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라는 큰 글씨가 표지를 장식한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귀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들린다. 그런데 왜 듣기인가?’ 그렇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듣기 속에서 살아가는가. 자명종 소리, 텔레비전 방송, 차량 소음, 전화벨 소리, 부모의 잔소리, 상사의 꾸지람, 선생님 가르치는 소리, 컴퓨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

물론 이런 소리를 듣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듣기를 ‘읽어버린 지혜’라고 정의한 것을 보면 쉬 짐작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듣기는 수동적인 듣기(hearing)와 능동적인 듣기(listening)로 구분한다. 히어링이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것이라면 리스닝은 우리가 원하는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여 듣는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귀찮거나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수동적인 듣기이다. 반면 즐기며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능동적인 듣기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듣기는 능동적인 듣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mp3를 통해 영어회화를 듣고, 워크맨으로 시끄러운 하드록을 감상하는 유의 듣기와는 다르다. 저자의 듣기는 ‘우리의 의식을 확장하고, 뇌를 활성화시키며, 창조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행위’이다.

저자가 판단하기에 오늘날의 듣기는 위기에 처해 있다. 사람들의 청음능력은 현저히 떨어졌으며, 들리는 소리도 정상적이지 않다. 인간사회의 화음도, 자연의 소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도처에 소음만 난무한다. 청소년들이 록음악에 탐닉하는 것은 소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텔레비전과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등 화려한 볼거리는 듣기의 영역을 점점 축소시키고 있다. 자폐증도 듣기 장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저자는 위기에 처한 현대인의 듣기를 구제할 처방을 여러 곳, 여러 방식으로 내놓고 있다. 저자는 현대보다는 오랜 옛날에, 문명사회보다는 전통사회에, 인간세상보다는 자연상태에 ‘듣기’가 발달해 있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북미의 인디언의 듣기 문화를 비중있게 소개한 것은 시사적이다.

캐나다 북부의 인디언 크리족은 어릴 적부터 바람, 돌멩이, 나무 등 자연환경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새싹이 돋는 봄이 되면 아이들을 큰 나무 밑에 앉혀 수액이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소리를 듣게 하는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인디언들에게 태교 역시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는 일로 시작한다. 인디언 어머니들은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 색깔이며 모양, 향기 등을 태아에게 일일이 설명해 준다고 한다. 이처럼 인디언들에게 듣기는 마음을 열고 영적 세계로 입문하는 길이다.

듣기를 중시하기 태도는 종교에 잘 드러나 있다. 불교의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말과 소리를 듣는 보살’이다. 이 보살은 태어나자 마자 ‘옴 마니 밧메 훔’을 외쳤다고 하는데, 어떤 이가 ‘관세음보살’이나 ‘옴 마니 밧메 훔’을 외치면 달려가 그를 구제해 준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이런 영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수능엄경’에는 관세음보살이 듣기를 통해 깨우쳤다고 적고 있다. 깨달음의 방편인 듣기가 중생구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귀 있는 자는 들으라”와 같은 구절처럼 듣기를 강조한 대목이 적지 않다. 구약에는 1000번 이상, 신약에는 425차례나 듣기와 관계된 말이 나온다고 한다. 성경에서 신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복종한다는 뜻이다. 복종을 의미하는 라틴어 ‘obaudire'에서 ‘audire'는 듣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듣기’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일이요, 신과 소통하는 일이다. 전통사회에서 듣기는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로렌츠 오킨의 표현의 빌리면, “눈이 우리를 바깥으로 데려간다면, 귀는 세계를 인간에게로 가져온다.” 저자는 동서양 문화에서 찾아낸 ‘듣기의 지혜’를 하나둘 들려주며 듣기를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듣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인용 자료가 지나치게 많은데다, 번역투의 문장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잃어버린 지혜’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책은 휘황찬란한 디지털의 첨단문명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아날로그적인 ‘듣기’를 되살리는 것이 ‘오래된 미래’를 찾아가는 일임을 조용히 말해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피랍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뒤 경향신문에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니스트는 이 글에서 1927년 버틀런드 러셀이 행한 동명의 강연을 인용하며 한국 기독교의 비리를 고발했다. 그가 비판한 기독교의 특질은 독선과 배타성, 다른 문화에 대한 무례, 폭력적인 선교방식과 폭력성 등으로 요약된다. 그렇다고 칼럼은 기독교 무용론을 펼치거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까지 가지는 않았다. 외부의 비판을 수용해 자기를 성찰하고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주문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칼럼은 작지 않은 파문을 불렀다. 인터넷 상에는 수십 건의 댓글이 올라 칼럼에 대한 찬반 논란을 벌였다. 몇몇 목사들은 반론을 게재하겠다며 지면을 요구했다. 신문사측에서는 개인의 주관적인 글보다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같은 대표성 있는 기관에서 반론을 보내주면 싣겠다고 중재안을 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한 목사님의 글을 싣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 사회에서 종교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종교는 ‘성역(聖域)’이다. 성역은 말 그대로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말은 ‘건드려서는 안되는 금지된 지역’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게 됐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주목받는 것은 성역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변죽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성역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칼을 빼 들고 외친다. “더 이상 신은 없다.” “아니 애초에 신은 없었다. 그러니 이제 종교 없는 세상을 살아가자”고. 저자는 성역 파괴 작업은 선언적 수준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극단적 종교가 문제”라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종교 자체를 문제 삼고, 종교 자체를 부정한다.

저자 도킨스는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종교는 만들어진 허구’임을 각종 이론과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논파한다. 예컨대 신의 우주창조론을 뒷받침하는 지적 설계론에 대해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또 신은 전지전능하다는 설에 대해서는 신이 전지하다면, 그는 자신이 전능을 발휘하여 역사의 경로를 개입하여 어떻게 바꿀 지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개입하겠다는 것은 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신이 없다는 강력한 이유로 드는 것은 다윈의 자연 선택이론이다. 그는 자연선택설만큼 생물세계와 우주를 잘 설명해주는 이론은 없다고 말한다.

과학자인 저자는 때론 민완 저널리스트처럼 미국사회를 구석구석 취재한 뒤 종교가 얼마나 인간 삶을 억압하고 피폐시키는가를 폭로하기도 한다. 그는 또 무신론자, 종교회의론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종교, 종교인을 떠받드는 교육체제, 사회적 관습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신이 사라지고 종교가 없어질 때 사람들의 희망이 더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종횡무진 무신론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그는 과학으로 무장한 전사(戰士) 같다.

도킨스는 30여년 전 인간의 사회적 행동도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내용을 담은 ‘이기적 유전자’를 펴내 화제를 낳았다. 이 책 역시 발간 당시부터 논쟁을 부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번역 출간된 때가 마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터진 직후여서 관심이 더욱 증폭됐다. 600여쪽 분량에다 쉽게 이해되지 않은 자연과학적 내용도 적지 않지만, 벌써부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러나 만약 국내 저자가 이런 도발적인 책을 내놓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극성스런 보수 종교인 및 신자들의 압력에 출간도 못했을 것이다.

바야흐로 출판계에 `중국 책' 출간 붐이 일고 있다. 한·중 수교 15년째로 접어들면서 그간 비약적으로 확대된 양국간의 인적·물적 교류가 `중국 깊이 읽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경제·정치적 강대국화도 우리에게 중국 이해를 강하게 촉구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8월 `이달의 책' 출품도서 목록만 봐도 쉽게 확인된다. 인문분야 출품도서 31종 가운데 중국 관련 책은 7종이나 된다. `삼국지 강의', `삼국지 깊이 읽기', `유방', `명말 강남의 출판문화', `건륭황제의 인생경영', `혼인의 문화사', `중국 근대 사상과 불교' 등. 고대에서 근대까지 중국의 문화와 인물, 역사를 다룬 다양한 책들이 포함돼 있다.

이중 `이달의 책'으로 뽑힌 `중국 근대 사상과 불교'는 그간 우리가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그래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중국 근대 불교사상가들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근대 중국의 사상가 하면 대부분 정치 및 유교 사상가를 떠올릴 것이다.

책에 소개된 인물은 모두 19명. 양런산, 어우양징우, 뤼청, 왕언양, 탄쓰퉁, 장타이옌, 리수퉁, 캉유웨이, 량수밍, 슝스리, 량치차오, 타이쉬…. 중국어 표기 때문일지 몰라도 대부분 낯선 인물들이다. 양인산(楊仁山·양런산), 구양경무(歐陽竟無·어우양징우), 여징(呂?·뤼청) 등 한자식 표기로 바꾸어도 생소하기 마찬가지이다.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등 귀에 익은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대부분은 생소한 사상가들일 게다.

저자는 근대 중국불교의 기원을 양런산(1837~1911)에 두고 있다. 그것은 양런산이 아편전쟁 직전에 태어나 신해혁명이 일어난 해에 사망했다는 연대기적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태평천국의 난의 와중에서 불서를 접한 양런산은 난징에 `금릉각경처'라는 불경 간행기관을 설립했다. 그는 이곳에서 `정토사경' 등의 불서를 간행, 유통시켰으며, 교육기관인 `기원정사'를 세우기도 했다. `기원정사'는 6개월만에 문을 닫지만, 이는 뒷날 양런산의 제자 어우양징우가 본격적인 불교 연구기관인 `지나내학원'을 세우게 되는 밑거름이 됐다. 이처럼 양런산의 불교 사상은 어우양징우에 계승되고, 다시 뤼청·왕언양에게로 이어진다. 저자는 양런상-어우양징우-뤼청·왕언양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근대불교의 형성기로 보고 있다.

이처럼 책은 인물의 사승 및 교유관계를 통해 중국 근대 불교를 살핀다. 군데군데 에피소드를 통해 중국 불교학이 학문적 분화되는 과정을 소개하기도 한다. 뤼청과 슝스리의 교학 논쟁이 그것이다.

1943년 어우양징우가 별세하자 뤼청은 스승의 추도사를 슝스리에게 부탁했다. 슝스리 역시 어우양징우에게 유식학을 배운 제자였다. 그러나 슝스리는 추도사를 거부했다. 제자이긴 하지만 스승의 유식학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슝스리는 뤼청과 달리 교육·교화를 통해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유식학의 기본 골격을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의 깨달음을 강조하는 선종에 더 관심이 갔다. 젊은 날 배운 양명학의 영향이 여전히 컸기 때문이다.

흔히 사상가라 할 때, 한 분야만을 파고들지 않는다. 중국의 사상가들도 유교, 불교, 서양 정치사상 등을 두루 섭렵하는 경우가 많다. 불교사상을 얘기하는 이 책에서 캉유웨이, 슝스리, 량수밍과 같은 유학 사상가들이나 장타이옌, 량치차오와 같은 실천적 지식인이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저자도 자주 인용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중국 근대 사상가와 학술동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량치차오의 `청대학술개론'(국내에는 `중국 근대의 지식인'으로 번역됐음)와 비교된다. 우리 젊은 불교학자의 연구성과가 량치차오의 저서에 견줄 수 있다는 점은 크게 상찬할 일이다.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중국 근대 사상 및 학술의 전반적인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