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이입이 어려웠다. 의원 중 한 명이 인위적으로 만든 ’역사 보호구역’으로 180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클림프턴 마을 밖은 실제로 1900년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 스토리가 특별히 재미 있는 것도 아니었고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제시가 겪는 모든 사건들이 일차원적 사고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러한 사고 속에서 임펙트가 되는 한 방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이 책, <시간 밖으로 달리다>의 줄거리와 출판사의 홍보 문구를 보고 생각한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역사 보호구역’인 클림프턴 마을에서 살고 있던 제시가 실수로 빠져나간 바깥엔 한 세기나 차이 나는 현재가 펼쳐져 있고, 그 속에서 뜻하지 않은 시간여행을 하게 된 주인공이 방황과 성장을 거듭하다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벌하고 문명의 혜택을 받는 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도 비슷하게 흘러갔지만 내가 기대했던 다이렉트한 내용이나 임펙트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클림프턴 마을은 역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1800년대를 살고 있는 과거의 마을이다. 어른들은 그곳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장소’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현재가 1800년대이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장소와 처한 배경을 그대로 믿고 있다. 처음으로 클림프턴 마을이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누가 그런 원시적인 곳에서 자원해 살아갈지 의문을 품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원을 했다. 역사적 유물이나 건축을 복원하여 관광지로 만들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관람을 하지만 그 시대의 모습을 보고 공감을 하거나, 무언가를 제대로 느껴가는 것은 어렵다. 역사 관광지가 제아무리 그 시대를 흉내낸다 하더라고 현 시대를 사는 관광객들이 현 시대의 옷과 물건을 들고 그 장소에 들어간 순간 역사가 깨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클림프턴씨는 ’역사 보호구역’인 클림프턴 마을 만들고 1년 365일 그곳에서 거주하며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카메라와 유리창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것을 동의한 이들을 받아들여 그 마을에서 살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아이들은 아팠으며 현대와 유일하게 이어져 있던 마을의 유일한 의료진은 약을 공급하는 것을 중단했다.

바깥으로부터의 공급망이 완전히 끊긴 것이다. 현대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던 계약 조건이 깨져버렸다. 어린아이들은 아팠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아이들이 전염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현대의 의학기술과 약만 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을테지만 어쩐 일인지 바깥에서 공급해주던 의료혜택이 끊겨버린 상황이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제시를 바깥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바깥에서 클림프턴 마을로 들어올 때 입고 왔던 청바지와 티, 바람막이를 제시에게 입히며 제시의 엄마는 바깥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해 준다. 자신이 살고 있던 곳의 시간이 진짜라고 믿었을 제시에게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 뿐이다. 자동차라는 것도, 카메라라는 것도, 전화기라는 것도, 비행기라는 것도 모두가 믿을 수 없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질문은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사랑스러운 케이티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친구들과 클림프턴 마을에 있는 많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제시는 혼란에 휩싸인다.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방황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긴장감이 없다. 제시는 이상하리만치 이성적이었으며 자신이 1900년대에 있다는 사실을 끊임 없이 되뇌이며 자각한다. 그러면서도 주위의 것들을 눈여겨보고, 자신만의 언어로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모두 약하게만 느껴진다. 제시는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인간이 기본적으로 보여야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방황과 혼란. 책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은 단순하다. 지나칠 만큼 이성적이다. 열 세살의 어린 아이가 보일만한 반응들이 아니다. 열 세살의 내가 한 세기를 건너 뛰어 ’미래’라고 밖에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바깥 세상’에 나갔다면 눈 앞에 보이는 것에 겁먹고 도망다니고, 혼란스러워하며,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한 혼란과 두려움은 내 어께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내 가족의 목숨이 올라 앉아 있어도 쉽게 잠재워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제시는 너무나도 간단히, 그러한 방황과 혼란을 잠재우고 있다. 소설이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러한 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단절되게 느껴졌다. 작가의 의도적인 개입과 제한이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있었다.

작가는 끊임 없이 말하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제발 긴장해줘.’ 등등. 구구절절.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에게 긴장을 요구한다. 마지막 문장 한 줄에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주면서. 작가가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재미가 없다. 흥미 요소가 없다. 복선은 너무나도 쉽게 눈에 띄고 반전이랄 것도 없다. 너무 많은 것을 처음에 알려주었고, 뒤에서는 자신들이 앞에서 말한 것들을 그대로 실행하고 설명하고 풀어내는데 급급해 반전을 넣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애초에 흥미요소를 포기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하면서도 얼마든지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시간여행이라는 키워드와 소재를 가지고 맛들어지는 스토리텔링을 해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정말 비통하기 그지 없다.

이제와 밝히는 것이지만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성장소설이다. 제시는 분명 성장한다. 자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건을 종결지으면서 말이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될 정도로 간단히 일이 풀려버렸다. 사람들은 제시에게 사건 정황을 설명해주지 않고 숨기기에 급급하다. 너무 어리다는게 그 이유이기도 하지만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해댄다. 하지만 제시는 끊임 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러다 자신이 사건을 풀어내기 위해 기자회견을 했던 것처럼 이번엔 한 명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있는 병실로 오게 만든다. 그리고 서로 질문을 주고 받는다는 조건을 걸어 자신이 궁금한 점을 모두 해소한다. 제시는 바깥과 안쪽 세상 모두를 경험했다. 그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보았고 느꼈으며, 경험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것만 보아도 모자랄 나이에 어두운 면만을 경험했다.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은 제시가 경험하기엔 너무나도 벅찬 일들만 가득 들이 닥쳤다. 그래서 그 혼란이 나에게 온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경험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혼란,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뛰쳐 나가는 것으로 시작된 시간여행, 바깥 세상을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만지고, 맡으며 느낀 모든 것이 제시의 감정과 오감을 너머 내게 그대로 전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혼란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제시가 느끼지 못한 그 이상의 혼란을 느꼈다. 제시는 그 일을 계기로 조금 더 조숙해졌고,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으며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망설일 정도로 세상의 이면을 다 보았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스쳐 지나쳐야만 했던 바깥 세상의 것들을 천천히 배우고 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듯 빨리 달리는게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정확한 한 걸음을 내딛을 차례였다.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감정 이입이 쉽지 않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는 것이 한 몫 했다. 한 세기나 차이 나는 시간 폭 안에서 저렇게 태연하게 바깥 세상을 헤매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화장실에서 다른 여자아이를 눈으로 훔쳐보며 안심했던 제시는 바깥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며 더욱 대담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바깥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시는 역시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녀가 전혀 대견스러워 보이거나 안타까워보이지 않았다. 좋은 쪽도 아니었고 나쁜 쪽도 아니었다. 그녀는 작가가 설정한 제한적인 틀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붕어에 불과했다. 작가가 설치해 놓은 투명한 유리어항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붕어였고, 비행하다가 물에 빠진 파리 같았다. 그녀에게 감정을 이입하기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문명 앞에서 허둥거리고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은 신선했지만 곧 지루해졌고, 짜증까지 치솟았다. 그녀도 짜증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히스테릭해지고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클림프턴 사람들을 원망하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보건국 사람들에게도 고함을 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책에 쓰여진 것보다 더한 상황에 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난을 극적으로 이겨낸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감동적인 이야기에 쉽게 끌리는 편도 아니다.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책은 캐릭터가 제대로 완성되어 있는 이야기다. 나는 캐릭터에 울고 웃는 타입이다.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는 당황스럽고 짜증이 치솟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복욕이 생긴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시는 그 모든것에 해당되지 않았다. 복숭아 나무가 복숭아를 스스로 놓아 버릴 때처럼 나 역시 그녀를 놓아버렸다. 처음에 이해하려 애썼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더이상은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괴로워하며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한 반응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성장하는 인물은 버겁다. 이해하기 버거운게 아니라 내가 견디기 버겁다. 제시는 그런 아이였다. 자기만의 언어로 이해했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장했다. 누가 눈치채면 안된다는 듯 숨어서 성장한다. 내면이 숨겨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장해버린다. 그걸 지켜봐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시간 밖으로 달리다, 라는 제목은 책의 내용과 딱 맞아 떨어졌다. 제시는 말 그대로 시간을 달렸다. 의도치 않은 시간여행을 한 꼬마 숙녀 제시. 하지만 그녀는 내가 기대한 것만큼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녀를 방해하는 반동인물이 너무나 적었다. 반동인물이 취할 수 있는 행동, 그녀를 방해하기 위한 온갖 행동이 다 나타나지 못했다는게 너무나 아쉽다. 작가는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더욱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도 안전한 길을 택했다.

심리는 일차원 적이었고, 사건도 단순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시간여행이라는, 써먹기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사람을 매료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해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