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빵에 대한 책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식이라고 해서 더 어렵지도, 더 복잡하지도 않다. 다만 훨씬 더 맛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주 쉽게 생각했는데 용어가 장난이 아니다. 불어는 이제까지 배운 적이 없어서 더욱 그렇겠지만 그동안 주어들었던 바게트와 크루와상이외에는 생소한 이름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프렌치 레시피 80가지와 마드모아젤 슈의 라이프 레시피 27가지가 소개되어 있는데 하나 하나가 보는 것만으로도 그 모양새가 너무도 예뻐서 절로 군침이 돈다. 겉은 파삭하고 속은 한없이 부드러운 빵이나 그 속에 달콤한 그 무엇이 들어 있는 파삭파삭한 과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맛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먹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직은 직접 반주하여 만들고 구워보지도 않았는데도 빵을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 내가 먹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사실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 시간이 허락할 때 레시피대로 직접 반죽하고 굽는 수고와 함께 맛을 보는 그때가 되면 프랑스 빵의 마니아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밀가루에 손가락으로 3군데 홈을 파서 설탕, 소금, 이스트를 각자 넣고 잘 섞은 다음 큰 홈을 파서 그기에 물이나 우유를 부어서 20 ~ 25분 정도 반죽하여 글루텐을 형성시키고 60 ~ 90분 발효를 시키고 굽기를 20분 정도 한다고 한다. 최소한 시간반 이상은 걸리는 일이 베이커리임을 깨달음과 함께 프랑스 빵 대부분이 12시간 이상 소요되는 저온숙성 발효를 하는 이유가 빵맛이 더 깊고 풍부하기 위해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더 좋고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프랑스 베이커리를 하다보면 한칼에 뚝딱 해치워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것들에만 익숙한 나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책의 구성도 썩 잘 그렸다고는 할 수 없는, 그냥 신경쓰지않고 마음가는대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림들이 군데군데 채워져 있다. 게다가 책의 뒷부분 1/3 정도는 나만의 아이디어 노트라는 제목아래 그어진 줄과 안을 채워야할 말풍선들만 들어 있다. 물론 나중에 자신의 것을 채워넣어야 한다는 무언의 암시가 들어 있을 것이지만... 어쨌든 무언가 보기좋은 근사한 것들만으로 채우지 않아도 한권이 책이 될 수 있듯이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시사하면서 하나의 잡기장 같은 인상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에 와닿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는 지를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데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소개해주고 있다. 원하는 인생의 지도를 그리고, 두려움에 맛서고, 정말로 원하는 일을 알아보고, 숨기고 싶은 단점을 나만의 장점으로 만들고, 부정적인 생각 몰아내는 방법 등등을 작가가 한대로 유치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림일기 형식으로 스케치북을 채워 나가는 것도 머리속에서만 맴도는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고사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정말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의 단점은 무엇이고 장점은 무엇인지 조차도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아무 생각없이 부정적인 생각속에서 살아온 것이 나의 일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함을 물론이고 그것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점이건 단점이건 인간은 남들과 다르다. 이 다르다는 것이 독창성과 연결된다. 이 독창적인 것인 창조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창조적인 것을 해낼 수 있는 자질을 누구나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단지 자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꺼집어내어 사용하지 못할 뿐인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이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버리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부부, 부모자식, 형제자매, 친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갈등, 분노, 아픔, 상처, 이해, 화해, 용서, 이별, 재회등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것은 모두 묘사되어 있다. 이 시대의 사랑과 결혼, 진정한 자유의 갈망과 책임을 그린 위대한 소설이라는 말의 느낌보다는 더 심한 마약과 섹스가 수시로 그려지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거부감이 치밀어 오르는 내용도 많이 있었다. 마약을 일상적인 것처럼 행하고 난잡하고도 문란한 프리섹스, 11살이라는 나이부터 시작하는 성경험이 당연시 하게 그려지는 그 사회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별세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소설속의 그런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재미를 위한 픽션이기 때문에 그런 극단적인 묘사가 가능한 것이지 실제로는 그렇게 까지는 아닐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많이 나온다. 패티와 월터 부부는  다 좋은 부모들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패티는 동생들에게만 지대한 관심을 쏱는 부모의 철저한 무관심속에서 자랐고 월터는 자기에게만 집안일을 시키는 아버지 밑에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어렵사리 학교공부를 하는 정도였다. 이렇게 자랐으면 자기 자식들과의 사이에서는 더 좋은 관계가 성립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못한 것이 그대로 들어난다. 패티는 아들 조이에 대한 지나친 집착, 월터는 아들에 대한 강압적인 자세와 무관심으로 아들의 반발을 불러 일어키고 결국은 집을 나가게 만드는 것을 보아도 내리사랑의 어려움을 공감케 한다.

패티는 자기가 사랑하던 그들 둘다의 친구인 리처드가 아니라 자기를 사랑해주는 월터와 결혼을 했으나 아들 조이의 가출 후 월터와 멀어지고 리처드와 바람까지 피우게 된다. 월터는 가장 믿고 있는 마누라와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몇년의 각자의 방황끝에 월터와 패티는 재결합하여 행복한 생활로 접어드는 결말로 끝이 나지만 이 상황에서 나 같으면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두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려면 부부의 사이에서도 부모자식간의 사이에서도 나만의 주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