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이곳에 글을 남긴다.

마음 한켠에 늘 걸려있긴 했는데, 좀체 접속해 글을 올릴 여유를 갖지 못한 채 한해가 훌쩍 흘러가 어느새 연말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러저러한 아쉬움이 왜 없으랴!

새롭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는 일과 병행하며 동동거리는 일인 다역의 내 삶을 더없이 바쁘게 하는 원인이지만, 내가 살아가는 하나의 이유이고 보람이기도 하다.

전공도서를 깊이 읽는 것은 좋으나 예전처럼 다양한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는 게 무엇보다 큰 아쉬움이다. 때문에 서평을 쓰거나 나름대로 끄적거리던 평소 습관에 많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나의 보고서를 마치고 나면 또 다른 연구계획서나 주제발표가 기다리고 있는 나날들.

작년에 1등을 했던 독서마라톤도 아직 마치지 못한 상태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상담 후 일지를 작성하고 여러가지 관련된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일도 밀려있는 상태다.

한주간의 비전캠프를 마친 오늘, 개인상담까지 이어져 매우 피곤하지만...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이유들..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던 친구들은 어찌 지내고 계실까 궁금하다.

내가 먼저 찾아가 안부인사를 하지 못하는 입장이니... 다만 아쉽고 안타까울뿐.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곧 방학이다. 그럼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으려니.. 기대하고 있다.

 

한 집단의 마지막 회기에 '유서쓰기'를 했다.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마지막 흔적인 유서를 쓰는동안, 혹은 쓰고 나서 서로 나눌 때 여기저기서 눈물 콧물을 훌쩍였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후회와 회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거나 약간은 감상적인 유서도 있었다.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마지막'이란 유서쓰기의 무게감과 함께 실존의 문제를 거듭 되새겨볼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남기고 가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 시행착오를 겪으며 상처를 준 사실들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애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집단원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불시에 당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측불가능한 순간순간을 살고 있음을 자각할 때마다 건강하게 살아 있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함이 느껴진다.

 

꽤 두꺼운 이 책이 한순간 눈에 확 들어왔다. '애도'는 평소 마음아픈 상처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관심갖고 있던 분야였다. 주인공 시즈토의 애도기행에 동행하면서 가슴 깊은곳으로부터 아픔과 안도감이 동시에 올라올때가 많았다. 저자는 '이 세상에 꼭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라고 말했고, 충분히 공감되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시즈토의 애도여행이 단지 죽은자를 찾아다니는 기이한 행동으로 비춰지지 않는 것은, 그의 애도가 죽은이들의 본질에 닿아있기 때문일것이다. 그에게 죽은이들은 부자였거나 가난뱅이였거나 선한 사람이었거나 살인자였거나 하는 외적인 요인들은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한다. 그저 사는동안 어떤 사람에게 사랑받았으며 어떤 사람을 사랑했고, 어떤 일로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았는지만이 중요하다. 

자극적인 기사로 악명놓은 기자 마키노는 우연히 시즈토를 만난 후 삶의 근원이 흔들리는 심적 변화를 겪게 되고... 결국 그의 자취를 추적하기에 이른다.

유년기 아버지와의 끔찍했던 기억들과 상처.... 치유되지 못한 깊은 상처는 결국 마키노라는 한 인간의 삶을 흔드는 보이지않는 바람이 되고... 헤어진 아내와 아들의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고립감과 결핍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모습은 고착된 어린 마키노를 보는듯해 가슴이 아팠다. 죽어가는 아버지가 애타게 찾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병원 근처를 배회할 뿐 찾아들어가지는 못한다. 흔들리는 그의 고뇌와 아픔, 용서하지 못한이의 절망이 얼마나 깊고 슬픈지...

자신의 고통이 깊고 크게 느껴질수록 그의 뇌리를 꽉 채우며 떠오르는 것은 '애도하는 사람'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진정으로 애도하는 시즈토를 생각하며 그는 외롭고 고독하게 죽어갈 자신을 찾아와 애도해줄것으로 믿고 위로받는다.

 

암이 진행되어 죽음을 예감하면서 하루하루 아들을 기다리는 준코의 모습도 의미심장했다. 시즈토의 애도여행이 길어질수록 준코의 기다림은 희망을 잃는다. 그러나 그녀는 믿음이 있기에 슬프지만은 않다. 생과 사의 경계가 이미 의미없어진 그녀로서는 언젠가 아들이 돌아와 그 특유의 제스처로 자신을 애도해줄 것이므로.

 

상처입은 자신을 새로운 영혼으로 부활시켜준 남편을 칼로 찌르고 고통속에 몸부림치던 여자 유키요 또한 시즈토를 통해 치유받게 된다. 신도 상상하지 못할 방법으로 죽고자 했던 그녀의 남편... 애통한 영혼들을 순수하게 애도하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들... 이 책이 왜 권위있는 나오키 상을 수상했는지 문외한인 나로서도 느낄 수 있는 철학적 깊이가 탁월한 책이다.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특별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걸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죽은이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인생의 본질은 어떻게 죽었나가 아니라 사는동안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어떤 일로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았는가에 있는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551

"책이 슬퍼요?" 아들이 물었다. "그래" 훌쩍이며 콧물을 닦았다.

아들은 내가 책을 읽으며 훌쩍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시즈토의 엄마 준코처럼 나도 의연히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애도여행을 계속할 누군가가 내 죽음도 애도해 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위안이 된다.   

애도하는사람, 문학동네, 텐도아라타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가 버스 정류장에 서있다.

분홍색 짧은 치마를 입었다.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고, 책가방을 메고 있다.

트럭이 스르륵 다가와 소녀 옆에 선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소녀의 작은 몸을 번쩍 들어 차에 태운다.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너무 놀라서 소리조차 지를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다.

이후 소녀의 소식이 끊긴다.

 

"엄마, 학교다녀올께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릴것 같은데... 더이상 들을 수 없다.

 

인터넷 뉴스에서 열살 여자아이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낯선 남자에게 유괴당한 아이는 결국 살해당해 차가운 땅속에 뭍힌채 발견되었다.

실로 끔찍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나 또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피해자의 부모 심정을 헤아릴길이 없다. 그저 공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을듯하다.  

어떻게 이 땅에서 맘편히 자식을 낳아 기를 수 있을까 싶다.

불안한 부모들은 아이의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귀가하기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계속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의 독립을 위해서도 그 방법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위험천만한 거리로 아이를 내보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집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면 그또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아이들이 신변안전을 위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시키는 게 궁극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어린 나이의 아이일지라도 눈높이에 맞추어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주면서 체험?하게 해주면 어떨까?

 

초등 저학년 아이들과 유괴라는 주제로 체험수업을 한 적이 있다.

나(선생님)를 낯선 여성이나 남성으로 설정하고 길을 물으며 접근하여 신체접촉(성폭력)과 유괴를 시도하는 상황으로 약속하고, 아이들이 "싫어요"를 연습하도록 했을 때,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하며 도망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불행한 사건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연습한 아이들은 분명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재민이에게 씽씽카를 주겠다며 유인하던 자동차의 낯선 사람은 놀라 달려내려온 재민이 엄마를 보고는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만약 그 순간에 아무도 보는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분명 불행한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재민이가 꿈속에서 외쳤던 것처럼 생각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연습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방구 오빠는 평소 은비가 알고 지내는 사람이다. 사랑하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은비의 눈에 복실복실한 강아지 새끼를 보여주겠다는 문방구 오빠의 말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일 터였다. 어린 은비는 혹여 발생할지도 모를 불행한 사태에 대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순수한 아이다. 재민이가 함께 있지 않았다면, 그래서 은비가 의심없이 문방구 오빠를 따라 갔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무조건 사람을 의심하는 건 옳지않으며, 인간관계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평소 알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만약 문방구 오빠가 정말 순수하게 새끼 강아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너희 아빠에게 다 말할 테야"라는 재민이의 말에 부리나케 도망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험은 늘 예기치못하게 발생한다. 그렇다고 항상 긴장한 채 살아갈수는 없는 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가 막연히 남의일이라고 무관심할 게 아니라 기회에 관련 자료들을 동원해 알려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꼭 명심할 게 있다. 사건 자체를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심리적으로 두려움을 갖게 하는 건 후유증이 따를 수 있다는 사실...

나의 아들이 한 때 소지하면 안되는 커터칼을 가지고 다닌적이 있었다. 소소한 다툼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고... 감정이 치우치면 위험을 대비해 소지한 칼이 흉기로 변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한 물건이 어느순간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에게도 큰 교훈을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은비 아빠가 알밤을 통해 제시하는 은유는 꽤나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진다. 유괴나 살인 등 흉악한 범죄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방법...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최근 발생한 소녀의 죽음에 애도를 드립니다.

안돼, 낯선사람이야,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