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네요. 정말 봄이예요. 우산쓰고 분위기 잡으며 걷고 싶은데...애 셋 끌고 나갈 것을 생각하면....휴.....아이들에겐 우산쓰고 돌아다니는 것도 큰 재민데, 좀 미안하네요.
어릴 때 비오는 날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 보면 지렁이가 참 많았어요. 그걸 잡아 여자애들한테 던지는 장난꾸러기들, 그리고 꺄꺄 소리지르며 지렁이를 피해 다니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어떤 건 정말 제눈엔 뱀 수준으로 굵어 보이기도 했죠. 그런데 요즘은 길을 걷다가도, 혹은 학교 운동장을 거닐 때도 사실 지렁이 보기가 그리 쉽지는 않죠? 아마 이 책에 나오는 봄이처럼 지렁이랑 세 가지 약속을 해야 지렁이가 고개 내미려나 봐요.
봄이는 눈부신 봄날 아빠와 함께 토마토를 심었어요. 그러다 지렁이를 보게 되죠. 징그러워 확 던져버린 지렁이.....그 지렁이는 봄이네 밭에 사는 흙톨이랍니다. 봄이에게 던져진 것도 큰 일이지만 얼마지 않아 더 큰일이 일어나요. 지렁이 친구들이 병들어 가거든요. 봄이 아빠가 토마토를 위해 듬뿍 준 농약과 화학 비료때문에 병들어 가는 봄이네 밭을 떠나 흙톨이와 지렁이 친구들은 오동통촉촉 마을, 봄이네 건너편 밭 강이네로 이사를 간답니다. 무더운 여름이 찾아와 비가 내린 후 봄이네 밭은 엉망이 되지만, 지렁이가 사는 건강한 땅, 강이네 토마토는 튼튼하죠. 봄이는 강이 덕에 땅속괴물 지렁이가 밭을 지켜 준 것을 알게 되고, 지렁이와 친구가 되기 위해 약속을 합니다.
"첫째, 농약은 안 돼!"
"둘째, 화학비료는 안돼"
"셋째, 지렁이를 아끼고 사랑해 줘!"
그리고 마침내....봄이네 밭에도 크고 탐스러운 토마토를 열리게 됩니다.
이책은 위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지렁이를 통해 환경 문제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접근합니다. 하지만 이런 지렁이를 소재로한 환경 이야기는 요즘 흔히 접했던 것이라 사실 이야기의 소재에선 신선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 못했어요. 그럼 풀어 가는 이야기가 신선했으면 좋을 텐데.....솔직히 말하면 그 부분에도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지렁이를 좋아하는(?) 우리 큰 아이는(사실 이 책은 10살인 큰 아이가 읽기엔 맞지 않긴 하지만) 오돌토돌 요철감있는 빗방울과 귀여운 지렁이그림이 그려진 표지를 보고 처음엔 굉장히 흥분을 하며, 책을 읽기도 전에 저에게 자신의 지렁이 지식을 과시했죠.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그러더군요. "엄마, 이건 동생들에게 좋을 듯해요."......눈치를 보아하니 자신의 지식을 그냥 확인한 것 이상의 재미를 못 느낀 듯 했어요. 부벨라의 앙증맞은 지렁이 친구나(거인부벨라와 지렁이 친구,주니어 랜덤), 제임스의 유쾌하고 용감한 지렁이 친구(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시공주니어)에 비해 봄이의 지렁이 친구 흙톨이는 사실 좀 재미없는 친구긴 해요.
이책의 진정한 독자 7세 둘째도 책의 내용이 조금 불만이라고 하네요. 왜 지렁이를 ’땅속괴물’이라고 부르는 지 모르겠다구요. 지렁이는 너무너무 착한데 괴물이라고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요. 지렁이에 딱 맞는 좋은 별명을 짓겠다고 하루종일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이책을 읽었을 때 느껴졌던 아쉬움이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화 되어가는 느낌인데.....그건 아마 충분한 상상력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네요. 물론 과학적 상식, 그리고 환경 문제라는 주제를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었겠지만, 그것을 너무 안전한 방법으로 이끌어 나가지 않았나 하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세 가지 약속이라는 것을 봄이와 흙톨이가 하긴 하지만, 사실 어찌 보면 어린이들에게 너무 직설적으로 답을 가르쳐준 건 아닐까요? 봄이와 흙톨이가 조금 더 아슬아슬한 위기를 함께 겪어 가며 그 대답을 찾아갈 순 없었을까요?
이런 조그만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사실 곳곳에서 지렁이와 처음 친구가 되는 아이들을 위한 많은 친절이 이 책엔 있답니다. 표지를 넘겼을 때 귀여운 흙톨이가 자신(지렁이)대한 자세한 소개를 하기도 하구요. 책 마지막에서도 지렁이에 대한 여러 지식이 담겨져 있네요.
또 귀여운 일러스트 역시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우리 두 아이들 역시 그림에는 높은 점수를 주었는데요, 흙을 직접 붙여 질감을 살린 점도 훌륭하고, 흙톨이의 지렁이 친구 한마리, 한마리가 다 제각기 개성있는 생김이라, 둘째는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지렁이에게 이름을 짓느라 바빴거든요. 통통이, 예쁜 분홍점, 노랑뱅뱅....참 아까도 말했지만, 표지도 너무 깜찍하구요.
참....이건 아쉬움이라고 하면 이상한데...책이 너무 과하게 제작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환경을 이야기 하는 책인데, 너무나 질 좋은 종이, 표지를 쓴 것이 아닌가 해서요. 거칠더라도 재활용 용지에 책내용이 담겨 있으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비닐코팅이된 표지 재질은 재활용이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군요.도시 아이 봄이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교외에 주말 농장, 텃밭을 마련한 듯한 어설픈 아마추어 농부, 아빠의 모습이 책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합니다.
너무나 과한 친절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밭에 농약과 화학비료가 되지는 않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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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둘째가 지렁이 별명을 지었습니다. 거의 일주일동안 끙끙거린듯...^^
"왕땅장군!!" ^^
땅을 지키는 것이 장군같다나요. 게다가 아주 아주 아주 착하니까 '왕'도 꼭 붙여야 한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