노래들은 모두 민요다. 삶의 애환이 고스라니 담긴 민요를 아이는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런데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치유의 힘'이 들어가 있으니 이 또한 의미하는 바가 있는데, 아이가 부르는 민요와 북한산에서 얻은 치유의 힘이 한데 어울어져 상처 받은 조선 서민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치료해주는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동학농민군을 잡으려 조선에서는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그 틈을 타 일본에서도 군대를 파견시켰다. 결국 조선을 무대로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서로 맛보겠다고 자리 싸움을 하면서도 조선에서 들고 일어나는 민간 운동권자들을 모두 토벌하였는데 이 때 받은 조선 서민들의 상처와 번민은 그 어떠한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육체적으로 상처를 받은 뱃사공 할아버지를 생각해보자. 다리가 아파 노를 젓지 않으면 서있지 못할 정도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뱃사공 할아버지는 마음대로 배를 띄우지도 못하게 하는 외부 현실에 의해 상처를 입은 피해자이자 사회적인 약자이며, 동학은 아니었지만 동학도들이 외쳤던 세상이 오기를 소망하셨던 분이기도 했다.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상처 입은 할아버지를 위해 아이는 노동요인 뱃노래를 맛깔나게 불렀다. 우금치 주막에서는 어떠했나?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참패를 당하고 처참하게 죽어 눈이 온 것처럼 피 흘리며 바닥에 쓰려져 있는 모습을 보고 돌아온 아이가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걱정해주었던 아주머니께서 잦은 기침을 하자 여탄가를 불러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봉준이 관군에게 잡혀 상처 입은 채로 끌려 갈 때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불러주고 전봉준이 들것 위에 허리를 쭉 펴고 곧게 앉아 당당하게 들려 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다. 아이가 가진 치유의 힘은 외적인 것 뿐 아니라 내적인 것까지 치유한다. 즉, 상처 받은 조선 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는 전봉준을 구하지 못한다. 하지만 전봉준에게 노래를 불러 주어 그가 힘을 차리고, 동학농민운동 총대장 다운 늠름한 자세로 사람들 앞에 기억될 수 있도록 일조했다. 아이가 가진 치유의 힘이자 노래의 힘은 북한산에 올라 샘물을 다시 떠 마심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는 아이가 부여 받았던 임무가 완수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 임무라는 것은 아이의 아버지가 노스님으로부터 서찰을 전달 받은 순간이 아닌, 아이가 북한산에 올라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부터 부여 된 것이다. 즉,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아를 확립한 다음에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임무를 수행한 뒤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로 돌아와 1년 새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것으로 아이의 임무는 끝나고, 자신의 얼굴이 담긴 샘물을 다시 떠올려 마심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기이한 능력이 상실되면서 아이에게 주어졌던 임무와 능력은 일시적인 것이었음을 주장한다.

 

 

3. 주인공이 가졌던 성장의 시간

　마지막으로 논해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열세살 어린 소년의 성장이다. 아이는 글 속에서 총 세 번 성장한다. 처음은 북한산 거인의 배꼽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을 당시, 물에 비친 모습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고, 두 번째는 아버지가 죽은 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고 떠났던 순간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열 네살의 아이의 얼굴을 샘물에 비춰 확인한 순간이다. 아이는 이렇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확인 받으며 성장해 나갔다. 다른 성장 소설이나 동화에서처럼 모진 인내의 시간이나 자아 성찰의 시간을 부여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열 세살, 어린 나이의 몸으로 전라도 나아갔던 위험한 시간들이 아이를 나이보다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먹고 살기 위해서 자라야 했던 때였고, 부모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의연해져야 했던 때였지만 이런 아이의 모습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생소하게 다가올 뿐더러 기특하게 여겨지리라.

 

　나는 오늘날 아이들에게도 이런 성찰과 성숙의 시간을 가질 계기를 부모들이 마련해 주었으면, 생각한다. 흉흉하고 강팍해진 사회를 탓하며 너무 아이를 안으로만 감싸고 돌려고만 하지 말고, 아이 스스로가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성장해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믿고 지켜봐주는, 때로는 버팀목 같고 때로는 쉬어갈 수 있는 공원 벤치 같은 부모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기특한 어린이들이 되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