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 읽어보고선 약 20년 정도 지난 뒤 다시 읽어 본 ’작은 아씨들’이다. 당시에는 1권짜리였으니 발췌본이었을테고 완역본으로 처음인 셈이다. 펭클의 책이 좋은 점은 서문과 판본에 관한 정보인데, ’작은 아씨들’ 역시 다 읽고 난 후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렸을 적에 읽었던 책들의 경우 유독 잘 기억하는 편인데, 꽤나 많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수성이 무척 풍부하던 때라 개성이 뚜렷한 네 자매의 우애와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마치 내 일인양 흥분된 마음으로 읽었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미 소녀의 마음이 아닌지라 그때만큼 열렬히 빠져 내가 조처럼 다락방에서 사과를 먹으며 소설을 읽고 있다든가, 에이미가 되어서 혼자 숙모 할머니네집에 꿋꿋하게 견디는 상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 소설 속 주인공의 일을 내 일처럼 받아들이며 슬퍼하고 기뻐했던 생각이 떠올라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그리운 어린 시절에 대해 말이다.
어렸을 적엔 많은 로망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자매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형제만 있던 터라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네 자매만의 재미난 놀이라든지, 돈독한 우애가 만들어내는 따스한 분위기를 참 좋아했었고 더 빠져 들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조였는데, 책을 무척 좋아하는 점이 나와 닮았고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실제로 나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베스처럼 낯을 가리고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조처럼 말광량이처럼 굴었었지만.) 그런 조가 딱 한 번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조가 로리의 사랑을 거부했을 때였다. 이 부분은 다시 읽어봐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만큼이나 로리를 좋아했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엔 둘은 소울 메이트처럼 느껴졌고, 하나처럼 인식되었기 때문에 꼭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둘 사이에 에이미가 끼어드는 설정만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뜬금없이 실연한 로리를 에이미한테 가져다 붙이다니. 내가 에이미를 가장 별로라고 여겼던 것도 작용을 했겠지만 부자연스러웠다. 게다가 둘이 우정에서 사랑으로 발전할 것만 같은 설정을 잔뜩 해 놓고서 결정적인 순간에 아니라고 하니 맥이 빠졌다. 주요 인물들인 자매들과 로리에게 짝을 지어주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보부아르도 "어린 시절의 사랑을 배신한 조 마치를 엄청나게 비난했다"고 회상했다던데,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독자가 꽤 있었나 보다.
다시 읽어본 작은 아씨들은 여전히 재밌고 따뜻한 소설이었다. 특히 소녀들 취향에 맞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옆집의 대궐같은 멋진 집에 사는 미소년과 친해지고, 그 집에 사는 노신사는 베스에게 피아노를 선물하고, 베스가 극적으로 성홍열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는 등 낭만적이고 극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렸을 적 읽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었는데, 작은 아씨들은 19세기 비평가 에드워드 새먼의 말처럼 네 자매 자아의 독립, 자아 실현보다는 미래의 바람직한 아내와 어머니상을 제시하고, 결혼과 가정에서 행복을 찾고 만족해 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점이다. 특히 조가 글쓰는 것을 그만두고(작품에서 잠정 중단이긴 하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교수와 결혼한 것에 대해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자기부정’(저자는 독신으로 평생 살았다),’작가 자신이 그 시대의 가정 문화에 위반되는 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문학적 참회’라고 비판하였다고 한다. 사실 저자는 조를 문학 독신 여성을 남겨 놓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가 누군가와 반드시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많은 독자들의 요청과 시대 배경을 무시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조가 결혼을 했지만 대안학교를 운영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발표하는 것까지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많은 여성 작가들이 작은 아씨들을 읽으면서 소용돌이 속에 빠진 듯이 글을 쓰던 조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꿈을 키운 것처럼 오늘날의 누군가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꿈을 키우지 않을까 싶다. 내용은 달라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