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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리즈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전편에 나왔던 익숙한 얼굴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이나 주요 조연이 다시 나오는 걸 얘기하는 건 아니고(홈즈시리즈에 홈즈 나오고 뤼팽시리즈에 뤼팽 나오는 게 뭐 그리 호들갑 떨만한 일일까), 살짝 지나치면서 말 몇마디 섞는 정도의 비중없는 조연이나 단역 캐릭터가 살짝 등장해줘야 반가움과 찾는 재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는 작가의 손을 통해 비중이 적은데도 나름의 개성을 갖추게 된 캐릭터라면 - 그 작가가 트릭은 저 멀리 어딘가에 제껴두고 인물묘사에 목숨을 거는 와카타케 나나미라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다. :)

   .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에서 기토당의 아르바이트생 히무라의 이름을 발견하고 기겁한 건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듯이,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에서는 곳곳에 전편의 카메오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 같은 동네의 살인사건이니 고마지 반장님이나 서장, 미우라 검시관이 다시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 그렇더라도 또다시 대뜸 "한 번 보자마자, 아무리 봐도, 라니, 아마추어는 부러워"라는 미우라 검시관의 대사에는 그저 웃어버릴수밖에 없다:) - 기토당이라는 반가운 이름이 지나가기도 전에 여전히 우락부락한 고다마 고조 사장님이 등장하자마자 결혼얘기를 꺼내서 읽는 사람을 설레게 하질 않나, 쓰노다 고다이의 소설을 외우고 다니는 카페 주인에 로맨스 축제가 열리는 곳은 하자키 로열호텔이고, 또 하필 나오는 흥신소는 하세가와 탐정조사소에 사원이 무라키 요시히로란다. 정말 읽다가 자리에서 낄낄거리면서 데굴데굴 굴러다닐 정도고, 책표지에 팬서비스 대특전!!!! 이라고 붙여놔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다.

    . 같은 시리즈물이지만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에서 씁쓸하고 묵직한 맛이 느껴졌다면,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는 한껏 가볍고 산뜻해진 느낌이다. 온갖 불운을 다 안고 있다지만 하나씩 곱씹어 보면 뭔가 웃긴 주인공과 형사와의 로맨스(형사의 로맨스는 하자키 시리즈의 특징인걸까?)도 그렇고, 주인공과 ’하필이면’ 로맨스 전문 고서점 주인과의 로맨스서적 배틀, 잔머리를 굴려서 시체를 훔쳐내는 해프닝에 한다리 건너면 모두 아웅다웅하는 사이인 동창모임까지. 전편과 마찬가지로 추리 부분은 여전히 한참 빈약하지만(전편처럼 황당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할애한 분량에 비해선 트릭 쪽은 그닥 성과가 없다. 약간 애거서 크리스티의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대신 와카타케 나나미의 강점인 위트와 재미는 훨씬 강해져 있다. 진행이 빠르고, 코믹한 부분이 많고, 군데군데 분위기를 띄우고 웃긴 포인트를 집어내는 등등 ’이야기’에 대해 와카타케 나나미가 알고 있는 기법이 모두 총동원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코믹’, ’웃음’이라는 측면으로 따지자면 단연 첫손가락에 꼽을만한 책이었다(2위는 철서의 우리 상권) 추리물을 빙자한 코믹 드라마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무척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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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참 성실하다. 요즘 나오는 추리소설들을 보면 미스테리 안에서 이것저것 배합하는 건 마땅히 해야 할 덕목 정도로 여겨지고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장르까지 섞어내는 작가들도 꽤 보이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만큼은 어디에도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트릭과 수수께끼, 논리를 중심으로 하는 본격물에만 집중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바뀌는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를 다 망라하기라도 하려는 듯한 온갖 트릭들뿐인데, 이 소설에 있는 네 이야기만 해도 이야기가 바뀔때마다 - 그것도 종류별로 - 전혀 다른 트릭이 등장하고 있다.

   . '부재의 증명'은 제목 그대로 알리바이를 깨야하는 단편이다. 숨어있던 소매치기가 근처 빌딩으로 유명작가가 들어왔다 나가는 걸 목격하고, 유명작가의 쌍둥이 동생이 그 빌딩에 있는 애인의 집에서 살해당하지만 동생과 애인을 두고 삼각관계를 벌이던 유력한 용의자인 작가의 알리바이는 확실하다. 여기에 발견된 흉기 때문에 범행 가능시간은 더 좁혀지고 알리바이는 더욱 확실해지는데.. 최대한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범인을 추리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범행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진상을 읽고 아. 이런 식의 비틀기가 가능하구나. 좋은 거 하나 배웠네;; 라는 생각이 들던 소설. 

  . '지하실의 처형'은 동기와 심리분석의 문제. 애거서 크리스티도 범인을 추리하는데 심리분석을 종종 이용하긴 했지만, 사실 요즘같이 까탈스러운 독자들이 많은 시대에 심리분석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건 무리가 아닌가 싶다. 다 읽고나서도 그다지 납득은 가지 않았던 이야기. 설정 자체는 상당히 괜찮았는데.

   .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은 다잉메세지를 추리해야 한다. 범인 자체는 중간부분에 이미 밝혀져 있고 두 개의 사건에 얽힌 두 개의 다잉메세지를 푸는 것이다. 문제는 둘 다 지극히 일본적인 다잉메세지라 사실 어느정도 감을 잡는 것 이상으로 굳이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거나 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나 두 번째 다잉메세지는 발상은 꽤나 재미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런 건 일본인들도 잘 모를 거 같은데. 이걸 가지고 독자들에게 주는 트릭이라고 하기엔 좀 어렵지 않을까. 다른 나라 독자들에게야 완전 사기고. :)

   . 마지막 이야기인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는 중편인데, 정말 간만에 보는 시간표 트릭이다. 원래 일본 고전추리물에서는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이 자주 나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쓰기가 어려워져서 지금은 거의 드문 트릭이다. 시간표 트릭이란 것 자체가 따라잡는 쪽은 '잘 알려지지 않은 최선책'을 선택해서 어떻게든 앞질러가야 하고 따라잡히는 쪽도 이야기가 되려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갈 만한 차선책 정도는 선택해줘야해서 철도 운영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쓰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트릭에 트릭을 덧대서 시간표 트릭을 짜내는데 성공한다. 물론 다른 나라 지역에 다른 나라 시간표니 전혀 끼어들 틈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골머리를 썩은 것만은 확실하게 눈에 보이니. 그 고생에는 박수를. ^^;

   .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는 최근 트렌드답지 않은 성실하고 오밀조밀한 트릭 때문인지 고전추리를 읽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애거서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을 좋아한다거나 반전에 치중된 경향에 아쉬움을 느낀 독자들에게는 꽤나 좋은 선택일거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비슷한 성향의 동료 작가들에 비해서 비교적 큰 편차없이 작품들이 안정되어 있고, 글쓰기 솜씨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장점이다. 국명 시리즈도 어서 나왔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