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의 패턴이 비슷해서인지, 아님 내 자신의 성장이 끝나 버려서인지 암튼간에 읽어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해서 성장소설을 그리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과 게>가 끌린 것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세 아이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삼각 관계와 그 관계에서 빚어지는 심리적 갈등, 동요에 대한 묘사를 세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먼저 관계를 형성한 것은 신이치와 하루야 두 소년이었다. 그들은 외지에서 전학 와서 현지의 아이들과는 겉돌기만 하다가 서로가 가진 아버지의 그늘(신이치에게는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 하루야에게는 아버지의 학대)을 부지불식간에 인지하고 친구가 된다. 공통 분모를 가진 아이들은 빠르게 친해지기 마련이고 집도, 학교도 그들에게는 안락함을 주는 장소가 될 수 없으므로 그들만의 비밀의 장소를 만들게 된다. 그 장소에서 소라게를 불로 지져 소라검님을 불러내어 소원을 비는 의식을 행하는 놀이를 하게 된다. 애들 장난같은 그 의식을 통해 혼자만이 간직하고 괴로워하던 서로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소라검님이 되어 친구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마음을 치유해 주고 싶어한다. 그러다 신이치는 나루미라는 소녀와 새로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나루미는 어머니를 잃었는데, 그 사고의 간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신이치의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신이치와 나루미는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루미가 먼저 손을 내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루미는 신이치와 말 섞고 싶지조차 않았지만, 그런 행동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말을 건넨 것이다. 이러한 나루미의 심리 상태는 신이치의 어머니와 나루미의 아버지가 교제한다는 사실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셋 중에선 가장 아이에 가까운, 그래서 자신의 감정 표현에 가장 솔직한 신이치가 어머니의 재혼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 반면, 나루미는 아버지의 재혼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여자 아이들이 또래 남자 아이들에 비해 정신적으로 성숙하긴 하지만 나루미는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이고 아버지의 재혼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나이임에도 아닌 척 한 것이다. 어쨌거나 나루미가 신이치와 하루야 사이에 끼게 되는데, 셋이서 친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 관계가 썩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거다. 나루미가 신이치 쪽으로 기울거나, 하루야 쪽으로 기울게 되면 신이치와 하루야 사이는 팽팽하게 당겨져 긴장감을 일으키고 남은 한 쪽은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심리 상태는 하루야의 경우는 신이치에게 익명의 악의적인 비방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신이치의 경우는 하루야가 다치기를 비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관계에서 서로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매우 잘 포착하여 표현한 점이다. 인간은 단층의 감정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서, 동일한 대상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거부감이 느껴지고, 좋으면서 싫은 감정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일련의 사건과 그 안에서 변화하는 심리와 행동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러 하루야가 나루미 아버지를 죽이러 갔다고 생각한 신이치가 그것을 막으러 나루미 아버지의 차 앞에 뛰어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신이치는 그 일을 계기로 그 전까지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 위주로만 생각하던 태도을 버리고 정신적으로 한 뼘 자라나게 되고, 나루미는 어른인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치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루야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 한다. 그리고 셋은 촘촘하고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던 그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세상과 마주하려 한다.
그들이 잔뜩 웅크리고 있던 소라게 껍데기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힘차게 한걸음씩 내딛는 것을 응원해 본다.